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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나만 아는 이야기들
게시물ID : gomin_144381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익명aWlna
추천 : 2
조회수 : 563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5/05/31 05:01:12
제 감정에 조금 무뎌진 것도 같은데 가끔 어떠한 사소한 계기로 옛날 일들이 떠올라서 그날을 다시 살고있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럴 때 마다 빨리 잊어버리려고 제가 좋아하는 뭔가를 엄청나게 몰두하곤 했고 심지어는 피곤할 때까지 손에서 놓지않았어요. 그리고 혹여나 약해져서 지금까지 버텨온 것이 아무것도 아니게 될까봐 다른사람에게 털어놓지 않으려고 온갖 변명을 떠올렸죠.
 
하지만 결국에 드는 생각은 약한 모습을 보이더라도 펑펑 울면서 누군가에게 전부 다 털어놓고 아무상관 없는 사람에게 따지고 속에있는 것들을 솓아내고 싶어했던 것이었어요.
 
그래서 오늘 저와 아무 상관 없고 털끝만큼도 저를 모르시는 여러분들에게 다 지난 일에대한 저의 조금 길고 유치하고 어리광같은 투정을 해볼까 합니다. 
 
뜬금 없고 조금 길고 지루해도 댓글에 의견을 남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5살때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영문도 모른 채 시골로 내려와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서 살게 됬어요.
 
서울에 있었을 때의 어린이 집에서는 엄마의 친구나 지인들의 아이들과 같이 다녔기 때문에 서로의 집을 놀러다닐 정도로 부모님들끼리의 사이도 아주 좋았고 우리 애들끼리도 부모님들끼리 이야기를 나누시거나 놀이시간이 될 때면 그 방을 비밀기지 삼아 부모남이나 선생님들을 관찰 대상으로 삼아서 그분들이 들어오면 무언가에게 지는 놀이를 하거나 그 당시에 즐겨봤던 포켓몬스터의 케릭터들을 흉내내면서 놀았어요.
 
그때는 얼덜결에 인기많던 케릭터를 하고싶어했던 다른 친구들을 먼저 고르게하고 마지막에 남은 탕구리를 골라버려서 구르기를 못하는걸 그제야 떠올려 당황했던 기억이 아직도 떠오를 정도로 즐겁게 지냈어요.
 
그래서 그 때는 그 친구들과 해어지는게 아쉽긴해도 여기에 있는 친구들과 잘 지내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아주 어린애다운 밝은 기분으로 처음 유치원에 들어갔어요.
 
하지만 생각보다 저를 친 딸로 봐주셨던 서울에서의 선생남과 달리 뭔가 어색한 선생님들과 놀때 말고는 이야기하지 않는 친구들이 뭔가 이상했지만 철이 없었던 어린애였던것 만큼 그건 그거대로 좋았다고 생각했던것 같아요.
 
하지만 가장 크게 바뀐것은 유치원이 끝나면 유치원 버스를 타고 집에 잠깐 들렸다가 누군가의 집에 놀러가서 누군가에게 계속 불려서 무의식적으로 유치원이 끝나면 바로 할아버지가 기다리시는 주차장으로 나가야 했지만 불이 전부 꺼지거나 조금 친해진 친구가 부모님에게 불려져서 전부 나갈때까지 기다렸어요.
 
그 때문에 항상 제일 마지막에 나온다고 할아버지께 꾸중을 들어서 제일 처음에 나가도록 노력해 보기도하면서 익숙해 졌지만 그래도 뭔지 알 수 없어서 말할수 없었지만 그때는 뭔가 없어진듯한 기분에 무서운 기분이 들었어요.
 
 
 
그렇게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처음 공개수업을 했던 날이었어요.
 
