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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축구에서 6대왕조
게시물ID : soccer_14455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blues91
추천 : 4
조회수 : 1526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5/07/03 21:01:57
1. 1953~1964 레알마드리드 왕조
- 역대 남미 최고의 선수 중 하나인 디 스테파노와 역대 유럽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인 푸스카스, 역대 최고의 윙어 헨토가 뭉친 팀입니다.

53-54 리그 1위(72)
54-55 리그 1위(84)
55-56 리그 3위(71), 유러피언 컵 초대 우승
56-57 리그 1위(81), 유러피언 컵 우승
57-58 리그 1위(82), 유러피언 컵 우승, 코파 델 레이 준우승
58-59 리그 2위(86), 유러피언 컵 우승, 코파 델 레이 준우승
59-60 리그 2위(85), 유러피언 컵 우승, 코파 델 레이 준우승
60-61 리그 1위(96), 유러피언 컵 광탈, 코파 델 레이 준우승, 인터 콘티넨탈 컵 우승
61-62 리그 1위(79), 유러피언 컵 준우승, 코파 델 레이 우승
62-63 리그 1위(91), 유러피언 컵 예선 탈락
63-64 리그 1위(86), 유러피언 컵 준우승
63-64 시즌 후 스테파노 이적.
11시즌 동안 리그 8회 우승(평균 승점 83), 유러피언 컵 5회 우승/2회 준우승, 기타 컵 1회 우승
무시무시하지요. 참고로 58-59/59-60 시즌 리그 우승과 코파 델 레이 우승, 60-61 유러피언 컵 우승을 막아낸것이 바르셀로나입니다. 바르셀로나만 아니었다면 리그 우승만 10번에 코파 델 레이 우승 2회였겠죠. 라이벌리즘은 예나 지금이나..
저게 끝이 아니고, 70년대 초반까지도 LFP 우승은 기본에, 유럽 클럽 대항전에서도 정상을 다투는 팀이었습니다. Ye Ye 세대라고 불리우는, 아만시오, 벨라스케스, 피리, 소코, 산치스 등이 이 시기의 주요선수들입니다. 이들은 65-66 유러피언 컵에서도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으며, 아만시오는 이 과정에서 핵심적인역할을 했습니다. 다만 이 이후로 30여 년 간 레알 마드리드는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하지 못하는 저주에 걸립니다.;라울마드리드가 이를 끊어냈죠.
 
2. 1956~1973 <토탈 풋볼> 아약스 왕조
- 미친 오프사이드 트랩과 정신나간 포지션 교체, 경기 전체를 쥐고 가두고 패는 것으로 유명했죠. 크루이프의 팀.

65-66 리그 1위(96)
66-67 리그 1위(92), 유러피언 컵 8강, KNVB 컵 우승
67-68 리그 1위(95), 유러피언 컵 광탈, KNVB 컵 준우승
68-69 리그 2위(88), 유러피언 컵 준우승
69-70 리그 1위(96), KNVB 컵 우승, 견본시 컵(UEFA컵의 전신) 4강
70-71 리그 2위(86), 유러피언 컵 우승, KNVB 컵 우승
미헬스 사임, 코바치 부임
71-72 리그 1위(104), 유러피언 컵 우승, KNVB 컵 우승
72-73 리그 1위(101), 유러피언 컵 우승, 인터 콘티넨탈 컵 우승, UEFA 슈퍼컵 초대 우승
 주장 투표에서 밀리자 크루이프가 바르샤로 이적한 후 망조가 들었죠.
8시즌 동안 리그 6회 우승(평균 승점 95), 유러피언컵 3회 우승/1회 준우승, 기타컵 5회 우승, 72년 전관왕
코바치 감독은 너무 너그로워서, 주장이자 독보적인 존재였던 크루이프를 진정시키는 데에 어려움이 따랐다.
미드필더였던 렙은 코바치가 크루이프의 허락을 받을 때까지는 자신의 포지션을 변경할 배짱도 없었다며 비난했다. 시간이 흐르자 다른 선수들도 크루이프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괘씸하게 생각했다.
"급장이면 다야? 급장이 부르면 언제든 달려가서 대령해야 하느냐구?"
코바치는 두 번째 유로피언 컵 우승을 이끌고 나서 아약스를 떠났다. 그의 후임인 게오르게 크노벨 감독은 73-74시즌에 누구를 주장으로 할 지 투표를 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너희들끼리 의논해서 다른 그 어떤 반(班)보다 훌륭한 반을 만들어 봐라. 너희들은 이미 회의 진행 방법도 배웠고, 의사를 결정짓는 과정과 투표에 대해서도 알 것이다. 지금부터 나는 그냥 곁에 앉아 지켜보기만 하겠다."
크루이프는 카이저에 13 대 3으로 밀려 주장직을 빼앗겼다. 그 후 크루이프는 단 두 경기를 뛰고 나서 바르셀로나로 이적했다.
  "잘해봐, 이 DOG BABY들아!"
아약스는 순식간에 무너졌고 크노벨은 언론 인터뷰에서 코바치 감독 시절의 지나친 자율로 인해 발생한 선수들의 음주와 문란한 오입질을 꼬집은 직후 해임당했다.
그리하여 토탈풋볼의 원형은 아약스를 떠나 바르셀로나의 미헬스-크루이프 아래서 이어지게 되었다.
그 뒤 크루이프는 두 번 다시 아이들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3.1971~1977 뮌헨왕조
-라이벌이었던 아약스의 가패 축구를 비판적으로 계승하여 왕좌를 이은 팀.

