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모델 A(25)는 휴식시간에 휴대전화에 저장된 습작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보여 줬다. 전문가 솜씨는 아니었지만 노력과 애착이 묻어 있는 거리 풍경들이었다. 휴대용 팔레트가 없다기에 빌려줬더니 “ 다음에 올 때 돌려 드릴게요”라며 웃던 A의 표정이 생생하다.
A를 다시 만난 건 며칠 뒤 TV 화면을 통해서였다. 후드티와 모자에 파묻힌 얼굴이었지만 안경알 너머 눈매만으로도 A임을 확인하는 데 충분했다. A는 ‘홍대 누드크로키 몰카 사건’의 피의자가 돼 있었다. (중략) 개인 화구 상자를 모아 만든 더블 베드 크기의 무대 위에서 가운을 풀어헤친 채비스듬히 누워 있는 남성 누드모델의 모습을 처음 접했을 때 ‘가짜 뉴스’라고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쉬는 시간에 성기를 노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누드모델들에겐 불문율이다. 수업 중이거나 휴식 시간이라도 교수·학생·모델 누구도 사전 동의 없이 모델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댈 수 없다. 원칙적으로 작업 현장과 휴게 공간은 분리돼야 하고 남녀 모델이 따로 쉴 공간이 있어야 한다. 여건이 안 된다면 함께 쉴 수 있도록 모델들이 서로 배려하는 게 기본 에티켓이다.
지난 5월 1일 홍익대 미대 군상(群像) 크로키 수업 현장에서는 그 모든 불문율이 무너져 내렸다. 현장에 모델들이 쉴 공간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휴대전화 사용도 제한되지 않았다. 작업 및 휴게 공간에 대한 출입통제도 이뤄지지 않았다. 남자 모델은 쉴 곳을 독점했고 가운을 풀어헤쳤다. 쉴 곳을 잃은 A는(후략)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짜즈으으으으으응 쓰레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