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다 힘들던 98년 IMF시절...전 힘든 집안사정과 딱 맞는 나이에 걸터 군대를 가게 되었습니다.
98년 1월...입대하던 102보 연병장의 한귀퉁이에는 아직 제가 흘린 눈물이 남아있을 듯 하네요...
20년 넘게 한 기업만을 운영하시면서 고집만을 키우셨던 아버지...제가 넘어지듯 절을 하자 가뜩이나
막혀있던 눈물보가 심술을 부렸는지 참 많은 눈물을 흘리셨지요. 저도, 여친은 웃으며 가는데 전 울면서
훈련소 내부로 들어갔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여친때문도 그렇지만 아버지의 눈물을 본다는 것이 그리
자연스러운 것 만은 아니었습니다...
제대하고나서도 6년을 넘게 사귄 여친과 헤어지고 아버지의 일은 계속 안풀리고...그때는 제가 대학생의 신분이라는 것이 얼마나 안타깝던지. 물론 이래저래 알바하고 별 짓 다해서 졸업은 무사히 했지요.
하지만 집안사정때문에 4학년 2학기는 거의 포기...2003년 2월에 졸업을 했는데 2002월 9월달에 취업이 되었습니다.
너무나도 기뻤지요. 지금 생각해도 참 즐거운 나날이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세상은 만만치 않아요. 뭐 저보다 나이 많은 분들이 많은 오유니까...그때 당시(물론 지금도 너무나도 힘들지만)에는 정말 제 인생의 목표가 '돈'이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그 와중에...이제 나이 30살인데 회사가 2개나 망해서 또 구직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며칠전에는 나름 오래된, 그리고 이름있는 건축 디자인 회사에 취업이 되었습니다. 너무나도 좋았지요. 부모님께서도 함박웃음을 지으시며 절 반기셨고 저도 기쁨에 마음을 감추지 못해 축배를 들기도 했었지요.
참...그런데요...역시 세상은 만만치 않아요...
저느 대학교를 96년도에 입학했는데 당시 꽤 많은 학생운동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생각없이 행동한 면도 없지않아 있지만, 그렇다고 또 그것을 부끄러워하거나 창피해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역시 세상은 만만치 않아요...
민중가요 노래패에 있었다는 얘기가 회장 귀에 어찌어찌해서 들어갔나봐요. 그래서...합격 발표 후 이틀 뒤에 불합격 통지가 다시 왔네요. 너무나도 황당한 이유와 함께...
민중가요 노래패에 있었던 사람이면 강성 운동권이다...그런 사람이 어떻게 한 회사의 인사담당을 하느냐...그것이 답이었습니다. 전...그냥 웃으며 넘겼습니다...애써 웃으며요...
그리곤 오늘...아니 시간상으론 어제군요^^:;; 또 다른 회사에 합격해서 갔습니다.
제가 속물이라고 욕먹는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전 정말 인생의 목표가 되어버린 '돈'이 필요했습니다. 정말로요...
결혼도 생각해야하고, 부모님을 막내인 제가 모시고 있기에 또 돈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회사에 가서 보니 처음과 얘기가 틀리더군요. 벌써 4년차인데...처음 입사했던 2002년 9월달의 연봉을 제시하면서 그래도 잘해보자라고 하더군요.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연병장에 뿌려졌던 그 뜨거운 눈물은 그나마 그리운 편에 속합니다.
이 눈물은 참...쓰라린 속물과 함께 청순한 가련이 나와 스스로를 무너지게 하더군요...
그래요...오유라는 곳...참 말 많기도하고 기쁘기도 하고 여러가지 사건을 보면서 화도 나고...
그런데...그냥 오늘은 술 한 잔 걸치면서 얘기하고 싶어요.
그냥 끄적이고 싶더군요...
고민방이 있는게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딱 맞는 주제와 딱 맞는 설정같아요. 저의 이 지지리 궁상의 모습또 그나마 이곳에서 희석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전...오늘도 다른 곳을 알아보겠다는 통보 아닌 통보를 아버지와 어머니께 하면서...
속으로 또다른 눈물샘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전 아직 당당하고 싶어요.
아니...전 아직 당당합니다.
이제 겨우 30살. 아직 제 삶의 반정도 밖에 살지 않았네요.
데쓰노트를 못구해서 수명이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지만서도요^^
내일 아침엔...
쓰린 제 속을 달랠 북어국이 아닌 이런 아들을 보면서 아픈 가슴을 달랠 부모님을 위해 미역국을 끓어드릴 생각이에요...
매일이...하루하루가 산모의 고통을 느끼실 부모님께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