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여가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처음에는 장이를 부친처럼 모시다가 결국 두 사람은 문경지교를 맺었다.
진나라가 대량을 함락하고 위나라를 멸망시킬 때 장이는 가족과 함께 외황에서 살고 있었다. 일찌기 고조가 포의의 지사로 있을 때 여러 번 장이를 찾아와 교유하며 어떤 때는 몇 개월을 묵어가곤 했다.
위나라가 망하고 몇년이 지난 뒤에야 진나라는 두 사람이 위나라의 명사라는 사실을 알고
장이에게는 천금을,진여에게는 오백금의 현상금을 걸고 수배했다.
장이와 진여는 성과 이름을 바꾸고 함께 진성(陳城)으로 도망가서 그곳의 문지기가 되어 연명했다.
어느 날 그 고을의 관리가 지나가다 진여가 인사를 하지 않았다고 생트집을 잡더니
진여에게 매질을 하기 시작했다.
진여가 화를 참지 못하고 대들려고 하자 장이가 진여의 발꿈치를 밟아 그냥 매를 맞도록 만류했다.
관리가 떠나간 후에 장이는 즉시 진여를 뽕나무 밑으로 데려가 꾸짖으며 말했다.
"나와 그대가 처음 만났을때 무슨 약속을 했던가?
오늘 같은 조그만 치욕을 참지못하고 한낱 시골의 관리 한놈 죽이고 자신도 탄로나서 죽으려고
하는것인가?"
진여가 장이의 말에 수긍하고 크게 뉘우쳤다.
진나라에서는 조칙으로 두 사람에게 현상금을 걸고 잡으려했으나 두 사람은 오히려 자기들을 찾는다는
방을 붙이고 다닐정도로 문지기라는 자리는 숨어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이때 기 땅에서 봉기한 진섭(진승)이 수만의 군사를 이끌고 진성에 이르렀는데
장이와 진여가 명자를 올려 진섭에게 만날것을 청했다.
평소 장이와 진여가 현명하다는 소문을 듣고 있었던 진섭은 그들을 매우 반갑게 대했다.
그런데 진성의 호걸과 부로들이 진섭에게 초왕이 되어달라고 권하고 부탁하였다
"장군께서는 몸소 갑옷을 입으시고 예리한 병기를 들어 사졸들을 이끌고 포악한 진나라를 정벌했습니다.
또한 초나라의 사직을 다시 세우고 망한 것을 세우고 끊어진 것을 이었음으로
그 공덕은 마땅히 왕이 될 만합니다.
또한 천하의 장군들을 감독하고 군림하려면 왕이 되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모쪼록 장군께서는 초왕의 자리에 오르십시오."
이런말을 들은 진섭은 장의와 진여같은 현명한 인물들이 자기를 초왕으로 추대해주기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진섭이 그들의 의견에 대해 장이와 진여 두 사람에게 물었다.
두 사람이 말했다.
"무릇 진나라가 무도하여 남의 나라를 파괴하고 남의 사직을 무너뜨리고 남의 자손들을 끊었습니다.
또한 백성들을 피폐시키고 그들의 재산을 모두 탕진시켰습니다.
이에 장군께서 눈을 크게 뜨고 크게 담력을 내보여서
ㅡ비록 만번죽어도 구차히 살지는 않겠다ㅡ는 뜻을 세우시고
천하를 위해 포악한 진나라를 멸하려고 하십니다.
이러한때에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하신다면 그것은 천하에 사사로운 마음이 있음을 보이는것이 됩니다.
지금은 때가 아니오니 원컨대 장군께서는 왕이 되는 일을 뒤로 미루시고 급히 군사를 이끌고 서쪽으로
진격하십시오.
동시에 육국에 사신을 보내 그들의 후예를 찾아 다시 세우도록 하십시오.
그리하면 천하는 장군의 세력이 되고 진나라에게 더욱 많은 적이 생기게 됩니다.
진나라에 적이 많이 생기면 진나라의 힘은 분산될것이며, 세력이 불어난 장군의 군사는 강하게 됩니다.
그 때를 이용하여 포악한 진나라를 주멸하여 함양에 거하면서 제후들에게 명령을 내리십시오.
망한 제후들을 다시 세우고 덕으로써 그들을 복종시킨다면 제업은 자연히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지금 조그만 진 땅을 근거로 홀로 왕이 되신다면 천하는 마음이 해이해져 흩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진섭은 두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진땅을 근거로 하여 초왕이 되고 국호를 장초(張楚)라 했다.
진섭이 일어서자 천하의 지사들이 그의 아래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진나라에게 더이상 고통을 당할수 없다는 뜻을 세워서 진나라 군현의 관리들을 살해하고
속속 진섭에게 호응했다.
그 군사의 수는 삽시간에 수십만으로 불었다.
그렇지만 장이.진여의 말대로 자립하고 독립하여 왕이나 후를 자칭하며 독자세력을 키우는사람들도
헤아릴수 없이 많았다.
장이와 진여는 진섭에게 약간 실망한듯 했다.
이들은 진섭에게 약간의 군사를 얻어 독자세력으로 분리해 나갈생각으로 계책을 세워 진섭을 설득했다.
"대왕께서는 서쪽으로 나아가 함곡관을 치는데 힘써야 하기 때문에 하북땅을 칠 여력이 없습니다.
신이 일찌기 조나라에서 유랑한적이 있어서 그곳의 인걸들과 지형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청컨대 제게 군사를 나누어주시면 북쪽의 조나라 땅을 공략하겠습니다."
그래서 진왕은 자신의 친구인 무신을 장군으로 삼고 소소를 호군으로삼고
장이와 진여를 각각 좌우 교위로 삼아 3천의 군사를 주어 북쪽으로 나아가 조나라 땅을 공략하도록 했다.