그때는 바빠도 찾아와주신 아빠가 너무 고마웠고 반가웠던 반면에 서울에 있었을 때는 일때문에 저녁 외에 잘 보지 못했었기 때문에 조금 어색하고 뭔가 실수하면 혼날것 같아서 조금 어색했어요
 
하지만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이제야 아는 직장에서 막내였을 아빠가 다시 공개수업에 찾아오셨던 적은 없었어요.
 
그 날이 되면 그 수업이 정말로 싫었고 엄마와 아는체하는 애들이 너무 부럽고 안될거라는걸 알아도 아빠가 오셨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괜히 들떠서 조원들도 등지고 혼자 나대면서(ㅋ) 발표를 열심히 했어요.
 
그것도 잠시, 제일 뒤에있는 분단에 앉아있던 때에 가까히 계셨던 제 앞에 있던 애의 학부모님이 제가 손을 들려고 하는 것을 막고 그 애에게 기회를 달라고 아주 부드럽고 친절하게 부탁하셔던 적이 있었어요.
 
그 학부모님의 부탁대로 그 애한테 양보했고 그 애가 선생님께 칭찬을 듣자 두 사람이 눈을 맞주며 웃고 그 학부모님에게서 보이는 '잘했어'라는 입모양이 제가 혼날 때처럼 목과 가슴이 꽉 막히는 느낌에 기분이 이상했어요.
 
그 다음에 그 학부모님이 저에게도 속삭이는 목소리로 고맙다는 말을 해주셨지만 어린 감정에 쳐다도 안보고 마치 선생님이 주목시켜서 앞을 본것처럼 고개를 돌려버렸어요.
 
그 날 이후부터 저에게는 발표의 가치와 기대가 없어졌고 아는것이어도 절대 먼저 말하지 않는 버릇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어떤 날은 친척들이 조부모님들을 뵈려고 저희 집으로 내려왔을 때였어요.
 
그런 날이 있을 때마다 저는 사촌들이 고모와 작은 엄마에게 보기 않좋게 투정을 부리거나 혼이라도 날때면 내가 잘하면 관심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어른들이 보지 않는 사촌들만 있을때도 싸우기 직전까지 꾹 참으며 괜히 칭찬 몇마디밖에 들을 수 없는 '착한 일'을 열심히도 했었어요.
 
칭찬밖에 들을 수 없는걸 시무룩해 하거나 싸우기라도하면 어른들은 사촌들의 부모님이니까 사촌들의 편을 들어서 왠지 미움을 받을것 같았고 내가 사촌을 보는대로 하고싶은 일이나 갖고싶은 물건을 사달라고 하면 욕심이 많다고 할까봐 하고싶은것, 갖고 싶은 것을 크리스마스 같은 특별한 계기가 아니라면 말도 꺼내지 않았어요.
 
그랬기 때문에 제가 딱히 그런거에 관심이 없는 줄 안 어른들은 저에게는 약간의 용돈만 쥐어줄 뿐이고 다른 사촌들에게는 갖고싶은 것이나 가고싶은 곳을 이야기하는 제가 빠진 이야기가 이어질때면 뭐라고 하지도 못하고 그저 옛날에 어른들이 어렸을 적에 쓰셨던 장난감을 만지작 거리거나 조금 훌쩍이곤 했죠.
 
어떤날에는 우는걸 할머니에게 들켜서 자는데 깨운척 짜증아닌 짜증을 내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모두가 잘때까지 울었던 적도 있었어요ㅎㅎ..
 
그때도 마찬가지로 아빠가 바쁘셔서 일주일 내내 짓는 건물에서 가까운 곳에서 머무르시다가 토요일 저녁 늦게 돌아오셨던 때라 늘 속마음을 털어놓지도 못하고 다음날 이른 아침에 할머니가 전해주는 말로 다른 어른들과 똑같은 시선으로 저를 보시고 제가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고 생각하셨는지 오히려 멀어지고 싶었던 사촌들과 근처 공원에 놀러가서 정작 저는 미움받지 않으려고 아빠의 말씀을 잘 듣고 있어서 하라는대로만 했지만 사촌들은 아빠에게 요구하는것도 많고 떼쓰는것도 많아서 사촌들을 챙겨주는 아빠의 모습을 힐끔거리며 쳐다보다가 아빠가 보지 않는 곳에서 약간의 복수를 꿈꾸다가 제가 잘 챙겨주지 않으면 동생들을 다칠것이고 연장자인 오빠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안된다는 논리로 늘 꾸중을 들었어요.
 
