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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백일장] 스물한살, 나의 병신같은 사랑이야기
게시물ID : readers_1458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푸른영혼
추천 : 4
조회수 : 275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4/08/11 17: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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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어떠셨나요? 힘들었나요? 책게로 오세요! 당신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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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백일장을 기다리면서 내게 있는 두 번의 기회를 어떤 글로 채울까 고민했다가 떠올렸다.

아무래도 사랑이야기가 가장 읽기 편할 것이기에, 내 스물 다섯 인생 중 가장 병신같았던, 처음이자 가장 슬픈 사랑이야기를 써볼까 한다.




나는 평소 성격이 내성적이라 인간관계가 썩 좋지 못했다.

대학교 1학년, 고등학교 때보다는 좀더 활발한 사람으로 보이고자 OT에서 여장을 하고 장기하와 얼굴들의 '달이 차오른다 가자'를 불렀다.

국문과, 일문과, 중문과, 사학과 모든 학생들이 나를 보면 '어 장기하다! 문어춤 춰봐!'라고 외쳤고 나는 쪽팔림을 무릅쓰고 취한듯 흐느적거렸다.

그리고 난 잊혀졌고, 아싸가 되었다.

어쩌면 스스로 자처한 셈이다. 나는 조용히 학교를 다녔고, 소수의 친구들하고만 연락을 하며 지냈다.

나에게 사람을 더 많이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은 바로 인터넷이었다.

실제로 나는 고3때부터 인터넷 수능 커뮤니티에 가입하여 그곳에서 활약했고, 좋은 친구들을 만났다.

아직도 내 기억 중 가장 소중했던 기억은 커뮤니티 사람들과 청평에서 정모를 했던 그 날이 손에 꼽힌다.

아무튼 나는 그 당시, 어떤 유명 힙합 가수가 독립하면서 만든 커뮤니티의 회원이었다.

그곳에서 게시해놓은 '가가라이브 채팅방'에서 여러 개성넘치는 사람들과 많이 만났다.

내 하루의 낙은 채팅방에 들러 여러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전부였다.

그곳에서 만났다, 그녀를.

그녀의 닉네임은 '메이비'였다.

그녀는 채팅방에서도 조용한 성격이었다. 어떤 말을 할때 꼭 끝에 '...'를 붙여서 자신감 없고 약한 이미지를 풍겨왔다.

그녀가 그러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그녀는 마음 속에 감옥 하나를 만들어놓고 거기에 갇혀있던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은근히 이끌림이 있었다. 나하고 비슷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도 성격이 어두운 편이었는데,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동질감 비슷한 것이 느껴졌고, 그런 감정은 곧 사랑 비슷한 감정으로 발전하기 마련이었다.(지금 생각해보면 단순히 동정심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연락처를 알게 된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기 속의 수신 소리가 내 두근거리는 마음을 요동쳤다.

"여보세요?"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예뻤다.

나는 상상했다. 그녀의 모습을. 그녀는 아마 예쁠 것이다. 내 머릿속에서 내 이상형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 모습에 가까울 것이라 생각했다.

그녀는 불면증에 심하게 시달렸다. 후에 나는 그녀의 불면증을 가지고 어떤 단편 소설을 썼었고, 학회에서 좋은 평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었다.

몇일 후,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공휴일을 틈타 대전으로 내려가겠다고 했다. 그녀를 보고 싶었다.

그녀는 수락했다.

나는 그녀에게 줄 손편지를 썼다. 처음이었다. 누군가에게 손편지를 쓰는 일이. 설레였었다. 내 마음이 처음으로 파도쳤다. 죽어있던 것이 다시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다음날 오전부터 잠실 교보문고에 들러서 커뮤니티를 만든 가수가 냈던 신보를 구입했다. 같이 선물로 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나는 서울에서 대전까지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차에서 쉽게 잠드는 버릇이 있었으나 그날 버스에서 나는 각성되어 있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애꿎은 손톱만 더 짧게 물어 뜯었다.