무신 등이 백마진에서 하수를 건너 조나라 땅의 여러 현을 지나면서 그곳의 호걸들에게 유세했다.
"진나라의 정치가 문란해져 가혹한 형벌로 천하의 백성들을 해쳐오기를 이미 수십 년이 되었다.
북쪽으로는 장성을 축조하는 노역에 동원되었고 남쪽으로는 오령을 수비하느라 나라 안과 밖이
소란스러워져 백성들은 피폐해졌다.
게다가 백성들을 키질 하듯 재물을 거두어 군비에 충당함으로써 백성들은 더 이상 살수 없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가혹한 법에 형벌은 준엄하게 행해져 천하의 백성들은 비록 부자지간일지라도
서로 의심하며 불안하게 살고 있다.
이러한때에 진왕이 분격하여 팔을 걷어붙이고 천하를 위하여 처음으로 부르짖었다.
이에 초나라 왕이 되니 사방 2천리 백성들중 왕의 부르짖음에 호응하지 않는 자가 없다.
집집마다 스스로 분노를 터뜨리고 사람마다 스스로 싸움에 나서 저마다 원한을 갚고
원수를 공격하였으므로
현민들이 그들의 현령과 현승을 살해하고 군민들은 그들의 태수와 교위를 살해했다.
이에 초왕은 초나라의 세력을 크게 일으키고 진성을 왕도로 정한 후에 오광과 주문을 장수로 삼아
백만 대군을 서쪽으로 진격시켜 진나라를 공격하고 있다.
이때에 이르러 제후의 업적을 이룰 수 없는 자는 결코 호걸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여러 호걸들은 시험 삼아 서로 계책을 내어 도모하도록 하라.
무릇 천하가 같은 마음으로 진나라로부터 고통을 당한 바는 오래되었음이라.
천하 백성들의 힘으로 무도한 군주를 공격하여 어버이와 형제들의 원한을 갚고
땅을 나누어 사대부의 업을 이룰 수 있는 이때야 말로 선비나 무사로써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천재일우의
기회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호걸들이 그 말이 옳다고 여겨 길을 떠나 행군에 참가하여 군사가 되었다.
이로써 무신은 수만의 군사를 얻어 스스로를 무신군이라 칭했다.
이에 조나라의 성 10개를 함락시키니 나머지 성들 중 항복하지 않는 성은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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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이 계속해서 군사를 이끌고 동북으로 나아가 범양을 공격했다.
범양사람인 괴통이 범양령에게 말했다.
"가만히 들으니 공께서 장차 돌아가실 것 같아 이렇게 조문을 드리러 왔습니다."
범양령이 괴통을 향해 물었다.
"무어라? 어찌하여 내가 죽는단 말인가?"
"진나라의 법은 매우 엄중합니다. 대감께서는 범양령이 된 이래 10여 년 동안 다른 사람의 부모를 죽이고
다른 사람의 아들을 고아로 만들었으며, 다른 사람의 발을 자르고
다른 사람들의 머리에 글로 묵형을 가하기를 그 수가 헤아릴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그러나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나 부모의 원수를 갚으려는 효자들이 가슴에 비수를 품고도 감히 공의 배를
찌르지 않은것은 진나라의 법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천하에 대란이 일어나 진나라의 법은 통하지 않게 되었으니 자식을 사랑했던 아버지나
부모의 원수를 갚으려는 아들들은 자기의 가슴에 품은 비수로 대감의 배를 찔러 그들의 명성을 드러내려고
혈안이 되어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대감에게 조문을 드리려는 이유입니다.
지금 제후들은 모두 진나라에 반기를 들고 무신군이 거느린 군사들은 이미 이곳에 당도했으나
대감께서는 굳게 범양을 지키고 있는 틈에 성내의 젊은이들은 모두 다투어 대감을 죽여 무신군에게
바치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범양령은 더럭 겁이 났다.
"그럼 내가 어찌해야 살수 있겠소?"
"이제 이 괴통을 만나 목숨을 구할 수 있게 됐으니 경하를 드립니다.
제게 계책이 있으니 저를 무신에게 파견하십시오."
괴통은 자신만만했다.
그래서 괴통이 범양령의 사신이 되어 무신을 찾아갔다.
무신군을 만난 괴통이 말했다.
"장군께서는 성을 공격하여 조나라의 땅을 공략하려고 하나 제가 가만히 살펴보건대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원컨대 장군께서 저의 계책을 들어주신다면 성을 공격하지 않고도 항복시킬 수 있습니다.
격문을 전하여 싸우지 않고도 땅을 공략하면 사방 천리의 땅을 평정할 수 있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오?"
"지금 범양령이 그의 사졸을 정돈하여 범양성을 지키려고 함은 그가 비겁하여 죽음을 겁내고 있으면서도
부귀를 중하게 생각하는 탐욕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하에 앞서 장군에게 항복하려고 하지만 예전에 조나라의 10개 성을 점령할 때에
장군에 의해 주살당한 진나라의 관리들처럼 자신도 살해당하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또 지금 범양의 젊은이들 역시 범양령을 죽이고 그 성을 근거지로 삼아 장군에게 항거하려고 합니다.
장군께서는 저에게 범양후의 인수를 넘겨주어 범양령을 원래의 자리에 둔다는 명령을 내리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한다면 범양령은 즉시 성을 들어 장군에게 바칠 것이며,
범양의 젊은이들 역시 감히 범양령을 살해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에 범양령에게 명하여 주륜화곡을 타고 연나라와 조나라 교외의 땅을 달리게 하십시오.
연과 조 두 나라 관리들은 먼저 항복한 범양령이 죽지 않고 그전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기뻐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연과 조 두 나라의 땅에 있는 성들은 모두 싸우지 않고도 항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격문을 전하여 천리의 땅을 평정하는 계책입니다."