제가 원한건 그저 아빠가 편해지는 것이고 아빠에게 지금까지 적은것들 처럼 엄마에게 털어놓지 못했던 것들을 털어놓고 아빠를 완벽하 제편으로 만드는 것 뿐이었습니다만 현재 이제야 아빠와 겨우 농담을 자주 할 정도로만 친해졌을 뿐이예요.
 
 
이번에는 고모와 사촌오빠 둘이 왔던 어떤 날이었어요.
그 날은 제가 학교를 갔다와서 혼자 아이스크림을 먹었던 날이었는데 오후에 근처의 계곡에 놀러가기로 하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촌들에게 다 쓴 달력으로 고모가 종이배를 접어 주셨었는데 어린 마음에 따갈 마음이 넘쳐 흘렀던 저는 신나서 저도 접어달라고 부탁했죠.
하지만 고모는 혼자 아이스크림을 먹었다고 안된다고 하셨었습니다.
순간 지금까지의 어른들과 사촌들의 이야기처럼 계곡에 가는 것에 제가 포함되지 않았을까하는 불안감이 들었습니다.
뭔지 모르게 불평을 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박혀있던 저는 불평한번 안한채 어린애의 기본스킬인 깡으로 은근슬쩍 고모와 사촌들을 따라나갔어요.
종이배를 띄우며 신나하는 사촌들과 종이배를 띄우는것에 조언을 주시는 고모의 모습을 바라만 보면서 같이 있는데도 혼자 있는것 같은 알수없는 불안한 감정이 들었어요.
 
 
 
또 다른 날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긴 방학때마다 저를 혼자 돌보실 여유가 없어지신 할아버지가 저를 친척들에게 돌아가면서 맏기셨던적이 많았지만 유독 친척들의 집을 오갈때가 많이 있었던 적이 있었어요.
 
첫번째로는 고모댁에 맏겨졌어요.
 
낮에는 오빠들의 친구들과 밖에 놀러다니느라 눈치보며 조용히 따라다녔고 밤에는 분수공원에서 돌아다니며 고모네 가족들이 나를 버리고 갈까봐 매번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고 최대한 오빠들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놀았어요.
 
그러고나서 잘때가 되면 누가 이 집에 쳐들어오면 어쩔까 하는 어린불안감에 상상을 해보면 늘 혼자 행동하는 제가 공격받는 상상을 하곤 해서 밤 늦게까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잠들기를 반복했었죠.
 
어떤 날은 오빠들이 모아뒀던 그때 유행했던 유희왕카드를 오빠들이 다시 풀어놨었어요.
 
저는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큰오빠가 정리하는 카드를보고 아는체를 했고 봐도 되냐고 물어보면서 카드뭉치를 들었었죠.
 
그런데 제가 정리해둔 카드뭉치를 망가뜨리는 줄 안 모양인지 갑자기 대성통곡을 하는거예요.
 
어리둥절해진 저는 멀리서 들리는 상항을 묻는 고모의 목소리에 미움받이서 내쫒기면 어쩌나하는 불안감과 잘 울었던 작은 오빠와 달리 성질은 더러워도 잘 울지 않았던 큰오빠가 우는 모슺에 당황해서 아무것도 못한 채 얼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상태로 오빠를 달래는 소리와 몇십분간 남의 물건은 허락을 받고 만져야한다는 둥의 설교를 들었어야했어요.
 
