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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의 잠 취향
게시물ID : wedlock_145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름다운비행
추천 : 17
조회수 : 2097회
댓글수 : 48개
등록시간 : 2016/05/03 18:3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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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저희는 지금도 서로 꼭 끌어안고 잡니다.

22년 동안 거의 늘 그랬습니다.

(전에 어떤 댓글에 27년 차라고 잘못 쓴 적 있는, 산수도 못하는 가장입니다..;)

 

물론 싸워서 각 방 써본 적도 있고, 출장이나 따로 여행 등으로 떨어져 잔 적도 있지만, 일상에서는 거의 대부분 꼭 끌어안고 잡니다.

이제는 습관이 되어서 저도 불편한 건 없지만, 아내는 그렇게 자지 않으면 잠을 많이 설쳐요.

사업을 하다 보면 야근도 하고, 새벽에 들어오는 날도 있는데, 새벽 4시에 들어가도 못 자고 있는 걸 보면 많이 미안합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전에는 늦게 들어오면 막 화를 내기도 했어요. 내가 늦게 들어오니까 자기가 잠을 못 잔다고... 

제가 놀다 온 것도 아니고 힘들게 일하다 지쳐 들어 온 건데 그런 말을 들으면 심정이 복잡해 집니다.

 

이런 귀염둥이 같으니’...작작 좀 해라’...가 반반 이랄까요?

 

몇 년 전에 중국 쪽 사업을 막 시작할 무렵에는 출장이 많았는데 아내가 늘 따라왔습니다.

일 때문에 가는 건데 돈이 더 든다고 했더니, 그럼 숙소랑 식사를 자기가 알아서 해결해 보겠다더군요

힘들거라고 해도 혼자 잠 못 자고 고생하는거 보다 훨 낫다며....

그리고 아내는 중국어를 조금 합니다. 어렸을 때 유학을 다녀왔데요. 조금은 도움이 되겠지 라는 생각으로 그러자고는 했는데...

덕분에 정말 별별 군데에서 잠을 자보았고, 별별 음식을 다 먹어봤습니다.

 

기억에 남는 건, 한번은 정말 싸게 민박을 얻었는데 옥탑방이더군요.

겨울이었는데 사방 벽이 그냥 합판이고, 매트리스도 없이 나무로 만든 상자 같은 침대에 얇은 이불 한 장이 잠자리의 전부였어요. 중국은 건물에 난방시설이 안되어 있고, 오로지 온풍기나 열 나오는 전등 같은 것만 있는데... 그나마도 너무 오래된 모델이라 오래 틀면 찬바람이 나옵니다.

 

일단 바람이 그대로 들어오는 창 쪽으로 제가 등을 지고 아내를 이불로 감싼 다음, 팔 다리로 최대한 꼭 감고 자는데. 새벽 3시 쯤부터, 폭죽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처럼 나더군요. 아내의 귀를 양손으로 막고, 결국 저는 한숨도 못 잤습니다. 그때 이후로 종종,

 

너는 좋겠다. 이불이랑 배게랑 난로랑 귀마게가 셋트로 따라다녀서... 라고 합니다.

 

그리고 한번은 홍콩에 출장을 갔었는데, 아내가 싸고 좋은 모텔을 얻었다고 자랑하더군요. 사진도 보여주면서... 마누라가 중국말 하니까 좋지? 이렇게 자랑하고...

 

밤에 홍콩에 도착해서 찾아가보니 그 유명한 구룡맨션 이더군요...

입구서 부터 흑인들, 중동인들 몇 십 명이 쭈욱 앉아있고, 술 마시고 소리도 지르고 저희가 지나가니까 모든 사람이 다 쳐다봅니다. 아내는 금방이라도 울거 같은데...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서 제가 통로 가운데 있는 수위 할아버지한테 저희 방까지 좀 데려다 주면 안되겠냐고 부탁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웃으며 괜찮다고, 너무 걱정 말라면서 엘리베이터가 헷갈릴테니 그거만 알려 주겠다 하시더군요. 방까지 가는 길도 완전 미로이고, 복도에는 카펫 위에서 절하는 사람들, 온갖 아프리카 부족민들 같은 전통 의상 입은 사람도 여럿 있구요. 암튼 간신히 찾아간 저희 방에는 화장실 벽에 핏자국 같은게 있습니다. 물 뿌리고 닦아도 안 지워져서 페인트려니 했지만, 그 모양이 정말 분위기를 잘 살려주더군요. 아내는 그거 보고 결국 울었습니다.

 

침대도 작아서 발이 삐져 나오지만, 문 단단히 잠그고 서로 꼭 끌어안고 잘 잤습니다.

침대 머리 바로 옆 창문에 나무 블라인드와 선풍기 만한 환픙기가 달려있는데, 아침에 해 뜰 무렵이면 정말 중경삼림 분위기가 납니다. 아내는 그 영화를 안 봐서 그게 뭐야? 무서워. 빨리 다른 호텔 가자 했지만, 끝내 5일 동안 묵었습니다. 호텔 갈 돈도 없었구요...

 

아내는 아무리 깊이 잠들어도 제가 들어와서 침대에 누우면, 굴러 와서 꼭 안깁니다.

그때의 기분이 꼭 충전기에 꽂힌 배터리의 기분 같아요. 저도 그래야 집에 온거 같고, 잠잘 준비가 완료된 느낌입니다. 처음에는 좀 귀찮고, 팔도 많이 아프고 했는데....지금은 왼팔이 오른팔 보다 더 굵어졌습니다.

 

일단 우리는 사이즈가 딱 맞습니다.

안으면 제 목 아래 굴곡에 아내의 이마가 쏙 들어와요. 다리를 서로 감을 때 되태골의 위치도 이상적이고, 아내의 가슴이 그리 크지 않고 저는 배가 조금 나와서 몸통이 붙어도 빈틈이 없습니다. 둘 다 잘 때 움직이는 버릇도 없으니 아침까지 그대로 갑니다.

 

사실 아내와 저는 성격도, 취향도 많이 다르고 싸우면 꽤 크게 싸우지만, 잘 때 만큼은 정말 좋아요. 그래서 많은 고비를 넘기기도 했습니다.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고 숙려 기간 중에 따로 각 방을 쓰다가, 이제 마지막인데 하루만 같이 잘까? 했다가 그 다음날 서류를 찢기도 했습니다.

 

서로 둥그러져서 최근 3년 간은 한 번도 싸우지 않았네요.

그 이유 중에 반은 잘 맞는 잠 취향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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