오전 9시 50분.
내남자가 이불 덮고 와병 중이다.
이태백도 술병날 때가 있다더니, 출근도 못하고 발목 잡혔다. 볼록해진 배를보면 남산만해 질때까지 마시고 부어댔을텐데 술병이 날만도 하지.
오늘과 어제 사이 새벽2시반에 실실거리며 들어 오는데
본새가 딱 대취 상태였다. 소주로 소독한 하얀 얼굴에 무거운 눈꺼풀을 소처럼 끔뻑거리면서, 현관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그간 이 남자의 알콜 레시피를 봤을 때, 소주3병 맥주4병 폭탄으로 말아먹은 모습이다.
"란아, 나 왜이렇게 힘들지? 내가 이제 술을 못마시나봐요."
심상치 않은 느낌에 얼마나 먹었냐고 묻자,
진짜 얼마 안먹었단다.
그렇다면 소주3병 밑으로 깠다는 말인데.
영업직도 아닌 놈이 하루 걸러 거래처랑 술먹고
다음날은 죽었다가 주말이나되야 쉰다.
주인 잘못만나 쉴틈없이 일하는 간은 무슨 죄인가.
이러니 안힘들고 배기냐고.
"인간이 살면서 쓸 수있는 총량이 있대. 너는 그동안 많이 마셔서 알콜 총량을 다 쓴거야. 힘든게 당연하지. 이젠 받아들여라."
위로한답시고 훈장질 좀 했더니 너무 속상하고 분해한다.
첫 잔부터 오늘 조금 안 받는구나 하고 천천히 먹었는데,
팀장님 왜 안드시냐며 핀잔하더란다.
그러고는 저빼고 자기들끼리 먹으려고 했다나?
그게 꼴 뵈기싫어서 한잔 가득 달라며 연거푸 마셔댔다니,
아주 호연지기가 따로없다.
"네가 술을 먹는거지 술이랑 싸우는거냐?
왜 술을 이기려고들어. 이길 수도 없는데."
"이제 나는 술을 못하는사람인가봐. 천하의 김완이 다 죽었다."
슬퍼하는 패배자에게 애잔함이 담긴 꿀물을 타준다.
얼음 동동띄운 컵을 받아들고는 한숨 한번에 꿀물 한번을 번갈아 마신다.
저 꿀물맛을 느끼기나할까. 만취 때는 물에서도 술맛이 나는데 말이다.
발재간으로 양말을 벗고 추리닝으로 갈아입는다.
술살이 쪄서 그런지 청바지도 한번에 벗기 버거워 한다.
힘들긴 힘든가보다. 세상 깔끔쟁이가 오자마자 씻지도 못하고 30분째 옷도 못갈아입는걸 보면.
바닥에 널브러진 구리구리한 양말이 제 주인을 빼다 박았길래,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사진을 찍었다. 찰칵 소리에 양말남이 뒤를 돌아보곤 왜 찍냐며 웃는다. 왜 찍는지 자기도 알면서. 술깨고 카톡 확인하려무나. 재미질게다.
이제 술은 동화 차장이랑 먹어야겠다며
자기보다 술 못하는 사람은 차장님 뿐이란다.
나는 컨디션이라도 먹으라고 앞으로는 술 못하는 너를 받아들이라고 했다.
"컨디션 그런거는 못 먹는 사람들이나 먹는거야!"
그래, 네가 그 못먹는 사람이야.
제발 너의 현실을 받아들이거라.
이른 아침 작은 새들 노랫소리는 커녕
상큼하고 깨끗한 우웩질 소리에 잠을 깬다.
눈 비비며 빼꼼히 내다보니 화장실에서 양껏 웩웩거리며
게워낸다. 정말 힘든가보구나 육성으로 뱉었다.
물 내리는 소리가들리고, 아무 일 없다는 표정으로 돌아오길래 가만히 등을 쓸어줬다.
"난 괜찮아요~아무것도 안했어요. 옆집에서 그런거에요."
하며 명랑 떠는 너를 보며, "옆집 204호도 그렇고 206호도 그러는걸보면 우리 층은 구토 제도가 있는것같다." 고 했다.
구토로 하나되는 이웃, 즐거운 토층.
팬티만 입고 생닭다리가 됐길래 바지는 왜 벗었냐고 묻자, "튈까봐."
"아무 것도 안했는데, 왜 튀어?"
자기도 좀 그랬는지 겸연쩍이 웃으며 귀염을 부린다.
"바나나갈아줄까 토마토갈아줄까?"
내가 생각해도 참 달달한 내조다.
술깨고 보상받으마, 어마어마하게 보상받으마.
당연한 걸 뭘 묻냐는 듯이,
"토마토주스지. 토했으니까." 란다.
그랬다. 그는 팀장이기 전에 라임의 왕이었다.
오후 3시쯤.
지각출근한 술쟁이에게 저녁에 훈제삼겹 먹자했더니,
"지금같아선 아무것도 먹기 싫어요."
카톡보고 제대로 터졌다.
구리구리 풀죽은 양말 사진 보내고,
얼른 콩나물 한봉 사러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