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몸에 암 덩어리는 없으니, 환자는 아니겠네요. 국가에 중중환자로 등록 되어 있는 간암 이력이 있었던 그런 사람입니다.
홧병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었습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님의 서거날에 대사관 조문도 갔었었지만, 왜 저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었어야했는지 잘 몰랐습니다.(물론 자살이라고 가정할때 이야깁니다.)
그때가 2009년 이었으니, 3년뒤 저는 극단적인 선택의 이유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렸을때 부터 양보와 조용함이 부모님에게 사랑받는 그런길이었습니다. 가지고 싶은걸 가지고 싶다고 말 할 수 없었고, 하기 싫은것을 싫다고 말하면 안되었었지요. 모두들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꽤 많이 맞았었고 반항은 용납되지 않았었습니다.
그리고 사춘기때 폭발한 여드름. 임창정님의 한창때보다 심한 얼굴, 자고 일어나면 베게에 피가 흥건했죠. IMF때라 병원조차 갈 수 없었고 새벽에 도망치듯 이사나온 그날은 잊을 수가 없네요.
어렸을때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아니, 문제는 있었지만 크게 드러나지 않았죠.
항상 수동적이었으며 여드름 이후로는 자신감또한 바닥이었습니다. 웃으면 비웃는다는 그런 말을 들어서 웃음조차 없어졌죠.
시니컬한 말투와 포커페이스가 되지 않는 그런 싫은 표정 덕에 사람을 사귀는 것 조차 힘들었습니다.
2008년, 뉴질랜드로의 어학연수가 저를 바꿨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제가 사람들의 중심에 있었고, 웃는 모습이 참 좋다는 그 한마디로 인하여 더 많이 웃을 수 있게 되어서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물론, 2년 뒤 저의 자존심으로 인하여 사랑은 끝나버리게 되었지만요.
그 후 6개월정도는 폐인처럼 지냈습니다. 밥은 물론이고 회사에서도 한번도 웃지 않았으니까요.
2012년 호주에서 이상형을 만납니다. B라고 하죠. 처음엔 잘 지냈습니다. 정말 잘 지냈죠. 그런데 여자들의 중심에서 저라는 사람의 소문이 돌았습니다. 나쁜 소문이었고 B도 그 소문을 듣게 됩니다. 2달여의 지방생활이 끝나고 시드니로 같이 돌아갔을때에는 이제 소문의 중심에 들어가게 됩니다. 저와 B는 완전히 쓰레기로 낙인 찍히는 그런 소문이었죠. 매일 변명을 해야 했었고, 진정되는듯 했습니다.
한국 들어와서도 매일만났지요. 소문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주지시켜야 했지만요. 하지만, B가 필리핀으로 갔을때 저와 한번도 이야기를 해 본적 없는 사람이 B에게 제 욕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B와는 다시 보지 못했지요.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었습니다.
2012년 저는 간암판정을 받게 되고, 판정을 내리는 의사 앞에서 그냥 웃었습니다. 암 덩어리도 꽤 컷어요. 전이가 되었으면 3기였겠지만 다행히 그냥 크기만 해서 2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수술 후 꽤 아프더라구요. 배를 짼다는 것....
인터넷에 '암걸리겠다' 라는 표현이 거슬린다는 분이 계신데 저는 '배째라'라는 말이 더 와 닿습니다. 더 아프니까요. '암걸리겠다' 라는 말은 하나도 거슬리지 않아요. 뭐... 정말로 그럴 수 있거든요. 아무리 변명 점점 상황이 악화되어갑니다. 점점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더 커져요. 저는 가만히 있는데 사람들이 점점 더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버려요. 호주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미치지 않고 온게 이상할 정도로 정말 힘들었습니다. 몸무게도 제 기억엔 7~8kg 줄었던걸로 기억합니다.
암 이후에 스트레스받을까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조금 놀고 있습니다. 물론 알아보기는 한데 우리나라 경제 상황은 점점 더 극한으로 치닫네요. 사실 영원히 놀아야 할 까봐 겁이 납니다. 이제 신입으로 들어가기 힘든 나이가 되어버렸네요.
얼마전, 어느 여자로 부터 '자격도 없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게 말이 되냐, 그정도 계산도 안되는 사람이냐' 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 라는 시가 딱 어울리겠네요.
얼마전 베오베에 올라왔었던 그런 사람...
그 사람이 멘탈을 잃어버렸을때 옆에서 들어주고 , 다독여 주고 했었는데, 제정신을 찾고 보니까 제가 맘에 안 들었나 봅니다. 그런데, 뭔가 많이 알고 있으니 물어볼 사람은 필요하니까 연락은 계속 했고... 이제 모든일이 끝나는 타이밍에 끝내 주시네요. 2달여간 심박수가 100아래로 내려간 일이 없습니다. 평소에는 60~80 사이입니다. 그 간 병원에 4주마다 다녔으니 병원 차트에도 잘 기록되어있죠. 2달여간 하루도 빼지 않고 그녀에게 메일을 썼었습니다. 욕을 먹었을때는 욕을 먹으면 안되는 변명을 썼었고, 못본날은 보고 싶다고 썼었지요. 물론 그녀에게 보내진 않았고 다른곳에 모아놨다가, 끝내려고 하는 그 때에 보내줬습니다. 보냈다고 욕먹었네요. 마지막 마음 조차 밟혀 버렸습니다. 과연 진심이란게 통하기는 한 걸까요. 그런데도 아직 그녀가 보고 싶은거 보면 미쳤나 봅니다.
아프기 싫은데, 참 힘이드네요. 오랜만에 온 마음을 다 던진 사람인데.
술을 마시면 안되는데 요 몇주는 아무것도 못하고 술이 없으면 잠을 못잡니다. 아, 암 이전에는 한번도 필름이 끊긴적이 없어요. ... 이젠 생각도 안나고 막 그렇네요.
역시 항상 여기 올라오는 '자존감' 문제겠죠.
잘 모르겠네요. 그냥 길을 잃은 느낌입니다.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이 새벽에 주절주절 주제도 없고, 내용도 없는글 쓰고 갑니다. 긴 글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