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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그 여자 이야기(47).
게시물ID : love_4343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철전열함
추천 : 22
조회수 : 1951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8/07/16 20:58:13
"비행기 탈때 신발 벗는다니까?"
"내가 아무리 세상물정몰라도 그걸 모를까." 

인천공항가는 공항버스.
나와 D는 그렇게 만담을 나누고 있었다.

나는 항상 그렇듯 D에게 뼈가 되고 살이 될 가르침을 내리고 있건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고분고분해도, 나에게는 앙칼진 D는 콧방귀까지 뀌며 안속아.라며 어째서인지 의기양양해 하고 있었다.

"...좋아...내기하자. 신발벗으면 나 일본가서 술 실컷 마셔도 뭐라 안하기."
"좋아. 대신 내가 이기면 경비지출 내가 관리할거야."
"그러시던가요."



공항은 언제나 설레임만을 주지 않는다.
물론 막 상경한 촌놈때 인천공항보고 우와와아아앙~했던 적은 있는데, 
팔자에 없는 외국출장 좀 다니는 회사로 가서 몇 번 왔다갔다하다보니, 별로 신기하지도 않다...는 출장갈때고,
여행갈때 만나니까 또 새롭고 그러더라. 
물론 진짜로 여기 처음 와본 D는 진짜 우와와아아앙~하며 보고 있었고.



"신발 벗어주세요."
"네?"
ㅋㅋㅋㅋㅋㅋㅋㅋ 당황했다 당황했다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보안검색대에서 D는 신발을 벗어야 했다.

물론 비행기 탈때의 범위에 대해서 옥신각신했지만, D가 너무 분해해서 무승부로 해주기로 했다. 나란 남자 관대한 남자. 나는 관대하다.

"ㅋㅋㅋㅋㅋㅋㅋ 삐졌다삐졌어."
깜빡하고 그 동전지갑 안빼놔서 또 걸리고, 깜빡하고 가방에 넣어둔 생수병이 문제가 되서 시간 실컷 잡아먹은 D는 또 두 볼 빵빵하게 부풀리고는 부루퉁해서는 여유롭게 보안검색 통과하고 사탕부수기젤리게임을 하며 기다리던 나에게 탁탁탁 소리까지 내며 걸어왔다.

이번엔 좀 아프겠군. 
퍽.
역시나.

일부러 창가자리에 앉혀놔줬더만...D는 비행기의 웅장한 엔진소리에 내 손이 부서져라 꼭 잡고 눈 한번을 뜨지 않았다.




특급타고 난바로 넘어갈 예정이었는데, D가 너무 공황상태라 바깥 공기를 좀 쐬게 해야 할것 같았다.
터미널을 빠져나와 나름 신선한 공기를 쐬자 긴장한 D의 표정이 한껏 밝아졌다.

아마 착륙하고 어떡게 여기까지 나왔는지 기억도 못할 터. 
평소의 의젓하고 똑순이 D는 어디가고, 왠 바보가 여기 하나 있나.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영어 잘하던 애가, 하우올드아유.를 못 알아먹고 네? 네? 네? 이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아차. 했다.
이 더운 여름날 일본을 오다니...내가 미쳤지...



"체크인할때는 신발 안 벗어도 됔ㅋㅋㅋㅋㅋㅋ"
두 주먹을 불끈 쥔 D를 보고서야 좀 멈칫했지만, 난바역에서 숙소까지 겨우 5분 걸어갔는데 땀이 범벅이 되서 농담을 걸지 않으면 짜증을 낼것 같아서였다.

"체크인해볼텨?"
"어?"
"내가 독일까지 못가니 이래저래 해봐야지. 쉬어. 체크인 구다사이 하면. 패스포트네 뭐네 그럴거야. 여권보여주고, 우리 출력해온 바우처 보여주고 하면 돼."
"오...오빠가 해..."
"근성이다 근성. 가라."

내 동생이 해병대나왔는데, 내 동생 교관들 따라 들어갈때 표정이 딱 저랬음. 추억돋네.

처음 나온 타국.
저 똑똑한 머리는 진정 국내용이란 말인가.
또 어버버버대는 D를 더 웃음을 참았다가는 내 볼따구가 터질것 같아서 별수 없이 끼어들었다.

"D.ㅋㅋㅋㅋㅋㅋㅋㅋ. 여권이랑 바우처만 보여줘도 된다니깤ㅋㅋㅋㅋㅋㅋㅋㅋ 여기요."
"아. 한국분이세요? 죄송해요. 한국말로 말씀해주시지."
어?어?어?
"명찰봐. 한국인이시잖아ㅋㅋㅋㅋㅋㅋ 내가 그래서 줄도 여기 서라고 밀어줬잖아."

