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제갈량의 파란만장한 생애[BGM]
게시물ID : history_1460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동물의피
추천 : 27
조회수 : 2926회
댓글수 : 79개
등록시간 : 2014/03/12 15:13:13
 
적벽대전 OST
alan - 久遠の河(구원의 강)
 
 
 
 
[출처]I Love Soccer (축구동영상)
http://cafe.daum.net/WorldcupLove/Knj/1270414
글쓴이:승상 제갈량 님
 
 
아이러브사커.jpg
 

 
 
1.jpg.jpg

제갈량의 역사상의 모습은, 역시나 '삼고초려' 를 그 보기드문 시작점으로 삼고 있습니다.
 
"융중의 초막을 세 번 찾아갔다" 는 이 유명한 고사를
단순히 소설적 허구로 알고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밑에 나오겠지만, 제갈량 바로 본인이 쓴
'출사표' 라는 글에서부터 "일찍이 선제께서는, 신을 어리석다 내치지 않으시고
융중의 초막에 몸소 세번 씩이나 왕림하셨나이다" 라는 문구가 보이니까요.
 
 
 
 
 
뭐 어쨌든.
 
삼국지 매니아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제갈량은 27살이 되던 해에 얼핏 ㅄ으로 보이기 쉬운
유비라는 인물에게 신변을 의탁합니다.
 일부 야사에서는 그 전부터 제갈량이 '와룡선생' 이라는 별명으로
아는거 많기로 형주 일대에서 꽤 날렸다고들 하는 경우가 있는데,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그냥 형주의 '선비들' 사이에서 알아주는 정도고,
세간에서는 그렇게 유명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형주목인 유표와 꽤 깊은 혈연관계가 있었습니다만,
본인이 소소한 벼슬길에 뜻을 두지 않았던 것이지요.
 
하지만 유비라는 사람이 워낙에 정치가 영입에 혈안이 되어 있었으므로
진흙속의 진주를 찾았다고 할수가 있겠지요.
 
 
물론 거꾸로 제갈량이, 
한나라 황실의 부흥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던
사람을 주인으로 원했던것도 사실이지만요.
 
 
 
 

 
2.jpg
 
 
 
사실, 유비가 ㅄ이었는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유비 자신과 제갈량 둘 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귀한 서천의 지도까지 저렇게 놓고 마주앉아
천하로 나아갈 길을 의논하고 있으니까요.
유비는, '한실부흥' 이라는 큰 꿈에 비해 가진게 너무 없었지요.
예주목 이라던지 좌장군과 같이 아무 실권없이 허울뿐인 직함에, 군사라곤 유표에게 비루먹은
몇천명 정도 뿐이었습니다. 거기다, 충성심에 불타는 두 동생을 빼면
장군감으로서도 책략가로서도 믿음직한 친구들이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했습니다.
 
단순히 능력이 뛰어나거나 믿음직하기만 한 인재여서도 안되고,
천하의 한신, 장량, 소하, 범증과 같은 호걸이어야만 했지요.
하지만 그런 사람이 유비에게는 없었습니다.
 
그저 신야라는 궁벽한 변방 성에서 하릴없이 날을 헤며
조조가 하북의 원소를 격파했다느니, 북중국을 통일했다느니 하는
소식에 귀를 기울일 뿐이었지요.
 
 
 
 
 
 
 
 
 
 
 
 
 
 
 
 
 이토록 가진것이 거의 없는 유비였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발목을 붙잡는 건 아무래도 근거지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땅에서 쌀이 나고, 땅을 차지해야지 비로소 군사를 징집할수 있으며,
넓은 땅을 가질수록 뛰어난 인재도 많이 거느릴 수 있는 시대였으니까요.
 
우리가 알고있는 삼국지 1세대의 세 거두 중, 유비를 나머지 두명과 비교하면
그 절박함은 정말이지 눈물이 나올 지경입니다.
 
