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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마음을 못참고 털어놔봅니다.
게시물ID : gomin_144930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익명YmJiZ
추천 : 0
조회수 : 214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5/06/07 11:56:46
오유에 가입한지는 몇년 됬네요.

그동안 오유에 좋은 글, 슬픈 글, 고민 글 등등을 보고 저도 한번 마음의 고민을 털어놔 대화가 하고 싶어 이렇게 글을 씁니다.

제 인생 이야기가 될것이지만, 그중에서도 한때 사랑했었던 여자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네요.

2006년 저는 카톨릭 성당에서 한 여자를 만나고 좋아서 어쩔줄 몰라했던 순진한 청년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어떻게 그 여자와 대화를 할수있을지 고민 상담도 많이 하고 했었지요.
그때의 저는 순진하고 용기도 있으며 무서울것이 없었습니다.
항상 그 여자와 같이 있고 싶었기에 매일매일 보고 싶어서 말 재주는 없는 주제에 같이 있고 싶어했었지요.

성당에서 기도모임 중 하나인 레지오도 그녀와 같이 하면서 점점 친해졌었지요.
결국 고백을 하고 제 마음을 받아준 제 인생의 첫 여자가 되었습니다.

그후 그녀는 공부를 해야된다면서 북미 서부로 이사를 가야된다고 한다는것을 알았지요.
얼마지나지 않아 그녀에게 프로포즈를 했고 그것을 기쁘게도 그녀는 받아주었습니다.

북미 서부로 가는 그녀를 쫓아 저도 동부에서 서부로 가서 직장도 구하고 생활을 하면서 더욱 자주 그녀를 보기위해 노력했지요.

곧 동부에 계신 부모님들께 상견례를 하기위해 같이 갔지요. 큰 문제 없이 부모님들께 인사를 마치고 여름에 있을 결혼식을 위해 하나하나 준비를 했답니다.

그렇게 결혼을 하고난뒤 행복할것같은 신혼생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후에 얼마 안가 열정적인 사랑은 금방 식어들었으며, 하나하나 문제들이 보이기 시작했지요.


그녀는 저를 만나기전에 수녀가 되려고 마음을 먹었던 여자였습니다. 그게 저를 만나 결혼을 한 후에도 기도 생활을 열심히했지요. 또한 남편인 저한테도 강요아닌 강요를 통해 기도생활을 열심히 하라고 했습니다.
그에 비해 저는 성당에 그동안 다니고 기도도 가끔하는 청년이었으며, 취미는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지요.

누구나 결혼생활 이야기를 하면 결혼한 본인들만의 이슈가 있을거라고 봅니다.
저도 거기에 빠지지않지요.

말 못할 사정이 있고, 당사자들만 알수있는 문제들. 그리고 한쪽 탓만 할수도 없는것이지요.
그녀 입장에서는 저를 못마땅하게 볼수있는것들이 많았나봅니다.
게임을 하는것 하며, 기도 생활을 같이 열심히 하지않는것, 그 당시 하고 있던 사업에 관한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봅니다. 그 외에도 많지요.
부부성에 대해서도 문제가 많았지요.

서로 연예를 많이 하지않고 급하게 결혼을 한 후유증이 오는듯했지요.

제 입장에서는 게임을 나쁘게만 보는 그녀, 강요적인 카톨릭 종교 생활, 제가 말재주는 없지만 말을 할때는 차근차근 들어주길 바랬지만 그렇지 않았던점, 제가 하는일을 대부분 부정적으로만 보는 그녀. 저도 제 입장에서는 불만이 많았지요.

그렇게 부부싸움은 점점 길어지고 오래가기 시작했지요. 서로 이해하려하지않고 이해해주길 바라기만 했답니다.

그러다가 싸움이 커져서 별거를 하기 시작했지요.

그녀는 미국 동부의 오하이오 주에 있다는 성모 마리아님 발현지가 자주 갔다왔었는데, 별거중에 거기 또 갔다온 그녀가 뭔가 변했는지 다시 같이 잘 해보자며 대화를 요청했지요.
처음엔 좀 놀랐습니다. 평상시 모습같지 않은 온화한 그녀를 보고 이런 모습의 그녀와는 다시 합쳐서 평화로운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을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요.
다시 결혼생활을 시작하고 얼마안가 그녀가 첫 임신을 했답니다.

