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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악가 조수미의 위상.
게시물ID : humordata_177153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숙취엔농약
추천 : 24
조회수 : 4237회
댓글수 : 34개
등록시간 : 2018/09/14 13:3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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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ㄷㄷ
출처 http://m.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39124534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2018-09-14 13:41:41추천 44
이분도 나이를 안드시네.
2002년에도 저 얼굴이었던거 같은데
댓글 3개 ▲
[본인삭제]펑키베베
2018-09-15 02:53:26추천 2
2018-09-15 07:20:46추천 0
보아라♬ 지금여기에
2018-09-15 08:41:22추천 1
너와 나 지금 여기에
2018-09-14 14:02:08추천 8
진짜 ㄷㄷㄷ 이네요
댓글 0개 ▲
2018-09-14 14:03:00추천 11
유전의 위대함.  우월한 목소리의 가문인듯.
댓글 0개 ▲
베스트 게시판으로 복사되었습니다!!!
2018-09-14 15:15:58추천 6
옛날에는 분명 키메라가 짱이었던것 같은데?
댓글 0개 ▲
2018-09-14 15:30:25추천 288
[부연설명]

조수미

1962년생. 대한민국의 리릭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한국 성악의 아이콘, 신이 내린 목소리.
서울대 성악과 수석입학. 이후 이탈리아로 유학하여 산타 체칠리아 국립 음악원(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학교 중 하나. 조수미 말고 엔니오 모리코네, 체칠리아 바르톨리 등을 배출) 5년제 학교를 2년만에 조기졸업함. 이후 다 적지 못할 만큼 많은 상을 휩씀. 수많은 콩쿨 수상을 비롯, 황금기러기상 (이탈리아 최고 소프라노에게만 수여), 국제 푸치니상(이탈리아인이 아닌 사람으로 세계 최초 수상)  그밖에 수많은 공연과 음반활동을 해 왔으며(솔직히 다 적는게 죄송스러울 정도), 사회활동도 열심임

원래 이름은 조수경이었으나 외국인들이 이름을 잘 발음 못해서 '수미'로 개명했음.(영문 이름을 만들지 않고 한글 이름을 만들었음) 글 배우기 전부터 피아노를 칠 수 있었다고 하며, 원래는 피아노를 전공하려고 했으나,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선화예중 유병무 선생님이 만명에 한명 있을 목소리라고 적극 권해서 성악으로 전공을 바꿈. 피아노와 관련된 일화 중에 서울대 입시 실기시험을 보러갔을 때 연주자가 오지 않아 시험감독관 교수가 반주자를 찾자 자기가 하겠다고 나서서 60명의 반주를 다 해주고 마지막 자기 차례에 스스로 반주치면서 노래부르자 교수들이 실력에 뻑가서 학과 개설 사상 최고 실기점수로 입학함.

사실 조수미의 집안은 그렇게 넉넉한 집안은 아니었음. 피아노를 배울 때도 셋방살이하던 부모가 피아노는 사줘서 연습할 수 있었으며, 유학을 비행기값이 없어서 못갈 뻘한 적도 있었음. 유학 가서도 식사를 제대로 챙겨먹지 못해서 어디 초대받은데 가서 음식 왕창 먹고 남는건 싸가지고 와서 먹기 일수였음. 그러다가 심각한 빈혈로 쓰러진 적도 있었다고 함. 집도 성악연습을 할 수 있는 집을 찾지 위해 1년에 몇차례씩 이사를 다녀야 했으며, 집에서부터 학교까지 한시간이 넘는 거리를 지옥같은 이탈리아의 교통을 헤치고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고 나면 뻗기 일쑤였다고 함.

또한 유학생활중 인종차별도 알게 모르게 많이 받았다고 함. 조수미가 유학을 했던 1980년대는 한국이라는 나라를 아예 모르는 서양인이 부지기수였고 비행기 탈 때마다 여권 체크에 걸리기 일쑤였으며, 오패라 배역을 받을 때도 '금발머리의 유럽형 외모가 낫지' 라며 불이익을 받은 경우가 많았다고 함. 조수미는 이 때 '한국이 빨리 유명해져야겠다' 라고 생각을 했는데, 이후 자신이 유명해 진 이후에도 한국에서 국제적인 행사가 있으면 가능한 한 참석하려고 했다고 함. 그러다 보니 2002 한일월드컵이나 여수엑스포, 평창동계올림픽 홍보대사 같은 것도 흔쾌히 맡아주었으며,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당시에도 성모대축일 미사 전 환영행사에서의 공연과 교황집전미사중 성가를 부르기도 함 (조수미는 원래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영예로운 일이었을 것임)