괴통의 계책을 옳게 여겨 그 계책을 따른 무신군은 그에게 범양후의 인장을 주어
범양령에게 전해주도록 했다.
그리하여 조나라 땅에 소문이 퍼져 싸우지 않고 항복한 성이 30개가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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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단에 입성한 장이와 진여는 진승의 휘하장수 주장의 군대가 함곡관을 돌파하여 희수까지 나아갔다가
싸움에서 패하고 퇴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또한 두 사람은 진승을 위해 여러 길을 나누어 성을 함락시키고 땅을 공략한 많은 장수들이
진왕 진승의 측근들 참언을 받아 죄를 얻어 살해되었다는 소식도 함께 들었다.
진왕 진승은 옛날 자기들의 계책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장군으로 삼지 않고
단지 교위의 직책만을 준 것에 원한을 품고 있던 두 사람은 그 기회를 이용하여 무신에게 말했다.
"기현 에서 몸을 일으켜 진땅에 들어가 왕위에 오른 진왕은 틀림없이 육국의 후손들을 찾아
제후로 세우려는 생각을 품고 있지 않습니다.
장군께서는 지금 3천의 군사로 조나라의 땅의 성 수십개를 함락시키고
하북의 광활한 지역에 홀로 주둔하고 있습니다.
장군께서 직접 왕의 자리에 오르는 방법 외는 결코 조나라 지역을 안정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또한 진왕은 측근들이 장군을 모함하는 참언을 믿고 보복을 가한다면
장군께서는 화를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장군을 제거한 진왕은 조왕의 자리에 자신의 형제나 자매를 세우고 결코 조나라 왕실의 후손을
찾아 세우지 않을 것입니다.
장군께서는 결코 이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시간이 매우 촉박합니다."
무신이 두 사람의 말을 듣고 곧바로 조왕의 자리에 오르고 진여는 대장군으로 장이는 우승상에
소소는 좌승상으로 삼았다.
그런 다음 사자를 진왕에게 보내 그 사실을 알리자 진왕이 대로하여 진현에 남아있던 무신 등의 가족들을
모두 살해하고 군대를 내어 조나라를 공격하려고 했다.
진왕의 상국 방군 이 간했다.
"진나라가 아직도 망하지 않았는데도 무신 등의 가족들 살해한다면
이것은 또 다른 진나라를 만드는 일과 같습니다.
차라리 조왕의 자리에 오른 무신을 축하하고 서둘러 그들의 군사를 서쪽으로 보내 진나라를 공격하도록
하시는 편이 좋을듯 합니다."
방군의 말이 옳다고 생각한 진왕은 그의 계책에 따라 무신 등의 가족들을 궁중으로 옮겨 살게 하고
장이의 아들 장오를 성도군에 봉했다.
진왕이 사자를 보내 조왕의 자리에 오른 무신을 축하하고 동시에 군사를 이끌고 서쪽으로 진군하여
관중을 공격하라고 명했다.
장이와 진여가 무신에게 말했다.
"왕께서 조나라의 왕이 된 것은 진왕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특별히 사자를 보내 조왕의 자리에 오른 왕을 축하하는 것은 진왕의 계략입니다.
만일 초나라가 진나라를 멸한다면 그 다음에는 틀림없이 군사들의 방향을 조나라로 돌릴 것입니다.
원컨대 왕께서는 군사를 서쪽으로 보내지 마시고 대신 북쪽으로 돌려 연과 대 땅을 공략하시고
남쪽으로는 하내를 거두어 조나라의 땅을 넓히시기 바랍니다.
남쪽의 하수에 의지하여 북쪽의 연과 대 땅을 아울러 조나라 땅을 영토로 삼는다면
초나라가 비록 진나라와의 싸움에서 이긴다 해도 감히 조나라를 어떻게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조왕이 장이.진여의 계책을 받아들여 군사를 서쪽으로 보내지 않고 한광과 이량을 장수로 삼아
연과 상산의 땅을 각각 공략하도록 했다.
그리고 장염에게는 군사를 이끌고 상당을 공략하라는 명을 내렸다.
이윽고 한광이 연 땅에 당도하자 연나라 사람들이 그를 연왕으로 세웠다.
조왕이 즉시 장이.진여와 함께 북쪽으로 진격하여 연나라와의 경계에 이르렀다.
그때 조왕이 진영 밖으로 나갔다가 연나라 군사들에게 사로잡히는 몸이 되었다.
연나라 장수가 조왕을 가둬 놓고 조나라 땅의 반을 주면 조왕을 풀어주겠다고 했다.
계속해서 조나라의 사자가 연나라 진영으로 갔지만 연나라 진영은 곧바로 사자를 죽이고
조나라 땅만을 요구했다.
이에 장이와 진여가 노심초사 하고 있는데 조나라 군영의 막사 안에서 잡역을 맡아 하고 있는 군졸 한명이
자기 동료들을 향해 말했다.
"내가 장군들을 위해 사자로 가서 연나라 장수를 설득하고 조왕을 모시고 돌아오겠다."
막사 안의 동료들이 듣고 모두 웃으며 말했다.
"연군 진영에 사자로 열 명이 넘게 갔다가 곧바로 모두 살해되었는데 네가 어떻게 능히 조왕을 데리고
올 수 있단 말인가?"
그러자 그사졸이 곧바로 진영밖으로 나아가 연나라 영채의 누벽 앞에 당도한후에 연나라 장수에게 물었다.
"제가 무엇 때문에 왔는지 아십니까?"
연나라 장수가 대답했다.
"조왕의 석방을 위해 온 것이 아니냐?"
"그렇다면 장군께서는 장이와 진여가 어떤 사람인지 아십니까?"
