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일자: 2018년 4월 11일
중반부쯤, 무대가 깜깜한 와중에 조그만 손전등만 든 3명의 배우들이 무대를 돌아다니며 손전등으로 바닥을 비추면서 자신이 하는 대사를 동시에 분필로 바닥에 쓰는 장면이 있다. 번갈아가며 대사를 하는데...뭐랄까요. 익명성에 기대 쓰는 악플들을 형상화한 장면 같달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있을때 잘하라든가 그만하라든가...에휴.
-평점: ★★★
[어느 작은 마을. 아이를 잃은 엄마의 이야기를 담았다. 놀이터에서 갑자기 딸이 사라지고, 수아 엄마는 아이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계절이 변해도 수아는 여전히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수아 엄마는 수아가 사라졌던 놀이터 그네에서 계속 아이를 기다린다. 마을 사람들은 놀이터를 밀고 주차장을 만들기를 바라지만, 수아 엄마가 막는다는 이유로 그를 불편해하고, 수아 아빠마저도 희망을 버리라고 말하는데... ]
원래부터 세월호를 다룬 블랙코미디라는 걸 표방하고 다 알고 가서 그런가. 아니면 현실이 더했기 때문일까? 참으로 웃기고 기막힌 광경의 연속이었지만 각오를 미리 해서인지 그렇게 분통이 터지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화나기는 했지만.
괜찮은 작품이었어요. 누가 봐도 세월호 사건을 비유한다는 게 딱 느껴지는 줄거리와 대사들(특히 '그네'라는 건...노린 걸까?;;;) 배우들의 연기, 꽤 좋더라구요. 울고불고하는 주인공 아이엄마는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사람들도.
아이 엄마와 아빠 역 배우를 제외하면 모든 조연 배우들이-아이엄마가 저러고 다니는 게 무섭고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이웃주민, 심각하게 무성의하며 이혼했다고 뭐라 그러는 경찰, 흥미 위주로 보도하는 언론인들 등등-매우 과장된 어조와 몸짓으로 연기를 하거나, 얼굴 어딘가를 부분 가면으로 가리고 나오거나, 둘 다이거나 한데 무신경한 '남'들을 비유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제 그만하자'라든가 '놀러가다가 실종된 애잖아!' 등의 대사가 현실과 겹쳐 들리는 것이 참.
중반부쯤, 무대가 깜깜한 와중에 조그만 손전등만 든 3명의 배우들이 무대를 돌아다니며 손전등으로 바닥을 비추면서 자신이 하는 대사를 동시에 분필로 바닥에 쓰는 장면이 있다. 번갈아가며 대사를 하는데...뭐랄까요. 익명성에 기대 쓰는 악플들을 형상화한 장면 같달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있을때 잘하라든가 그만하라든가...에휴.
바닥 가득히 글들을 쓰고 난 후엔 서로 만나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낄낄대며 기뻐하는데 참;
제작진이 밝힌 기획의도에 따르면 '실종된 아이를 둘러싼 마을 사람들의 다양한 시각을 통해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가 보여 온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대중의 익명성, 위선, 무기력한 공권력, 미디어의 횡포 등 여러 사회적 요소를 과장된 동작과 부조리한 설정을 통해 블랙 코미디로 완성했다.'고 합니다. 제가 본 그대로네요. 의도를 잘 표현해낸 것 같습니다.
작년에도 갔던 소극장이지만(그때는 '볕드는 집'을 상연했죠. 감상글은 안 썼지만;;) 딱히 변한 게 없는 그대로의 풍경이더군요. 여전히 일반 건물 한 층에 있는 아담한 공간이었고, 관객들은 평일임에도 그럭저럭 들어찼고.
점점 시간이 흐르는 것이 대사로 나오면서 상황이 바뀌어가는데(엄마가 애가 사라진 놀이터에서 텐트농성을 하고, 전단지를 뿌리고, 정치인은 주차장을 만드는데 방해된다고 노골적으로 주장하며 이웃 사람들을 선동하고, 그네를 철거하고, 아이아빠가 와서 벌써 10년이 지났다고 하고...) 가슴이 아프더라구요. 특히 연극적 요소를 활용한 마지막 장면! ㅡ조연배우들이 나오더니 엄마가 갖고 있던 아이 신발의 잃어버린 한쪽을 들고 나와 하나씩 풍선을 매답니다. 신발은 풍선에 매달려 공중에 뜨고(미리 추? 자석?으로 바닥에 고정해놔서 아예 천장까지 가버리진 않음), 엄마는 풍선들로 떠오른 신발을 어루만지더니 무대 뒤로 퇴정가다가, 등을 돌려 한번 관객석을 돌아보고 이윽고 완전히 퇴장합니다. 아아..ㅠㅠ 결국 아이는 죽은 것이고 엄마가 그걸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연출인 것일까요?ㅜㅜ
열린 느낌으로 끝낸 게 차라리 잘했다는 생각도 들어요. 연극은 끝이 있어도, 현실엔 끝이 없으니까요...아직 해결된 게 아무것도 없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