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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백일장] Mid night circus
게시물ID : readers_1453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병신평신퓽신
추천 : 6
조회수 : 262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4/08/11 02: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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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어머니와 함께 칠흑같은 어둠이 깔린 한강에 와있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는 알아듣지 못할 말을 계속 중얼거리고 계신다.

미친 소리 그만하고 이리 와서 가만히 좀 있어요! 후욱 후욱 제정신이 아닌것 같다.

내가 꼭 엄마는 행복하게 해줄게. 엄마만큼은 행복하게 웃게 해줄게 사랑해 엄마.. 근데.. 엄마는 어디있어..?

이제 그만.. 떠나자..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어디까지 미친 건지 모를 이 미친 세상에서...
 
 


내가 4살이 되던 해 부유했던 우리 집은 자영업을 하시던 아버지의 회사가 부도나면서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무슨 짓을 해서든 가세를 살려보겠다는 아버지는 이곳저곳 빚만 얻은 채로 결국 시골의 외딴 단칸방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9살이 되어 외할머니 생신잔치에 참석하러 서울로 상경해 외삼촌 댁에 방문했을 때 기묘한 일을 겪었다.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늦은 밤 잠들었던 나는 배가 아파 잠에서 깨어 화장실로 향하였고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던 나에게 찾아온 그 소리는 앞으로 내 삶의 악몽이 되었다.

누군가 맞으면서 우는 소리와 누군가 때리면서 욕하는 고함소리..

너무나도 놀라서 조심스럽게 볼일 보고 나와 소리가 나오고 있는 방문 틈새로 쳐다본 광경에 난 넋을 잃었다.

우는 소리는 너무나도 익숙한 어머니셨고, 때리면서 욕하던 그들은 큰 이모와 작은 이모들이었다.

말아먹은 가세는 외가 쪽에도 손을 뻗치게 만들었고, 그 돈을 받지 못한 이모들은 어머니를 폭행하며 분을 풀고 있던 것이었다.

아버지는 무릎 꿇고 빌고 있고 어머니는 이모들의 벨트와 온갖 잡동사니로 피멍이 들도록 맞고 있을 뿐이었다.

다음 날 아침 고개를 푹 숙인 채 돌아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버지 품에 안겨 울던 어머니를 보며 아무렇지 않은 척 속으로 분을 삭였다. 꼭.. 복수해주리라.

집에 돌아와 시름시름 않던 어머니는 외할머니가 보고 싶다며 홀로 서울로 상경했던 적이 있다. 그 때 아버지는 갓 막노동을 시작할 때였고 나는 동생과 초등학교 다니던 때여서 깊이 신경 쓰지도 못했거니와 깊이 생각할 나이도 아니었기에 밤늦게 들어오는 아버지를 보며 엄마언제와? 하고 물어만 볼뿐이었다.

수 십일이 지나고 집에서 지내던 아버지, 나, 동생은 다시 서울로 상경해야만 했다. 딸 부잣집이던 외가댁에 어머니를 꼭 닮은 막내 쌍둥이 이모가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사인은 홀로 독수공방하며 힘들게 지내다가 생전 모았던 목돈을 어머니께 빌려주고 돌려 받지 못해 술김에 한강에 투신 하신 것.
장례식장에서 본 어머니는 말 그대로 산송장 같았고, 힘들 때 의지하던 쌍둥이 이모가 돌아가시자 큰 충격을 받으신 것 같았다.

3일장을 치른 후 드디어 온가족이 집으로 돌아왔고 평온한 일상이 지속되었다. 아니 평온한 것 같았지만 무언가 집안이 이질적이었다. 그 것은 아무래도 맘고생을 심하게 하신 어머니 때문이었으리라.

우리 집안은 그 후로도 정말 가난하게 생활하며 사채 빚과 그보다도 악독한 이모들이 수시로 찾아와 우릴 감시하며 지옥 같은 나날을 보냈다.
그렇게 또 다시 시간은 걷잡을 수 없이 흘러 내가 27이 되었고, 난 9살 때 받은 충격과 분노로 이모들에게 굉장히 악의적인 감정을 가지고 지내오다가 큰 이모의 위암 말기 판정 소식을 듣게 되었다.

서울에 홀로 학업과 자취를 하며 외가 쪽엔 눈길도 안주던 내가 소식을 묻고 물어 큰이모의 병실 앞에 섰을 때 그 희열감이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꽃병과 반은 비어버린 음료수 박스, 검버섯이 피고 눈 밑이 퀭한 큰 이모를 볼 수 있었다. 너무 즐거웠다.
 

망해버린 우리 집 안을 두 번 죽인, 어머니의 마음을 죽여 버린 악마가 죽어가니 소름 돋을 만큼 신이 나고 즐거웠다.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 후에 빙글빙글 웃으며 큰 이모가 누워있는 침대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이모의 손을 잡은 상태로 웃으며 물었다.

“어때요?”

“뭘 어때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지”

싱긋

“저도.. 기다렸어요.. 오랫동안.. 쭈욱..”

어안이 벙벙해진 얼굴로 날 바라보는 큰 이모

“제가 9살 때 외할머니 생신날 기억안나세요?”

“너무 오래되어 기억이 나질 않아..”

“이모들이 어머니를 때렸잖아요 죽을 만큼”

“너..너...!”

“이모는 지옥 갈거에요. 저희도 지옥에 살았거든요”

“너..설마..니 애미는 어쨋니??”

“어쩌긴요 제가 최대한 행복하게 해드리려 하고 있죠 곧 죽을 당신과는 다르게 오래오래 건강하게.. 행복하게 사실 겁니다.”

이 만남을 끝으로 한달 후 이모는 세상을 떠났다.

정말 악마 같았던 여자가 세상에 사라지자 나는 너무너무 즐거웠다.
 
 

그 후로 나는 내노라하는 대기업에 입사해 탄탄대로를 달리며 다시 집안을 일으켜 세웠다.

친가 쪽은 내 힘닿는 물심양면으로 도왔지만 외가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아들하나 딸 하나 낳고 40대에 접어들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치매증세가 심각하신 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중이었다.

말썽피우는 부하직원과 과로에 피곤해 주말이면 어김없이 집에 널부러져 누워 자던 내게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잠결이라 잘못들었나..? 하하.. 할머니가 할머니가 아니라니..농담도.. 잠깐..? 어머니가 방금 무슨말을 한거야.. 노망이 났나.. 어머니 이름이 ‘인정’이라니..
잠이 확 깨어 어머니께 다가가 물었다.

“에이 엄마도 참 애들한테 엄마이름은 똑바로 가르쳐줘야지 슬아, 도빈아 할머니 성함은 김자 인자 숙자셔 알았지?”
라며 아이들에게 어머니 성함을 가르쳐주는 순간 어머니의 입에서 섬뜩한 소리가 들려온다.

“아니여.. 할미 이름은 말이여.. 김인정 이여.. 인숙이는 접대 할미가 강물에 빠트렸는디 야가 말이여 얼마나 헤엄을 잘 치는가, 물개가 따로 없다니께..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갔다가 팔이 어찌나 빠른지 새가 날개 짓 하는 것만큼 빨랐다니께.. 이쁘게 커서 시집도 이쁘게 갔어, 잘난 남편만나 오순~도순 얼마나 이뻤는가 몰러 이 할미는 고생이란 고생은 다 혔는디 말이여.. 인숙이는 헤엄칠때도 얼마나 이뻣는가 몰러”

-우린 아직 세월호를 잊지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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