"그들은 현능한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앞으로 무슨 일을 할지 아십니까?"
"그거야 그들의 왕을 구하려고 하지 않겠느냐?"
이에 조나라 사졸이 웃으면서 말했다.
"장군께서는 그 사람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아직 모르고 계십니다.
무릇 무신.장이.진여는 말에 채찍을 휘두르는 것만으로 조나라의 수십 개의 성을 얻었음으로
그들 각각은 모두 남면하여 왕이 되려는 야심을 품고 있는 사람들 입니다.
어찌 그들이 경상의 자리로 만족하여 인생을 끝내려고 하겠습니까?
신하와 군주의 신분은 결코 같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세력이 아직 안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 독립하여 왕이 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래서 조나라의 민심을 잡기 위해 나이가 많고 적음에 따라 먼저 무신이 왕이 된 것입니다.
두 사람은 명분상으로는 조왕을 구하려고 하지만 실제로는 연나라가 조왕을 죽여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조왕이 죽으면 두 사람은 조나라를 나누어 각각 자립할 것입니다.
무릇 연나라는 하나의 조나라도 쉽게 상대하지 못하는데 항차 두 사람의 현능한 왕이 좌우에서 서로
협력하여 자기들의 왕을 죽인 죄를 물어 공격한다면 연나라가 어찌 버틸수 있겠습니까?"
연나라 장수가 그 사졸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여 조왕을 석방했다.
그 사졸은 조왕을 수레에 태우고 조나라 진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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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량이 상산을 평정한 후에 조왕에게 보고하자 조왕은 다시 그를 시켜 태원을 공략하게 했다.
그러나 이량이 이끄는 조군이 석읍에 이르자 진나라 군사가 정형의 관문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앞으로 전진할 수 없었다.
진나라 장수가 이세황제를 사칭하고 사람을 시켜 이량에게 서신을 보냈다.
밀봉하지 않은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이량 그대는 옛날 짐의 총애를 받아 이름을 얻었다.
그대가 능히 초나라를 떠나 진나라로 돌아온다면 짐이 그대의 죄를 용서하고 직위를 높여 주겠노라."
이량이 그 편지를 봤으나 의심하여 믿지 않고
일단 한단으로 돌아가 군사를 더 청하여 정형을 공격하려고 했다.
이량의 행렬이 한단에 미처 당도하기 전에 도중에 우연히 백여 기의 기병을 이끌고오는 한대의 어가를
만났다.
이 어가는 군대의 대오를 가로질러서 지나가게 되었다.
이량이 멀리서 보고 조왕의 행차인 것으로 생각하여길 옆으로 벗어나 땅에 엎드려 절을 올렸다.
어가에는 조왕의 누이가 타고 있었는데 조왕의 누이는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어
그가 장군인줄 모르고 그의 기병에게 시켜 답례하도록 했다.
이량은 예를 행하기는 했으나 그것이 조왕의 누이인것을 알게되자 자기를 수행하던 군관들 보기가
매우 부끄러웠다.
그 군관 중 하나가 말했다.
"천하가 모두 진나라에 반하여 일어나 앞을 다투어 스스로 왕자리를 차지했습니다.
또한 조왕은 원래 장군의 휘하에 있던 사람이었는데 이제 일개 아녀자의 신분인 그의 누이가
장군이 예를 갖추었음에도 수레에 내려 답례도 하지 않고 모욕을 주었습니다.
청컨대 그 뒤를 따라가 죽이시기 바랍니다."
이량이 진나라의 편지를 받았을 때부터 원래 조나라를 배반하려는 마음을 품고 있었으나
주저하고 있던 차에 그 일로 인하여 화가 나서 사람을 보내 조왕의 누이의 뒤를 쫓아가
도중에 죽이고 이어서 그의 군사들을 이끌고 한단성을 기습했다.
이때 아무것도 모르고 한단성 안에 있던 무신과 소소는 결국 이량의 군사들에게 살해되고 말았다.
그러나 장이와 진여의 눈과 귀가 되어 일하고 있었던 많은 조나라 사람들 덕분에
두 사람은 몸을 빼내 탈출할 수 있었다.
장이의 빈객으로 있던 사람이 말했다.
"두 분 장군쎄서는 타향 출신이라 조나라 백성들의 마음을 얻고자 해도 매우 어렵습니다.
조나라 왕족의 후손들을 찾아 세운 후에 의로써 그를 돕는 방법만이 공업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장이와 진여는 조헐이라는 조나라 왕족의 후손을 찾아 조왕으로 세우고 신도를 도읍으로 정했다.
한편 이량은 군사를 이끌고 진격하여 진여를 공격했으나 오히려 진여의 반격을 받아 싸움에서 패하고
도망쳐 진나라의 장수 장한에게 항복했다.
한단에 당도한 장한의 진나라 군사들은 그곳의 백성들을 모두 하내로 이주시키고
한단의 내성과 외곽을 모두 파괴해버렸다.
장이와 조왕 헐은 도망쳐 거록으로 들어가자 진장 왕리가 뒤를 추격하여 포위했다.
진여는 북쪽으로 도망쳐 상산에서 수만 명의 군하를 얻은 후 남하하여 거록의 북쪽에 주둔했다.
이때 장한의 진나라 본대는 거록의 남쪽인 극원에 군영을 세우고 하수 강안을 따라 용도를 건설하고
왕리와 군사들에게 군량을 보급했다.
군량미를 충분히 보급 받은 왕리의 진나라 군사들은 사기가 올라 거록성을 매우 세차게 공격했다.
거록의 성중에는 양식이 떨어지고 군사들의 수효는 적었기 때문에 장이는 사람을 여러 차례 보내
진여에게 구원을 청했다.