 
 
 
 
 
 
 
 
 
 
3.jpg
 
 
 위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조조는 중원에서 가로막을자가 없었습니다.
유일한 라이벌이었던 원소를 관도대전에서 깨끗이 잡아먹었으니까요.
이 전쟁은 삼국시대라는 난세에서 가장 큰 전환점입니다.
대부분의 물자, 인구, 곡창 등이 밀집되어있던 황하 부근을, 단 한 사람의 제후가
차지하게되었다는 데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지요.
이 싸움을 발판삼아 조조는, 중국에서 가장 많은 군사를 거느린
제후로 거듭나게 됩니다.
 
거기다 황제까지 옆에 끼고서 조금만 빈정이 상하면 '어명이오' 하며 시시콜콜 걸고넘어지니,
무얼 하려고 해도 불리한 입장에서 시작하는 셈이지요.
황제에 맞서면 그대로 불충한 역적이 될 뿐이니까요.
이것 역시 대단한 정치적 자산임에 분명했습니다.
 
현대 역사학자 선생님들의 의견에 따르면,
200년대 초반 조조가 동원할수 있었던 총 군사수는 어림잠아 40만명 정도였다고들 합니다.
이것은 나머지 모든 제후들의 동원력을 합친것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조조와 당장 맞서는건 유비에게 자살행위에 불과했습니다.
 
 
 
 
 
 
 
4.jpg
 
손권은, 동오 진영의 시조이자 옛 영웅인 손견의 아들이며
2대 수장 손책의 동생입니다.
흔히들 손권을 '수성의 달인'이라 일컫는데,
비교적 적절한 평가라고 할수 있습니다.
아버지 손견과 형인 손책이 철저히 무력으로 일궈놓은 기반에
온갖 정치력 노력을 기울여 삼국지의 한 축을 이루는 '동오 집단' 을 지켜냈으니까요.
 
손책은 살아생전에 강동 6군을 모두 평정했다고 호언장담 했지만,
손책이라는 사람의 성정이 대단히 거칠고 난폭해서
강동 각지의 호족들과 그 사병들(宗敵)들을 그냥 힘으로 찍어누른것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니 손책이 죽자 너나할것 없이 떠들고 일어난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이렇게 어지러운 상황을, 손권은 아주 침착하고도 대담하게
진압해 나갔습니다.
물론 유비나 조조처럼 맨손으로 일어나 나라를 세운 사람들보다야
덜 힘들었다고 말할수도 있겠지만,
고작 18살의 나이에 제 큰삼촌뻘, 큰형뻘 되는 중신들을 이끌고 국정운영을
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닐겁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손권은 정말로 강동 6개군에 걸쳐 그 세력을 뻗쳤고
군사수도 7~8만명 어름까지는 어찌어찌 길러놓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유비는요?
 
 
 
 
 
 
 
 
 
 
 
 
 
 
 
 
 
5.jpg
 
 
20년이 넘도록 전쟁터에서 살다시피 하고선 꼴랑 신야성 요거 하나 건진겁니다.
그것도 남한테 빌린 땅이라서 언제든지 나가라 해도 할말이 없는 처지였지요.
 
여담이지만, 이상황에서 유비는 나이까지 많았습니다.
당시로선 할아버지에 가까운 50줄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요.
누가 보더라도 그는 이미 한물 간 사람이요, 허울좋은 명사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제갈량은 유비를 택했습니다.
 
무너져가는 한나라 왕조를 다시 붙잡고,
찬란했던 옛 삼권분공의 권력구조와 공정한 인재등용 법제를 부활시키고 싶었기 때문이지요.
유비를 제외한 다른 어느 집단도 '한 왕조'를 최종목표로 내걸지 않았습니다.
단지 자기 세력을 키우기 위한 도구로 사용할 뿐이었습니다.
 
이에 더해
애초에 어느 집단에서든 파격적인 중용을 원했던 그로서는,
조조나 손권은 이미 거느린 인재가 너무 많았을 겁니다.
 