분명히 저는 허락을 맏기도 전에 손을 대긴 했지만 물어보면서 카드를 든건데 말이죠.
 
 
 
다음에는 작은 엄마 댁에 맏겨졌어요.
 
작은 엄마는 초반에 사촌 두명이 태권도 학원에 가있을 동안 저를 상가 이곳저곳에 데려가면서 구경을 시켜줬고 어떤 날은 처음 염색도 시켜줬고 엄마라고 불러도 된다며 쿨한 모습을 보여주셨죠.
 
하지만 그동안 쌓인게 쌓인거여서 쉽게 작은 엄마를 믿지 못했어요.
 
역시 그 날도 어김없이 사촌 둘이 싸워서 작은 엄마의 성질을 돋구는 날이 있었어요.
 
그 때는 제가 감기에 걸려있어서 저녁에 아빠와 마지막으로 통화하면서 작은엄마에게 가습기를 부탁하라는 말에 저와 사촌 동생중 오빠인 놈과 같이 쓰던 방에서 잘 준비를 하고있던 우리들의 상태를 확인하려고 들어오신 작은 엄마에게 가습기를 틀어달라고 부탁했어요.
 
하지만 낮의 친절한 모습과 딴판으로 가습기를 튼다고 감기가 낮는것은 아니라며 불을 끄고 나가버리셨어요.
 
그때 닫혀버린 문에게 속으로 한 말이었지만 감기는 낮지 않더라도 코가 막히지 않아서 잠을 잘 수 있다는 말을 꼭 하고싶었어요.
 
그 날 이후로 초반에 조금 마음을 풀려던것을 고쳐생각하게 되었고 왠지모르게 작은엄마를 지금까지도 완벽하게 믿을 수 없었어요.
 
 
 
사촌들이 전부 형제, 남매라서 그 속에 잘 스며들기가 어려웠어요.
 
어떤 때는 그때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던 닌텐도를 그 두명씩만 하다가 잠깐 저에게 맏겨졌을 때 익숙하지 않았던 조작에 비웃음을 받았던가, 다섯이 모였을때면 항상 저는 제외되었어요.
 
그럴때마다 관심이 없는 척을 하곤하면서 일부러 구경만 하는척 어른들의 눈을 피하고 상처를 받지 않은 듯이 사촌들의 앞에서 당당하게 제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척을 하면서 애써 외면했어요.
 
 
그래도 나 너무 힘들었어요.
아마도 제가 지금껏 제일 말하고 싶었던 말이었을거예요.
 
 
친척 어른들은 자기들 자식만 챙기고 저는 예의상으로만 챙겨줘요.
 
살아계실때의 할머니는 오랜만에보는 손주들를 챙기느라 바쁘셨고 할아버지는 친척어른들의 안부를 묻느라 바쁘셨고 이제는 할머니의 역할을 이어받으셨어요.
 
아빠는 사촌들과 놀아주기 바빠요.
항상 사촌들이 갖고싶은것이나 먹고싶은것에 대해서 이야기하죠.
 
사촌들은 가족중에는 자기들처럼 철저하게 제편인 어른도 없고 여차하면 자기들 편이 될거라는 것을 알아서 때로는 저를 무시하기도하고 필요할때만 찾고 제가 거절할 수 없도록 어른들에게 말해서  어른들이 저에게 부탁하도록 해서 제 물건을 가져가고 제 허락이 아닌 아빠의 허락으로 제 물건을 쓰고는 망가뜨리거나 잃어버리는 일이 태반이었습니다.
 
물론 약간의 불평과 불만정도는 표현해 봤습니다.
 
그럴때마다 동생이 실수로 그럴 수도 있지않냐, 언니로써, 누나로써 어른스러운 마음으로 이해해보도록 해봐라, 그거가지고 뭘 그러냐, 동생이 오빠들좀 이해해줘라, 네가 어색한가보다,등등등.. 별별 소리를 다 들었어요.
 
