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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가는대로 뻘글을 써보았다.
게시물ID : freeboard_179118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헤브리
추천 : 1
조회수 : 13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8/24 22:17:02

먼저 이는 모두 나의 상상에 지나지 않으며 심심풀이로 내 머리속에서 떠오르는 영감에 대해 적은 글임을 밝힌다.



 이 지구를 이루는 생물의 혼은 세가지 종류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식물의 혼인 생혼, 다른 하나는 동물의 혼인 각혼, 그리고 인간의 혼인 영혼. 생혼은 성장과 죽음이 전부. 탄생을 하면 그 자리에서 계속 뻗어나가는 것이 목적이자 언제나 다른 존재들의 양식이 된다. 다만 생혼의 경계는 흐릿해서 영혼과 각혼이 스며들기 쉽다. 이는 오랜시간에 걸쳐 살아남은 나무 주위에 주위의 각혼과 영혼들이 합쳐지거나 인간의 의식 혹은 동물의 유체가 지속적으로 공급되어 스스로 존재감을 드러낼때 선조들은 이것을 가장 처음 신이라고 불렀다.


 각혼은 조금 다르다. 성장과 죽음 사이에 움직임이 끼어들었다. 그들은 이주를 하고 동적이며 활발하다. 미약한 자아의 형성도 깃들었다. 내가 말하는 미약한 자아는 의식, 전의식, 무의식과 프로이트의 심층심리에 기반한 어쩌구 저쩌구 같은 복잡함이 아닌 선호와 비선호와 같은 일차원적 자아이다. 이는 본능과도 직결되어 있는데 그들은 삶과 죽음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다. 생명은 생명이지만 고독사한 노인과 골든 리트리버 한마리가 같은 방안에, 그것도 나가지도 못하고 계속 굶는다면 리트리버는 시체상태인 노인을 먹을 것이다. 이는 리트리버의 본성이 악하다기 보다는 단지 그들은 살아 움직이던 존재를 주인으로 인정했지, 죽은 존재는 단지 고깃덩어리일 뿐이라는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언제나 생존 그 자체에서만 살아간다. 주인을 따라죽은 충견의 이야기는 전설속에 나올 뿐이다. 계기와 우연이 겹쳐서 만들어진 지극히 인간적인 이야기에 불과하다. 반려동물이 인간처럼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인간이 바라보는 동물의 관점에서 인간다운 방식으로 설명하기에 만들어진 하나의 허구에 불과할 뿐이다. 다만 그렇게 단순한 알고리즘을 가진 존재이기에 그들은 영혼이라고 불리어진 이 지구의 시스템을 이해하는 것에 뛰어나다. 그들은 인간이 볼 수 없는 것을 보거나 느낄 수 있고 그에 대해서 강한 친밀감이나 거부감을 드러낸다. 그렇기에 그들은 지구의 시스템에 대하여 충성스럽다. 그들은 멸종의 길에 접한다면 자연스럽게 그 길을 따라 나선다. 그것은 지능의 문제, 혹은 복잡한 자아형성을 이루지 못했다는 이유도 되었겠지만 애초에 그들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오로지 상상이지만 애초에 그들은 자신의 존재가 이 세상에 그리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 아닐까 한다. 그렇기에 각혼들은 죽어서도 동물과 같은 행동을 유지한다. 인식되면 인식되는대로, 시간이 지나 스스로 다시한번 이 순환에 흡수되기 전까지 그들은 움직이고 생존하려 하고 또한 소멸의 길을 걷는다.



 영혼은 조금 다르다. 이는 우리가 설명하기 어렵지만 스스로도 알 것이다. 우리는 동물이라기에는 조금 발전되고, 뛰어난 존재라고 하기에는 그 행동이 너무 미련스럽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도 각혼이었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뱃속에서 형성될때 그리고 스스로 말하기 전인 3살 이전까지 그들은 각혼의 생활을 한다. 아까 말했다시피 선호와 비선호, 그리고 주위의 관계를 이해하고 생각하는데만 온 힘을 쏟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3살 이전의 일들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는 단순히 시간에 흐름에 따라 망각에 빠졌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이 순간의 영혼이 아직 각혼수준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기억을 떠올릴때는 보통 4살 정도이다. 우리는 그때 먼저 시간이라는 것을 배우고 자신이 태어난지 얼마나 지났는가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한다. 이는 인간만의 특성인데 우리는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특성에 '수명'이라는 것을 붙인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노화와 젊음, 병과 건강, 그리고 더 나아가 삶과 죽음을 이해한다. 그러나 그들은 삶과 죽음의 시스템에 저항하기 시작한다.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인간은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며 자신이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인지했기 때문은 아닐까라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닐까라고 난 느낀다. 그러니 4살 무렵의 그들은 처음으로 자신보다 더 나은 존재에 대해 이해하고 또 그들과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그리고 그것은 가장 곁에 있는 부모의 행동이다. 물론 이에 대해 어린 동물들의 새끼들도 부모의 행동을 따라하며 생존을 따라하지 않느냐라는 반론을 할수도 있지만 그것은 엄연히 '생존을 위한 학습'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우리는 생존을 위한 학습뿐만 아니라 부모들의 행동에서 쓸데없는 부분까지 따라한다. 예를 들어 부모가 책을 읽으면 똑같이 책을 읽는다던가, 운전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따라서  핸들대신 옷걸이를 손에 쥐고 운전을 한다고 상상을 한다던가, 가족놀이를 통해서 부모의 집안의 모습들에 대해 모방을 한다던가. 그렇다.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보다 나은 존재를 머릿속에서 상정하고 그 존재의 행동을 '모방'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결국 복잡한 행동을 유발하고 그로인해 우리가 3살 이전에 취했던 행동과 주변관계에 대한 적응들은 모두 무의식이 된다. 그리고 그 이후로부터 나오는 행동들은 전의식과 의식이 혼합된 모습을 보인다. 이로서 복잡한 자아가 형성되는 계기가 된다.