 
 
 
 
 
 
 
 
제갈량은, 장기적으로 유비가 힘을 키워 조조에 맞서려면
손권과의 동맹이 필수적이라고 말했고,
 
이러한 의견은 장강의 완전한 장악을 목표로 하던 손권 진영 내에서도
어느정도 설득력을 얻고 있었습니다.
 
 
 
 
 
 
 
 
 
 
 
6.jpg
(꽃보다 주공근)
 
 
이와같은 이해관계로 맺어진 손유동맹은, 한번의 엄청난 싸움에서
조조를 크게 망신주는데 성공합니다.
그싸움은 바로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적벽대전' 입니다.
 
조조는 원소를 이긴 뒤 한껏 기분이 고조되어 있었습니다.
이제 거진 중국을 통일했다 생각 했겠지요.
이렇게 지나친 생각이 아니었다면, 북방에서 말타고 달리던 기마병을
수천리씩 행군하게 해 형주에 다다를 즈음 기진맥진하여 풍토병에 걸리게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수많은 배를 대여섯척씩 묶어 화공법의 완벽한 타겟이 되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았을 것이며
 
(그전에)
 
무엇보다,
노숙,제갈량,주유,손권,유비 등등 당대의 영웅호걸이 한데 모였다 해도 과언이 아닌
적을 상대로 처음부터 무리하게 자신에게 불리한 수전(水戰)을 일으키지도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조조는 기어이 20만 이상의 대군을 일으켜
주유와 황개의 환상적인 화공 지휘에 완파당합니다.
 
 
적벽대전은 조조의 일생일대의 패착인 동시에, 유비에게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다시 날아오를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유비는 적벽대전을 통해 형주의 절반 가까이와 익주를 차지하게 됩니다.
시골 촌구석에서 남의 문지기 노릇이나 하던 늙은 수장이,
중국에서 가장 큰 두 개 주를 점거한 어엿한 제후가 된 것입니다.
정말이지 하늘이 놀랄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7.jpg
(ㅋㅋㅋ님 좀 짱인듯)
 
 
이 일련의 행보가, 제갈량의 시대를 앞서간 혜안과 정치적 안목에서 비롯되었음은
이루 말할 필요조차 없었습니다.
유비가 반평생 천하를 헤메도 못 해낸 일을,
제갈량은 본격적으로 유비를 위해 일한지 10여년만에 해치운 것입니다.
  
 
 
 
 
 
 
 
 
 
 
 
 
 
8.jpg
 
바로 여기에서 "북벌" 이라는 단어가 비로소 그 실효성을 갖기 시작합니다.
제갈량은, '한중 방향과 형주 방향 양쪽으로 조조를 치면 가히 천하를 평정할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중 하나인 한중에서, 
 
유비가 조조군의 일급 지휘관인 하후연을 참살하며 조조군을 대파한 것입니다.
 
세상에 나온 이후 조조를 만났다 하면 도망갈 준비부터 하던 유비가,
직접 본인이 지휘하는 군대로 숙적 조조의 친정을 물리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한중왕을 자칭했습니다.
이제 형주방면에서 낙양, 허창 치고 올라가기만 하면, 옛날 한고조 유방이 익주땅에서 일어나
천하를 통일한 과거를 되살릴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은 촉나라의 편이 아니었습니다.
 
 
 
 
 
 
 
 
 
 
 
 
 
 
 
 
 
 
 
 
 
 
 
9.jpg
(형, 우리 ㅈ됐어 ㅠㅠ)
 
 
 
 형주 사령관으로 있던 유비의 동생 관우가, 북벌을 완성하기 위해 양양을 공격하던 도중,
동맹군이라던 동오의 여몽에게 배후를 습격당한 것입니다.
 
