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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운동과 법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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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실드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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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시간 : 2018/07/20 20:48:53

미투운동과 법의 역할

 작성자: 실드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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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07-20 19:09:12

미투운동과 법의 역할 





1.페미니스트들은 성폭력, 성추행이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고 말한다. 법이 정의롭지 못하다고 말한다.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법은 정의와 동의어가 아니다. 정의를 지향할 뿐. 피해자의 말 뿐만 아니라 가해자의 말 또한 들어보는 것이 법이기 때문이다. 변호사는 왜 존재하는가?


성폭력과 성추행은 기본적으로 피해자의 기분이라는 추상적인 기준에 따라 결정되느니만큼 성립 요건을 제한하고 있다. 그것이 많은 무죄판결의 원인이 된다. 법적 대응을 하고싶다면 녹화, 녹취 파일을 준비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증거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증거가 있기 전의 (자신이)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말은 사실이 아니라 주장일 뿐이다. 양예원씨의 사례에서 보듯 증거가 없다면 언론플레이는 할 수 있겠지만 법을 통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소 억울할 순 있겠지만 법은 완벽한 정의가 아니다. 피해자라고 느낄 때 법을 지혜롭게 활용하려면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 적용하려는 태도가 우선이다.


물론 확실한 증거가 있음에도 무죄판결이 나온다면 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니 확실히 잘못된 부분이다. 이 부분도 판사의 법리적 해석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으니 논란이 분분하지만 확실한 건 그건 판사에 대한 계몽과 교육의 영역이지 처벌과 법의 영역이 아니라는 점이다. 또한 이런 상황에서 판사가 무죄판결로 증거주의를 저버린다면 판사 개인의 자질 문제도 되며 그 판결은 자신의 오점으로 남게 된다.


억울하다고 법을 없앨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쩌면 우리는 차악을 선택해야만 하는 현실에 놓인 건지도 모른다. 법은 강자들이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장치일 뿐이라는 시각이 있다. 그렇다고 법을 없애면 생각과는 달리 강자의 횡포는 사그라들기는 커녕 활개치게 될 것이다. 법에 강자의 입김이 많이 들어갈 수 밖에 없는 건 아쉬운 현실이지만 법은 동시에 강자의 탐욕을 제한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법을 여러 측면에서 바라보자.





2.직장상사의 권력을 이용한 젠더폭력


누가 직장에서 잘리고 싶겠는가? 그러나 법은 여성들이 직장상사에게 잘보여야 하는 부분까지 챙겨줘야 할 이유가 없다. 법은 멀고 직장은 가깝다. 이래서 피해자는 법을 안 믿고 피해는 누적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그러나 사실은 1.에서 보듯이 법이 먼게 아니라 (자신이)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사람)가 활용을 못하는 이유가 크다.


그런데 힘들게 유죄 판결이 나오고도 다음 문제가 있다. 회사를 더이상 다닐 수 없는 지경이 된 후일텐데 무엇으로 먹고사나.


이 부분은 우리 법의 고질병 중 하나인데 처벌의 수위가 하나같이 낮다는 점이다.


법은 기본적으로 3가지 기능이 있는데 계도, 죗값, 본보기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우리 법은 계도에만 치우쳐 있는게 큰 단점이다. 법적 수단으로는 집행유예, 병보석 등이 있고 그 이유로는 어려서, 술마셔서, 심신미약, 장애인, 정신질환, 초범, 국가 경제에 큰 이바지를 해서 등이 있다. 이 단점 때문에 "내새끼 살려내라"라는 원초적 문구가 언론을 도배하고 무전유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나오게 된다.


그렇다고 다 잡아들인다면 8살짜리가 감옥에 들어가는, 약간은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은 광경이 연출될 것이다.


결국 가치의 문제다. 어느 가치에 어느 만큼 가중치를 두는가. 물론 지금은 계도에 과도한 가치가 쏠려 있는게 사실이고 성폭행, 성추행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확실한 배상금을 받아낼 정도로 바뀌어야 한다. 단, 법적으로 성폭행, 성추행이 성립되고 유죄판결이 난다면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무고죄로 심판받을 수 있다.