세계 클래식계에서 조수미의 위상은 어마어마함. 동양인 최초로 국제 콩쿠르 6개를 석권했고, 세계 5대 오페라 극장에서 주연으로 공연한 동양인 최초의 프리마돈나 기록도 가지고 있음. 위에서 언급한 카라얀이 "그녀의 목소리는 신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다" 라는 찬사부터 비롯해서(이후에 '그녀의 목소리는 자신 뿐만 아니라 인류의 자산이다'라는 말도 했음) 플라시도 도밍고는 "조수미가 최고 역량의 소프라노라는데 나는 주저하지 않는다." 라고 평가했었음. 그밖에 "그녀의 음악 세게에는 영혼이 깃들여 있다.", "그녀의 목소리는 더이상 비평을 넘어섰다."라는 이야기도 들었음.

그녀의 위상에 대한 일화 중에 IMF시절 주불 한국대사가 프랑스 대기업 총수들을 모아서 지원을 호소하려고 했는데 어려움을 겪자 조수미에게 SOS를 쳤다고 함. 이후 주불 한국대사가 '조수미의 독창회가 곁들인 저녁 식사'를 한다고 하자 그렇게 모으기 어려웠던 대기업 총수들이 부부동반으로 참석했다는 일화도 있음.

앙드레 김과의 일화도 있음. 앙드레 김이 어느날 조수미의 공연을 보고 '드레스가 너무 형편없다'라며 (위에서 언급했듯 조수미는 경제적으로 어려웠어서 한벌에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드레스를 구하기 어려워서 시장에서 원단을 끊어 연주회용 의상을 직접 만들어 입었다고 함) 조수미에게 직접 연락해서 드레스를 지원해 주기로 함. 그 이후 20여년간 200벌이 넘는 드레스를 지원해 줬음. 그런 인연 때문에 앙드레김이 사망하자 당시 해외에 있던 조수미는 자기 모든 스케줄을 스톱시키고 한국으로 돌아와 고인의 빈소를 계속 지켰다고 함. 조수미는 나중에 한국 디자이너의 한국미가 넘치는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공연하는 것이 늘 자랑스러웠으며, 공연 끝난 후 드레스가 너무 예쁘다고 어느 디자이너 작품이냐고 사람들이 물어봤을 때 정말 뿌듯했다고 함.

또한 조수미는 엄청난 축덕으로도 유명함. AS로마의 광팬이고 토티의 팬으로도 유명함. 유로 대회때는 이탈리아를 응원한다고 하기도 함. 유로 2012때  선발로 나온 발로텔리가 부진하자 '나같으면 디 나탈레를 투입하겠다' 고 트윗을 올렸는데, 이후 교체투입된 디 나탈레가 귀신같이 선제골을 넣어서 "축잘알" 이라는 찬사도 들었음. 2002 월드컵때 월드컵 응원가인 "Champions"를 발표해서 큰 인기를 끌기도 했음.
댓글 11개 ▲
2018-09-14 15:35:45추천 38
아.. 연애 얘기 빼먹었다. 근데 고치기 귀찮다.
2018-09-14 15:48:33추천 31
정성글엔 추천을
[본인삭제]김끄리
2018-09-14 15:50:32추천 9
2018-09-14 16:24:43추천 23
와우 이런 황금댓글은 추천 쾅
2018-09-14 16:26:24추천 56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인가?? 조수미님이 쓰신 책이 있는데 재미있어요. 강아지 재키 이야기도 첫사랑 이야기도 나오고
콩쿨 전에 조수미가 긴장하면 엄마가 잘할거라고 꿈을 너무 좋은 꿈 꿨다고 항상 이야기해줘서 자신감 만땅으로 콩쿨 나갔다고
유학이야기도 재미있고 모든 게 다 너무 다정하고 뿌듯한 이야기임
2018-09-14 16:32:08추천 31
와.. 진로바꾸라고 해주신 유병무 선생님도 레전드시네...
2018-09-14 16:46:58추천 81
조수미 연애 썰 -나무위키 펌-

서울대 음대 성악과 역대 최고의 점수로 수석 합격했다. 81학번. 그러나 대학교 2학년 때 같은 학교 경영학과에 재학중이던 동갑내기 남학생 K군과 열애에 빠지면서 조수미의 학업 생활은 모범생에서 날라리로 180도 달라졌다. 당시 K군에게는 이미 여자친구가 있었고, 조수미도 그 사실을 알았지만, 조수미는 K군에게 나인지 그 여자친구인지 담판을 지으라고 과감하게 대시했고, 결국 K군은 자신의 여친과 헤어지고 조수미와 사귀었다. 그 후 다방, 영화관, 디스코클럽, 여행 등 어느 곳에서든 1년 24시간 내내 K군과 함께 하면서 수업은 물론 시험까지 펑크 내는 바람에 학점은 선동열 방어율로 (...), 석차는 1등에서 꼴찌로 전락하고 말았다.