 
애초에 손유동맹은 그 기반이 너무 부실했습니다.
당장 조조라는 거대한 적이 몰려오니 일단 손을 잡고 물리치기는 했는데,
결국 두 편 다 노리는건 형주였으니까요.
동오입장에서는, 적벽대전에서 같은편인 유비보다 훨씬 사람도 많이 죽고 물자도 훨씬 많이 소모해서
겨우겨우 이겨놨더니, 당연한 전리품을 바로 그 유비에게 빼앗긴 셈이 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상황이니, 손권같이 교활한 군주가 가만히 관우의 북벌을 놔둘리가 없었던 겁니다.
 
관우 자기 자신도 생포된 뒤 죽임을 당헀고, 촉한은 형주를 동오에 내주게 되었습니다. 
북벌 계획의 두 축 중 하나를 영영 잃어버린 것입니다.
 
 
 
 
 
 
여기에 개빡친 유비 역시, 동생의 복수를 하겠답시고 오나라 정벌을 떠났다가
당시까지만 해도 무명이던 육손에게 군사의 8할 이상을 잃고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뜨게 됩니다.
'이릉대전' 이라 불리는 이 싸움에서, 촉한은 일반 군사는 물론이고
유능한 지휘관과 책사들을 많이 잃게 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위나라에 투항한 황권과 전사한 마량이 있겠지요. 
이후에 촉한이 겪을 인력난, 물자난은 거진 이 전쟁때문에 생긴것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이 두 번의 큰 실패는, 유비 사후 촉한의 미래를 짊어진 제갈량에게
더할 나위 없이 무거운 짐이 되었습니다.
북벌을 떠나자니 그 가능성이 너무 희박하게 돼버렸고,
그렇다고 북벌을 하지 않자니 정권 자체의 존재이유를 부정하는 꼴이 되는 것이지요.
진퇴양난이라는 말이 생각났을 겁니다.
 
 
 
 
 
 
 
 
그러나 제갈량이 누굽니까. 유비가 죽어 각 계파간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상태에서, 몇명의
익주 명사를 파직하거나 유배 보내는 방법으로 모든 상황을 종료시킨 뒤
그와중에 남만정벌까지 이뤄내는 기염을 토합니다.ㄷㄷㄷ
전복 직전까지 갔던 촉한정권은, 제갈량의 무시무시한 정치력 덕분에
풍비박산이 되는 꼴을 면하게 된 것이지요.
 
 
 
 
 
 
 
 
 
 
이렇게 내부상황과 배후의 반란이 적당히 진압되자,
제갈량은 곧바로 유비의 아들인 유선에게 '출사표'를 올립니다.
중국 3대 산문문학중에 하나이기도 한 이 글은, 한실부흥을 이루고자 하는
본인의 절실함과 선제 유비, 2대황제 유선에 대한 충성심이 배어나온
문장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10.jpg
(신은 본래 포의로서.. 선제께서는.. 어쩌구 어쩌구)
 
 
이 출사표를 올리고 떠난 맨 처음의 북벌전쟁에서는, 촉한의 상황이 꽤나 좋았습니다.
위나라가 전혀 마음의 대비를 하지 않았으니까요.
유비, 관우, 장비, 황충, 마초 등 뛰어난 장군들이 죽은 마당에
너희가 해봐야 뭘 하랴 싶었던 거겠지요.
그런데 막상 부닥치고 보니 만만치가 않은 겁니다. 천수, 안정, 무위 3개군이
동시에 촉한쪽으로 돌아서며 반역의 기치를 들었고,
그저 뒤에서 군량조달만 할줄 아는것 같았던 제갈량도
의외로 군지휘관으로서 녹록치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진수의 삼국지에서는,
 
"위나라 조정이 매우 큰 불안에 휩싸였으며, 군신이 황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고 적고 있습니다. 진수가 대체적으로 그 책을 위나라와 진나라를 정통으로 서술한 것을 감안한다면,
아마 당시 위나라는 거의 서량을 잃어버린 것으로
간주했던듯도 싶습니다.
 
