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논평] DJ가 옳았다. 2009.8.12.수요일 클린턴, 갔다. 왜 클린턴인가. 두 달 전인 2009년 6월 9일자 RFA 기사를 틈새논평서 다룬 적이 있다. (틈새 논평 '거짓말은 청와대가 했다' ) 당시 방한했던 제임스 스타인버그 미 국무부 부장관은 앨 고어를 대북특사로 파견한다 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억류된 여기자들은 Current TV 소속의 리포터였고 그 회사의 공동창업자이자 현직 회장이 바로 앨 고어다. 미 행정부가 적임자로 판단한 것도, 앨 고어 본인이 결자해지 차원에서 적극적이었던 것도 당연했다. 분명 그렇게 앨 고어였다. 그런데 두 달 후, 결국 클린턴이 갔다. 왜. 바로 그 궁금증에서 이번 틈새논평은 출발한다.
클린턴 방북소식이 국내에 전해지자마자, 이런 기사가 떴다. 지난 5월18일 'C40 서울세계도시 기후 정상회의' 참석 차 방한한 클린턴 전 대통령과의 만찬에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처럼 당신이 적극 나설 때"라고 조언했다고 측근인 민주당 박지원 의원이 4일 밝혔다. ("DJ, 지난 5월 클린턴 방북 권유" 연합 )
5월 18일 서울 하얏트호텔. DJ가 그렇게 권유했단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도 했단다. "(합의가 지켜지지 않아) 북한이 초조하고 억울해 하니까 지금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9.19 합의를 이행하겠다고 선언하면 모든 문제가 풀린다" "(클린턴 전 대통령 시절의) 제네바 합의에 의거해 핵을 포기하기로 했는데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파기돼 핵개발이 시작됐고, 9.19 합의로 폐기 과정으로 가다가 네오콘들이 약속을 안 지켜 또 핵실험을 한 것" 이에 클린턴은, 무릎을 치며 "미국에 돌아가자마자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국무장관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겠다."며 화답했고. 또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에선 이런 발언도 거론된다. (박지원 "클린턴 前대통령, DJ 조언에 무릎 치더라"/노컷뉴스 ) "중국 시진핑 부주석을 만나보니 북핵 문제 해결에 북미 간 대화하는 방법밖에는 없더라" "중국 지도자들 역시 북핵을 반대하는 상황에서 이를 해결해줄 것은 미국밖에 없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자 클린턴은 "중국이 실제로 그러더냐"며 두 번이나 확인했단다. 글쎄. 반신반의했다. 그런 대화를 실제 했느냐가 아니라 - DJ와 클린턴은 서로의 재임시절 대북정책의 직접 의논대상이었으며 퇴임 후에도 4차례나 만났던 사이다. 이 정도 대화는 자연스럽다. - 과연 그 권유가 클린턴의 방북에 영향을 미쳤겠는가 하는 대목에서.
2007년 9월 뉴욕에서의 Clinton Global Initiative(CGI) 연례회의 개막식에서 정치인들이란 사설 만유인력을 구비한 족속들이다. 지구가 자신을 중심으로 돈다. 그거, 그 세계에선 일종의 능력이다. 그래야 정치 할 수 있다. 이제 누구도 진지하게 주의 기울이지 않는 노정객의 독백 같은 정세분석과 그에 대한 예우 차원의 립서비스 응대가 있었을 뿐인데, 우연히 당시 대화와 비슷하게 일이 돌아가자, 오비이락에 아전인수 격으로 박지원 혼자 신나게 북 치고 장구 치는 건 아닐까. 과연 미 정가에선 DJ의 제안을 알고 있기나 할까. 실제 박지원은 그 만남이 클린턴 방북의 한 원인이 됐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우리 측에서 꼭 그렇게 얘기할 수는 없지만, 배석한 입장에서 당시 대화 내용이 100% 현실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박지원 "클린턴 前대통령, DJ 조언에 무릎 치더라", 노컷뉴스 ) 한 발 뺀다. 실은 그 대목에서 자신이 없는 거다. 하긴 클린턴이 DJ의 제안을 힐러리와 오바마에 전하긴 했는지부터 의문이다. 국내 누구도 그 이후를 확인해 본 일이 없다. 지금까지는. 하여 그것부터 확인해보고자 한다.