그날은 주변에 미국인 카톨릭 성당에서 주일미사를 보고 있었는데, 저녁시간이라 해가 낮아지는 시간이었지요.
갑자기 성당 유리를 통해 들어오는 빛이 묘하게 눈이 가더라구요. 그것을 그녀와 같이 보며 별것아닌데 신기해했었는데, 마침 얼마안가 임신한것을 그녀가 알게된것이지요.

또한 그녀가 자주 갔다오는 오하이오 성모 마리아님 발현지에 임신한 몸으로 혼자 갔다왔는데, 거기에서 어떤 예언자를 만났다고 말해줬답니다.
그 예언자가 뱃속의 그녀(she)를 가리키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때 아들인지 딸인지 아직 병원에서는 모르는 상황에서 그녀라고 말하면서 딸인것을 암시해줬다고 해줬죠. 얼마안가 병원에서 검사한 결과로는 딸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기도중에 예수님 목소리가 들린다고 하고 성모 마리아님 목소리도 들린다고 하며, 딸이름을 꼭 ***로 지으라고 말해줬답니다.
영문 이름, 한글이름 정확히 이렇게 지으라고 말이죠. 그리고 첫아이니 하느님께 바쳐야된다고도 말을 했지요.

저도 카톨릭을 믿는 종교인으로서 저는 들리지는 않지만 그녀가 성실하기에 그런가보다하고 넘어갔습니다.

차츰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저에게 의문이 하나하나 생기기 시작합니다.

최소한 아기 이름 짓는건 서로 고민하고 생각해보고 부모님께 상담도해야되는것이 아닌가하고 말이죠.
그에 따라 제 아버지께 아기 이름 짓는건 한번 물어보는게 어떻냐고 말을 하니 평상시의 싸움투로 서로 말을 하기시작하고 말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그날도 하루종일 싸웠네요. 우리 아기 이름을 왜 아버지가 지어야되냐고 말이죠.
싸우다 지쳐 저는 결국 그녀 말대로 아기 이름을 그렇게 등록하게 되지요.

남자 입장에서 아기가 생기는건 참 신기합니다. 처음에는 제가 짓지않은 이름때문에 반감이 많이 생겼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아기가 조금씩 커가는걸보니 애정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정말 신기한 체험입니다.

아직 말도 못하는 한살도 되지않는 아기한테 그녀는 시간이 나면 TV에서 카톨릭 방송만을 틀어주기 시작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수녀가 되지 못한 그녀가 아기를 수녀로 키울 생각인 심상인듯 합니다. 제가 게임을 가끔하면 거기에 나오는 몬스터 소리를 듣기 사탄의 소리라면서 바로 게임을 끄기도 합니다. 그러면 저는 혼자 방안에 들어가 화를 누르며 게임을 밤새 하기도 하지요.

아기가 첫돌이 되고 6개월쯤 지나고 여전히 싸움으로 시간을 보내는 부부생활에서 다시 별거를 하게 됩니다.

계기는 그날도 카톨릭 기도 모임에 같이 가고 있었는데, 주차하는것에 대해 저한테 시비를 걸고(여기 말고 다른데 주차해야된다. 이런거 말이죠) 거기에 저도 화가나서 싸우다가, 저 혼자 먼저 아기를 데리고 모임에 들어가려고 했지요. 그녀가 갑자기 저를 어깨를 잡아 당기며 어디 가냐고, 자기가 아기 데리고 갈거고, 가져온 짐이나 갖고 오라고 했지요. 쌓일데로 쌓인 화를 참지못하고 아기를 데리고 있는 상태인 제가 발로 그녀를 허벅지 부분에 찼습니다.

그에 따라 그녀는 눈을 부릅뜨면서 뭐하는 짓이냐고하며, 그러고 기도 모임은 어떻게 시간이 흘러 넘어갔지요.
그 날밤, 집에 와서 저는 그녀에게 그렇게 한것에 부끄럽기도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복잡한 심정이었습니다. 혼자 있고 싶었습니다.
마침 몇일후면 오하이로 주로 이사를 하게 되기에 이사준비로 각종 짐이 쌓여있는 상태라서, 그녀가 지금 뭐하냐고 짐이나 싸라고 말하지만, 저는 아무말도 안했습니다. 그녀가 가만히 있으면 경찰 부를거라고 했지요. 낮에 자기한테 발길질한거에 대해 경찰을 부를거라고 했습니다. 저는 역시 아무말도 안했지요.

