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故 노회찬 의원님의 정치경력, 평가, 어록
게시물ID : sisa_108672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眞如
추천 : 8
조회수 : 1436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8/07/23 16:51:28
<정치경력>
노회찬은 90년대 초반에 정계입문을 했다. 이는 그가 속한 인민노련의 노선 변화와도 관련이 있었다. 90년대에 들어 동구권의 붕괴와 소련 해체를 경험하면서, 이제는 제도권으로 나와서 활동해야 한다고 노선을 전환하게 된 것이다. 인민노련은 합법 정당 운동을 위해 한국 사회주의 노동당 창당위원회로 전환하게 되고, 노회찬은 진보정당추진위원회의 대표를 역임하게 된다. 진보정당추진위원회는 95년 9월 24일, 또다른 진보정당운동세력인 민중정치연합[11] 과 결합하여 '진보정치연합'으로 재편되었다.

그리고 95년에는 '반3김'을 구호로 내세운 개혁적국민정당[12] 창당준비위에 가담했다. 이 정당은 그해 10월 창당하여 꼬마민주당과 결합하여 통합민주당을 이루었다. 노회찬 역시 통합민주당에 합류하였고, 강서 을을 지역구로 총선을 준비했지만 사면복권이 안 되어서 실패. 매일노동뉴스의 발행인으로 활동하며, 원외인사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원외인사로 활동하던 노회찬은 <어, 그래? 조선왕조실록>이라는 대중역사서를 집필하여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도 하였다.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와 같은 책들에 비하면 그 수명은 참으로 짧았지만, 이색적인 이력.

제도권 정치를 향한 노회찬의 발길은 진보정치연합의 대표로 권영길의 대선 출마를 지원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 같은 흐름은 국민승리 21과 민주노동당을 거치며 성공적으로 안착. 이후 민주노동당의 비례대표 공천을 받고[13] 2004년 17대 총선에서 당선되었다. 여담으로 2004년 총선 선거운동전까지는 노회찬은 일반시민에겐 무명에 가까운 진보인사 a 였는데, 당에서는 노회찬의 말빨을 아주 잘 알았는지 총선때 자주 있던 각종 토론 프로에 나오며 촌철살인과 함께 일명 대중을 웃기는 유머러스한 컨셉의 토론으로 단숨에 유명인이 되었다. 뉴스, 신문에서 노회찬에 대해서 대서특필할 정도로 노회찬 신드롬이 분 것. 노회찬의 활약이 도움이 되어 원래 민주노동당 예상 비례당선권인 5-6번을 훌쩍 넘어 본인번호인 8번까지 당선이 되었다. 말그대로 스스로 멱살 잡구서 비례대표 득표율을 13%라는 경이적인 숫자로 끌어올리면서 본인도 당선된 것. 당선 이후 대중적인 인지도의 유명 진보 정치인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그러나 이후 NL-PD 갈등이 심해지면서 민주노동당을 탈당하고, 진보신당 초기의 공동 당대표를 역임하였다.

2010년엔 서울시장 선거에 진보신당 후보로 출마했는데, 이때 민주당 한명숙 후보와의 단일화를 거부하고 완주한 것 때문에 일부 야권 지지자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았다. 당시 한나라당 오세훈 시장이 민주당 한명숙 후보를 불과 0.6%차로 이겼는데, 노회찬이 가져간 표가 3%대였다. 물론 이 3%는 진보정당 쪽 고정지지층의 성격이 강했고 진보정당 지지자도 사표방지심리에 한명숙에게 투표한 사람이 있기 때문에 실제 노회찬 지지층은 더 많았을 수도 있다. 당시 노회찬 의원은 '내가 투명인간이냐?'면서 불편한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민주당이 성의있게 단일화 협상을 하지 않았음이 훗날 나꼼수에서 밝혀지는데, 이때 노회찬 의원이 게스트로 출연해 밝힌 바에 의하면 민주당 쪽에서 자신에게 선거기간 동안 전화 한 통 걸지 않았다고 토로하며 물러나려고 해도 물러날 명분조차 안 주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민주당 지지자들도 이 부분에선 반성(?)한다는 모습. 게다가 2년 전 선거 때는 노회찬이 민주당 때문에 패배했다. 당시 노회찬은 노원 병에 출마했는데, 한나라당 홍정욱 후보와의 표차가 2000여 표였던 반면 민주당 후보가 가져간 표만 13000여 표였다. 참고로 이때 민주당 후보는 2년 후 노원구청장에 출마해 당선되었고 그 다음 선거에서도 재선에 성공한 김성환.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이때 서울시장 선거에서 노회찬과 한명숙의 단일화가 되어 오세훈 시장이 떨어졌다면 무상급식 캐삭빵과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도 없었을 것이고, 박원순과 안철수는 정계입문이 늦어지거나 심지어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후 노회찬은 민주노동당과의 합당을 밀고 나가다 결국 부결되면서 심상정, 조승수와 함께 당을 탈당했고, 이후 통합진보당 창당에 참여해 치른 19대 총선에서 당선되어 (서울특별시 노원구 병) 국회의원을 지냈다.