클린턴 방북의 전후사정을 보도하는 최초의 기사들은 무척 단편적이고 뒤죽박죽이었다. 클린턴 방북 직후 일본 쪽에서 쏟아진 보도들은 주로 미 관료들의 입을 빌린 것이었다. 예를 들어 마이니치 신문은, 오바마 대통령이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직접 방북을 요청했으며, 억류되었던 두 기자가 미국 가족과의 통화에서 클린턴이 방북하면 석방될 거란 이야기를 전하며 전기가 마련됐다 보도했다. 미 국무성 고위관리의 말을 인용해. (YTN 보도 ) 북한은 중국계 로라 링과 미국에 있는 그녀 가족과의 통화를 총 4차례 허용했다. 그리고 지난 달 중순, 북한당국은 로라 링을 통해 클린턴이 적임자라는 이야기를 미국에 전했다. 여기까진 모든 언론의 보도가 일치한다.
중국계 로라 링(왼쪽)과 한국계 유나 리 미 언론들의 초기 보도 역시 주로 오바마 정부 관계자들의 전언을 기반으로 이뤄진다. 다만 그 내용이 서로 인용한 관료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예를 들어, CNN은 오바마 행정부 고위 관계자 2명의 말을 인용해, 클린턴과 오바마가 직접 이야기한 적은 없다는 보도도 했다. 일본 쪽 보도와는 다르게. 또한 클린턴은 국가안보회의(NSC)의 존스 보좌관과 대화하고서야 결심을 굳혔고, 행정부 고위 관계자가 "성과가 나올 것이라는 점을 확신하고 있으며 따라서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이번 방북이 성공적일 것이라는 점을 조언"해서 방북하게 된 것으로 보도하고 있다. ("클린턴 방북과 여기자 석방 뒷얘기" 연합 ) 방북 직후 일본과 미국 언론을 통해 전해진 오바마 행정부 관계자들의 주장대로라면, 클린턴의 방북은 어디까지나 오바마 행정부가 주도한 작품이 된다. 기사 뉘앙스로 보자면 심지어 걱정하는 클린턴을 설득까지 해서 보낸 게다. 어디에도 클린턴이 먼저 제안했단 이야기는 없다. 그런데 미 언론 중에서도 담당기자가 취재원을 누구로 삼았느냐에 따라 조금씩 다른 관점의 시나리오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뉴욕타임스의 피터 베이커(Peter Baker) 백악관 출입기자는, 앨 고어 측에서 바라본 일의 전말을 이렇게 전한다.
사실 앨고어는 지난 몇 달 대부분을 그의 리포터들을 북한으로부터 빼내느라 노력하는 데 보냈습니다. "두 미국시민이 위험에 처하자 그렇게 많은 이들이 만사 제쳐두고 이 일이 해피앤딩으로 끝날 수 있도록 힘썼다는 사실은 우리나라가 어떤 곳인지 여실히 말해줍니다."