71-72 리그 1위(88)
72-73 리그 1위(88)
73-74 리그 1위(77), 유러피언 컵 우승
74-75 리그 10위(53), 유러피언 컵 우승
75-76 리그 3위(61), 유러피언 컵 우승
76-77 시즌 리그 7위에 무관을 기록하며 끝.
5시즌 동안 리그 3회 우승(평균 승점 73), 유러피언 컵 3회 우승.
 
4. 1972~1985 <붉은 제국> 리버풀 왕조
-흔히 리버풀 리즈 시절은 잘못된 말이죠. 리버풀 시절이 보다 적절한 용어입니다. 달글리시, 이안 러시, 수네스, 앨런 핸슨,캘러헌, 필 닐 등등...제라드도 고개 내밀기 힘든 게 리버풀 레전드진이죠.
72-73 리그 1위(77), UEFA 컵 우승
73-74 리그 2위(71), FA 컵 우승, 유러피언 컵 광탈
샹클리 사임, 페이즐리 부임
74-75 리그 2위(64),
75-76 리그 1위(75), UEFA 컵 우승
76-77 리그 1위(72), 유러피언 컵 우승, 커뮤니티 쉴드 우승, FA 컵 준우승
77-78 리그 2위(73), 유러피언 컵 우승, 리그컵 준우승, UEFA 슈퍼컵 우승, 커뮤니티 쉴드 우승
78-79 리그 1위(89), 유러피언 컵 광탈
79-80 리그 1위(77), 유러피언 컵 광탈, 커뮤니티 쉴드 우승
80-81 리그 5위(62), 유러피언 컵 우승, 리그 컵 우승, 커뮤니티 쉴드 우승
81-82 리그 1위(79), 유러피언 컵 8강, 리그 컵 우승
페이즐리 사임, 페이건 부임.
82-83 리그 1위(74), 유러피언 컵 8강, 리그 컵 우승, 커뮤니티 쉴드 우승
83-84 리그 1위(72), 유러피언 컵 우승, 리그 컵 우승
84-85 리그 2위(81), 유러피언 컵 준우승
 헤이젤 참사로 끝

13시즌 동안 리그 8회 우승(평균 승점 74), 유러피언 컵 4회 우승/1회 준우승, UEFA 컵 2회 우승, 기타 컵 5회 우승
유러피언 컵을 무려 9년이나 개근! 9시즌 내내 리그 트로피든 유러피언 컵 트로피든 둘 중 하나는 꼭 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후 달글리시가 플레잉 감독을 맡게 됩니다. 그리고 더 강해졌지만 유럽 클럽 대항전은 출전 정지.
 
5. 1987~1997 <사키 혁명>밀란 왕조
-아약스를 연상케하는 엽기적인 오프사이드 트랩 시도와 숨막히는 프레싱으로 이름을 날렸던 팀이죠.
카펠로 체제 이후부터는 안정 노선으로 전향. 오렌지 삼총사로 잘 알려져있긴 하지만 사실 셋 모두가 뭉친 시기는 길지않죠. 셋 중 가장 꾸준했던 레이카르트는 아약스로 넘어가 비수를 꽂기도 했습니다.