<평가>
정치 인생 내내 노동자와 서민의 입장을 대변하는 성향을 지키고 있으며 대한민국 정치판에 만연해 있는 권위주의나 엘리트주의를 지양하고 대중주의적 정치를 가장 잘 실천하고 있는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같은 정당의 심상정 조승수 등과 더불어 학생 운동 출신이라는 정체성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제도권 정치에 성공적으로 연착륙한 몇 안 되는 정치인이다. 특히 노회찬은 원래 유복한 가정 출신이었는데도 고시나 인맥 등을 통해 입신양명에 치중하지 않고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투신했는데, 환경이 아니라 소신으로 형상한 자신의 정체성을 계속 지키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이런 장점과 더불어 운동권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강성의 이미지 대신 소통력과 친화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서인지 나름 많은 풍파를 겪었음에도 유명세에 비해 비판이 비교적 적은 편. 2016년 메갈 문제로 정의당과 심상정이 한참 비난을 받았을 때에도 노회찬에 대해서는 비교적 우호적인 평가가 많았다. 다만 그에 대한 비판이 적은 것은 기본적으로 주목도가 낮은 소수 정당에서만 활동하였으며 검증압박이 심한 대선이나 광역단체장의 유력후보가 된 적도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과거 이력들이 많이 발굴되지 않은 측면도 있다.[26]

한편 나름 유명 정치인이 되었음에도 주류정당에 편입되지 않고 계속 진보성향의 정당에 몸담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소신과 초심을 잃지 않고 있다고 호평하는 반면 다른 일각에서는 2000년대 이후 민주당 등의 중도성향의 정당과 정치적 지향성 측면에서 별 차이가 없어졌는데도 분파적 성향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성격이나 성향 측면에서 봐도 진보 정당보다는 좀 더 대중적인 정당에 어울린다는 평가가 많다.[27][28] 반면, 노회찬의 높은 범용성과 확장성은 그가 속한 정의당이 외연을 넓힐 수 있는 장점이기도 했다.

진보신당 창당 당시에는 사민주의 우파 성향으로 평가받았다. 다만 이는 사민주의에 비판적이었던 친NL계 민중의소리에서의 평가라 걸러들을 여지가 있다.

언변이 매우 뛰어난 것으로도 유명한데, 같은 정당 소속인 유시민 못지 않게 뛰어난 말솜씨를 자랑한다. 도리어 어떤 경우에는 유시민도 능가하는 언변을 보여주기도 한다. 유시민이 보수 계열 정당의 정치인 중 토론 상대로 가장 좋은 상대로 꼽은 인물이 박형준과 유승민으로 모두 정계 인물 중 뛰어난 토론 실력으로 유명한데, 노회찬은 그 박형준을 상대로 맹공을 퍼부어서 잠시 쩔쩔매게 한 적까지 있다.(...) 그리고 썰전에서 다시 만났다다만 말하는 스타일은 두 사람이 전혀 다른데, 유시민이 뛰어난 논리력과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사안에 대해 분석적인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노회찬은 상황에 맞는 적절한 비유와 풍자를 통해 복잡한 사안을 직관적으로 이해시키는 능력이 탁월하다.노르가즘 이 때문에 김어준 총수는 "홍준표와 토론에서 다이다이(...)를 떠서 상대가 될 만한 정치인은 역대급으로 뽑아도 한 손을 채우지 못하지만, 노회찬 의원은 능히 상대가 될 만하다"고 평했다.[29] 홍준표의 토론 스타일은 논리 대신 강한 어휘로 상대를 찍어누르는 타입이기에 논리로 상대하려다가는 도리어 말려들기 십상이지만, 노회찬 의원의 언변이라면 그것마저 받아치는 게 가능하다고 본 듯. 글쎄 19대 대선 토론보면 딱히 그런거 같지도 않은데 그야 뭐 대선 땐 사람이 맛이 가니까또한 특유의 유머감각과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는 여유가 있어서 일단 그가 방송에 출연하면 민감한 사안에서도 험악하거나 민망한 분위기가 잘 연출되지 않으며 항상 최소한의 재미가 보장된다. 여담으로 노회찬이 100분토론에서 손석희에게 대놓고 노안과 나이 인증을 강제로 당했다.(...) 이런 능력 덕분에 정치인 노회찬은 단순히 진정성이 있는 정치인을 넘어 대중적인 인기도 높아졌다.