 인간은 10살 무렵부터 다시 한번 전의식과 의식이 나뉘어진다. 전의식과 의식의 차이는 선과 악이 개입되었고 그로인해 촉발되는 행동의 차이에서 설명된다. 이 선과 악은 오로지 인간만의 특성이다. 어느 원시부족은 친지가 죽으면 그를 기억하기 위해 요리하여 서로 나눠먹는것이 '선'이지만 신성시 되는 특정한 과일를 훼손하거나 따서 먹는 것은 금기기에 그것은 '악'이다. 이슬람교가 퍼져있는 중동은 명예라는 것이 굉장히 신성시되어 언제나 코란의 율령에 따라 명예롭게 사는 것이 중요하지만 만약 가족중에 명예를 훼손하는 자가 나오면 그를 살해해서라도 명예를 지켜야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의식속에 선호와 비선호, 더 나아가 혐오와 숭배라는 것을 새롭게 머릿속에 정의내리며 문화를 만들고 사회를 형성시켰다. 즉 사회를 이루기 위한 '법'이 생성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구전으로, 혹은 문자로 남겨 놓고서 새로 유입되는 인간 즉 어린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학습시킨다. 사실 환경에 따라 적응하기위한 사회를 만들 목적으로 생성된 인간의 선과 악이라는 법령이 많은 다양함을 가져도 결국 그 공통점은 '이유없는 혹은 개인적인 이기심으로 저지른 살인'은 인간이 존재하는 사회 어디에서나 중죄다. 왜냐하면 그러한 행동이 결국 사회의 분열과 파괴를 일으키는 법이니까. 따라서 법으로 통해 생성된 자아의 부분이 바로 의식인 것이다. 그러니 의식있는 시민이라는 것이 사회에 잘 적응하는 인간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나 전의식은 다르다. 전의식은 단순히 자기만의 생존과 스스로의 형태를 이루기 위해 무의식으로 가버린 3살 까지의 기억과는 달리 4살 부터 죽을때까지 이루어지는 개인의 특성과도 연관되어 있다. 전의식은 자신이 더욱 발전된 존재, 즉 불완전한 존재에서 더 나은 완전한 존재가 되기위해 행동하는 인간의 특성이다. 전의식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특성은 타인보다 앞선 존재가 되기위한 '지배욕구', 자신이 사랑하는 가치 혹은 친지에 대해 누군가 해를 입히면 똑같이 그것을 되갚아 주어어야 하는 '복수본능', 단순히 성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같이 가정을 이루고 자손을 낳아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자 하는 '단순한 번식행위를 벗어난 번성의 목적' 등등... 그렇다. 이것들은 바로 인간의 '감정'이다. 감정이라는 것은 전의식의 형태이며 인간 개개의 특성이 바로 전의식에서 이루어진다. 이는 인간이 '시간'이라는 것을 인지했을 때부터 생성되어 왔으며 삶과 죽음에 대한 순환을 벗어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이다.



 인간의 문화가 시작되었던 가장 초기에 가장 먼저 전의식을 이룬 인간의 노력은 세상에 또다른 문화를 만들어 냈으니 바로 초기신앙과 신화, 원시예술과도 같은 인간 고유의 영역이다. 이들은 모두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는데 사후활동에 관심을 가진 것이 바로 그 근거다. 이는 비슷한 전의식을 가지고 있는 인간들끼리 모여 공감대를 형성하여 이러한 전의식을 뛰어넘어 하나의 집단을 형성하고 그 안에서 또다시 새로운 전의식을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이렇게 이루어진 집단의 규모가 커지고 자연스레 기술의 발전과 그로인해 파생되는 환경의 변화에 적응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자 더이상 개개의 전의식으로 집단을 유지하기 버겁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로 인간은 사회라는 것을 새롭게 인식했고 집단을 유지하기위해 의식을 만들었다. 즉 의식은 언제나 시간과 환경, 그리고 기술의 발전에 따라 적응하는 인간들의 특성에 따라 새롭게 변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언제나 새로운 변화가 그 근거로 쉽게 이해되는 의식의 영역과는 달리, 전의식의 영역은 설명하거나 사회의 이치로 표현하기 힘들다. 전의식에는 선과 악이 없기에 사회에 통용되는 보편적인 근거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 고로 전의식은 인간들 스스로 이해하지만 보편적인 이유를 찾기 어려운 특성을 지닌다.



그러므로 정리하자면 이렇다


1. 성장과 죽음의 반복 = 생혼


2. 생혼 + 동적인 움직임과 그로 인해  필요한 초기 자아 즉 선호와 비선호 혹은 생존에 필요한 공포인식과도 같은 단순한 본능 =  각혼


3. 각혼 + 시간의 인식으로 인해 더욱 발전화된 존재가 되기 위한 결과로 생성된 전의식과 사회를 이루기 위해 인간 스스로 만든 의식 =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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