3.공포로 인한 의사표현의 어려움을 호소


Yes means Yes 운동을 들어보았는가? 성관계에서 긍정의 의사표시를 할 때만 허용으로 인정하자는 주장이다. 이런 운동이 나오게 된 배경은 성폭력 당시에 공포로 머리가 얼어붙어 아무 말도 못하는 상황 때문이라고 한다. 심정으로는 이해가 되나 의사표시는 법리를 논할때 가장 기본중의 기본이다. 기본적 의사표시가 없으면 법도 해결할 수 없다. 단 의사무능력자로 법리해석을 한다면 가능성은 있다. 광주 인화학교 사건이나 2.에서 나온 심신미약 등이 해당된다. 그러나 광주 인화학교 사태는 피해자가 청소년이라 의사무능력과는 별개로 아동청소년법이 적용되고 심신미약으로 인한 의사무능력은 2. 에서 보듯이 폐해가 크다. 가해자가 의사무능력일 때와 피해자가 의사무능력일 때와는 다르겠지만 이런 경우에도 가해자(라고 지목된 사람이)가 거부하지 않았으니 허용으로 받아들였다고 주장하면 법은 그 부분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맨 처음 서술했듯이 법은 양쪽의 말을 다 들어봐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부분도 본인이 얼마나 법을 주체적으로 활용하느냐의 문제가 핵심이다.


여기까지 놓고보면 도촬기 녹음기를 항상 휴대하고 CCTV가 있는 곳으로만 다녀야 하냐고, 그게 정상이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세상 모든일이 법으로 해결될 수는 없다. 법이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은 교육과 계몽의 영역이다. 학교에서 상습적으로 이루어지는 성추행이나 성희롱은 남학생들이 여학생의 기분을 배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성추행으로 볼 여지가 있다. 그들이 여학생들의 기분을 조금만 배려할 줄 알았더라면 생기지 않았을 문제이다. 이는 직장에서도 마찬가지. 직장상사가 부하 여직원의 기분을 조금만 배려할 줄 알았다면 문제가 될 일이 없다. 배려는 교육으로 자라나게 해야 한다. 학교에서, 가정에서. 그래도 배려를 안 하고 선을 넘으면 성추행, 성폭행으로 법의 단죄를 받을 수 있고 상습적이라면 사회에서 격리해야 한다. 법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게 법의 한계이다.


법은 마법의 요술봉이 아니다. 그래서 더욱 지혜롭게 활용해야 한다. 한번 돌아보라, 그동안 살면서 법에 대해 얼마나 알아보고 생각해보았는가? 만약 사회가 법을 모르는 사람들을 방치했다면 이젠 그래서는 안 된다. 법률 서비스의 문제가 아니라 법 교육의 문제이다. 법률 서비스는 내 발로 찾아가기 전까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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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유리천장 문제, 급여 차별문제

많은 여성들이 유리천장을 주장하는 근거로 고위직의 여성 비율이나 승진에서의 확인되지 않은 차별을 주장한다. 고위직의 여성 비율이 적은 이유는 여성의 활발한 사회참여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차 늘어날 것이며 당장 부족하다고 인위적으로 늘리는 건 역차별 문제가 생기고 효율성을 침해한다. 무조건 50대 50을 기계적으로 맞추려는 시도는 합리적이지도 않다. 승진의 있어서의 문제는 심증일 뿐 물증이 없다. 강원랜드 채용비리처럼 여성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라는 지시가 적힌 문건이 공개되지 않는 이상 이는 그저 일방의 주장에 불과하다. 급료 차별문제는 역시 유리천장 문제와 마찬가지로 여성의 활발한 사회진출이 열마 지나지 않고 고소득 직군에서 남성의 숫자가 많아 천편일률적 통계로 그렇게 보이는 것 뿐이다. 또한 여성이 하는 일과 남성이 하는 일의 절대적 양이 전혀 같지 않다면 이 부분이 급여에 반영될 수 있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짐에 따라 해소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5. 낙태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기 몸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다면 여성의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가 상대적으로 높은 가치처럼 보일 수 있다. 한편 태아들이 모여 광화문 한복판에서 생명권 보장 시위를 한다고 가정해보자. 어떤 가치가 더 중요한가? 여성의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가 높은 가치처럼 보이는 이유는 당연한 얘기지만 그들이 태아들에 비해 조직되어있고 정치적으로 더 많은 권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앞서 말한 것처럼 가치의 문제이며 현재 우리나라 헌법이 채택한 가치는 생명권 존중이다. 낙태죄 폐지론자는 상대적으로 하찮게 생각하는 가치일 수 있다. 어떤 것이 오래되었다고 무조건 잘못되고 하찮은건 아니다. 생명권 또한 마찬가지다. 여성의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와 태아의 생명권을 분리시키려는 시도가 있는데 하나의 가치를 받아들이려면 다른 하나는 필연적으로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는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본질을 무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산모의 건강, 근친상간, 강간, 태아의 기형의 경우에 한해 낙태를 인정하고 있으며 이는 생명권과 여성의 몸에 대한 권리를 그나마 최대한 양립시키려는 법의 선택이다.


