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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없는 나라 - 2편
게시물ID : humorstory_21894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리리로로
추천 : 31
조회수 : 2464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1/02/17 00:42:11
정말일까? 이런 곳이 있다는 게 믿겨지지 않았다. 그런 나의 의심이 기분 나쁘기라도 한 듯 쾌쾌한 발 냄새가 더욱 심하게 올라왔다. 운동화를 내려다봤다. 고등학교 졸업 후 3년 만에 새로 바꿔 신은 까만 운동화다. 발을 꿈틀거려봤다. 더 심하게 냄새가 올라왔다. 움직일 때마다 운동화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내 발은 구정물이 낀 것은 둘째 치고, 검은 물집들이 곪아 터져 흡사 곰팡이 비슷한 모양으로 굳은 딱지 투성이였다. 그것은 그동안 곪아터진 삶의 흔적이기도 했다. 눈물이 났다. 신발을 벗고 싶었다. 신발을 벗을 수만 있다면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해질 수 있을까. 나는 떠나야 했다. 그리고 셋째 주 일요일까지는 삼일만 기다리면 됐다. 밤 9시 인천여객터미널은 생각보다 붐볐다. 일본에서 막 도착한 단체 관광객들은 지나가면서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몰래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개의치 않았다. 이제 나도 평범해 질 수 있다. 하얀 배만 찾으면 된다. 하지만 정박된 모든 배는 하얀색이었다. 배마다 기웃거리며 돌아다녀 봐도 도대체 뭘 타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누군가 장난으로 만들어 놓은 사이트라는 생각도 들었다. 시계바늘은 어느새 10시에 가까워졌다. 포기해야하나. 한숨을 크게 뱉었다. 이제는 숨에서도 발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내 인생은 이런 냄새가 나는 걸까. 그때 누군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이봐요.” “네?” “신발이 없는 나라에 가쇼?” 그 말에 그의 얼굴보다 발에 먼저 눈이 갔다. 맨발이었다. 그리고 으드득 사탕을 부수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얼굴을 봤다. 머리가 짧은 마흔 가량 돼 보이는 남자였다. “아, 네. 그걸 어떻게.......” “맨발이잖수. 어서 타쇼. 출발시간 다 됐수다.” 남자는 계속 사탕을 으드득 거리며 말했다. 사탕냄새가 꼭 내 방 방향제 냄새 같다. 남자의 성의 없는 말투와 입에서 나는 강렬한 사탕 냄새에 발 길이 망설여졌다. 남자는 앞서 걷던 걸음을 멈추고 힐끗 뒤돌아보더니 소리쳤다. “안갈 거요? 그 발로 다시 돌아가는 것보다 같이 가는 게 좋을 거요.” 남자의 말에 나는 반사적으로 발을 떼며 남자를 따라갔다. 차갑고 딱딱한 아스팔트의 감촉이 그대로 전해졌다. 작은 유리파편이 발바닥을 찔렀다. 아팠지만 나는 계속 남자를 따라 걸었다. 남자는 하얀 배에 올라탔고, 나도 따라서 올라타자 곧 배가 출발했다. 배 안에는 나와 남자뿐이었다. 남자는 따라오라는 손시늉을 하고 작은 여객실로 나를 안내했다. “여기서 한숨자고 일어나면 도착해 있을 거요.” 남자는 짧게 한마디 던지고는 문을 닫고 나갔다. 그리고 밖에서 문을 걸어 잠갔다. 열쇠 돌리는 소리에 놀라 뭐라 말하려고 하자 남자가 문밖에서 다시 말을 이었다. “괜한 걱정 말고 잠이나 자쇼.” 그 말에 나는 더 이상 말하기를 포기하고 간이침대에 걸터앉았다. 두 평 남짓 되는 매우 비좁은 공간이었다. 사방이 막혀 바깥을 내다볼 수도 없었다. 탁자 위에는 약간의 먹을거리가 있었고, 그 아래는 요강이 놓여있었다. 무언가를 생각하고 행동에 옮길 겨를도 없이 이번에는 바깥에서 불까지 끈 모양이었다. 주위가 금세 암흑으로 변했다. 나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침대에 누웠다. 두 시간 전 방에 벗어두고 온 까만 운동화가 생각났다. 머릿속도 까맣게 변했다. 눈이 감겼다. 활짝 열린 여객실 문으로 빛이 들어왔다. 남자는 벽 안쪽을 막대기 같은 것으로 쿵쿵 두드리며 빨리 일어나라고 소리쳤다. 얼마나 잔 것일까. 부스스 일어나 손목시계를 들여다봤다. 일곱시. 아침일까. 저녁일까. 헝클어진 머리를 대충 매만지고 탁자위에 있는 빵 하나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여객실 밖으로 나왔다. 바로 30m 앞에 보이는 섬에는 ‘신발 없는 나라’라고 써진 현수막이 크게 걸려있었다. 이곳이 그곳인가. 어리둥절해있는 나를 누군가 잡아 올렸다. 남자였다. 남자는 나를 번쩍 들어 그대로 바다에 던졌다. “다 왔수다. 허우적 대지 말고 걸어가쇼.” 남자는 바다에 빠져 버둥거리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며 뒤따라 펄쩍하고 뛰어내려 유유히 섬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제야 나는 발을 곧게 뻗어보았다. 바닷물은 무릎까지 닿았다. 나는 머쓱해져 남자를 따라 섬으로 걸음을 옮겼다. 섬 바로 입구에 있는 ‘아침을 든든하게’라는 토스트 리어카 팻말 때문에 아침이란 것을 알았다. 양복을 입고 어디론가 바삐 가는 넥타이 부대도 보였다. 가방을 메고 뛰어가는 꼬마들도 보였다. 그 중에는 휠체어를 탄 사람들과 목발을 짚은 사람들도 있었다. 내가 살던 곳과 다를 것은 없었다. 모두 맨발이라는 것과 바닥이 아스팔트 대신 모래라는 것 빼고는. 사람들은 홀딱 젖은 몰골로 주춤거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나를 힐끗힐끗 쳐다보기는 했지만, 맨발인 것을 확인하고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였다. 발바닥에 휘감기는 모래가 이끄는 대로 발을 옮겼다. 골목골목을 헤매다 오밀조밀 밀집된 상점가에 들어서게 됐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모든 가게 문은 닫혀있었다. 진정상회, 미래슈퍼, 영진전파사, 낙원 방앗간. 간판을 하나하나 읽어봤다. 신발가게만 없다뿐이지 그냥 서울의 어느 동네에 와있는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고개를 내려 발밑의 모래를 보고서야 이곳이 섬이라는 곳을 실감했다. 그제야 언제까지 이렇게 헤맬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뭘 하든 해야 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멀리서 어떤 사람이 가까워져 오는 것이 보였다. 여자였다. 나는 발걸음을 재촉해 여자에게 가까이 걸어가서 말을 걸었다. “저 죄송한데요. 여기가 어딘가요?”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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