수효가 적은 군사들로써는 진나라의 대군을 이길 수 없다고 스스로 생각한 진여는
감히 앞으로 진격하지 못했다.
그런 상태로 몇 개월이 지나자 대로한 장이는 진여를 원망하며 장염과 진택을 시켜
진여에게 자기의 말을 전하게 했다.
"옛날 나와 장군은 문경지교를 맺어 죽음을 같이 하기로 맹세했소.
오늘 조왕과 이 장이의 즉음이 조석지간에 달려 있는데 장군은 수만 명이나 되는 군사들을 끼고 있으면서
우리를 구원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으니 어디에 서로를 위해 목숨을 버리자고 맹세한 의가 있단 말이오?
그래도 장군에게 얼마간의 신의가 남아있다면 어찌하여 진나라 진영으로 달려가 함께 죽으려고 하지 않는
단 말이오?"
진여가 그말을 듣고 말했다.
"내가 이렇게 진격하지 못하고 있는것은 조왕을 구하지도 못하고 헛되이 군사들만 모두 잃지 않을까
생각해서요.
또한 이 진여가 조왕과 장이장군 두 분과 함께 죽지 않으려고 하는것은 두 분을 위해
진나라에 원수를 갚기 위해서요.
오늘 한사코 죽고자 하는 것은 굶주린 호랑이에게 고기를 던져주는 행위와 같으니
우리에게 무슨 이익이 있겠소?"
장염과 진택이 말했다.
"그렇다 해도 일이 이미 급하게 되었으니 죽음을 함께해서 신의를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찌 나중의 일만을 걱정하십니까?"
"내가 비록 목숨만을 버릴 뿐 아무런 실익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대들이 그리 말한다면
당신들의 말을 따르기로 하겠소."
그래서 진여는 휘하의 군사들 중 5천 명을 장염과 진택에게 주어 먼저 진나라 진영으로 돌격하게 했으나
그들 모두는 전멸하여 한 사람도 살아돌아오지 못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그런데 이당시에 항우가 장한이 수비하는 용도를 공격하여 보급로를 여러 번 끊었기 때문에
왕리의 군사들은 군량미가 부족하게 되었다.
그 틈을 이용한 항우가 휘하의 군사를 모두 이끌고 하수를 도하하여 장한의 진나라 군사들을 공격하여
무찔렀다.
장한의 군대는 흩어지고 제후군들은 즉시 거록을 포위하고 있던 진군을 공격했다.
진군의 대장 왕리는 항우의 포로가 되었고 섭간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거록에 포위되었던 조왕과 장이를 장졸들이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항우가 거느린
초나라 군사들의 힘이었다.
거록에서 살아 돌아온 조왕 헐과 장이는 항우와 제후들에게 감사의 말을 올렸다.
이윽고 진여와 서로 만나게 된 장이는 진여가 조왕과 자기를 구원하지 않은 행위에 대해 책망하고
이어서 장염과 진택의 소재를 물었다.
진여가 화를 내며 말했다.
"장염과 진택이 한사코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조왕과 장군을 구해야한다고 나를 책망했기 때문에
나는 그들에게 5천 명의 군사를 주어 먼저 시험 삼아 진군을 공격하도록 했으나 그들은 모두 전멸하여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소."
그러나 장염과 진택을 진여가 죽였다고 생각하여 진여의 말을 믿지 못한 장이는 몇 번이나 반복해서
두 사람에 대해 물었다.
진여가 더욱 화를 내며 말했다.
"장군께서 나에 대한 원망이 이리 깊은 줄은 정말로 몰랐소.
나를 그리도 못믿는다면 나는 이 장군의 인수를 돌려드리리다.
내가 이따위 장군의 직에 미련이 있는줄 아시오?"
진여가 그 즉시 허리에 차고 있던 장군의 인수를 풀어 장이에게 밀어서 주었다.
장이가 놀라 진여를 만류하며 받지 않자 진여는 약간 누그러져서 자리에서 일어나 변소에 갔다.
그때 장이의 빈객 중 한 사람이 말했다.
"제가 듣기에 하늘이 주는 것을 받지 않으면 후에 그것이 화가 된다고 했습니다.
지금 진여장군이 장군의 인수를 장군에게 주었는데 장군께서 받지 않으신다면 그것은 하늘의 뜻을
거역하는 행위가 되어 상서롭지 못합니다.
그러니 어서 장군의 인수를 취하기 바랍니다."
그말을 들은 장이가 장군의 인수를 거두어 자기의 허리에 차고 주위 사람들을 거두었다.
얼마 후에 자리에 돌아온 진여는 장이가 사양하지 않고 장군의 인수를 거두었음을 원망하며
그 자리에서 급히 빠져 나왔다.
진여는 평소에 그와 친했던 수 백 명의 사람들과 함께 하상으로 나아가 호수가에서 고기를 잡으며 지냈다.
이로 인하여 진여와 장이는 서로 틈이 벌이지게 되었다.
조왕 헐은 다시 신도로 가서 머물고 장이는 항우와 제후들을 따라 관중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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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원년.
항우가 제후들을 왕으로 세울 때 장이는 그 전에 이미 세상을 돌아다니며 교우관계를 넓게 가졌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좋은 말로 칭찬했고 항우 역시 평소에 장이의 현명함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항우는 조나라를 나누어 장이를 상산왕으로 봉하고 신도에 도읍 하도록 하는 한편
신도의 이름을 양 으로 개명했다.
진여의 문객이었던 많은 사람들이 항우에게 말했다.
"진여와 장이는 모두 같이 조나라 땅에서 공을 세웠습니다."
진여가 관중으로 들어갈 때 종군하지 않았다고 생각한 항우는 그가 남피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남피 주변의 3개 현에 봉하고 조왕 헐은 대왕(代王)으로 옮기도록 했다.