그는 심지어는 도움만 된다면 직접 방북하려고도 했으나 북한은, 전직 대통령급 이하는 안 된다며, 빌 클린턴을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앨 고어는 전직 상관에게 10여일 전 전화해 의사를 물었고, 클린턴은 오바마 행정부가 괜찮다면 자신도 좋다고 했다고 합니다. 이후 백악관은 그것이 좋은 아이디어인지 다각도의 검토 끝에 '네 방북을 부탁드립니다' 라고 했다고 합니다. Al gore, he’s actually spend much of the last few months working intensively on getting his reporters out of NK. “It speaks well of our country that when two American citizens are in harms’ way that so many people would just put things aside and just go to work to make sure that this has... had a happy ending” He even offered to go to North Korea himself if that would help but NK said, no, they want Bill Clinton, no on-e less in the stature of former president. So Gore called his former boss 10 days ago or so and asked him if he would make the trip. Yes as long as the Obama administration was happy with that and After testing it out deciding whether it was a good idea, the White House said yes please do make that trip. 이 버전에서 주인공은 앨 고어다. 앨 고어 사이드의 스토리는, 북한이 빌 클린턴을 원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열흘 전쯤 빌 클린턴에게 제안을 했고 또 백악관에도 이야기해 승인을 얻어 클린턴 방북이 이뤄진 거다. 아마 각자 나름의 진실을 이야기한 걸게다. 자신들의 이해에 맞도록 강조하고 생략된 부분적 진실이라 그렇지. 앨 고어가 클린턴에게 전화를 한 것도 사실일 게고 오바마가 클린턴에게 요청한 것도 사실일 게다. 그러나 같은 당의 전직 대통령이 북한 가는 데 현직 대통령이 전화 한 통 안 했다는 오바마 행정부 관료들의 부자연스러운 이야기는 거짓일 게다. 전화 한 통 없었다 하는 것이, 클린턴의 방북을 지극히 사적 임무로 만들어야 할 이유가 있는 오바마 행정부 입장에선, 정치적 부담이 덜하겠지. 언론들이 이렇게 직접 당사자인 클린턴이 아니라, 오바마 행정부의 관료나 앨 고어 측의 해명에만 기댈 수밖에 없었던 건, 클린턴 본인은 방북을 전후에 완전히 입을 닫아 버렸기 때문이다.
클린턴은 귀환성명 한 줄 내지 않고 단 한 마디도 없이 뒷줄에서 묵묵히 서있기만 했다. 두 버전을 버무린 오바마 행정부 입장의 종합정리 판은 클린턴의 아내, 힐러리의 입에서 나온다. 클린턴의 방북 5일 후인 9일, 아프리카 순방 중이던 힐러리는 케냐에서 있었던 CNN 퍼리 자카리아(Fareed Zarkaria)와의 인터뷰에서 클린턴 방북이 어떻게 이뤄진 것인가에 관한 질문을 받자, 이렇게 답한다.
힐러리 : 당신도 알다시피, 이건 그들의 가족들로부터 시작된 거예요. 무슨 말이냐면, 이건 로라와 유나가 북한사람들로부터 전달받은 메시지를 그들의 가족에게 그리고 (그들의 가족은) 부통령 고어에게 전한 거죠. 퍼리 : 이름을 특정해서. ( 클린턴을 의미 ) 힐러리 : 이름을 특정해서. 그런 후 그들은 그 소식을, 당연히 나머지 우리들에게 전해준 거죠. 음... 빌은 그 임무에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었고 추구하지도 않았으며, 심지어는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물론, 부통령 앨 고어가 전화를 하고 우리 행정부가 그것을 평가하고 그에게 브리핑을 시작하자, 그는 만약 그 방법이 옳고 자신이 해야만 한는 거라면, 당연히 할 거라고 했어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인도주의적 임무였지, 정부의 공식 임무가 절대 아니었죠. Hilary : This, as you know, came from the families. I mean, this was a message that Laura and Euna were given by the North Koreans which they passed on to their families and Vice President Gore... Fareed : Naming him specifically. Hilary : Naming him specifically. And then they passed it on, obviously as they should, to the rest of us. Um, You know, it was not anything Bill was interested in, seeking or even contemplating. But, of course, when Vice President Gore called, and when our administration eval!uated it and began to brief him, he said, look, if you think it's the right thing to do, and if you think I should do it, of course I will do it. But it is a private humanitarian mission. It was not in any way an official government mission.” 이 사안의 주무부처인 국무부 현직 수장이자 클린턴의 현재 아내가 한 말이다. 당사자인 클린턴 본인이 입을 다문 이상, 이 이상의 공식권위는 없다. 그녀는 아예 못을 박는다. 클린턴은 애초 그 일을 꿈도 꾸지 않았다고. 음, 이건 무지하게, 부자연스럽다. 재임 시절 북핵 1차 위기를 겪은 장본인이고, 미 역사상 최초로 전직 대통령을 북에 보냈던 당사자이며, 미 역사상 최초로 현직 장관을 북에 보냈고, 부시의 반대만 아니었더라면 올브라이트의 사전정지 작업 후 임기 마지막 달에는 다시 한 번 미 역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인 자신이 직접 방북하여 북한과 역사적인 평화협정을 맺을 계획이었던 클린턴이, 그리고 바로 두 달 전 DJ로부터 당신이 직접 가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란 이야기를 들었으며 사건의 현직 주무장관 남편인 그가, 이 사건의 해결에 관심조차 없었다고.