87-88 리그 1위(79), UEFA 컵 광탈
88-89 리그 3위(65), 유러피언 컵 우승, 수페르 코파 우승
89-90 리그 2위(79), 유러피언 컵 우승, 인터 콘티넨탈 컵 우승, 코파 이탈리아 준우승, UEFA 슈퍼컵 우승
90-91 리그 2위(72), 유러피언 컵 8강, 인터 콘티넨탈 컵 우승, UEFA 슈퍼컵 우승
사키 사임, 카펠로 부임
91-92 리그 1위(87) - 무패우승
92-93 리그 1위(76), 챔스 준우승, 수페르 코파 우승
93-94 리그 1위(77), 챔스 우승, 수페르 코파 우승
94-95 리그 4위(67), 챔스 준우승, 수페르 코파 우승, UEFA 슈퍼컵 우승
95-96 리그 1위(82), UEFA 컵 8강
96-97 리그 11위에 챔스 광탈하며 끝
9시즌 동안 리그 5회 우승 (평균 승점 76), 챔스 3회 우승/2회 준우승, 기타 컵 우승 2회
 
6. 2004~2012<포제션 풋볼> 바르셀로나 왕조
-펠마메의 메시, 역대 최고의 중미 3인 중 1인일 챠비, 그리고 와인왕 인혜의 팀.

04-05 리그 1위(84), 챔스 16강, 수페르 코파 우승
05-06 리그 1위(82), 챔스 우승, 수페르 코파 우승
06-07 리그 2위(72), 챔스 16강
07-08 리그 3위(67), 챔스 4강
레이카르트 사임, 펩 부임
08-09 리그 1위(87), 챔스 우승, 코파 델 레이 우승
09-10 리그 1위(99), 챔스 4강, 수페르 코파 우승, UEFA 슈퍼컵 우승, 클럽 월드컵 우승
10-11 리그 1위(96), 챔스 우승, 코파 델 레이 준우승, 수페르 코파 우승
11-12 리그 2위(91), 챔스 4강, 코파 델 레이 우승, 수페르 코파 우승, UEFA 슈퍼컵 우승, 클럽 월드컵 우승
8시즌 간 리그 5회 우승(평균 승점85), 챔스 3회 우승, 기타 컵 4회 우승, 09년 전관왕
 
곰곰히 보면, 밀란과 바르셀로나 사이, 곧 90년대 중반부터 00년대 중반까지에 <공백의 10년>이 있죠. 레알 왕조가 벤피카와 인테르를 거쳐 아약스 왕조로, 아약스 왕조가 뮌헨 왕조로, 뮌헨 왕조가 리버풀 왕조로, 리버풀 왕조가 유벤투스를 거쳐 밀란 왕조로 가는 데에는 거의 공백기가 없는데 말이지요. 말하자면 2차 대전이 끝나고 세계 축구>내지 <유럽 축구>라는 실재가 태동한 이후로, 최초의 <장기 춘추전국기>라고 해도 될 겁니다. 이 때문인지 이 시절의 선수들은 그 이전이나 이후 시대 선수들에 비해 도미넌트한 선수가 부족합니다. 단적인 예로,호돈이나 지단, 히바우두나 피구, 혹은 그 앞세대인 호마리우나 바조가 아무리 도미넌트했다고 한들, 50년대의스테파노/푸스카스, 60년대의 펠레/에우제비우/우베 젤러/아만시오/바비 찰튼/리베라/수아레즈/마쫄라, 70년대 전반의 크루이프/베켄바우어/게르트 뮬레르/히베우리뉴/자이르지뉴, 70년대 후반~80년대 전반의 루메니게/지쿠/플라티니/달글리시/브라이트네르/키건, 80년대 후반의 마라도나/마테우스/오렌지 3총사 등에 비하면 손색이 있으니까요.이것을 보면 뮌헨도 대단하긴 하지만 같이 언급된 다른 팀들만은 못하다 싶긴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뮌헨이 길이 회자되는 것은, 70년대의 서독 대표팀(70월드컵 3위, 72유로 우승, 74월드컵 우승, 76유로 준우승)의 주축이 뮌헨 멤버들이기 때문입니다. 국가대표와 두루 보면 충분히 시대를 지배했다는 느낌을 줄 법 하죠.
같은 맥락에서 네덜란드와 멤버를 공유했던 아약스, 스페인과 멤버를 공유했던 바르셀로나의 평가가 좋은 것도 이해할 수 있죠. 양 팀들은 단일연도 전관왕을 이룬 유이한 팀이기도 합니다.
 반면 그 어떤 팀과 비교해도 누적 성적에 있어 밀리지 않는 축임에도 리버풀은 잉글랜드 때문인지 많이 언급되진 못하죠. 좀 더 많이 알려야 하는 팀입니다.
출처 http://www.soccerline.co.kr/slboard/view.php?uid=1987979082&page=1&code=soccerboard&keyfield=subject&key=%BF%D5%C1%B6&period=0|1988057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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