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부터 식구처럼 살아온 녀석을 여제 보내고, 오늘 휴가 내서 가족들 돌아오기 전에 녀석이 쓰던
물건들을 좀 보이지 않는 곳에 치워두고 있습니다. 왜 병원에 더 빨리 가지 않았을까? 수술대보다는
집에서 보내 주는 것이 더 좋지 않았나? 차라리 지난주 좀 편하게 보내주는 편이 더 나았을까?)
이런저런 죄책감에 밥이 전혀 먹히지 않아 이틀째 굶고 있는데, 목만 마를 뿐 배가 전혀 고프지 않네요.
반려동물 떠나보낸 후 살아남는 방법엔 정답이란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그동안 있었던 여러 번의
이별을 통해 얻은 경험을 좀 갖고 있을 뿐이죠. 그런데 그걸 다 쓰려면 너무 길어지니 딱 하나만 적어
볼게요.
앙앙이가 자궁 축농증으로 고생할 때, 그리고 슬개골 탈구로 아파할 때, 쏜살처럼 내달려 수술받게 해
주었어요. 많은 돈이 들었지만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어요. 녀석이 내게 아주 고마워한다는 건 눈빛
만으로도 알 수 있었지요.
아무리 힘들어도 뒷산 정상까지의 산책은 매일 시켜주려 했어요. 앙앙이는 그 산책과 등산로에서 만나는
다른 강아지들을 아주 좋아했어요. 중요한 주말 모임에 늦는 한이 있어도 휴일엔 녀석이 지칠 때까지
마음껏 돌아다니도록 함께 했어요. 나이가 먹어 걷는 것이 힘들어졌어도, 안고서 함께 산책을 했어요.
그리고 찹찹이와 첩첩이라는 이름을 갖게 한 치즈버거 간식을 아주아주 좋아해서 항상 떨어지지 않게
사두었죠. 아무리 술이 떡이 되게 마신 날도 그 간식을 사는 건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어요. 오늘 주인을
잃은 그 치즈버거 열 봉지 치우는 것이 아주 많이 힘들었지만... 기력이 약해진다 싶으면 북어을 푹
고아서 숟가락으로 떠먹여 기력을 차리게 한 적이 여러 번 있네요.
키우면서 단 한 번도 때려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이건 녀석이 너무 착해서이기도 해요. 특히 약한 치매가
온 지난달부터 항상 패드 위에 볼일을 보던 녀석이 마루에 아무렇게나 실수를 해도 빨리 치우고 그냥 꼭
안아주었어요. 그래서인지 앙앙이는 한 번도 절 무서워하거나 피하지 않았어요. 마지막 날 까지...
앙앙이는 제 겨드랑이 사이를 파고들어 몸을 제게 딱 붙이고 자는 걸 아주 좋아했어요. 팔 저린 건 잘 못 참고
자면서 뒤척임이 심한 저이지만, 신기하게도 그렇게 아침까지 곤히 자곤 해서 아내가 아주 많이 샘을 냈어요.
생각해 보니 처음엔 제가 잘못하고 후회스럽고 죄책감 드는 일만 있었던 것 같았는데, 잘해줬던 것, 그리고 그로
인한 좋았던 일들이 더 많은 것 같네요. 주인 잃은 목줄이 아주 슬프긴 해도, 그 줄에 녹아든 우리 시간은
즐겁고 기쁜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슬픔과 죄책감이 훨썬 더 큰 것이 너무 당연하지만, 언젠가는
그 좋았던 시간이 슬픔이 지나간 빈자리를 채워주었으면 좋겠어요.
내가 처음으로 딸이라 불렀던 강아지. 천국에서 편히 쉬었으면 하지만, 내가 없는 그곳이
어떻게 네게 천국일 수 있을까 걱정이 많이 되는 아뻐가... 2000~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