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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금주의]죽고 난 후
게시물ID : panic_1454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계피가좋아
추천 : 7
조회수 : 2206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1/04/26 21:37:54
“여...여긴 어디지....?”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는 흰 백지. 정신병자의 방처럼 때 없이 새하얗다. 끝이 어디있는지 모르겠고 내가 어디있는지 모르겠다. 방향감각을 상실한 것이 블랙홀에 있는 기분이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손오공의 머리띠가 씌워진 것 같이 깨질 것 같다. 난 머리를 부여잡고 마지막 기억을 떠올려본다. 얼마전이었다. 난 폐암으로 죽어버렸다. 하늘에 내 영혼이 붕붕 떠있는채 내 싸늘한 시신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주위의 딸들은 내 유산 때문인지 함박 웃음을 짓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소리쳐 주고 싶었다. ‘야, 이 빌어먹을 딸내미들아! 아빠가 죽었는데 좋냐? 어?!; 하지만 목소리는커녕 일반 소리조차 낼 수 없는게 현 상태였다. 마치 우주에 떠있는 듯 중력을 무시한채 공중에 떠있다가 어느 순간, 무언가가 날 빨아들였다. 마치 진공청소기에 빨려가는 먼지 구더기처럼 계속 하늘로 올라갔다. 큼지막했던 병원이 깨알만큼보이고 손톱 태만큼 보였다. 내가 살던 한국은 머리카락 한 조각 같이 조그마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온갖 별들이 내 주위를 스쳐나갔다. 아주 새까맣고 저 멀리 은빛 부스러기가 반짝이고 있었고 이 곳의 추위는 날 얼려버릴만큼 추웠다. 저 멀리 활활 타오르는 오랜지색 둥근 공이 보였다. 그리고 내 눈앞에는 푸른색과 하얀색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지구가 있다. 난 태양계를 뒤로 한채 계속 빨려갔다. 얼마나 갔을까. 추위도 배고픔도 외로움도 절망도 삼켜버린지 오래다. 그저 백지처럼 머리가 새하얗게 변해있을 때, 점점 빨려들어감이 강해졌다. 난 내 눈을 의심했다. 검은색 소용돌이가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악어 마냥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마치 폭포 아래로 떨어지는 조각난 배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정신을 잃고 말았다. 눈을 떠보니 이 모양 이꼴이 되어있다. 주위에는 아무 것도 없고 나 홀로 있다. 깜깜한 어둠 속에 홀로 있는 기분보다 무섭고 외롭다. 소리를 질러보자 모든 곳에서 반사되어 돌아온다. 누가 알았을까? 사후 세상이 이렇게 끔찍한 것일줄은. 여기 온지도 이틀이 지났다. 아니, 지난 것 같다. 시간 감각은 없어진 것 같다. 죄수가 독방에 갇혀진 것 같이 쓸쓸하고 춥고 배고프다. 여기 한복판에 누워있어도 어디가 바닥이고 어디가 하늘인지 모르겠다. 마치 자욱한 안개처럼 불투명하다. 난 수많은 숫자들 중 하나가 된 것처럼 이 곳에 흡수되어버린 것 같다. 생각할 수록 화가 치밀어오른다. 딸이란 놈들이 내 유산 때문에 날 떠받치고 있었다니. 그리고 내가 진작 담배를 끊었더라면....... 이런 생각을 하자 더욱 나가고 싶은 마음이 절실해진다. 난 이유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걷기 시작한다. 뭔가 만질 수 있는게 나오면 좋겠다. 벽이나 한 줌의 먼지라도 좋다. 제발 손에 뭔가 쥐어졌으면 좋겠다. 터벅 터벅....... 내 발소리가 전체에 울려퍼진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끝이 어딘지도 모른채 사막을 걸어다니는 것처럼 걷고 있다. 얼마쯤 걸었을까. 저 멀리 뭔가 보이기 시작한다. 끝이 안보이는 하늘에서 내려온 줄처럼 보인다. 무엇이든 좋으니 난 뜀박질을 시작했다. 제발 저 밧줄이 마지막 희망이라며..... 그리고 밧줄이 눈 앞에 들어왔을 때, 뜀박질을 멈추었다. 왜 내 눈앞에 목을 매다는 밧줄이 있는지 모르겠다. 이걸로 죽으라는 건가? 난 위를 올려다보았다. 내 시야가 안보일 때까지 계속 줄은 이어져있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내 발 앞에는 어느새 의자까지 준비되어있었다. 이대로 죽을까? 아냐, 조금만 더 있으면 가능성이 보일지 몰라. 아니, 난 이미 죽은 상태잖아? 그럼 내가 죽어도 죽은게 아니란 말이지. 그게 함정인거야. 누가 이런 장치를 설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넌 아직 죽지 않았어. 제길, 빌어먹을! 어쩌라고! 소리를 지르고 나자 한결 기분이 나아진 것 같다. 이 꼴보기 싫은 밧줄을 어떻게 할까 생각 중이다. 난 하느님이 원망스러웠다. “자, 어디 한번 죽어봐. 넌 아직 죽지 않았을까, 죽었을까. 이 끔찍한 고통 속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아? 어서, 어서 목을 매달라고. 어서!” 이렇게 소리치는 것 같았다. 난 얼빠진채로 바닥에 주저 앉았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내가 살아있을 때 잘못한 것들. 부모님께 못해준 것들. 첫사랑 이야기. 조금만 더 열심히 살걸.... 모든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오, 하느님. 절 다시 살려주신다면 끝까지 노력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그때, 눈을 감고 있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난 눈을 뜨고 주위를 살폈다. 흰 소복의 사람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지도 않은 것 같았지만 어느새 내 눈 앞에 그 사람은 와있었다. 머리는 노란색이고 흰색 수염을 기른 할아버지. 하지만 굉장히 쇠약해보이는 그런 사람이었다. “정말이냐?” 목소리에서는 굉장히 위엄있는 포스가 뿜어져나왔다. 그 기가 날 압도하는 듯 했다. 난 아무 말도 못한채 눈물만을 흘렸다. 이 순간이 슬로우모션처럼 흘러갔다.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눈에는 어느새 투명한 물이 송글송글 맺혀있었다. 그리고 한방울이 떨어졌다. 내 발바닥에 톡하면서 떨어졌을 때, 어디론가 빨려가는 느낌이었다. 처음 여기로 올 때의 그 기분. 눈을 떠보니 어느새 병실이었다. 흰 가운을 입고 있고 옆에는 심장 박동수가 울려퍼지는 기계가 있었다. 딸들은 내 예상과 다르게 모두 울고 있었다. 간호사의 말을 들어보니 내가 죽을 때, 실신했다고 한다. 딸들이 웃고 있었단 건 죽을 때, 억울하다는 내 마음이 만들어낸 망상이었던걸까? 난 앞으로 남은 시간을. 너무나도 빠르고 무겁게 가는 시간을. 소중하게 쓸 것이다. 출처 웃대 - 좆된몬스터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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