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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해부
게시물ID : phil_1458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붕대인간
추천 : 0
조회수 : 359회
댓글수 : 15개
등록시간 : 2016/09/22 00:48:45

사랑이란 개념의 삼위일체는 1무조건 2박애 3줌 이다.

1어떤 조건과 이유없이 사랑하고,

2모든 존재(존재하는 것)와 비존재(존재했던 것, 존재할 것)까지 사랑하며,

3바라지 않고 내가 가진 것을 끼어이 베푸는 것.


이런 사랑의 모습은 신약성경의 예수의 행보에서 볼 수 있고,

이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부처의 고,무아,무상을 깨닫는 것이다.


 세계의 근본과 실체인 고. 포만감 보다 배고픔이 먼저 있듯, 행복에 앞서 고통이 있다는 것을 알면 모든 살아있는 존재를 가엾게 볼 수 있게된다.

 세계에 있는 모든 것이 물이 흐르듯 항상 변하지만 또한 항상 여기에 실재함을 알아서 너와 나, 세계의 구분이 모호해지면 나를 위해 조건과 노력없이 숨을 쉬고 살아가듯 남을 위해 행동할 수 있게 된다. 사실 선행은 남에게 하는 것이지만 나를 위해 하는 것이다.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는 기쁨은 강아지가 나로 인해 느끼는 행복감 보다 더 큰 지복이며, 작은 한걸음이 모여 산 정상에 오르듯, 하나의 촛불이 수천개의 촛불을 밝히듯, 자신의 선행은 아무리 작아도 결국은 세상을 따뜻하고 지고至高롭게 만들며 이 지고로움과 따뜻함은 결국 나를 비롯한 모두에게로 퍼진다.

 세상의 이치가 무상함을 알고 삶의 근본이 고통 인줄을 알면 죽음에 대한 압박감도 한결 가벼워지며 색다른 눈으로 생과 사를 바라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헛된 집착과 욕심도 가라앉게된다.

 무상(세계가 세부적으로는 변화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불변하다는 것. 관점을 다르게 보면 전체적으로는 변화하지만 세부적으로는 불변함으로 볼 수도 있다.  '흐르는 물'은 무상을 알 수 있는 가장 괜찮은 비유다. 물의 세부적인 원소들은 흘러가 버려 계속 변화하지만 전체적인 물이라는 개념은 항상 있으며, 관점을 다르게 보면 사실 물이라고 부를 만한 고정된 실체는 없지만 이 물의 모습을 잡아주는 원소들은 항상있다.)을 알면 무아도 손쉽게 알 수 있다. 

 무아라고 하면 보통 '나라는 것은 없다' 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정확히는 '나라고 불릴만한 것이 없다'고 봐야한다. 신체의 어느 한 부분을 나라고 하는게 아니라 이 모든 신체세포를 통틀어 나라고 하기 때문이다. 이런 유기적인 관계로서의 나를 이해하게 된다면 지구에 있는 모든 생명체가 유기적인 관계로 하나임을, 우주에 있는 모든 존재와 비존재(존재했던 것, 존재할 것)가 유기적인 관계로 하나임을 알 수 있게 된다. 몸에게 있어서 암이든 지구에게 있어서 사람이든 모든건 다 하나인 것이다.

 이렇게 나의 경계가 무너져 버리면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남에게 쉽게 줄 수 있고 희생이란 것도 聖성인들만 하는 그런 어려운 것이 아니라 成성인이 아니여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된다.




 자 이렇게 나는 바다같던 사랑이란 개념을 한 곳에 구분짓고 고정시켜 버렸다. 다음은 우리가 흔하게 사랑이라 부르던 것들에 대해서 한번 알아보고자 한다.

 위 사랑의 개념에 동의한다면 이제는 우리가 흔히 사랑이라 부르던 것들을 더이상 사랑이라고 부르지 않아야한다. 상처를 주던 사랑, 슬픔을 주던 사랑, 내 욕심(성적욕망, 외로움)으로 하던 사랑, 이런 것은 이제 사랑이 아니다.

 

사랑이라 불렸던 것

1좋음(가지고 싶은 것)

2정(버리기 싫은 것)


 '좋음' 이란 연애의 감정을 말한다. 이 감정은 소유의 욕구에서 비롯되는데 이 소유의 욕구는 대상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으로 인해 얻게 되는 것을 원한다. 흔히 연애에서는 외로움과성적갈증의 해소를 얻는다. 

 '정'은 우정의 감정을 말한다. 이 감정도 소유의 욕구에서 비롯되는데 이 소유의 욕구는 좋음과는 다르게 오로지 대상을 원한다. 그래서 제대로된 친구 사이에는 바라는게 없다. 그냥 있어주기만 해도 충분하다. 정은 '버리기 싫은 것' 이기 때문에 이미 내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여 대상에 대한 집착이 없지만 막상 대상이 사라지면 걱정하게 된다. 이와는 달리 좋음은 '가지고 싶은 것'이기 때문에 내가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해서 대상에 대해 집착하지만 막상 대상이 사라지면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좋음과 정을 구분하긴 했지만 이것들이 꼭 따로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부모의 자식 사랑은 좋음과 정이 적절한 비율로 있는 가장 좋은 예이다. 이 비율에 따라 부모가 보이는 형태도 다양하다. 

1.부모가 자식에게 정은 없고 좋아만 한다면 부모는 자식을 성적대상으로 볼 수 있다. 

2,정보다 좋음의 비율이 높을수록 부모는 자식을 옥죄고 소유하려 한다. 

3,정과 좋음의 비율이 적당하면 자식을 사랑한다. 

4,정이 좋음의 비율보다 높으면 자식을 자유롭게 방종시킨다. 

5,좋아하지 않고 정만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을 '버리기 싫은 것' 이라고 했지만 사실 이건 자신이 소유했다고 생각한 것일 뿐이지 진짜로 소유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소유한 것이라고 쳐도 이 소유를 지속시키려면 지켜내야 한다. 따라서 정이 있다면 어느정도는 좋아해야(가지고 싶어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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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매스는 여기까지..
슬픔 한 곡 drop the b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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