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랄까 그냥 다필요없고 피지컬로 다 깔아뭉겨버려!!!한다는 느낌이랄까요. 특히 램파드 발락 에시앙을 보면서 피지컬축구란게 이런거구나하고 많이 느꼈습니다.
그전에 첼시의 사령탑은 우승청부사로 불렸었던 스콜라리 감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막강한 전력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첼시는 강팀상대로 단 1승도 못할정도로 최악이었고 심지어 이젠 4위에서도 위험한 상황이 왔었죠. 5번붙어서 무승부한번뿐 나머진 모두 치욕적인 패배뿐이었습니다.
결국 맨유에서 3:0참패이후에 스콜라리를 경질합니다.
특히 당시 성적도 성적이었지만 팀장악과 멘탈에 문제를 많이 삼았죠.
일부 선수들은 팀 전술에 강한 불만을 표출했을 뿐만 아니라 팀 훈련에서도 강도가 높지 않은 점에 대해 의문점을 제기하는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시즌 내내 팀 분위기가 어수선한 소식이 언론을 통해서도 밝혀졌을 만큼 여타 팀들에선 크게 일어나지 않는 점이 첼시에서는 종종 벌어졌다는 것은 감독의 리더쉽에 큰 문제가 있음을 증명한 셈이죠. 선수들의 정신력을 확실하게 잡아 놓지 못한 채 경기력에서도 부진함이 나타난 것은 당연지사였습니다.
스콜라리를 경질시킨 로만 이브라모비치 구단주는 첼시를 살려낼 적임자로 평소 친분이 있었던 러시아 국가대표 감독이자, 대한민국 축구계의 영웅이던 거스 히딩크 감독을 선임합니다. 이전부터 히딩크 감독은 첼시와 계속해서 링크가 나왔지만 히딩크 감독은 계속해서 거절해왔기에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첼시 감독으로 가면서 단디 08/09시즌까지만 임시로 맡는 것이라고 부임초부터 못박아두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게 히딩크가 선임되면서 첼시는 정말 무서운 팀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이후 첼시의 성적은 대단했습니다. 리그에서만 단 1번밖에 지지않았고 16승 5무 1패.
히딩크 부임후 성적이지만 당시 우승을 한 맨유나 2위한 리버풀보다도 더 좋은 성적이었죠. 그래서 이후에 계속 히딩크감독이 첼시를 맡아줬더라면 하고 아쉬운 마음이 있습니다.
이 당시에 아넬카도 단순히 전방에서 골만 주워넣던 까이던 선수에서 측면으로 배치시키면서 타팀에서 뛸때는 볼 수 없었던 성실함과 활발한 수비가담, 희생정신까지 심어주고, 리그 중반부때 왔던 득점 슬럼프에서 벗어나서 결국 득점왕까지 가능하게 만들어줬던것도 히딩크였죠. 아넬카가 여태까지 거쳐왔던 다른 모든팀, 그리고 대표팀에서의 사건사고들을 볼때 첼시에서의 모습은 가히 다른 선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멘탈관리가 잘 됬었습니다.특히 이때 말루다는 정말 대단했죠. 히딩크감독이 부임이 확정된 상황에서 아직 정식부임은 안하고 경기관람만 관중석에서 했던 FA컵 당시 2부였던 왓포드하고 경기였는데 그 시즌 쭉 최악의 모습을 보이던 말루다였지만, 그 경기서는 진짜 역대급으로 하부리그 선수들 상대로도 한명을 벗겨내지 못하는 최악의 모습이었죠. 근데 그러던 선수가 3월쯤 들어서 갑자기 정신을 차리기 시작하더니 리그는 물론 챔스8강 리버풀전 4강 바르샤 상대로 미친 퍼포머스를 ㄷㄷㄷ 8강때까지는 단순히 한두경기 겠느니했었는데, 4강 바르샤와의 연전에서 당시 극강의 폼을 자랑했던 알베스를 상대로 돌파해가는 모습은 가히 충격적.. 결국 시즌 후반부는 리그 챔스 FA컵 안가리고 맹활약 해줬고, 그 다음시즌인 안첼로티 첫시즌엔 리그 베스트 윙어급 활약해주죠. 암튼 히딩크란 감독은 2002년때는 어려서몰랐는데 전력가보다는 선수들에게 동기부여를 부여해주는데도 최고인 감독이라고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다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리버풀을 만났죠.
지금에서야 리버풀이 그렇지만 그당시의 리버풀은 그 위상이 달랐죠. 그때만해도 리그선두로 정말 무서운기세로 리그우승도 할거같았던 리버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