장이가 제후왕에 봉해지자 진여는 더욱 화를 내며 말했다.
"내가 지금까지 세운 공로는 장이와 똑같다.
그런데 지금 장이는 왕이 되었고 이 진여는 단지 후에 봉해졌다.
이것은 공평하지 못한 처사로 항우또한 용서할수 없다."
때마침 제왕 전영이 항우에 반기를 들 생각을 하고 있다는것을 알게된 진여는 즉시 사자를 제나라로 보내
제왕 전영을 설득하도록 했다.
"항우는 천하의 일을 주재하면서 그 처사가 매우 불공평합니다.
자기가 거느렸던 장군들은 모두 좋은 땅의 왕으로 봉하고 옛날의 왕들은 나쁜 땅으로 옮기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원래의 조왕은 대왕이 되어 북쪽으로 옮겨가게 만들었습니다.
원컨대 저에게 얼마의 군사를 빌려주시면 남피의 땅을 제나라를 지키는 방어벽으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전영은 원래 조나라 땅에 자기의 세력을 심어 초나라에 대항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곧바로 군사를 보내 진여를 돕도록 했다.
진여는 남피 주위의 3개 현의 군사를 모두 이끌고 북으로 진격하여 제일먼저 상산왕 장이를 공격했다.
무방비 상태의 장의는 진여의 군사에게 패하여 달아나고 말았다.
싸움에서 패하여 도망가던 장이는 자기의 몸을 의탁할 말한 제후가 없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한왕과 나는 옛날 친교가 있다고 하나 아직 그 세력이 미약하고
항우는 그 세력이 강해 나를 제후왕으로 세웠으나 믿을수가 없다.
그러나 별수 없으니 나는 항우에게 가야하겠다."
감공이 듣고 말했다.
"한왕이 관중으로 들어갈 때 오행의 별이 동정에 모였습니다.
동정은 진나라의 별자리라 한왕이 먼저 천하를 제패한다는 징조입니다.
지금 초나라의 세력이 비록 강하다고 하지만 후에는 틀림없이 한나라에 속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결국 장이는 한나라로 달아나 한왕에게 몸을 맡겼다.
그때 한왕은 한중에서 나와 삼진을 평정한 후에 마침 폐구에서 장한을 포위하고 있던 중이었다.
한왕은 한나라로 들어와 인사를 올리는 장이를 극진히 대했다.
그때 장이를 패주시킨 진여는 다시 조나라의 땅을 수복하고 대 땅에서 조헐을 모셔와 조왕의 자리에
다시 앉혔다.
조왕은 진여의 덕을 칭송하여 그를 대왕으로 세웠다. 그러나 조왕은 세력이 약할 뿐만 아니라
조나라는 아직 안정이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불안하게 느낀 진여는 자신의 봉국 대 나라나
봉지인 남피에 돌아가지 않고 조 땅에 머무르며 조왕을 도왔다.
한왕 2년.
한왕이 동쪽으로 진격하여 항우의 초나라를 공격할 때 사자를 보내 조나라에게 함께 참전하기를 원했다.
진여가 말했다.
"한왕이 장이를 죽인다면 명을 받들겠다."
그래서 한왕은 장이와 닮은 자를 구해 참수해서 그의 목을 진여에게 보냈다.
진여는 곧바로 군사를 보내 한왕을 돕도록 했다.
한나라 군사들이 팽성의 서쪽에서 싸워 항우에게 패하고 장이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진여는
곧바로 한나라로부터 등을 돌렸다.
한왕 3년.
위나라 땅을 평정한 한신이 장이와 함께 북진하여 정형에서 진여가 이끌던 조나라 군사를 격파했다.
도주하던 진여와 조왕을 추격한 장이는 저수강가에서 진여를 붙잡았다.
"그대는 나를 여러번 죽이려 했지만 나는 그대를 한번 죽인다."
장이는 진여를 참수하고 조왕을 추격하여 양국에서 살해했다.
한고조는 장이를 조왕으로 삼았다.
한고조 5년.
장이가 죽자 경왕 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그의 아들 장오가 조왕의 뒤를 잇게 한 고조는
그의 장녀 노원공주를 장오에게 시집보냈다.
한고조 7년.
고조가 팽성에서 나와 조나라 땅을 지날때 조왕 장오는 아침저녁으로 겉옷을 벗고 구폐를 행하여
자신이 손수 음식을 바치며 지극히 겸손한 자세로 사위로써의 예절을 갖추었다.
그런데도 고조는 두 발을 상위로 쭉 뻗고 장오에게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매우 오만무례하게 대했다.
조나라의 상국 관고 와 조오 등은 모두 나이가 60이 넘은 노인으로 옛날부터 장이의 문객이었다.
평생 의기 하나로 살았던 그들은 고조의 무례한 태도에 노하여 말했다.
"해도 너무한것 아닌가?
아무리 사위라지만 그래도 한 나라의 왕인데 이처럼 신하들 앞에서 모욕을 주어도 되는것인가?"
그래서 그들은 조왕에게 말했다.
"무릇 천하의 호걸들이 함께 몸을 일으켜 능력있는 자가 먼저 제위를 차지했습니다.
오늘 왕께서는 황제를 극진히 받들었음에도 황제는 너무 무례하게 왕을 대했습니다.
청컨대 왕을 위해 황제를 죽이겠습니다."
장오가 듣고 놀라 자기의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보이며 말했다.
"그대들은 어찌하여 그렇게 잘못된 말을 하는 것이오?
더욱이 우리 선조들이 망해 잃은 나라를 황제께서 찾아 주시어 그 덕이 자손들에게 전해지니
우리들의 털끝 하나까지 모두 황제의 덕에 힘입은 바요.
원컨대 여러분들은 두 번 다시 그런 말을 하지 마시오."