결국에는 할머니 제사로 모두 저희 집으로 모였을 때 화장실에서 나올때 문을 닫는 큰오빠의 장난에 뒷걸음을 치다가 뒤에 있던 통의 모서리 부분에 아킬레스건 쪽의 살이 쓸리게되고 까지게 되었던적이 있었어요.
 
그때 발 뒤꿈치가 너무 아팟고 모든게 서러워져서 한꺼번에 터져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죠.
 
하지만 제 사정을 모르는 모든 가족들은 그저 지켜보기만 했고 큰오빠의 심한 장난으로 제가 운줄아는 고모는 큰오빠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서 혼을 내셨고 제가 문고리에 살짝 맞은걸 보신 아빠는 모든걸 봤다고 밖에있는 오빠에게 사과하라고 강요아닌 강요를 하셨어요.
 
저는 무서운 얼굴을 한 아빠의 말과 화가 섞인 떠밀림에 얼떨결에 사과를 했고 대답은 오빠가 아닌 고모의 퉁명스러운 투로 들어가라는 말 뿐이었어요.
 
이 날로 저는 가족들이 제 이야기를 들어주길 원하지도 않고 가족이라는 선밖의 이야기는 관심도 없다는 것을 깨닳았어요.
 
더불어 만약 배에 문고리를 아주 살짝 맞았다고 해도 울 필요까지 있었는지에 대해서 물어보지도 않고 그저보이는 대로만 저를 혼내는 아빠메게도 큰 실망을 했어요.
 
그날은 가족들이 모여서 제사를 지내는 것도 동시에 할아버지의 생신과 저의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가 끝날때까지 어두운 제 방에서 쓰라린 뒷꿈치에 더욱더 서러워진 마음에 혼자 울었었던 기억이 나네요.
 
왜 이유를 물어보지 않았던건가요? 어째서 혼자 울수 밖에 없었을까요? 제가 힘들어했던 일을 알고 계시긴했나요? 정말 물어보고 싶네요.
 
 
 
그 날 이후로 저는 가족들에 대한 태도를 바꿨어요.
 
아니, 가족을 넘어서 모든 사람에 대한 태도를 바꿨어요.
 
저는 가족들이 모일때 마다 책을 읽으면서 자리를 피했고 일부러 숙제를 하는 척을 하면서 사촌들에게 잔소리를 들을 기회를 줬으며, 컴퓨터가 있던 제 방으로부터 사촌들을 내쫒기를 성공했죠.
 
그리고 최대한 말을 아끼고, 어른들이 듣고싶어하는 말을 들려주면서 대화를 짧게 끝내고 사촌들과는 용건만 간단히 말하면서 제가 먼저 무시했어요.
 
방학때도 일부러 학교 도서관에서 진행돠는 프로그램을 알아봐서 신청하고 피아노나 보습 학원에도 다닐 수 있도록 아빠를 설득했어요. 
 
그렇게 집에서 어둡게 지내는 대신에 학교에서는 저의 외향적인 성격을 마음껏 표출했죠.
 
하지만 이것도 언잰가부터 틀어지기 시작했어요.
 
나름대로 정말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도 접점이 희미해지는 방학이 지난 후에는 쌩판 남인 사이로 되돌아가있고, 제가 친해지기 위해서 다가가려고 하면 그 애들만의 유대에 스며들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그렇게 학교에서도 혼자 조용히 지내게 되면서 성격이 내향적으로 변하게 됬고 결국에는 조용히 일탈을 하게 됬어요.
 
같은 학원을 다녔던 남자에 딱 한명만 아는 비밀인데 초등학교 고학년때부터 가게에서 몰래 담배를 훔쳐 피게 됬어요.
 
학교 cctv가 없는 구석에서나 학원 화장실에서 몰래 피웠어요.
  