또한 남성에게는 낙태 책임을 안 묻는 차별적인 행태 또한 비판하고 있는데 성관계는 임신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이는 이를 감수하겠다는 사전 의지가 있다는 법리 해석이 존재한다. 낙태의 법적 책임을 전부 여성에게 전가한다고 하는데 이는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양육비 이행법)이 최근에 제정됨으로서 법적 책임까진 아니더라도 경제적 책임을 지게 함으로써 상당부분 해소되었다고 볼 수 있다.


현실에서 낙태죄 폐지 운동은 양육이 현실적으로 힘든 상황을 반영하고 있으며 법리해석과 가치판단과는 별개로 양육은 하나의 단위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인 바, 현재상황을 문제로 인식하고 해결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자꾸 시각을 양육에 놓고 본다는 의심이 있다면 사실이다. 여성은 출산하는 기계가 아니라고 항변할지 모르지만 그건 99%까지만 맞는 말이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모습 중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봐서는 폭넓은 사고를 할 수 없다. 출산은 여성만이 할 수 있으며 단위공동체를 유지, 재상산하는데 필수적이다. 사실 우리는 자신이 독립된 개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알게모르게 단위공동체의 일원으로써 서로 상호작용하고있다. 인정하지 않겠다면 오지에서 혼자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 뿐이다. 취미가 아닌 이상, 누구도 그걸 원하지 않을 것이다. 아침에 똥을 싸고 시원하게 비데를 할 수 있는 이유는 수많은 누군가의 자녀가 비데공장에 취직해 시장논리에 의해 적당한 가격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출산율이 줄면 공급감소로 비용이 바싸지게 된다. 수요도 줄으니 피차일반이라 할 지 모르지만 사회가 지출하는 고정비용을 고려하지 않은 생각이다. 다 떠나서 저출산은 최종적으로 단위공동체의 소멸이라는 문제가 있다.인간은 혼자 사는 동물이 아니며 협동함으로써 더 많은 편익을 취할 수 있다. 협동을 하며 단위공동체를 이루게 되고 이를 유지하는 일 또한 중요하게 되었다. 따라서 출산이 법적 의무는 아니지만 사회적 의무라고 한다면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회적 의무를 다하는가 뒤돌아볼 일이다. 참고로 남성들은 거의 대부분이 군필이다.





6. 언어 교체 운동

언어는 알게모르게 몸과 마음을 지배한다고 성중립적이지 않은 언어를 교체하자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자궁을 포궁으로, 여경을 그냥 경찰관으로 부르게 하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언어의 원리와 배경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었다. 예시로 든 자궁은 자궁의 자 자가 아들 자 자라서 성중립적이지 않다고 하는데 여기서 '아들 자' 자는 '자녀'라는 뜻도 있다. 이는 최순실정권 시절 북침논란과 같은 헤프닝일 뿐이다. 여경의 경우 사실 경찰관이 남자만 있던 시절에서 여성 경찰관이 등장하자 이들을 가르키는 단어로 '계집 녀' 자를 붙여 여경이라는 단어가 생긴 것이다. 단어는 접두사 접미사를 붙여 용도에 맞게 파생할 수 있으며 여경이라는 단어가 그 예시이다. 만약 여경이란 단어를 없애면 그 단어를 지칭할 새로운 단어가 필요한 게 사실이고 이는 끝없는 소모적 논쟁만 될 뿐이다.