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 
심장이 총알을 꿰뚫었을때? 
아니. D의 주먹이 분명히 내 팔뚝을 쳤는데 명치에 맞은것같이 아플때다. 쿨럭.



"안되겄다. D. 오빠 샤워 먼저. 숙박비에 다 포함된거니까 에어컨이고 뭐고 다 켜고 너도 좀 쉬어....아. 음료수는 비싸니까 그건 좀 참아주고.
 더워더워. 아이고 더워어어어어."

겨울에도 찬물로 씻는 나란 남자. 
찬물이 정수리에 닿자, 정신이 좀 돌아왔다. 
그리고 말이지, 남녀가 호텔에...응...그래...나도 좀 씻고...응...어차피 첫날은 호텔에서 짐 풀고 어정거리고 댕기기만 할거고 말이지...우후훗...하고 
뽀독뽀독 씻고 나갓더니, 

새벽부터 긴장탔던 D는 긴장이 풀려서 곤히 자고 있었다. 

D의 곤히 잠든 고 볼따구를 쓰담쓰담해주었다. 
못해서 아쉬어서란 마음은 1도 없이, 마냥 똑똑하고 야무진 줄 알았던 아이가, 실수연발을 터트린걸 반나절 넘게 봤더니, 이역만리 먼 덕국으로 보낸다는게 너무나 걱정이 되서였다.
D는 볼에 내 손이 닿자, 으으으응~그러더니 내 손을 꼭 잡고 다시 잠들었다.

상의 탈의 중.
반바지 하나. 
몸 말리다 말았음.
수건은 아직 욕실에 잇음.
아까 내 말 착실히 듣고 에어컨 최저온도로 내려놓음.

추...춥다...야...야...손 좀 놔봐바...



약 2시간 후, 폭신한 침구류에서 푹 자고 일어난 D는 기운을 되찾았고, 
그 악력에 손은 못 풀어. 몸 다 안마르고 춥다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면 자는 애 깨울까봐 옴짝달싹 못한 나는 콧물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다시 따듯한 물로 샤워를 하고(...)
우리는 도톤보리로 사람구경하러 갔다. 
거긴 뭐 먹으러 가면 안됨. 코로 먹는지 입으로 먹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음.
그냥 오사카에 이렇게 많은 한국인과 중국인들이 있다는거 보러 가는거임.

걸어서 쫌만 나오는 길인데, 호텔 나와서 조금 걷다가 D의 고개가 절로 돌아가는 쪽을 보니, 타코야키 파는 가게였다.

"먹고 싶으면 먹어. 내가 엔 바꿔준거 있잖아."
"그래도 돼?"
"...그럼 그거 여행기념품으로 간직할래?"
"...오빠 몇개 먹을거야?"
"...작은걸로 사. 이따가 밥먹어야지."

내기에서 진거는 진거니까.라며, D는 편의점에서 작은 캔맥주도 하나 사주셨다.
아이쿠 감사해라. 잘 마실께요. 
...나도 한 모금만 줘봐.
...이 캔 하나가 내 한모금이야.

줘봐줘봐...맛있다. 오길 잘했네.

그 한 마디에 내가 얼마나 마음을 놓았는지 모른다. 
보안검색대에서 신발을 벗을때부터(...) D는 완전히 얼어버렸고, 따듯한 물에 다시 씻고 나와 정신차린 나와 달리, 씻고 나오고서도 D는 여전히 긴장을 풀지 못하는 눈치였고, 호텔을 나서자마자 내 팔이 떨어져라 거의 매달려서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랬던 애 입에서 잘왔다. 라는 말이 나오니까 나도 모르게 아빠미소가 나왔다.
"??? 왜 ???"
"^^. 너 입 주위에 파래 묻었어...그 주먹. 나 때리려고 드는거냐. 입가에 파래 닦으려고 드는거냐."



저 게간판. 오빠 하는 게임에서 봤어. 그 싸우는 게임.
공부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만. 거봐라. 내가 옆에서 게임하면 방해된다니까.
아...;;;; 아냐아냐;;;; 잠깐 쉴때 본거야.
줄봐라 줄봐. 저기 엄청 비싼데 줄 어마어마하네.
가봤어? 
아니. 가격보고 줄도 안 섰어. 

사방에서 들려오는 한국어와 중국말을 들으며, 여기가 일본인가 가리봉동인가 하며, 우리는 여기저기 구경하다가 도톤보리강따라서 조금 걸어간 다음에, 좀 떨어진 거리로 빠져서 여기다 싶은 집으로 들어갔다.

"에또...가이진..."
"노 포토. 오케이? 컴온컴온"
"뭐래? 오빠?"
"들어오래."