결국 경찰은 오고 그날 저는 집에서 쫓겨났습니다. 경찰이 와서 상황을 보니 이삿짐은 쌓여있고 폭행의 흔적은 없고 낮에 있던 폭행에 대해 그녀가 간단하게 설명하고 그걸 저한테 확인을 하는걸로 끝났습니다. 경찰이 저한테 부인이 화가 많이 나있으니 하루만 밖에서 지내고 오라고 하더군요.

화가 풀리지 않아서 다다음날에 집에 갔습니다. 여전히 이삿짐은 쌓여있고 현관문은 잠겨있었습니다. 그녀가 열어주지 않는거죠. 몇분후에 경찰이 또 왔습니다. 그녀가 경찰을 또 불렀지요. 저는 밖에 있는 쓰레기 버리고 있었는데 말이죠. 경찰이 말하길 문을 심하게 두들겼냐고 묻더군요. 그거에 그녀가 겁을 먹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저 이사짐때문에 생긴 쓰레기를 버리고 있었다고 말했죠.

경찰에 의해 그녀가 현관문을 열어줬습니다. 그러자 아기가 아장아장 걸어와 저한테 안기더군요. 순간 울컥했습니다. 이 아이가 이런 상황에서도 저를 아빠로 생각하며 기다리고 있었구나 하구요.

경찰이 말하길 일단 떨어져 살며 이사를 하고 서로 잘 해결해보라고 하더군요. 또한 아기는 그동안 누가 데리고 있을거냐고 묻더군요. 순간 그녀가 경찰한테 자기가 키울거라고 말하고, 경찰은 저한테 어떻게 할거냐고 묻더랍니다. 저는 생각하길 아기는 아직 말도 못하고 어리기에 여자가 키우는게 아기한테 좋을거라고 생각해서 그녀가 데리고 있는거에 동의합니다.

그러고 제 짐 몇개를 챙겨 다시 별거를 시작하죠.

별거중에 최소한 제 컴퓨터 및 사업 관련 문서 등등을 받으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녀가 이삿짐을 맞긴 오하이오주의 어떤 한인분이 법적인 문제가 생길수 있다며 그것을 거부했습니다.

그후 제가 세금 문제로 그녀한테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세금 보고를 같이 하면 싸기에 어떻게 할것인지.
답변이 없었고 세금 보고 마지막달인 4월에 답변이 왔지요. 같은 세금 문제로 말이죠. 그리고 양육비도 보내달라고 합니다. 이미 직장이 없는 상태라 많이 못보내주고 그래도 주기로 합니다. 그러나 그녀가 양육비가 적다며 더 달라고 하고 더 주면 아기 사진도 보내준다고 합니다.

생각해보니 양육비 문제로 아기 사진을 거래조건으로 내세우는 그녀에게 완전히 식상하게 되며, 저는 변호사를 고용하고 앞으로 변호사를 통해 연락하라며 연락을 끊었습니다. 그후 그녀는 정부를 통해 양육비를 신청하게되지요. 그녀가 원하는데로 양육비를 더 내고 있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2010에 태어난 아기가 지금은 5살이 되있겠네요. 그후 한번도 아기를 본적이 없으며 고용한 변호사도 그리 빨리 처리를 안해서 2015초가 되야 겨후 이혼이 끝난 상태네요. 아직도 양육권에 대해서는 해결이 안되있으며, 저 개인적인 생각은 양육권은 가져오면 좋지만, 이미 애엄마와 같이 오래 살아서 저를 기억 못할 아기한테 애엄마와 같이 사는게 좋다고 생각이 드네요.

그후 가끔 생각나는건 마지막으로 본 아기가 저한테 안기는 모습이 계속 떠오릅니다.

이거 말고도 여러가지 사정은 많지만, 간략하게? 제 결혼 인생의 고민에 대해 풀어봤습니다.

혹시 오해하시는분이 계실까봐 말씀드리지만, 이 글은 분명히 제 입장에서 쓰인 글입니다. 전부인 입장에서는 다른 시선으로 보일지도 모르지요.
제가 잘했다고 쓴 글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저도 여러가지로 불만과 고민이 있어서 누군가한테 이야기하고 싶어서 쓴 글입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시고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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