또한 이들은 언어의 역사성과 대중성을 무시하고 있다. 예로부터 쓰여 온 말이고 지금도 쓰이고 있다. 어떤 단어가 차별적인지 아닌지는 대다수의 기존 구성원들의 사고에 달려있으며 대다수의 사람들은 문제의식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 이유가 위의 반론 때문인지도 모른다. 새상에는 여러 생각과 주장이 있으며 언어교체운동을 주장하는 사람도 그 일부일 뿐이다. 심지어 그들이 주장하는 당위성조차도 위에 언급한 대로 타당하지 않은 부분이 존재하며 이런 모래성을 바탕으로 언어를 바꾸자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7. 기계적 평등과 체력검정논란


페미니스트들은 자신들에게 자궁이 달려있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그러한 차별은 정당한가에 대한 여부를 따져보자. 역사를 통틀어 대표적인 차별은 인종차별이 있다. 피부색으로 인해 사람을 백인, 황인, 흑인으로 나눠놓았는데 이들은 유전자가 약간씩은 다를지 모르지만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역할을 수행하는데 그런 차이가 없음이 입증되었다. 차별은 차별의 원인을 극복할 수 있는가, 차별이 이루어지는 환경을 없앨 수 있는가가 중요한 요소인데 이 부분은 평등운동 등의 시민운동과 더불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발전으로 해결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사실 낙태문제도 자궁이 달려있는쪽은 여성이기 때문에 책임이 더 많이 부여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자궁을 없애는 건 해결 방법이 될 수 없다. 날 때부터 바꿀 수도 없다. 결국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대우하는 합리적 평등의 원칙을 인정해야 이해할 수 있다.


피부색으로 인한 차별은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에 부당하지만 성별에 따른 차별은 적어도 출산의 영역에서는 합리적이란 결론이다.


사실 반대측에서는 김빠지는 결론이기는 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것을 50대 50으로 완벽하게 인위적으로 맞출 수는 없다. 때문에 다른 영역에서 보상을 하는 방법 등으로 세상은 균형을 유지한다. 그리고 그 균형이 깨질 때 균형을 맞추자는 요구는 타당하지만 근본적으로 고칠 수 없는 부분을 뜯어보려 한다면 금방 자기모순에 빠지게 된다.


근본적 차이라는 부분에서 논란이 되는 건 무릎을 대고 팔굽혀펴기하는 경찰공무원 시험의 여성응시자 채점 기준이다. 사실 상대가 여자라고 화마에 휩싸인 건물이 늦게 붕괴되는 것도 아니고 강도가 여유부리지도 않으며 날아오는 총알이 느려지진 않는다. 이런 일들은 육체적 근력과 민첩함을 요구해 어느 정도의 기준을 정하고 있지만 문제는 여성의 근력이 남성의 절반밖에 안된다는 근본적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여성들에겐 채점기준을 절반으로 해야 할 것 같지만 해당 직업의 목적이 무엇인지 생각한다면 그게 얼마나 모순인지를 깨달을 수 있다. 물론 힘쓰는 일이 줄어들었다 해도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며 쉬운 일은 여성이, 힘쓰는 일은 남성이 맡는다면 이는 또다른 불평등이 될 수 밖에 없다.


여성에게 어떤 직업을 하지 말라는 건 차별이다. 동시에 불합리하다. 그러나 그 전에 성별을 떠나 그 직업을 수행하기 위한 기초 조건이 갖추어졌는지를 먼저 돌아봐야 한다. 현행 여성전용 체력검정기준은 위헌의 소지가 있다.





8. 워마드


정제된 언어로 목적이 달성되지 않자 폭력과 배제의 언어로 방법을 바꾼 배경을 뒤돌아봐야 한다는 페미니스트 교수의 주장은 폭력으로 목적을 이루려는 중동 테러리스트들을 이해하자는 논리와 다를 게 없다. 이들을 페미니스트에서 제외해야 하느냐의 논란도 여권운동가들 사이에서 논란이 분분하다. 신기한 건 모든 무슬림이 테러리스트는 아닌데 모든 테러리스트는 무슬림이란 점이다.


사실 20세기 세계 열강들이 잘한 일만 했다고는 볼 수 없다. 로힝야 사태만 해도 근본 원인은 영국 정부의 정책에 있다. 하지만 국제질서는 테러리스트를 규탄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진 않는다. 테러리스트가 활개치는 나라에 확실한 치안을 제공하고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가 싹트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 아니면 테러리스트에 대해 전면적인 군사작전을 수행하거나. 문제는 이것들이 모두 비용이기 때문에 강대국들이 신경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신의 탐욕을 채우느라 바쁘지 자신들의 과오는 책임지지 않는다.