당시 이 정도로 깊은 사이였다면 K군과 동거 생활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질문을 받았을 때, 조수미는 "상상에 맡기겠다"며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조수미의 설명에 따르면, 당시에는 K군이 원한다면 성악가의 길도 포기할 수 있었을 정도로 오로지 K군과의 결혼에만 마음이 전부 가 있었고, 심지어 K군과 함께 태어날 아기 이름까지도 미리 지었을 정도였다니 말 다했다. 게다가 당시에는 전두환 정권의 학생통제정책 일환으로 대학 입학정원을 늘린 뒤 성적에 따라서 졸업정원을 조정하는 졸업정원제가 시행 중이었기 때문에 꼴찌를 계속하다 보면 대학을 졸업하기도 힘든 상황이 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행인지 결국 졸업정원제는 FM대로 실시되지 않았다. (...)

조수미의 재능을 아까워하던 교수들과 조수미의 부모님은 결국 합심하여 조수미를 서울대에서 중퇴시킨 후, 이탈리아 로마의 명문 음악학교인 산타 체칠리아(Accademia Nazionale di Santa Cecilia) 음악원에 강제로 유학을 보냈다. 조수미의 어머니는 이때를 회고하기를, K군이 인물도 집안 배경도 흠 잡을 데 없는 괜찮은 인물이었는데, K군과 열애하면서 조수미가 음악을 놓았다는 것에 K군과의 결혼을 반대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유학 후 몇 달 되지 않아 조수미는 편지를 통해 K군으로부터 이별을 통보받았는데, 주변을 통해 알아보니 조수미의 같은 과 단짝친구가 K군과 눈이 맞았다고 한다. 그 뒤 다시는 남자를 만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이 악물고 독하게 매달려 5년 과정을 2년 만에 마치고 졸업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조수미의 옛 연인이었던 K씨는 1987년 결혼한 뒤 미국 유학을 떠나 MBA를 받고 1996년에 귀국하여 미국의 모 컨설팅 회사의 서울 지점 파트너로 재직하게 되었다고 한다. 조수미가 외국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가 높아진 성악가가 된 후에 조수미의 공연장에 말 없이 관람하고 가기도 했다고 조수미가 언급하기도 했다. 무릎팍도사에서 강호동이 장난으로 K군과 전화연결을 마련했다고 하니 조수미는 정말로 당황스러움 반 설렘 반으로 가득 찬 반응을 보였다. 이에 강호동이 놀려대자 '내가 왜 결혼을 지금까지 안 하고 있었겠냐' 며 진담 반 농담 반의 의미심장한 멘트로 받아치기까지 했다.