만약 이대로 서량을 장악한다면, 제갈량은 그곳의 자금력을 끌어들여
조금더 수월하게 장안이나 낙양을 공략할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은 이번에도 촉나라의 편이 아니었습니다.
 
 
 
 
 
 
 
 
 
 
 
 
 
 
 
 
 
 
제갈량이 매우 아끼던 참모 중에 마속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이릉대전에서 죽은 마량의 친동생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친구가 말도 잘하고 기발한 책략도 잘 짜기는 하는데,
일군을 통솔할 대장감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11.jpg
(난 잘생겼어 말도 잘해 전쟁도 잘말아먹어)
 
 
 
그런데도 제갈량은, 위연과 오의 라는 경험많고 용맹한 지휘관을 두고
이 젊은이로 하여금 '가정' 이라는 요충지를 지키게 합니다.
촉한 군사들의 목구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지역이었습니다.
 
여기서 마속은, 산 위에 전군을 배치하는 결정적인 패착을 저질러
위나라의 대장이던 사마의와 장합에게 크게 패하고 맙니다.
 
'반드시 물가에 군사를 배치하라. 넌 그냥 앉아서 밥먹으면서 버티기만 하면 된단다 꼬마야 제발 말 들어라'
 
라며 타이르던 제갈량의 충고를 무시한 결과였지요.
그나마 희망이 있던 1차 북벌이 허무하게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순간입니다.
 
 
 
 
 
 
12.jpg13.jpg
                                                (사마의)
 
                                                    (장합)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전투의 책임을 추궁당하여, 마속은 죽음으로써 속죄하게 됩니다.
'읍참마속' 의 고사가 바로 여기에서 나오게 된 것입니다.
 
 
14.jpg
(으앙 쥬금 ㅠㅠ)
 
 
그러나, 패장을 죽인다고 이미 어그러져버린 전쟁이 되돌아 오지는 않지요.
사실 제갈량은 마속을 죽이지 않을수도 있었습니다.
전쟁에서 패하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닌데다,
나중에 더 큰 싸움에서 이기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거기다 마속은 확실히 뛰어난 구석이 있는 인재에 속했습니다.
안그래도 인재난에 허덕이는 촉한 입장에서는 더더욱
뛰어난 사람들을 아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정권 내부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익주 본토의 호족, 옛 유언과 유장을 따르던 부하들, 또 유비가 끌고 들어온
외부의 인사들 계파간의 갈등이 뿌리깊게 박혀있었습니다.
유비가 익주에 들어오면서부터 세운 불문율이,
"나중에 들어온 사람을 윗자리에 앉힌다" 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도 우리가 아는 촉한의 주요 인물들인
관우, 장비, 조운, 마초, 황충, 위연, 왕평, 제갈량, 마량, 장완, 동윤, 비의 등등이 모두
익주 본토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이 한사코 주위를 반대를 물리치고 고집하여 채용한 사람이
큰 전투에서 패했는데 만약 직접 감싸준다면,
평소에 쌓인 불만이 한꺼번에 터져나올 것은 불을 보듯 뻔했습니다.
 
'너는 사람도 제대로 못쓰면서 무슨 염치로 승상 자리에 앉아있는거냐!'
 
하는 식으로 말이지요.
 
이러한 정치적 배경이, 제갈량으로 하여금 아끼는 인재를
망설임없이 내려치게 한 것입니다. 이것은 그가 앞으로 계속 촉한정권을 이끌고
집권할수 있느냐 없느냐, 북벌을 게속할수 있느냐 없느냐 에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문제였습니다.
 