재미있는 건 테러리스트 또한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이슬람 근본주의가 목적이든 아니면 그걸 구실로 권력을 잡겠다는 목적이든 힘으로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급급한 자들일 뿐이다.


물론 누구나 탐욕은 있다. 좀 더 정제된 언어로 표현하자면 누구에게나 욕구는 있다. 하지만 재화나 권력은 희소하기 때문에 다툼이 생긴다. 문제는 이 상황을 방치하면 끔찍한 일이 벌어져 법과 규칙을 만들었는데 이걸 어길 때다.


그들의 탐욕만 이해될 수 있는가? 피해자의 탐욕은 이해할 수 없는가? 이해와 공감이 배타적이라면 이중적 편가르기일 뿐이다.


강자의 입김이 많이 들어간 법칙이라도 지키는 게 좋은 이유는 앞서 설명했다. 폭력으로 이들을 이길 수 있을 거라 보는가? 그들은 그저 돈이 아까워 안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역사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많다. 구정공세로 베트콩은 전멸하여 미군이 역습했다면 이길 수 있었는데 여론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은 점, 장제스를 돕지 않아 만주침공이 좌절되어 코너에 몰린 마오쩌둥에게 시간을 벌어다 준 점, 리지웨이의 재진격 주장에도 불구하고 애치슨의 38선 유지 주장이 받아들여져 제공권이 없어 보급이 한계에 다다른 중공군을 몰아내지 못한 점. 그들은 단지 귀찮았을 뿐이었다. 몰라서 그랬는지 알고도 귀찮아서인지는 CIA기밀이 해제되기 전까지는 영원한 수수깨끼지이다. 비록 그들의 선택은 더 안좋은 결과가 되었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폭력적인 행위를 미러링 전략이라 부르며 하나의 놀이 문화로 여기는데 그야말로 전형적인 내로남불일 뿐이다.





9. 몰카


인터넷 시대엔 새로운 법칙이 세상을 지배한다. 내 사진이 인터넷을 떠돌아다닌다는 공포감은 수많은 법적 수요를 낳는다.


핵심은 몰카가 동의 없는 돈벌이 수단이라는 점이다. 피해자는 동의하지 않았다는 점과 금전은 전부 촬영자가 독점한다는 점이 요지다. 서로 합의하고 이익을 나눈다면 문제될 일이 없어 보이지만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성 산업을 규제하고 있어 여전히 문제이다.


무한히 퍼져나가는 도촬물의 특성 상 완벽한 억제는 불가능하다. 단속 비용 또한 만만치 않은데 전국의 모든 구석진 부분을 확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법적으로 인정하는 몰카 피해의 요건에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피해자의 얼굴이 나와야 한다는 점 등으로 제한하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적 제약과 일부 타협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여기서도 처벌과 동시에 교육과 배려의 역할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10. 여성전용과 치안 불안 주장


여성의 안전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여성전용 000가 많다. 여성전용 주택, 지하철, 택배수거함, 자전거보관대... 어디까지 만들텐가? 이럴거면 차라리 여성만 모여 나라를 만들자는 소리가 더 진정성있다. 이런 사고방식은 남성을 잠재적 범죄라로 인식하는데서 출발하는데 남성과 여성은 함께 사회를 살아가야 하는 이웃이다. 그런데 범죄자라니 인식의 출발점부터가 잘못되었다. 그럼에도 이러는 건 현재 치안에 만족을 느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치안이 세계에서 가장 좋은 나라 중 하나이다. 가장 좋은 정도가 아니라 1,2위를 다투는 수준인데 남아공이나 멕시코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로 밤길에 실제로 돌아다녀도 되는 나라이다. 


하지만 여성들은 그래도 불안을 느껴 호신용 장비를 휴대한다는 뉴스가 전파를 타고 있다. 이런 경우 생각해볼 수 있는 원인 중의 하나는 여성들에 대한 싸이코패스의 습격이 과장되어 받아들여졌다는 점이다. 강남역 살인사건의 경우 사건 자체에 비해 미친 사회적 파장이 지나치게 컸는데 여기엔 일부 여성 과격단체의 정치적 의도가 있을 수 있다.


