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시골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후반에 시골로 이사를 했는데 한 학년에 한 반밖에 없는, 진짜 영화에서 나올 법한 학교였어요. 중간에 몇 명이 들어오고 나가긴 했지만 그 반 그 인원 그대로 초등학교 남은 3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을 보냈습니다. 상황이 이러니 애들끼리 성적은 물론이고 집안환경, 서로의 부모님도 다 알고... 뭐... 그랬죠. 저는 중학교 3학년? 쯤부터 왕따를 당했습니다. 심각한 괴롭힘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왕따를 당하는 친구가 있어서 그 친구랑 어울리고, 그러다보니 은근히 애들 사이에서 배제된 경우였죠. 그런데 선생님께도 예쁨받았고, 성적도 상위권이다보니 크게 배척당하진 않았어요.
제일 견디기 힘들었던 건 고등학교 1학년 때였어요. 처음 왕따당했던 친구는 실업계로, 전 인문계로 진학하면서 같이 놀 사람이 없어진 거죠. 제가 성격이 무딘 건지 크게 걱정을 안 했는데, 첫 날에 다른 패거리(?)의 여자애 한 명이 그러더라고요. 자기도 같이 놀던 애가 다른 학교로 가서 놀 사람 없다고, 같이 놀자고요. 그래서 저는 "친구끼리 노는데 굳이 같이 놀자고 해야 하나? 그냥 놀면 되지ㅎㅎ" 이런 식으로 답했어요. 그리고 그 친구랑 어울려 다녔는데... 그 친구(A)는 여러모로 인기가 많은 친구였어요. 그래서 고1때는 중딩때와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패거리가 구성됐는데 A를 중심으로 한 패거리는 저 포함 6명이었어요.
그런데 학기가 시작하고 한 달쯤 지났을까. 야자 시간에 그 패거리 친구들이 절 부르는 거예요. 잘은 몰랐지만, 그냥 올 게 왔다는 느낌이었어요. 같이 다니긴 하는데 전 겉돌고 있었거든요.
패거리 내의 B라는 애가 그러더라고요. 난 솔직히 너랑 놀기 싫은데, 니가 왜 말도 안 하고 우리랑 어울리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나도 원래 놀던 애들이랑 떨어지는 바람에 울면서 같이 놀자고 말했고 그래서 애들이랑 노는데, 너는 그것도 아니지 않냐. 솔직히 우리 중에 너랑 놀고 싶어하는 애 없다. 너 떼놓고 가려고 해도 니가 우리 옆에 와 있는 거 소름끼친다. 밥 혼자 먹는 건 솔직히 불쌍하고 어떤 기분인지 아니까 같이 먹어주겠는데, 다 먹으면 너 먼저 올라가라.
정말로 제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갔어요. 그냥... 여자애들 패거리라는 건 이렇게 만들어지는 거구나... 그래서 알겠다고 했어요. 처음에 A가 나랑 놀자고 해서 나는 그게 너희랑도 합의가 된 얘기인 줄 알았고, 너희가 나랑 놀기 싫었다고 진작 말했으면 굳이 같이 있지 않았을 거다. 같이 놀려면 같이 놀자고 해야 하는지도 몰랐는데, 내가 지금 그렇게 말해도 너네가 거절할 거 같으니 그냥 혼자 지내겠다고 했어요.
그렇게 마무리가 된 것 같았는데, 재수없다고 뒤에서 욕하고 다니더라고요. 그 애들이 말했던 대로 밥 먹으면 그냥 바로 올라와서 양치하고 책 읽었더니 선생님이 뭐라고 하셨나봐요. 저한테 그렇게 티내고 다니면 어떡하냐고 그러더라고요. 너네가 그러라며, 했더니 대충 눈치 보면서 해야 할 거 아니냐고...
