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전시 성노예, 즉 위안부 제도를 만든 것은 1931년 만주사변 이후였다. 일본이 이같은 유례없이 참혹한 범죄를 기획한 이유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남아있는 극소수의 문헌들에 비춰볼 때, 병사들의 사기 진작과 전력을 저하시키는 성병을 예방하고자 했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일본은 이후 1937년 발발한 중일전쟁과 1941년 태평양전쟁을 거치며 위안부 제도를 더욱 확대하고 체계화시켜 갔다.
▲ 상하이에서 발견된 일본군 직영 위안소 '어메이루 400호' 당시 이름은 ‘일본해군구락부’. 사진출처=상하이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