일본어 못하는 애가 그나마 아는 명사로 외국인 괜찮냐고 물어볼라캤는데, 
그 아저씨는 사진만 안찍으면 괜찮다는 뜻으로 노 포토 컴온컴온.이랬고,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할 줄 아는 애가 노 포토 컴온컴온을 못 알아듣고 뭐래는 거냐고 묻고, 
사실 나도 그때 노포토컴온컴온을 이랏샤이마세.로 알아듣고 들어와도 된대.라고 통역해주었다.

어...에이고메뉴...아...사진으로 된게 있네...

이 소고기로 된거랑 이 돼지고기로 된거랑 이 닭고기로 된거랑 생맥주 주세요...를 
일본 말로 고레 고레 고레 투 나미비루 구다사이.라고 함.

와...나 일본말 좀 하는듯.
(오사카에 있는 동안 그 집만 3번을 가면서 느낀거지만, 외국인이 아무리 개떡같이 말해도 사장님부터 종업원 아줌마 2명까지 다들 찰떡같이 알아듣는 집이었음. 관광지에서 걸어서 겨우 10분 떨어진 집이었는데 바가지도 없고 맛도 괜찮고)

오토시로 나온 타코와사비에 생맥주 2잔을 마시고, 나는 본격적으로 병맥주로, D는 본격적으로 고만 마시라고 말리기 시작했다.

나는 남쪽지방 출신이라 짜던가 달던가인 일본음식을 퍽 잘먹는 편인데, 산골에서 자라 간이 대체로 슴슴한 쪽인 D는 참 어려워하...긴...
나 너 못 업고 간다. 고마 마셔라. 할 정도로 잘 먹고 잘 마셨다.

-그… 위대한 영도력의 비결이 뭐요…?
-뭐를 마이 멕에이지 머… 

쉴 새 없이 움직이는 D의 젓가락질에 진짜 아빠미소가 절로 나왔다.
내가 눈꼬리 입꼬리 올라가는게 느껴질 정도로.
돈은 좀 들었지만, 데려온 보람이 있었다.

"...??? 왜 안 먹어?"
"배불러."
"...오빠 많이 피곤하나보다. 일어날까?"
"안피곤해. 괜찮아. 이거...토마토...샐러드겠지? 이것 좀 상콤하게 먹어볼까?"
"오빠 진짜 많이 피곤한가봐?"
"어? 왜?"
"안먹던 채소를 다 먹으려들고."
-_-+



처음 이틀은 오사카에서 잘 놀다가 고베로 넘어가서 와규를 와규와규먹고
(내 지출도...먹을땐 돈 아깝단 생각안드는데, 계산하고 나오면 내가 무슨 짓을 한건가...하는게 와규-_-ㅋ)
다시 오사카로 넘어가서 첫날 간 그 술집 또 가고 담날 교토로 갔다 

오사카는 몇 번 와봤어도, 교토는 또 처음인지라 둘이 참 많이 헤매면서 다녔다.
내 여행스타일이 1분 1초를 아까워하며 딱딱딱 찍고 보고 오는 스타일이 아니라, 크게 2~3군데 정해놓고 중간에 헤매보기도 하고 거기 다 돌고 시간이 남으면 또 다른데 헤매보는 스타일이고, D도 못 보면 오빠랑 또 오면 되지.하고 크게 욕심내지 않아서 우리는 그 무더운 교토를 참 잘도 헤매고 다녔다.
(난 세상에서 대구 경산이랑, 내 군대있을때 그 동네가 세상에서 제일 더운 줄 알았는데...아니었음...교토는 미쳤음 진짜-_-)



그러다가 어느 골목이었다.
그 날 D는 입고간 평상복이 다 땀에 절어버려서, 막상 사놓고 안 입고 있던...
여행가기 전에 산 그 하얀 원피스를 입고 씩씩하게 걷던 중이었다. 

"아!!! 슈퍼다!!! 오빠. 음료수 사줄께."

그렇게 나를 뒤에 두고 계단을 오르는 D의 뒷모습을 나도 모르게 카메라로 찰칵 찍었다.

어? 오빠 안와? 아직도 많이 더워?
간다 가. 아오...이럴땐 진짜 나이차가 막 느껴지네. 젊긴 젊어 우리 D. 난 그냥 죽겄어.
라무네 먹을까?
딸 줄도 모르면서ㅋ...어머 언니. 그 주먹 내려주지 않겠어? 땀 많이 흘려서 때려봐야 주먹이 끈덕거릴뿐이라고.

D는 생긋 웃으며 내 손을 잡고 가자. 시원한거 마시면 오빠 기운날거야.라며 더위에 지친 나를 질질 끌고 갔다....
출처 내 가슴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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