조왕 앞에서 물러나온 관고와 조오 등의 10여 인이 모두 모여 상의 하며 말했다.
"우리들의 왕은 어진분이라. 황제의 덕을 차마 저버리지 못할것이오.
그러나 우리의 왕이 욕됨을 받지 않도록 함이 우리들이 지켜야 하는 도리이니
오늘 우리의 왕을 욕보인 황제에게 원한을 품고 그를 죽이려하는것 역시 우리가 해야할 일일뿐이오.
어찌 우리가 우리 왕의 이름을 더럽히려고 하는 일이겠소?
이 일이 성사되면 그 공은 왕에게 돌아가게 되고 실패하면 우리가 스스로 저지른 일로
우리들이 그 책임을 지면 될 일이오."
신하들은 은밀히 고조를 해칠 일을 상의하고 헤어졌다.
이듬해 황제가 동원에서 출발하여 도성으로 돌아가다가 조나라를 지나가게 되었다.
관고 등이 백인현의 관사에 이중벽을 설치하고 그 안에 무사를 숨겼다.
황제가 백인에서 유숙하려고 했으나 갑자기 심장이 뛰고 가슴이 떨려서 측근들에게 물었다.
"이 곳이 어디인가?"
"백인이라고 합니다."
"백은 곧 박(迫)이라. 다른 사람에게 박해를 받는 말과 같다."
황제는 그곳에 묵지않고 백인현을 지나쳐 다른 곳에서 묵었다.
그러나 비밀이 얼마나 오래 가겠는가?
관고에게 원한을 품고 있던 자가 그 모의를 알고 황제에게 일러바쳤다.
그래서 황제는 조왕을 포함하여 관고 등 음모에 가담한 자를 모두 체포했다.
일이 이렇게 되자 그 사건에 연루된 10여 명이 모두 앞을 다투어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하려고 했는데
그때 관고가 홀로 화를 내며 사람들을 꾸짖었다.
"누가 그대들에게 그 일을 시켰는가?
우리의 왕은 실제로 우리들이 꾸민 음모를 알지 못하고 있는데
왕이 우리와 함께 체포되었음에도 그대들이 모두 죽어버린다면 우리 왕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고
누가 밝힐 수 있겠는가?"
그래서 관고는 죽지않고 장오와 함께 함거에 실려 장안으로 압송되었다.
옥리들의 문초는 참으로 지독했다.
그러나 관고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그 일은 우리가 독단적으로 행했을 뿐이지 왕은 전혀 모르는 일이다."
옥리가 관고를 몽둥이로 수천 대를 내리치고 칼로 찌르고 살을 떼어내어 그의 몸이 더이상 성한데가
없게 되었음에도 그는 결코 그의 말을 번복하지 않았다.
조왕장오가 노원공주의 남편임을 감안해서 여후가 고조에게 여러 번에 걸쳐
"조왕은 결코 황제를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미지 않았을 것"이라고 변호했다.
황제가 화를 내며 말했다.
"장오가 천하를 차지하면 그대의 딸과 같은 여자를 거들떠보기나 하겠소?"
고조유방은 결코 장오와 관고를 용서하려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위가 관고를 심문한 내용을 읽어 본 황제는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늙은이가 참으로 장사로다.
관고를 아는 자를 찾아 그에 대해 비밀리에 조사해 보라."
그러자 중대부 설공이 황제에게 말했다.
"관고는 신과 같은고향 출신으로 평소에 그를 잘 알고 지내는 사이입니다.
옛날부터 그는 조나라에서 의로써 이름을 세워 그가 한 번 승낙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는
신의가 있는 사람입니다."
황제는 설공에게 부절을 내주며 관고를 찾아가 직접 물어보도록 했다.
준비한 음식을 대나무 상자에 넣어 가져간 설공이 관고 앞으로 가서 물었다.
그러자 바닥에 누워있던 관고가 설공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설공이 아니오 그대가 이곳에 어쩐일이오?"
설공은 옛날 친하게 지내던 때와 같이 다정한 모습으로 관고의 고생을 위로하며 담화를 나누다가
이윽고 조왕 장오가 과연 그 모의를 꾸몄는지 물었다.
관고가 대답했다.
"정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써 어찌 그들 자신의 부모와 처자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겠소?
오늘 날 나의 삼족이 모두 나로 인해 죄를 받아 멸족할 운명에 처해 있소.
아무리 왕을 아낀다고 육친과 바꿀 수 있겠소?
그것은 실제로 조왕이 반란을 획책하지 않았고 우리가 독단으로 그를 위해 한 일이기 때문이오."
그리고 그는 상세하게 그들이 황제를 살해하려고 했던 원래의 뜻과 조왕은 그 실상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정황을 설명했다.
그래서 설공은 궁궐로 들어가 그가 파악한 자세한 내막을 황제에게 보고했다.
"진정한 의사로다.
관고는 의를 중히여기는 훌륭한 인물이구나.
장오와 관고를 석방하여라."
황제는 결국 조왕과 관고를 사면했다.
황제는 설공을 다시 보내 조왕이 석방되었다는 사실을 관고에게 알리게 했다.
설공이 관고를 찾아가 말했다.
"조왕은 이미 감옥에서 석방되어 자유의 몸이 되었소."
그리고 관고 자신도 함께 사면되었다는 사실을 알렸다.
관고가 듣고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
"우리의 조왕이 사면을 받아 석방되었다는 말이사실이오?"
설공이 틀림없다고 대답하고 황제의 말을 관고에서 전했다.
"황제께서 당신의 신의를 매우 칭송하고 그대에게도 함께 사면령을 내리셨소."
관고가 듣고 말했다.