 
 
 
 
 
 
15.jpg
 
 
결과부터 말씀 드리면, 제갈량은 6번씩이나 계속 출병했지만
장안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채 전장에서 숨을 거두고 맙니다.
작은 나라, 적은 병력, 부족한 군량미로는 역시 위나라 같은 대국을 무너뜨릴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그는 맨 처음 유비에게 의탁할때부터 한실부흥이 불가능한 꿈이라는 걸 알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조조가 이미 너무 강대하게 천하를 장악하고 있었으며,
그에비해 자기 주인인 유비는 꿈만 큰 객장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이상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주위의 부릴만한 사람이 적다던가,
적이 너무 막강하다던가,
보급로가 길다던가 하는 문제는
그를 막을수 없었습니다.
 
어떤 난관이 닥쳐도 항상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했으며,
모든 악조건을 안고서라도 스스로의 신념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지 않았지요.
 
그를 역사의 패배자라 욕해도 별로 할말이 없긴 합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가 성공했느냐 실패헀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자신과 주위사람들에게 떳떳한 사람이었느냐 입니다.
 
 
그는 출사표의 마지막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노둔한 몸이나마 있는 힘을 다하여, 죽고난 뒤에나 멈출 것입니다"
 
참으로 의지와 신념으로 가득 찬 문장이 아닐수 없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아직까지 밝혀진 바로는 제갈량은 이 문장에 조금도 어긋남 없이
살다가 죽은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끝까지 자기 꿈을 쫓아가는 모습이,
자기 꿈을 잊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귀감이 되지는 않을까요?
 
 
 
오유_~1.JPG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2014-03-12 15:35:09추천 0
드라마 신 삼국의 배우들이 보이네요. 무엇보다 조조-사마의란 인물이 너무 매력적이였습니다.
댓글 0개 ▲
2014-03-12 15:40:30추천 11
겜방에서 보는데
접속시간이 짧아서 추천을 줄수가 없다는군요 ㅠㅠ

북벌을 감행할때
뛰어난 판을 그려놓고 사람이 제갈량 이였다면     (전략

세세한 컨트롤을 하면 군을 지휘할 유능한 장군이 필요하지만(전술
본문글처럼
오호대장 중 조운만 빼고 모두 명을 다하였음....

제갈량의 실패한 북벌을 본다면 진짜
하늘의 뜻이란것이 있을수도 있다고 생각함
댓글 0개 ▲
2014-03-12 16:29:01추천 99/6
사실 제갈량 본인이 잘못하거나 능력이 부족해서라기 보다는.. 정말 하늘이 안 도와준 케이스죠

마속도 그렇고 사마의 죽일뻔한 상황에서 비가 내린것도 그렇고..
댓글 0개 ▲
2014-03-12 16:29:45추천 9/14
제가 제일 좋아하는 삼국지 인물이 제갈량이지만 한편적으로는 부정적인 면도 적지않아있었어요.
제갈량이 유비진영 합류후 넘버 2자리를 두고 실질적으로는 관우와 신경적이 적지않아있었다고 합니다.
유비야 대장이니 그렇다 쳐도 관우의 입장으로써는 몇년동안 고생하면서 전쟁터누비고 힘들게 돌아다녔드만 왠 젋은 서생놈이와서 \'내가 이제부터 넘버 2임ㅋ\'하는게 보기 싫은것도 어느정도 이해는 됩니다만. 제갈량이 아마 유비 사후전 제일 큰 실수라면 바로 이러한 신경전때문에 관우를 죽게 내버려둔것이지요.
삼국지에서 가장 사기적인 지략으로 조조마저 죽기직전으로 만들었던 제갈량이 왜 그랬냐 하기도싶은데.
현재 내려오는 제갈량에대한 이야기를 본다면 제갈량은 말그대로 무력에만 (즉 직접적인 전투능력)일반 병사수준이지 다른방면으로는 전문가 저리가라 수준이라고 알고있습니다. 그중하나가 하늘의 별자리를 본다는 천문도 포함되어있는데 제갈량은 천문으로 방통이 죽을것을  예측한사람입니다. 자기 죽을껏도 예측해서 기도도해본사람이고 실질적으로 신경전을 버리다가 후반 삼국지 제일의 무장이라는 관우를 죽게내버려둔것은 아마 제갈량의 가장큰 실수가 아닐까싶어요. 전체적으로 관우가 안죽었다면 유비 제정신상태는 물론 장비도 안죽었을꺼라는 말에 북벌이좀더 쉬웠을지도 모릅니다.
애초에 아두데리고 그혼자서 나라이끈다고 힘들어 하지는 않았을꺼같은데 말이죠.
댓글 0개 ▲
2014-03-12 16:31:11추천 2
아 신경전을 벌이다죠. 오타 수정요;
댓글 0개 ▲
2014-03-12 16:36:43추천 25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관우가 오나라에게 죽지 않았다면, 
마속이 진을 그따위로 치지 않아 가정을 지켰다면,
유선이 유비 절반이라도 똘똘하고 개념있었다면...

