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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백일장]어느 고요한 밤, 나의 청춘과 젊음은 시들지 않았다.
게시물ID : readers_1451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사업장현황
추천 : 8
조회수 : 530회
댓글수 : 18개
등록시간 : 2014/08/10 23:5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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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서 비롯한 모든 값진 경험이 당신의 삶에 지혜롭게 스며들길. 책 게시판이 더욱 활성화되길 바라며.



기덕은 기울인 대접에 코를 박고 탁주를 들이켰다. 넘어가는 소리가 꼴깍꼴깍 선명하게도 들리는 것을 보아하니 여간 갈증이 돋은 게 아닌 것 같았다. 꿀렁거리며 넘어가는 기덕의 목울대가 신이해 흘깃흘깃 쳐다보았다. 파도처럼 요동치던 목울대가 순간 뚝 멈추었다. 기덕이 잘 들이키다 말고 입에서 대접을 뗀 것이었다. 도중 입가로 비죽 흘러나온 탁주를 소매로 북북 닦은 그는 고개를 낮추더니 옆 사람의 눈치를 살폈다. 산만하게 두리번거린 그는 걸걸한 목소리로 깊게 속삭거렸다.

“형님. 오늘 글쎄, 내가 박 씨한테 물건을 넘기는데 너무 긴장을 해서 그런지 심장이 다 벌렁거리지 뭐요? 왜 또 전만치로 트집 잡을 까봐서. 해서 계속 긴장하면서 물건을 날랐단 말이야. 아니 글쎄, 실수 하지 않고 잘- 넘겼더란 말이지. 이 내가 생각해봤을 때, 긴장을 기똥차게 해서 그런 것 같아. ……그 덕에 오줌을 쪼깨 지렸지만 서도.”

마지막, 오줌을 지렸다는 말에 기덕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연이어 들이킨 탁주 때문인지 오줌을 지린 창피함인지 얼굴이 벌게서 말하는 기덕에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싶었다. 나 같음 쪽팔려서 어디 땅굴이라도 파지 싶다.

“연호형님. 형님두 내가 이상하우? 아니 글쎄, 마누라년이 하도 타박을 놓지 않아. 이 나이에 다 큰 서방 오줌 재린 속옷 빠는 게 창피하다나 뭐라나.”

기덕의 물음에 주인장이 내온 김치전을 죽 찢어 입에 한가득 넣고 말했다.

“하나두 안 이상하다. 하나두. 네 마누라도 참. 그럴 수도 있지 웬 타박이라니.”

에라, 이 병신. 속으로 기덕의 흉을 늘어놓았다. 내가 기덕의 처라 해도 기덕에게 그런 소리를 했으리라. 기덕이 말한 것은 머릿속 끝자락에 올려두고 콧방귀를 뀌어 날려버렸다. 별 들을 가치가 없는 말 같으니. 저 치는 그걸 또 대단한 것 마냥 속살거릴 게 뭐람. 똥오줌 못 가리는 젖먹이처럼 오줌 싼 게 뭔 자랑이라고.

피가 흐를 것 같이 벌게진 기덕의 얼굴을 흘깃 쳐다본 뒤, 앞에 놓인 대접을 들어 입에 털어 넣었다. 많은 이들의 입을 거친 탓인지 군데군데 이가 빠진 대접은 거칠거칠하니 탁주의 맛을 더욱 감질나게 했다. 대접을 텅 소리 나게 탁자에 놓아두고 거하게 게트림을 하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사방이 뻥 뚫리고 지붕만 덜렁 있는 주점에 기웃기웃 붉은 기가 들이치는 것이 보였다. 느릿하게 해가 굴러가는 것을 바라보니 귓바퀴 안쪽에 안사람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박히는 듯했다.

“어이, 오늘은 여까지만 하지. 요 며칠 마누라가 언년이랑 마시고 들어 오냐, 자꾸 타박 주는데. 그 소리 듣기 싫어 나 먼저 궁둥짝 떼야겠네.”

간다는 소리에 기덕은 입맛을 짭짭 다셨다. 아쉬움이 잔뜩 묻어나오는 기덕의 표정을 보니 마누라의 게정대는 것쯤이야 가장으로서 넘길 수 있겠거니 생각이 들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마누라의 타박보다 더 싫은, 내일 쌀값 걱정뿐이라 후닥닥 생각을 접었다. 이내 기덕은 내 단단한 표정을 보았는지 일어서려는 나의 바짓가랑이를 단단히 붙들고 아래로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아이 형님. 왜 그러시나. 그러지 말고 오늘은 내가 낼 테니 좀 더 마시다 가자고. 형님이 언제 술 마실 때 형수 생각하던가. 그저 하루 벌고 하루 마시던 사내가. 으응?”

이놈이 날 주정꾼으로 알아? 눈을 홉뜬 채 기덕을 바라보았다. 허나 꿋꿋하게도 드러나는 기덕의 아쉬움에 결국, 짝 안 맞아 삐뚜름한 의자에 다시 엉덩짝을 붙였다.