한편 이런 과잉공감에는 다른 원인도 있을 수 있는데 SNS로 세상이 하나로 연결되고 공감은 이럴 때 증폭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여기에 공감할 수 있었던 배경엔 법적으로 성추행으로 인정되지 않은 일상에서의 수많은 성추행에 시달렸기 때문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렇게 다른 원인을 분석하는 건 이명박 정부 때의 광우병 사태 때문에 그렇다. PD수첩의 엉터리 보도로 실제로 쇠고기가 위험하다고 잘못 생각해서 시위한 시민도 있었지만 팩트체크 후 위험성이 없음을 이해하나 무조건 사실을 숨기려 하고 너흰 주는 대로 먹어라 하는 정부의 태도에 항의하는 시민도 있었는데 이명박 정부는 배후찾기에 바빴다. 결론적으로는 꽤나 헛발질을 한 셈이 되었는데 이 경우에서 보듯이 원인은 복합적일 수 있다.


그러나 가장 핵심적인 원인인 싸이코패스는 조기 탐지가 매우 어렵다. 대부분의 싸이코패스는 범행으로 발견되며 마치 동성애처럼 인간이라는 생물군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같이 존재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정신병원에 격리하는 사후처리밖에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적 제약이다. 이런 경우 이런 현실적 제약을 시민들과 공감하고 양해를 구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11. 노브라 운동


암묵적으로 사회가 요구하는 브레지어를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해 여성의 몸을 해방하자는 운동이다. 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브래지어가 사람들이 차기를 강요해서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여성들이 브래지어를 착용하는 이유는 처짐 방지, 옷맵시, 패션 등 다양하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사회의 억압때문이라고만 주장하여 설득력이 떨어진다. 사회가 브레지어를 입으라고 법으로 강제하는 것도 아니고 차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의 선호일 뿐인데 이들은 사람들의 선호조차 부담스럽다는 개인적 이유로 규제를 요구한다. 불편하면 벗고 다니면 되는 단순한 사실을 그들은 오늘도 생각하지 못한 채 길거리에서 옷을 벗는다. 물론 이들의 아둔함이 모든 여성단체를 대변한다는 확대 해석은 경계해야 한다.





12. 여권 운동의 실체


여권신장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곰곰히 따져보면 실체가 모호한 것들이거나 현재 법으로도 제어할 수 있는 문제이거나 불가항력적인 것들이다. 그런데도 이들이 끊임없이 이를 주장하는 이유는 여권운동이 하나의 산업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처음에는 단순한 운동이었다 몇몇 사건으로 조직화되고 언론을 타면서 정치적 압력이 생겼고 일부 기회주의 정치세력이 이들과 결탁하여 마침내 여성부가 생기게 되었다. 물론 여성의 사회진출이 정치 분야에도 이루어진 것도 이유 중 하나이다. 이들이 집행하는 약 34조 원의 예산은 하나의 작은 산업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겉보기에는 타당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많은 문제점이 있으며 이들은 정상적인 팩트체크조차 백래시라 부르며 자신들의 인지부조화를 인정하지 않고, 무엇보다 자기수정의 기미가 없다는 점은 큰 결점 중 하나이다. 미투운동은 여권신장운동의 정점인 동시에 한계점을 보이기도 했으며 이제 사회가 여권운동의 실체와 장단점을 이해하고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90년생 김지훈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성운동은 무조건적인 선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사회적 집단 최면에 빠져있어 쉽지만은 않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겠지만 그럴수록 비용도 늘어날 것이다.





13. 성매매 반대


성매매 특별법이 통과된 이후 집창촌은 허물어졌고 성매매는 줄어들기는커녕 음성화되었다. 전에는 경찰이 순찰도 하고 위생도 지원하는 등 관리가 가능했으나 이젠 그럴 수 없게 되었다. 법이 통과되지 않았더라도 모바일과 SNS의 발달로 성매매의 음성화는 예정된 미래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구나 알다시피 성매매는 불법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근절되지 않았다. 법을 만들고 처벌을 하면 사람들이 반드시 지킬 거라는 상상은 책상 앞에서는 가능한 법이다.


이들의 주장 중 하나는 성매매의 수요가 없으면 공급도 없다는 논리이다. 따라서 이들은 홍보에 관심을 쏟고 있으며 공사를 막론하고 이제는 흔히 볼 수 있는 성매매 예방교육이 보급되었다. 이들은 남성의 성욕을 죄악시하며 성매매의 탄생 배경을 애써 무시하고 있다. 일부 경우에서, 성매매를 하는 여성들은, 가진 게 없으니 그거라도 해서 생계의 수단으로 삼고자 한다. 이들에 의해 잠재적 수요는 실제 수요가 되며 산업이 형성된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이 세상에 일자리가 무한대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일자리 경쟁에서 밀려나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되었는데도 직업훈련을 시켜줘야 한다고만 한다. 일자리는 한정되어 있으니 이 사람이 재활에 성공하면 누군가는 이 바닥으로 떨어지게 되어있다.


