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내 인생이 금수저는 아니라도 은수저라도 됬었다면..
게시물ID : gomin_145565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익명b29xb
추천 : 5
조회수 : 401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5/06/14 21:13:28
어린시절 소위 말하는 금수저가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집이 몇평이니 땅이얼마나 있니 관심도 없었을 뿐더러
그놈들의 집에 놀러가면 재밌게 놀수 있었고 부러우면 장난감이나 컴퓨터정도만 부러웠지
우리집도 그렇게 나쁘진 않았고 별생각이 없었기에 나는 차이가 큰줄 몰랐다.
 
고등학교시절 우리집은 막노동을 하시는 아버지의 무리한 사업 실패로 인해
나름 중간은 가던 우리집이 곤두박질쳤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와보니 드라마에서나 보던 빨간색 스티커들이 우리집 곳곳에 붙혀져있었다.
그런데 어렸던건지 멍청했던건지 그 또한 별생각 없이 지냈다.
드라마에서는 빨간색 스티커가 붙으면서 울고불고 난리나면서 이사가는 장면으로 넘어가거나 등등.. 그랬지만
우리집은 그저 스티커만 붙었지 티비볼거 다 보고 먹을 거 다먹고 ..
그저 누가와서 스티커만 붙혀놓고 간줄 만 알았다.
 
그때부터 였던것 같다. 우리집이 기울기 시작한 것이..
머지않아 우리집은 이사를 갔다. 나는 월세 전세 이런것들은 하나도 몰랐고
단지 근처 동네 조금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갔다는 정도밖에 몰랐다.
동네를 벗어나지 않았기에 그저 놀던 친구들과 노는 생각에 세월을 보내는 그런 흔한 애중에 하나였다.
학교를 나가면 애들사이에 자기 부모님의 차가 뭐니, 집이 몇평이니.. 라는 얘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야기에 낄수가 없었다.
 
대학교를 갔다. 나는 공부엔 관심도 없었고 내 미래는 어떻게든 될거야 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등록금을 내라는 기한을 놓쳐 추가 등록기간에 등록할수있었다. 단지 남들 다 가는 대학교 등록금도 재때 내주지 못하는 부모님이 원망스러웠다.
대학교를 갔더니 좋아하는 애도 생겼다. 그 애는 우리과에서 제일 예뻐서 우리 과에 남자애들 사이에서 뒷담화(?) 비슷한 말이 가장 많은
인기있는애였는데, 나랑 집에 타고가는 버스가 같아 자주 같이 갔다. 자연스럽게 친해져서 좋아졌던 것 같다.
고백을 했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나보곤 남자로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저 내가 터프하지 못해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앤 그냥 없던일로 하고 친구처럼 지내자고 했고 그렇게 했다.
 
나는 찌질했다.
학교에서 먹는 학식을 제외하고 대학로로 나가서 식당을 이용하게 되면 당연히 남자가 내야되는 줄 알았다.
없는 형편이였지만 친구들에게 돈 없는 사람 으로 인식 되는게 싫어 부모님께 책값을 핑계로 돈을 많이 받아가
밥을 사곤 했다. 옷은 입던 옷만 입었지만 잘사는 친구들 밥값까지 내던 바보 였고
그런 다음날부터 또 입던 옷만 입고 가진 돈이 없어 피시방가잔 친구들과도 쉽게 어울리지 못하던 찌질이였다.
 
2학기가되고 등록금을 낼수가 없어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나중에 취업하고 나서부터 상환하는 기가막힌 제도가 생겼다고 했다. 
빚을 내고 학교를 다니는 것이지만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던중에 좋아했던애가 내 뒷담화를 하고 다니더라 라는 소리를 들었다. 
옷도 못입고 실실 쪼개고 다니는 바보 같다고 말이다.
 
당분간 알바나해서 돈이나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휴학을 냈다.
피시방, 레스토랑서빙, 공사장, 식료품공장.. 등등 안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을정도로 많이했다.
돈을 벌어보니 돈버는 재미가 들어 그렇게 4년을 보냈다. 중간에 대학으로부터 제적된다는 통보가 왔지만 무시했다.
하지만 내가 쓸수 있는 돈은 없었다. 시급 2800원으로 한달에 80만원을 벌었을때도
시급 6000원에 한달 150을 벌었어도 공장에서 200만원을 벌었어도 나는 20만원만 가지고 나머지는 부모님 손으로 들어갔다.
그것이 당연한줄 알았고 효도 인줄 알았다.
그쯤부터 아버지가 일을 그만두셨고, 어머니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시고 노래방을 운영하셨다.
군대는 어릴때부터 몸이 많이 안좋아서 면제를 받았다.
일을 하면서 주위에 알고지내던 동네 친구들 휴가나오면 챙겨줬다.
번돈으로 불쌍한놈이라고 밥도 사주고 도우미도 불러 재미있게 보냈다.
나중에 나한테 잘하겠지 라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다.
 
여자친구도 중간중간에 한번씩 사겼다. 그렇지만 나는 짝사랑밖에 한번 못해본 바보였기에..
그저 잘해주기만하다가 부담스럽다고 모두 100일쯤에 차였다.
 
내나이 25살. 어느순간 이렇게 살아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은 방한칸에 전세집이지만 다시 대학교가 가고싶어져 공부를 시작했다.
수능을 봤고
전에 다니던 대학보다는 많이 좋은 대학에 오게 되었다. 집에서 등록금을 내주셨다.
목표도 생겼고 없던 꿈도 생겼다. 아침엔 학교를 가고 저녁에는 독서실에서 알바를 했다.
생활비를 스스로 벌고싶어서 그랬지만 그저 용돈 수준이었다.
20살 친구들과 대학을 다니다 보니 나는 구경도 못한 차들과 씀씀이에 놀랐다.
엄청난 허무감,박탈감에 괴로웠다. 나보다 돈이 더 많은것 같았다. 자신감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20살 애들과 어울리는것은 주책이라고 합리화하며 멀어지려 노력했다.
자연스럽게 아싸가 되었고 학교에선 도서관 마치면 독서실 생활이 반복이다.
나라에서 치는 큰 시험을 봤다. 떨어지고.. 2년차가 되었고 여전히 준비중이다.
연애는 하고싶지만 돈도 매일 받는 밥값 1만원, 쳐야될 시험 때문에 꿈도 못꾼다.
내나이만 점점 많아지고있다.
 
책을보다 집중이 안되서 페이스북을 오랜만에 들어갔다.
어릴 적 친구들과 오랜만에 연락도했다. 삼성에 들어갔다, 현대차에 들어갔단다, 결혼을 했단다,
잘살던 친구들은 여전히 잘살며 여유롭고 재미있는 하루 생활을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리더라.
난 뭐하고 있지라는 생각을 수없이했다.
재대로 이뤄논것도 없고 그렇다고 연애를 많이한 것도 아니다.
동네친구들중에 집이 막창집을 하는친구가 있다. 어릴적에는 늘 공부를 못해 꼴등을 계속 하던 친구였는데.
가업을 이어서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친구가 부러워 미칠것같았다.
나는 친구도 멀어지고 남은 친구는 한명뿐.
집은 찢어지게 가난하고,, 공부를 괜히 시작했나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든다.
공부를하고있어도 머리속은 잡생각이 가득하다.
내일은 독서실 알바비 정산 15일.. 집에서 어머니가 살기 힘들다고 독서실월급 35만원을 받으면 달라고한다.
답답하다.
 
오늘은 근 2년동안 입에 대지도 않았던 술.. 오늘 술이 많이 땡긴다. 집에가면서 맥주나 한캔사서 들어가야겠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