“주인장! 여기 탁주 한 사발이랑 탕하나만 내주시오.”

쩌렁쩌렁 울리는 기덕의 소리가 퍽 유쾌해 하는 것 같았다. 기덕과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나누고 탁주를 들이 키다 보니, 어느새 사방에 까만 어둠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러다 정말 집에서 쫓겨나지 싶어 기덕이 붙잡기 전에 얼른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고 일어섰다.

“잘- 먹고 가네.”

벌써 가시느냐 급하게 불러오는 기덕을 무시한 채 주렁주렁 문에 나있는 발을 걷고 밖으로 나섰다. 밖으로 나가보니 캄캄한 것이 내려앉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흐릿하게 떠오른 달빛을 멍하니 바라보니 취기와 함께 흥이 잔뜩 올랐다. 저절로 흔들리는 엉덩이를 더욱 가열 차게 덩실거리며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기억을 더듬어, 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여보오, 서방님 왔다. 서방님. 문 좀 열어보오.”

귀에 거슬리는 삐걱 소리와 함께 허겁지겁 문밖으로 뛰쳐나오는 여인이 보였다.

“서방이고 남방이고! 이 양반이 정신 못 차리고. 여즉 술 마시고 온 게요? 이번엔 또 언년이야! 응?”

야멸차게도 등짝을 후려치는 안사람에게 소리쳤다.

“아니. 남자가 바깥일 하면서 술 한 잔 할 수도 있지. 뭔 여편네가 말이 많아. 많기를.”

매섭게 추궁하는 안사람을 제치고 왜인지 자꾸 꼬이는 발걸음으로 문 안에 발을 들였다. 집에 들어서니 사방이 컴컴한 게 어린것들은 자는 모양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열심히 일하고 들어온 애비 얼굴도 보지 않느냐며 아이들을 깨우고 싶었지만 안 그래도 미움 받는 애비, 속으로 욕할까 그리 하지 못했다.

부슬비 내리듯 흙이 잔뜩 떨어지는 신을 섬돌에 벗어놓고 쪽마루에 올라섰다. 4남매가 몰려 자는 방문을 슬쩍 열어보니 온갖 구린내가 났다. 주에 한번이 아닌 달에 한 번씩 씻기니 보송보송 분내 나야할 아이들에 몸에서는 장정 못지않은 악취가 났다. 그럼에도 빈틈없이 딱 붙어, 드렁드렁 코골며 곤하게도 자는 것이 세상만사 제쳐놓은 듯한 모양새였다. 아직 피지 못한 여린 것들을 보니 코끝이 찡하니 아프게 울렸다. 슬 문을 닫고 안사람이 있을 방으로 들어갔다.

집사람이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팽하니 벽 쪽으로 뒤돌아 누워 있었다.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간질이는 것을 보아하니 필히 요속에서 내 욕을 하고 있으리라. 발끝으로 슬그머니 이불을 들추고 그 안으로 슥 디밀었다.

짝-

“어딜!”

발등을 후려치는 아내의 매정한 행동에 급히 발을 빼었다. 손맛이 얼마나 맵던지 발등이 짜릿짜릿했다.

“아이! 왜 그래!”

제 마음도 모르고 손부터 날리는 아내가 야속했다.

“저 짝으로 가요. 저 짝으로. 아주 꼴 뵈기도 싫어."

빼꼼하게 내민 꾀죄죄한 얼굴을 이불 속으로 다시 집어넣더니 콧방귀를 뀌며 다시 구시렁대기 시작했다. 그 꼴을 보기 싫어 부러 문을 쾅 닫고 밖으로 나왔다. 뭔 놈의 속이 저리 좁데. 까만 밤하늘을 바라보니 달은 더욱 영롱해져있었고 어느새 정신은 또릿해 있었다. 아내가 잠들면 다시 들어갈 심산으로 집 밖으로 나왔다.

‘기덕은 집으로 갔을라나.’

없던 술 생각이 다시 들고 아쉬운 마음에 기덕 같은 존재를, 기억을 더듬거리며 찾기 시작했다. 허나 곧 지금 이 시각에 나올 만한 녀석들은 나와 같이 가정이 있는 녀석들이거니와 혹 나온다고 해도 지금 이 시간에 문을 연 주점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숨을 안 쉬려해도 안 쉴 수 없었다. 언제 이런 신세가 됐는가. 패기 넘쳤던 청춘은 어디 갔는가. 뭣도 없는 것에서 나온 자신감은 어디로 가고 없는 것에 비롯한 걱정만 잔뜩 남았는가. 가슴에 무거운 응어리만 남아 속이 답답했다.    

이를 어찌하여 풀까, 작게 솟아오른 돌덩이에 앉아 생각하던 중 뭉뚝한 것이 등허리를 후려쳤다.


-

2편이 있습니다요. 아직 병신미가 나타나지 않았지요? 제 글을 기억하고 기다려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세월 호를 아직 잊지 않았습니다. 세월호 피해자 분들과 유가족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었으면.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 큰 기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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