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시는 본래 관직이었으나 환관들에게 내시직을 맡기면서 한국에서는 흔히 내시는 곧 환관으로 통한다.
환관의 역사는 길다. 고대 이집트에도 환관이 있었으니 역사적으로 오래 되었다. 그렇지만 당시의 수술 방법은 단숙하였으니 사망률이 높았다. 가령 소독의 의미로 뜨거운 모래로 덮기도 하엿다. 의외지만 아시아권에서 환관은 생존률이 높았다.
조선의 환관은 일단 명목상으로 양자를 제외하고는 수술을 하지 못하게 되어있으니 사고를 당한 경우만 인정하였다. 더욱이 환관이라고 대우하는건 없었으니 환관을 희망하는자가 없었다고. 그렇지만 사고라는 핑계로 수술을 한 경우도 없진 않은 모양이다. 환관의 양자들만 환관이 될 수 있었는데 다른 국가의 수술과 달리 고환만 절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