아직 미혼이기도 하고 바쁜 스케줄 탓에 제대로 된 연애를 하기 어려운 조수미의 생활 환경상 자신의 첫사랑인 K군에 대한 마음을 아직까지도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조수미는 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기에 외국인과도 충분히 연애가 가능한 환경에 있지만, 개인적으로 배우자 상대는 반드시 한국인을 원한다고 한다. 이는 K군과의 첫사랑의 추억이 너무나 강렬해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조수미가 언급하기도 했다.
2018-09-14 17:12:39추천 46
와... 뭔 사랑이야기만 놓고도 영화만들겠네요
2018-09-14 17:31:41추천 1
한일월드컵 때 노래 진짜.. 조수미 노래로 했으면 두고두고 전 세계가 감탄했을 텐데
2018-09-14 18:37:32추천 2
방송에서 그분이랑 한번 만난적이 있어요
근데 첫사랑이란 추억속에서 미화되고 보정되어서(도깨비 은탁이가 그랬음) 실제로 그 사람보면
실망할 거라고 했는데 조수미님은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표정응 환했어요..
2018-09-14 23:36:33추천 0
하나하나 다 읽게 되네요 연애썰까지 ㅋㅋㅋ 대단한 분인건 알고 있었으나 제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분이셨네요..
2018-09-14 15:46:42추천 7
10여년전 공연 봤었죠.. 흐뭇
댓글 0개 ▲
2018-09-14 15:57:58추천 16
우리가 생각하는 정도 보다 더 세계적으로 유명하신 분
댓글 0개 ▲
2018-09-14 16:00:46추천 20
저도 대학때 학교에서 공연하시는거 봤어요. 열린음악회 그런거였는데 특별히 오심.
본인이 대학때 사랑에 빠졌는데 남자 집에서 딴따라라고 반대(서울대 성악과)
그뒤로 여러 서울대생이 조수미를 두고 결투를 벌여서 졸업도 못하고 유학을 갔다는 전설도 있습니다.
댓글 0개 ▲
베오베 게시판으로 복사되었습니다!!!
[본인삭제]느슨한활시위
2018-09-14 16:45:14추천 0
댓글 0개 ▲
2018-09-14 16:46:04추천 26
영화 ' Youth '를 보고 조수미가 해외에서 얼마나 유명한지 알 수 있었어요.
Youth 강추합니다.
댓글 1개 ▲
2018-09-14 17:35:36추천 0
마지막에 솔직히 진짜 나올까... 란 생각으로 봤던..
2018-09-14 17:03:29추천 13
2000년에 유럽에  배낭여행갔을때  레코드가게에  조수미  앨범을  전시해놓고  파는거  보고  이정도로  유명하구나  생각이  들었죠.  우리나라 가수들 앨범은  하나도  안보였는데, 신기했죠.
댓글 0개 ▲
2018-09-14 17:43:13추천 75
돈도 제대로 안받고 사실상 재능기부 수준임에도 국내행사를 자주 하시죠.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에 조수미가 안나와서 다들 의외라고 생각했는데 패럴림픽에서 공연을 하셨죠. 알고보니 소외받는 자들을 위로할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했기에 일부러 올림픽대신 패럴림픽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댓글 0개 ▲
[본인삭제]제목학원운전
2018-09-14 17:54:07추천 0
댓글 0개 ▲
2018-09-14 18:18:58추천 38
사실상 자국민이 더 체감을 못하는 엄청난 월클. 안타까운건 아직도 동양인의 한계 어쩌니 하는 얘기나 나옴.. 그냥 동양인 비하 그 자체에서
오는 왕따같은 거. 이제 저런 개소리는 안나오고도 남아야 할 분인데 씁쓸..
댓글 0개 ▲
2018-09-14 18:53:39추천 49
정말 존경하고 사랑하는 조수미..ㅠㅠㅠㅠ 다른 분들이 좋은 글 많이 올리셨으니 제가 좋아하는 조수미 곡 하나 링크해 보겠습니다.
한+아르헨티나 수교기념으로 공연하셨던 <인형의 노래>
https://www.youtube.com/watch?v=U8iOAfqynVw
노래 수준은 말할 것도 없지만 관객반응도 좋고 오케 지휘자나 단원들 얼굴이 뿅간 모습이 재밌어서 자꾸 보게돼요.(특히 플룻)ㅎㅎ
댓글 1개 ▲
2018-09-15 13:44:51추천 1
와..꼭 보세요
Jaz
2018-09-14 19:03:26추천 0
카라얀은 2차세계대전당시 독일스름...
댓글 2개 ▲
2018-09-14 21:29:36추천 0
프란체스코 교황도 유겐트 소속됐었음
그당시엔 나치에 반대하면 숙청당했음
2018-09-14 22:28:21추천 6
조수미 본인이 유겐트가 아니라면 이 글에 언급할 필요는 없을듯유..
2018-09-14 22:25:36추천 12
오십 넘은 아재인데 2년전 조수미 콘서트 처음 가서 노래 듣고 울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눈물이 줄줄....
댓글 0개 ▲
2018-09-15 13:42:56추천 1
조수미
강수진
김연아

진정한 월드클래스
댓글 0개 ▲
2018-09-15 18:04:48추천 6
조수미님이 일기장에 기록한 5가지 결심
1. 어떤 고난이 닥쳐도 꿋꿋이 이겨내며 약해지거나 울지 않을 것
2. 절대 약하거나 외로운 모습을 보이지 않으며 늘 도도하고 자신만만할 것
3. 어학과 노래에 온통 치중할 것
4. 항상 깨끗하고 자신에게 만족한 몸가짐과 환경을 지닐 것
5. 말과 사람들을 조심하고 말과 행동을 분명히 할 것

- 1983년 서울대 음대를 다니다 이탈리아로 유학 떠나며 적기 시작한 일기장의 첫 장에
댓글 0개 ▲
2018-09-16 11:14:35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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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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