이게 모두 클린턴 시절 일이다. 이건 말이 안 된다. 그렇다면 이미 입을 맞추고 자신들 사이드의 스토리만 풀고 있는 미 행정부나 앨 고어가 아니라, 객관적 제3자의 관점과 논평이 필요하다. 이를 가장 먼저 제공한 건, 오히려 미 행정부나 앨 고어와 너무 가까이 있어 그들로부터 직접 브리핑 받는 미 주류언론이 아니라, 공영방송 PBS다. 여기자 석방소식이 전해지자, PBS의 한 대담프로에 북한을 11번이나 방문했던 미국의 대표적 대북전문가이자 국제정책센터 선임연구원인 셀리그 헤리슨(Selig Harrison)이, 부시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동아시아담당 보좌관이었던 데니스 윌더(Dennis Wilder)와 함께 출연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제프리 브라운: 그 생각을 알기 어렵기로 유명한 게 북한이지 않습니까, 해리슨씨? 셀리그 해리슨: 이번 경우 중요한 건, 이게 미 정부의 기획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정부가 이 임무를 생각해낸 게 아니에요. 빌 클린턴이 한 거지. 빌 클린턴은 5월에 남한 서울에서 그가 오랜 기간 존경해 왔고 대통령으로서 함께 일했던 남한의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클린턴 당신이야말로 억류된 두 명의 기자의 석방뿐 아니라 북한과의 대화 채널을 열고 북미 교섭의 무대를 마련할 적임자라고 했다고 해요. 빌 클린턴은 돌아왔고... 이 사실은 남한에 알려졌고, 북한도 김대중이 그런 제안을 했다는 걸 알게 됐죠. 클린턴은(이 대목에서 김대중이라고 잘못 말 함) 워싱턴으로 돌아와 힐러리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북한에 가고 싶다는 걸 알렸죠. 그리고 이게 바로, 지난 5월 말 이래로 국무부 장관의 남편이 이런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에 대한 미 행정부 내의 논쟁과 우려 - 왜냐면 빌 클린턴이 북한문제는 자신의 전유물이란 생각을 가지고 있단 게 분명해 보였기 때문에 - 를 불러 온 거죠. 제프리 브라운: 그의 과거에 근거해 볼 때? 셀리그 해리슨: 그가 대통령 시절, 1994년부터 2002년까지, 우린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동결시켰었죠. 이건 클린턴의 큰 업적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전, 행정부 내에서 적임자를 물색하고자 많은 노력을 했을 거라 봐요. 그들은 이 임무에 대해 매우 불편해 했고, 그래서 이번 임무가 얼마나 사적인가에 대해 그렇게 강조하느라 난리법석이었던 거죠. 그래서 이제 클린턴이 가져올 내용을 두고, 왜냐면 클린턴이 김정일과 나눈 대화는 두 젊은 여자의 운명을 훌쩍 뛰어넘는 큰 주제였을 테니까, 행정부 내에서 아주 커다란 논의가 있을 겁니다.
왼쪽부터 사회자인 제프리 브라운, 데니스 윌더, 셀리그 해리슨 원문보기 JEFFREY BROWN: Well, Mr. Harrison, I mean, it's very famously hard to know what the thinking is in North Korea. SELIG HARRISON: Well, in this case, the important thing is that was not the administration's baby. The administration did not create this mission; Bill Clinton did. Bill Clinton went to Seoul, South Korea, in May. He met former President Kim Dae-jung of South Korea, whom he had long admired and worked with as president. Kim Dae-j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