버스에 앉아 있던 시간이 늘어난 껌처럼 길었다. 까무룩 잠이 든 상태에서 드디어 대전에 도착했다.

대전 터미널에서 약속 장소까지 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생전 처음 오는 지역에서, 당시에는 또 스마트폰이 없었으므로, 헤매고 또 헤매었다.

우여곡절 끝에 약속 시간에 맞춰 타임스퀘어에 도착했다.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그녀는 지금 한창 준비중이라며, 많이 늦을 수도 있다며 미안해했다.

도대체 얼마나 이쁘게 하고 오려고 그러는지.

약속장소에서 멀뚱히 서서 그녀가 올만한 곳을 가만히 응시했다. 어딜 봐도 '그녀'같은 사람은 없었다. 왠지 저 사람도 그녀같지 않았고, 이 사람도 그녀같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은 다들 자기 갈 길을 갔다. 덩치가 나의 두배정도는 되어보이는 한 여성이 내 쪽으로 다가왔을때, 나는 괜시리 긴장했다.

설마...

덩치가 큰 여성은 나에게 가까이 다가온다.

한 걸음

한 걸음

.....!!!






다행히 스쳐지나간다.

나는 국문과스럽게 그 산만한 길거리에서 홀로 시를 떠올렸다. 아마 다들 고등학교 문학시간때 배웠을 것이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에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무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잇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잇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너에게 가고 있다.


그때 내 마음이 딱 저 상태였던 것이다. 오지 않은 너는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너가 아니었다. 그렇게 30분이 흐르고 나는 괜시리 초조해졌다. 그녀가 오지 않는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 나는 멀리서 그녀를 보기 위해 이렇게 찾아왔는데.

기다림의 시간이 한시간 가까이 되었을 때, 드디어 내 전화기가 울렸다.

"어디야?"

그 한 마디에 오랜 기다림의 설움이 한껏 풀렸다. 그 구슬 굴리는 듯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전화기를 들고 나의 다섯 보 앞에 서있었다. 나는 그녀를 불렀다.

"누나?"

"ㅎㅈ이?"

나는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내가 머릿속에서 그려냈던 이상형 만큼은 아니었지만 나보다 키도 늘씬하고 예뻤다. 분홍색 원피스 긴 생머리, 커다란 눈동자와 얄팍한 입술, 하얀 피부. 내 콧속을 가득 채우는 향수냄새. 가느다란 팔뚝... 단숨에 보고 사랑에 빠질만했다.

가슴에 얼thㅡ퀘이크가 일어났다!!

일단 그녀는 같이 밥을 먹자며 주변 분식점으로 향했다.

그녀와 마주 앉아 밥을 먹었다. 나는 평소 추잡한 밥버릇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최대한 조신하게 먹었다.

가끔 그녀를 올려다보고 피식 웃다가 다시 부끄러워서 고개를 떨구었다.

별로 말 없이 그녀와 그렇게 밥을 먹었다.

그 다음 그녀와 갔던 곳은 스티커 사진을 찍는 곳이었다.

그때 당시는 아직 스티커 사진 찍는 일이 있었는지 그런 장소가 마침 있었다.

그녀와 스티커사진을 찍고 그것을 지갑에 넣어두었다. 나는 보통 사진을 찍으면 못생김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에 나름 초조했다. 역시나. 나만 못생겼고 그녀는 광채가 났다.

참고로 이 스티커 사진은 지금은 없다. 군대 있을때 내가 담배불과 함께 태워버렸다. 그래서 나는 지금 그녀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 후 그녀와 커피를 마시며 카페에 들어갔다. 커피를 앞에 놓고 얘기를 나눴다. 나는 첫 운을 이렇게 뗐다.

"요새도 잠이 잘 안와?"

그녀는 그리 퀭해 보이지는 않았으나 지쳐보이기는 했다.

"응."

"큰일이네..."

