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을 듣고서 벌써 8개월이 흘렀습니다.
전 아직도 편의점 알바만 하고 있지요.
솔직히 말해선 전 아직도 제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부모님같이 훌륭하신 분들 밑에서 자란지 어언 24년, 제 몸은 자라고 나이는 먹었을지 모르겠지만
제 정신은 아직 어머니의 손을 잡고 학교로 들어가던 그 날 멈춰버린 것 같습니다.
배운 건 전부 잊어버려 지금 밤까지 고생하면서 학원 다니는 초등학생들이 저보다 더 잘 알고,
인성은 제가 그렇게 싫어하는 노인분들이 더 착하시고, 오히려 절 걱정해주실 정도입니다.
어머니 아버지,
제가 성실하다고 했던 어머니, 아버지. 아직도 제가 성실하다 여기실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글을 쓰고 싶다고 했을 때, 직장을 구하고 써도 된다고 하시던 어머니, 문단이 뭔지는 알면서 글을 쓰고 싶다고 하냐고 하시던 아버지.
아들은 꿈을 포기한 그 날 이미 죽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루하루 사는게 굉장히 무의미하고 점점 몸과 정신만 소모해가는 기분입니다.
군대에서 보낸 그 하루하루 보다도 시간이 느리게 갑니다. 잠을 자면 다음 날 깨는 것이 두렵고 어머니에게 그나마 싫은 소리를 듣기 싫어서
자격증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다고 거짓웃음을 지으면서 그때마다 넘기는 나날.
저는 사실 공부는 하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그 무엇도 하고 있지 않지요.
삶의 목표 따윈 없고 남들이 앞서 나가는 것에도 별 감흥없고 완전히 다른 세계의 이야기인 것 처럼 고개를 돌려버리는 저.
제가 정말 성실한 걸까요.
착하다, 성실하다라는 말을 들으면서 지금도 의미없는 삶을 사는 8살짜리 꼬마는 대체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요.
하지만, 목적이 있다고해서 더 달라질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어머니, 당신은 저를 보고 기술직을 공부해서 취업문을 두드리라고 하셨지요.
하지만 대체 어떤 기술직을 공부하라고 되물었을때는, 그건 네가 결정할 일이라고 하셨지요.
지금 뭘 할지도 모르고 세월만 보내는 저에게요.
아버지, 제 꿈을 듣고서는 문단도 모르냐, 상받은 것도 없지 않느냐 라고 하시던 아버지.
처음엔 아버지의 무시하는 눈을 보고 화가 났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화 낼 기운도 없습니다. 참으로 다행이지 않습니까. 문단도 모르고 상도 못받은 멍청한 제가 꿈을 포기하고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지식도 딸리는 꼬맹이가 글쓴다고 덤벼들지 않고 가만히 당신들의 말만 듣고 사니 참으로 다행이지 않습니까.
이렇게 살다가 저는 어느 날 깨달아, 당신들의 말을 듣고 사전지식하나 없는 전기 기술과 용접 기술을 배워,
당신들의 뒷바라지를 하고 살겠지요.
그게 정말로 옳은 일이니 말입니다.
그리고 저는 주위 사람들에게 참으로 최고의 칭찬을 듣겠지요.
저놈 참 성실하고 착하다고.
참으로 잘된 일입니다. 저는 착하고 성실한 애가 될테니까요. 당신들의 말을 반항할 생각조차 못하는 겁쟁이인 제가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아닙니까.
지금은 비록 전역한지 8개월 간 제대로 된 직장 하나 구하지 못하는 병신이지만,
그 추운 산 정상에서 벌벌 떨면서도 수첩에 써내려간 아이디어와 설정 같은 것을 전부 버리고
그 옛날 패기 넘쳤던 당신들 처럼 무대포로, 하지만 당신들과는 다르게 기술을 배워
당신들의 못다한 꿈을 이뤄주겠지요. 배곯지 않는 삶을 살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적어도 지금만은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정말로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요.
정말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