점심시간에도 cctv가 없는 비밀통로로 무단으로 외출해서 싸돌아다니고 시험도 대충봐서 나머지 공부를 하게 될때도 담넘어 튈정도로 될대로 되라 식으로 지냈어요.
 
그런데 이런짓도 중학생이 되어보니까 아무것도 해결되는 문제도 없는데 맨날 이상한 짓만 하고 다녔다고 색각되더라구요.
 
학교도 새로 입학했고 하니까 친구도 새로 생기겠지 하는 마음에 조금 다가가니까 제 소문이 별 이상한 사람으로 나있었어요.
 
뭔 헛소린가 하고 생각해봤더니 남들에게 비친 저는 제가 예전까지 싫어했던 자기 편한대로만 살아가는 모습일것 같았어요.
 
그래서 많이 쓰게됬던 욕설도 말을 안함으로 줄이고, 담배도 학교와 집만 반복하면 구할 수도 없어서 저절로 끊게되고, 무엇보다 나대는 일이 없도록하고 최대한 주변 친구들을 도우며 조용하고 주변에 관심없고 착한 인상을 주는 애로 만들었어요.
 
그래도 주위에 있는 사람은 없었어요.
 
어느순간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할지도 몰랐어요.
 
 
그런데 어느날에 우연히 공감능력 테스트를 하게됬고 제가 공감능력이 결여됬다는 점을 알게되었어요.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해결해야될지 막막했어요.
 
주위에 상당할 사람이라고는 아빠 정도인데 아빠는 예전에 제가 일을 가지 말라고 떼를 써봤을 때 일을 해야된다며 크게 혼내시는 모습에 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모습이 떠올랐고 상담해볼까하는 생각이 들때면 늘 일이 끝나고 들리는 지친 목소리에 그 생각이 쏙 들어가버려요.
 
저의 문제때문에 매사에 신경쓰이게 하고싶지는 않았어요.
 
그렇개 고민하던 중에 꿈을 하나 찾게됬어요.
 
소설을 써보는 것이었어요.
 
제가 쓰는 소설은 제가 보는 사람들의 모습과 감정인데 이것들을 인정받는 것은 곧 제가 사람들을 보는 방식을 인정받는 것이라고 생각해서였어요.
 
지금까지 수십편의 소설을 쓰고 인터넷에 올리고 있어요.
 
하지만 주변사람에게는 제가 쓴 소설을 읽어본 사람도 없고 제가 글을 쓰는 이유를 아는 사람도 없어요.
 
왜냐하면 제 글은 곧 저의 내면의 모든것이기 때문에 저의 모든것을 보여주는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주위의 저를 아는 사람들이 본다면 조금 불편하기도하고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곧 저의 약점이기도 하기 때문에 굳이 알리고 싶지 않기때문이예요.  
 
하지만 요즘에는 조금 힘들어지고 있어요.
 
대학도 가야될것 같고 좀처럼 나오지 않는 성적에 불안감도 커지고 아빠의 노력애 비하면 하찮은 실적에 실망하기를 반복하면서 부담감은 점점 커지고 상담하고 싶은 것들은 많은데 학교에서 좀처럼 친해지기가 쉽지도 않고 하는 걱정들이 너무 무거워요.
 
차라리 예전 일이 잊혀진 탓인지 사이가 좀 좋아진 아빠에게 저의 모든것을 털어놔 버리는게 좋을까요?
 
아니면 모든것을 끌어앉고 끝까지 버틸까요?
 
저는 어떻게해야 할까요?
 
이대로 괜찮은 걸까요?
 
 
 
지금까지 뜬금 없을지모를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하고싶은 말들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말하고 싶어했던 일들은 이미 작은 엄마나 고모와 어른 대 어른으로 대화할 수 있을 정도로 이미 지난 일들이고 그때는 고2인 지금에 비해서 한참 어렸을 때지만 저는 아직도 가끔 그날들을 살고있는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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