그렇게 우리의 대화는 시작되었다. 같은 커뮤니티 회원들의 얘기들도 하고,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이런 딱히 영양가 없는 대화들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러다가, 그녀의 마음 속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난 하루에도 몇번씩 죽고 싶은 생각이 들어."

"......"

"가끔 집안에 있는 주방에 들어갈 때면, 엄마아빠 몰래 칼을 꺼내들어. 팔목을 끊어볼까 손목에 대보기도 하고 그래."

나는 뭐라 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힘들게 하는 것일까. 나는 그녀를 옭아매는 구렁텅이 속에서 꺼내주고 싶었다.

"난 항상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쳐. 그래서 사람들하고 가까이 안지내."

"그럼 채팅방은 뭔데?"

"그래도 채팅방 사람들은 서로 상처주거나 하진 않잖아."

"난... 누나가 조금 더 괜찮아 졌으면 해."

"그러진 않을 거야."

"아냐. 그럴 수 있어."

"예전에 남자친구가 그러더라. 넌 정말 썅년이라고. 그 말 듣고 알았어. 난 아무 가치도 없고 필요 없는 사람이라고."

나는 그녀의 눈동자를 쳐다봤다. 공허했다. 그래서 나에게 공포심마저 일으켰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것들을 버려내고 비워내야 저 눈동자처럼 공허해질까. 외로움이나 고독감같은 것보다 더 깊은 어둠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때서야 점점 나 자신이 겁이 났다. 내가 그녀를 어둠 속에서 꺼낼 수 있을까? 감당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난 다시는 아무 사람도 사랑하지 않을 거야."

그 말이 그렇게 무섭게 들렸다. 그 말이 그 날의 끝을 말했다. 그 말이 온갖 기대와 설레임과 간절함을 처절하게 깨부숴버렸다.

".......그래. 이제 그만 일어나 볼까? 너무 늦었네."

나는 도망치고 싶었다. 잠시 화장실에 들렀다.

참담한 심정으로 준비해온 선물에서 손편지만 빼서 쓰레기통에 버리고 나왔다.

그녀와 헤어지는 길, 버스 정류장에서 나는 앨범이 담긴 선물을 줬다.

다음에 또 볼 수 있다면 한번 보자며, 기약없는 약속을 하며 나는 마지막으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

가을날씨에 잡은 그녀의 손은 한 겨울 철봉을 잡은 것만큼이나 차가웠다.

그 차가움을 손에 기억하며 나는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손잡이가 그녀의 손같았다.

너무 슬펐다.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너무 화가 났다. 내 처음의 사랑이 이렇게 깨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 난 너무 나약했다.

그리고 그녀의 그 우울함은 나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녀를 통해 얻은 우울함이 가끔 내가 글을 쓰는데 좋을 때도 있었지만, 항상 마음은 나를 천천히 암세포처럼 갉아먹었다.

나 또한 그녀와 닮아가고 있었던 것 같다. 스물 다섯이 된 지금 그렇다.

지금은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그녀는 잘 지내고 있을까?

슬기 누나.

그 이후 한번 더 정모를 해서 만나게 됐을때, 솔직히 보고 싶지 않았어.

웃는 얼굴을 보면 내가 죽겠더라고.

노래방에서 노래 부를 때, 난 또다시 어리석게도 사랑할 뻔했어

채팅방에서 리더격인 녀석이 걸으면서 외투를 덮어줄 때, 진짜 진심 화나더라고.

저 외투를 덮어주는 게 나였어야 했는데.

밝게 웃어주는 사람이 나였어야 했는데.

왜 나한테 그렇게 아프고 끔찍한 것들만 보여주고 말았는지.

한동안 정말 많이 외로웠었고 많이 원망했었지만

4년이나 지난 지금은 가끔 널 생각하며, 만약 지금 다시 만나게 된다면

널 감당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고

널 사랑하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지만

그렇게 다시 한번 널 사랑하고 싶다.

진짜 사랑했다. 잘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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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forget, 2014.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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