"내가 당한 고문으로 내 몸에 살이 붙어 있지 않을 정도로 고통을 당하면서도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았음은
조왕이 절대로 모반하지 않았다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였소.
이제 조왕이 무죄가 밝혀져 이미 석방되었으니 나는 책임을 다했으므로 죽어도 아무런 여한이
없게 되었소.
더욱이 신하된 자가 그 황제를 살해하려고 했으니 무슨 면목으로 다시 황제를 받들어 모시겠소?
황제가 법을 무시하고 나를 죽이지 않는다하더라도 내가 어찌 부끄러운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있겠소?"
그리고는 스스로 목을 찔러 이내 숨을 거두었다.
이 일로 인해 관고의 높은 이름이 천하에 알려지게 되었다.
장오는 석방되어 조왕의 자리에는 돌아가지 못했으나 노원공주의 남편인점 때문에 선평후에 봉해졌다.
이때에 장오의 빈객들은 스스로 목에 차꼬를 차고 조왕의 가노로 신분을 속여 장안에 들어와서
죄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황제는 그러한 자들을 모두 의리가 있고 현명하다고 여겼으므로 그들 모두는 제후왕들의 상국이나
군수로 삼았다.
혜제.여후.문제.경제 의 치세기간을 통해 장오의 빈객이었던 후손들은 모두 2천 석의 관직에
오를 수 있었다.
장오는 여후 6년에 죽고 그의 아들 장언은 노(魯)에 봉해졌다.
장언의 어머니가 여후의 딸 노원공주였음으로 노에 봉해진 것이다.
장언의 시호는 원왕이다.
원왕은 유약하고 형제는 나이가 여렸음으로 장오의 다른 첩실 소생의 두 아들이 후에 봉해졌다.
장수는 낙창후. 장치는 신도후에 봉해졌다.
여후가 죽자 무도했던 여려 여씨 종족들이 대신들에 의해 주살될때 노원왕.낙창후.신도후 등은
모두 왕과 후의 작위를 잃었다.
대신들의 추대에 의해 즉위한 문제는 다시 노원왕 장언을 남궁후에 봉하고 장씨들의 제사를 받들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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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열전의 말미에 사마천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장이와 진여는 현자라고 세상에 전해졌다.
그의 빈객들과 심지어는 잡역부에 이르기까지 천하에 호걸이 아닌 자가 없었고
머물렀던 나라에 경상의 자리에 앉지 못한 자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처음에 빈천할 때는 서로 죽음으로 신의를 지켰으나
나중에 그들이 나라를 차지하고 권력을 다투자 결국은 서로 공격하여 멸망하고 말았으니
어째서 처음에는 서로 사모하기를 지성으로 하더니 나중에는 서로 배신하기를 그리 심하게 했는가?
그들은 결국 권세와 이익으로써 서로 교제했음이 아니었는가?
명예가 비록 높고 찾아오는 문객들이 비록 성시를 이루었을지라도
그들이 걸었던 길은 아마도 오나라의 태백 이나 연릉계자 가 행한 의와는 사뭇다르다고 하겠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진승은 혹독한 진나라의 노역에 반기를 들고 가장 처음으로 몸을 일으켜 천하에 균열을 일으켰다.
"왕후장상이 영유종호?(王侯將相 寧有種乎) 라 외치고 스스로 왕이 되었으니
그기상이 참으로 대단했다 할수있다.
무릇 여러사람이 시작한 후에 일을 하는것은 쉬우나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는것이
어찌 쉬운일이겠는가?
그러나 그러한 진승은 결국 자신의 부하에게 배신을 당해 왕이된지 약 반년만에 죽고 말았다.
천하에 뜻을 품었다가 작은 이익에 현혹되어 성공하지 못하고 죽었으나 그의 이름은
수천년이 지난 후에도 민중봉기의 시발점으로 거론되고 있다.
진승은 사마천의 세가편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으나 이 사기열전이 끝난후에 세가편까지 연재할수
있을지는 필자 스스로도 알지 못하기때문에 여기에서 그 이름만 언급해두기로 한다.
장이와 진여는 위나라의 명사로서 망해버린 나라의 유민으로 숨어지낼때에 서로 문경지교의 의를 맺었다.
그러나 사마천의 말대로 권세와 명예가 생기자 서로간에 사이가 벌어져서 나중에는 원수지간이
되고 말았다.
다시 한번 되새겨보지만 춘추시대의 관포지교와 염파.인상여의 문경지교와 비교한다면
이 두사람의 우정이란것은 그저 치기어린 시정잡배의 한때의 교분이라고밖에는 할수 없을듯하다.
사람이 의리로서 우정을 맺는것은 어려운 시기를 당해보고 서로 성공했을때를 겪어봐야만
그 진심을 알수있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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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의 빈객이었던 관고는 60이 넘은 나이에도 그 의기가 자못 높아서 자신의 죽을때를 알았다.
남들이 죄수로 끌려가 고문을 받고 치욕을 당하는것을 두려워하여 모두 자결하려 했을때
관고는 오히려 그들을 꾸짖고 스스로 목숨을 부지하여 혹독한 고문과 매질을 감내했다.
그러나 황제가 그를 용서하고 죄를 사면한후에는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다했다하여
오히려 스스로 죽고말았으니 이러한 충신이 있었으므로 그 덕으로 장씨의 세가가 후대에까지
이어졌으리라는 생각을 해볼수 있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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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우리 정치계에는 새정치와 거대야당을 하나로 합하는 커다란 정계개편이 벌어지고 있다.
이 두 세력의 만남이 과연 관포지교나 염.인 의 문경지교처럼 신의로 융합될것인지.
아니면 장이.진여의 친교처럼 권세와 명예가 생기면 서로 자기의 이익만을 챙겨
서로 원수지간이 될것인지는 두고 봐야만 할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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