이들이 놓치고 있는 점은 현실의 다양한 양상 중 여성이 피해자인 경우만을 가정한다는 점이다. 성매매는 다양한 요구와 상황 안에서 이루어지며 실제로 여성이 성매매 인신범죄의 도구로 이용되는 경우는 일부에 불과하다. 어떤 여성은 알바의 수단, 어떤 여성에게는 생계의 수단, 어떤 여성에게는 유희의 수단이지만 이들은 오직 한 가지 상황만을 가정하여 논지를 전개하고 있는데 이는 매우 편협한 시각일 뿐이다.


문제는 이런 잘못된 시각이 성매매 예방교육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되며 사람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면 사회가 집단 최면에 빠지게 되어 합리적 사고와 행동대신 감정과 상호 비방만이 남게 된다.




14. 퀴어운동


핀트가 살짝 어긋났지만 광의의 미투라 판단하여 적는다.


퀴어란 모호하다는 영어 뜻으로써 자신의 성 정체성이 규정되어있지 않고 이를 한정하려는 시도를 배격하자는 운동이다. 이들은 여권운동과 소수자의 해방이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서로 연대하고 있다. 이들은 다양한 성 정체성이 존재한다고 믿으며 퀴어축제를 통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퀴어축제는 엄밀히 말해 공연음란죄에 해당하며 처벌해야 하나 당국은 방관하고 있다. 이는 직무 유기이다. 성평등을 주장하는 축제에 왜 자위 도구를 팔고 음란한 그림과 글을 공공장소에 드러내고 왜 옷을 벗는가?


이들의 주장은 다양한 성 정체성 인정이지만 그 이면에는 동성애 인정 요구가 자리하고 있다. 다양한 성 정체성이라기엔 생물학적 성은 두 가지 밖에 없기 때문에 조합을 해봐야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이다.


동성애는 유전적 결함이 원인으로 그 수가 꾸준히 유지되는 이유는 동성애자의 친척은 아이를 더 많이 낳는 연구 결과가 존재한다. 즉 이들은 앞서 말했듯이 인류가 존재하는 이상 영원히 함께할 수 밖에 없다.


이들은 이성애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생기는 차별을 없애달라고 호소하는데 이들 주장의 헛점은 그러려면 사람의 마음까지 규제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마치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동성애에 대해 피어오르는 원초적인 거부감까지 규제해야 한다고 믿는 것 같다. 무슨 만화영화도 아니고 애당초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는게 가능한가?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을 법으로 만들어달라고 조르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걸 무시하고 규제 법을 만든다면 상당한 위헌 소지가 있다.


이들 역시 교육과 홍보의 중요성을 알고 동성애가 해로운 게 아니라고 홍보하는데 신체의 결함을 대단한 것이라도 되는 양 교육과 홍보를 할 일인지는 의문이다.


모든 동성애자가 에이즈 환자는 아니지만 에이즈 환자의 90%는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이들은 애써 무시하고 있으며 심지어 위키에서조차 동성애와 에이즈는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다고 쓰여있다. 끊임없는 자기수정으로 진실에 가까워야 할 위키조차 반달리즘으로 파괴되는게 안타까울 뿐이다. 동성애는 하지만 항문성교는 안한다? 항문성교는 에이즈 감염 확률이 높을 뿐이지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다? 술은 먹었는데 음주운전은 아니라고 발뺌하는 꼴이다.


위키에서 예를 들지 않아도 동성애도 여성운동처럼 무조건 선이라고 믿어야 하는 사회적 집단 최면에 빠져있다. 무조건 착하고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도덕 강박증에 빠져 이성과 합리적 사고가 점점 사라지고 감성과 무지가 자라나고 있다. 아닌 건 아니다.


도덕 강박증이라고 해서 뇌물을 받은 국회의원을 다시 등용하자는 면죄부가 아니다. 다만 죗값을 치렀다면 다시 등용할 수 있는 일이다. 죄에 처벌이 없으니 남은 건 도덕밖에 없어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되었다. 법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모두가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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