<어록>
"한나라당, 민주당 의원님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퇴장하십시오. 이제 저희가 만들어 가겠습니다."
"50년 동안 같은 판에다 삼겹살 구워먹으면 고기가 시꺼매집니다. 판을 갈 때가 왔습니다."
2004년, KBS 심야토론에서.

"우리가 이 정권을 그대로 두면 집이 무너집니다. 대한민국이 망합니다! 우리 국민들이 망가집니다 여러분! 그래서 참고 참았지만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습니다. 2012년 대통령 선거 때까지 저는 도저히 참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이번 6월 2일 지방선거에서 끝장 내야 됩니다! 정권, 서울에서, 부산에서, 인천에서, 경기도에서, 다시 빼앗아 옵시다 여러분! 진보신당이 여기 야당들과 굳게 힘을 합쳐 반드시, 이번 지방선거에서, 이명박 정권 심판하고, 빼앗긴 우리의 권력을 찾아오겠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2010년 서울역광장에서 당시 이명박 대통령을 비난하는 규탄 시위를 하는 중#

"한 달 내로, 지금으로부터 한 달 내로 정봉주 의원 사면복권 안 시키면 바로 그 자리에 이명박 대통령 집어넣겠습니다 여러분! 힘내세요! 우리가 구해냅니다! 감사합니다!"[30]
2011년 12월 이명박 前 대통령에게 직접 고발당한 정봉주가 교도소에 수감되자 정봉주를 사면시킬 것을 요구하며#

정옥임: 야권 연대면 당을 통합하든가 하지 같은 당도 아니면서 왜 하나인 것처럼 행동하죠?
노회찬: '같으면 통합을 해야 하는데 다르기 때문에 연대를 하고 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요, 우리나라랑 일본이랑 사이가 안 좋아도 외계인이 침공하면 힘을 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2012년, SBS 시사토론에서 #

"콜레라균을 이유미가 단독으로 만들었건 합작으로 만들었건 국민의당 분무기로 뿌린 거 아닌가"
"여름에 냉면집 주인이 "나는 대장균에게 속았다, 균이 나를 속였다, 대장균 단독 범행"이라고 얘기하는 격"
국민의당 제보 조작 사건 관련해서 국민의당 지도부가 단독 범행이라고 결론 내렸을 때 했던 말.
"학교 앞에 즐겨다니던 분식집 사장이 구청에 소환되니까 수업을 거부한 것"
고용노동부의 김장겸 체포영장 발부에 반발한 자유한국당이 국회 일정을 보이콧했을 때 했던 말.

"동네에 파출소 생긴다니까 동네에 폭력배들, 우범자들이 싫어하는 거나 똑같은 거죠."
"모기들이 반대한다고 에프킬라 안 삽니까?"
2017년 9월 20일,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공수처 신설안을 반대하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에게.

"그러니까 탄핵당했지. 이 사람아."#
2018년 1월 2일, JTBC의 신년토론회에서 패널로 참석한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에게.#

김성태: 정책 보복하지 마세요. 4대강도 이미 20조를 넘게 쓴 사업인데 지금 와서 그걸 철거하고, 물을 빼는 게 잘하는 일입니까?
노회찬: 네.
김성태: 에?
(청중 웃음)#
2018년 1월 2일, JTBC의 신년토론회에서 패널로 참석한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에게.#

Q. 적폐를 청소하는 것이 정치 보복은 아니다라는 말씀이죠?
A. 그렇죠. 청소할 때는 청소를 해야지 청소하는 게 먼지에 대한 보복이다. 그렇게 얘기하면 됩니까?
JTBC 소셜라이브 인터뷰 中


<기타>
이미지에 걸맞지 않게 의외로 음주운전 전과가 있다. 2001년 4월 6일, 음주운전으로 인해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았다.
출처 나무위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