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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에서...
게시물ID : humorstory_11571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럭키
추천 : 0
조회수 : 909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06/03/10 18:13:01
어제 어머니의 큰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물론 나는 만나지 못했던 분이고, 얼굴도 몰랐지만...
그래도 예의상 얼굴은 내밀어야 했기에,
대구에서 한양대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일단 큰외할머니의 영정 앞에 절을 올리고,
얼굴은 모르지만, 먼 친척인 것이 분명한.
할아버지와 인사를 나누고.
그 옆에 위치한 식당에서 어머니와 같이 앉아.
밥을 먹었다.
사람은 많은데, 아는 분이 한명도 없다. -_-
열심히 음식을 나르던
나보다 한 한두살은 많아 보이는.
형님들은 나를 힐끔 바라보면서,
"쟤 누구지? 너는 아냐?" 
하며 자기들끼리 속닥이는 것이 직감적으로
들리는 것 같았다.
밥은 다 먹고, 어머니는 이모들과 이야기를 하고.
나는 그냥 뻘쭘히 주위를 둘러보고...;
그러고 있는데 또 그 근처에 살고 있던 우리 누나가 왔다.
눈도 좋으면서 도수 없는 뿔테 안경을 쓰고 온 누나는
꽤 이쁜 티가 났다-_-
역시 성형이란 대단하다.
누나도 간단하게 차려진 메뉴가 똑같은 밥을 먹고.
그냥 가버렸다. 심심한데...
밖에 나가 담배를 피려고 하는데.
영안실 중간에 소파가 밀집하여, 쉴 수 있도록 되어있는 곳에는
한 켠에 돈을 넣고, 일정 시간 컴퓨터를 할 수 있는.
공용 피시가 있었다.
근데, 무슨 초딩들이-_- 한무리 몰려있다.
당근 피시는 단 하나 뿐인데...
초딩들이 어디서 돈이 그렇게 많은지.
각종 아이스크림을 손에 들고 열심히
서든어택 하고 있었다.
컴퓨터 한 켠에 사용가능한 시간을 표시하는
액정을 보니. 약 20분이 남았더라.
올커니 담배 한 대 피우고 통화 한번 하고
오면 끝날 것이란 생각에.
밖으로 나가 별 하나 안 보이는 서울 하늘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고, 친구와 통화로 열심히 서로 욕질을 헤대면서
다시 피시가 있는 곳으로 와보니.
왠걸. 시간이 40분이나 추가 되어 있다.
썅.
인터넷에서 서울 초딩의 악함을 익히 들어온 터라.
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게다가 나에겐 녀석들의 엄마를 당해낼 재간이 부족했다.
일단 할 일도 없는 나는, 한 켠에 준비된 소파에 앉아.
녀석들의 행동을 감시했다.
녀석들은 분명, 실시간으로 백원씩 넣어가며 
시간을 추가하는 것이 분명하다.
일단 나는 끈기를 가지고 기다렸다.
기회가 올 때까지 인내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기회는 무려 20분이란 시간이 흐른 뒤에 찾아왔다.
초딩 무리 반 수가 아이스크림 사먹으로 자리를 뜬 것이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잔량 시간을 확인하니. 약 16분.
지갑에서 빳빳한 천원짜리 한 장을 꺼내 투입했다.
옆에서 잠자코 바라보던 초딩은 안타까운 
듯 작게 한숨을 내셨다.
"아 내 차롄데..."
하지만 나는 코웃음 치며, 초딩에게 한마디 날렸다.
"어떡하니? 벌써 이 형아가 돈을 넣었는데. ㅋㅋㅋ"
"아 내 차례라고..."
"왜 반말이야 -_-+ 아무튼 17분 지나면 형이 할테니 그리 알아라. 훗"
나는 영화에서 본 것 처럼 멋지게 코트를 휘날린게... 
아니고 그냥 뒤로 돌아서서 잔량 시간의 액정이 잘 보이는 쇼파에
걸터 앉아.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은 채.
다리를 꼬며 핸드폰을 들었다.
근데 막상, 전화할 곳이 없네-_-;;
16분이란 긴 시간을 무엇으로 보내야 하겠는가?
그냥 컴투스맞고나 쳤다.
열심히 맞고에 몰두하던 중.
아이스크림을 사러 갔다온 초딩들이
PC로 귀환한 것이다.
그들은 늘어난 시간을 보며, 어리둥절했다.
"야 니가 돈 넣었어?"
"아니 아까 어떤 형이 돈 넣으면서 시간 지나면 지가 하겠데."
"......"
다 들린다 이것들아-_-
뭐 저런 버릇없는 초딩들이 있을 수... 역시 서울 초딩은 사악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하지만 어쩌랴~ 이제 16분 후면, 지들은 옆에서 손가락 빨고 기다려야 하는데.
나는 한번 앉으면 절대 안 비킬 거거든~~♡
난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시간은 흘러, 16분이 지났고.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서든 어택에 몰두하는 초딩의 옆에 조용히 앉았다.
이 자식은 게임에 너무 몰두했는지.
내가 온 것도 모르고. 열심히 총질을 하고 있었다.
아이디를 보니 싯포범수였다.-_-
그럼 이 초딩의 이름은 범수겠군. 

범수는 게임하다가 문득 옆을 돌아봤는데.
생전 처음보는 어떤 형이 앉아있는 것을 눈치챘다.
범수는 직감적으로 아까 전 아이스크림을 사러 갔다.
코인 투입의 순위를 빼앗아 간 그 장본인이란 놈이 이 녀석인 것을
알아챘다.
그의 입엔 여유로운 미소가 걸려있었다.
웃고 있는 듯한 그의 눈은 꼭 '어서 비켜, 씨방새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비켜야 한다. 하지만 비킬 수 없다.
지금 비킨다면, 이 녀석은 이 밤이 끝나가기 전에는 절대
자리를 비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범수도 믿고 있는 것이 있었으니,
곧 그의 엄마가 자신의 위치를 체크하려
이 곳으로 올 것임을 직감했기에, 그는 마우스를 잡은
조그마한 손을 불끈 잡았다.
이미 등뒤엔 식은땀이 흘러 축축해졌다.
범수는 모니터를 바라보는 척 하며, 곁눈질로
옆에 앉은 위험한 녀석을 슬쩍 봤다.
녀석의 표정이 점점 험악해진다.
이대로 가단 정말 큰일 날 것이다.

"범수야!"

이 목소린? 
범수는 환희에 젖은 표정으로 어머니를 돌아보았다.
"어, 엄마!"
"이, 이모!"
"!!!"
"!!!"

그 둘은 놀란 눈으로 서로 마주보았다.

"이 녀석이!"
"이 초딩이!"

사촌이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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