한 일주일 그렇게 체육시간에도 남자애들이랑 짝 맞춰서 수행평가 하고, 옷도 혼자 갈아입고... 그런 생활을 했더니 A가 그러더라고요. 나는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다고, B가 날 너무 좋아하다보니 너한테 날 뺏긴 느낌이라 그랬다고. 다시 같이 놀자고. 솔직히 안심돼죠. 다른 패거리에 속하지도 못했고, 그 생기발랄한 여자애들 사이에 혼자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다는 부유감이 엄청났으니까요. 근데 A가 저랑 얘기하는 걸 보자마자 B가 절 엄청 째려보면서... 섬뜩하게... 그래서 됐다고, 난 괜찮으니까 크게 신경쓰지 말라고 했어요. 그래도 전보다는 분위기가 부드러워져서, A 패거리랑 얘기도 나누고... 그랬는데 그렇다고 고립감이 사라지는 게 아니어서, 처음으로 결석을 했어요. 그리고 다음날 학교에 갔더니, B가 그러더라고요. 학교 빠질 정도로 내가 괴롭혔냐고, 왜 학교는 빠지냐고. 그래서 몸이 아파서 빠졌다고 했습니다. 당시 저는 학교에서 유망주여서, 교감선생님께 자필편지(빌게이츠가 어쩌구 하는 별 영양가는 없던...)도 받고, 다른 선생님들 배려로 담임 선생님과 두 시간 정도 수업을 빼고 산책하면서 많은 얘기를 나눴어요.
선생님은 뭐가 제일 힘드냐고 물어보셨고, 저는 제 자신이 제일 힘들다고, 저 스스로를 다스리는 게 너무 어렵다고 답했고요.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네가 많이 어른스러워서, 애들이 괴리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너무 많이 상처받지 말고 흘려 넘기고, 그러다가 괴로우면 선생님한테 오라고요.
그냥, 그 말이 결정적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주변 사람들한테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아요. 어떤 기대냐면, 저 사람과 내가 마음 깊숙한 곳까지 터놓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요.
고2로 올라가면서 전학 온 친구가 있었고... 그 친구 덕에 남은 고등학교 생활은, 무난했던 것 같아요. 헬륨풍선처럼 붕 떠 있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밑에 쇠고리를 달아놓은 것처럼 어디 맘 붙일 곳은 있는...
근데 졸업 후에는 모든 동창들이랑 연락이 끊겼습니다. 스물둘인가? 그 때에야 A네 집에 놀러 갔다가 술에 취한 A가 늘어놓은 얘기를 들었어요. 졸업 때, 얘기를 했대요. 자기들은 졸업하면 저랑 연락 안 할 거라고. 2년동안 친한 척 하느라 너무 힘들었다고. 앞으로 절대로 안 보고 싶다고.
그냥 허무하더라고요. 나중에 A한테 연락하니, 근데 어차피 넌 그런 말 들어도 별로 신경 안 쓰잖아, 라고 하던데, 왠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말에도 어마어마하게 상처를 받았고요...
대학교에 진학하고, 사회생활도 이래저래 무난하게 해나가고는 있지만...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나서 즐겁게 노는 사람들을 보면 만감이 교차해요.
오래된 친구도 없고... 그렇다고 새로운 사람과 만나 친해질 수 있는 환경도 아니고... 스물 중반인데, 아무리 마음 맞는 친구를 구하려고 노력하고 신경을 써도 안 되더라고요. 문득 생각나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친구가 없어요... 동성이기 때문에 이해받을 수 있는, 그런 가슴 충만함을 느껴보고 싶은데...
지금처럼 본가에 내려와 있을 때면, 하루 종일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쥐고 있을 때면, 술 마시고 싶은데 연락할 사람이 없다는 걸 깨달을 때면
마음이 너무 공허하네요... 친구가 필요해요... 사소한 얘기를 나누고, 뜬금없이 연락해도 "무슨 일이야?" 같은 거리감 느껴지는 답장 말고 "살아는 있었고만ㅋㅋㅋ"하는 식의 장난기 듬뿍 담긴 답장을 돌려줄 그런 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