사소할수도 있는 몇가지의 변수와 사건이 장기적인 관점에선 참 많은 변화를 줄수도 있겠구나...란 생각이 드네요.
댓글 0개 ▲
2014-03-12 16:37:25추천 1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정말 제갈량에겐 가정이 있었어야 합니다.
북벌해서 장안까지만 어찌어찌 함락시켰다면
두예의 파죽지세라는 고사성어는
제갈량의 파죽지세로 기억될 수 있었을텐데요.
댓글 0개 ▲
2014-03-12 16:37:51추천 44
... 그때 아두를 살리지 말았어야했어......
댓글 0개 ▲
2014-03-12 16:41:58추천 64
연의를 처음 보면 제갈량을 대단하게 생각하고
정사를 처음 보면 제갈량을 거품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정사를 볼수록 제갈량 대단하다는 생각이 더 들게되지요

촉이 망하지 않았던 이유는 제갈량으로 인해 육성된 소금사업과 촉금사업때문인데요
천연가스를 이용해서 순도높은 소금을 제조하고
뛰어난 비단산업을 육성하게 됩니다
위나라에서 사고싶어서 오나라를 거쳐 수입하는등 굉장히 품질이 좋았다고 하네요
소금과 촉금으로 인해 촉의 경제는 부흥하고 북벌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댓글 0개 ▲
2014-03-12 16:43:44추천 19
정사를 처음봤을때 거품이라고 생각하게 되는건 
제갈량과 사마의의 전투가 정사와 다른게 많기 때문입니다
\'화약\'을 썻다는 자오곡전투도 그렇고
사마의도 아닌 조진이랑 싸워서 패한것도 그렇고
댓글 0개 ▲
2014-03-12 16:48:45추천 32
삼국지에서 관우와 제갈량 사이가 안좋다는 말들은 다 이문열 삼국지에서 나온 사설입니다;  믿지 않으시는게 좋아요.

문체는 좋은데 사설이 너무 많은 이문열 삼국지...ㅠㅠ

여튼

연의에서 가장 버프 많이 받는 케릭터이긴 하지만;

정말 재능에 비해 천운이 안따라준 인물임은 변함없죠.

그 때문인지 이릉대전을 일으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손권은 손제리란 별명으로 아직도 까이고있죠 ㅎㅎ;
댓글 0개 ▲
[본인삭제]윤알밤
2014-03-12 17:05:44추천 36
댓글 0개 ▲
2014-03-12 17:07:38추천 45
관우가 오만하니까 죽은거지 제갈량이랑 사이가 안좋아서 죽었다는건 말도 안되죠 이문열 그사람 삼국지가 다 망쳐놨죠
제갈량은 형주를 관우한테 맡기면서 오랑은 잘 지내고 위랑은 싸우면 형주를 지킬꺼라고 했는데
오호대장군 줄때도 내가 왜 이딴걸 받냐고 하면서 발끈했죠
그리고 오나라는 관우랑 잘 지내볼려고 자기 아들이랑 관우 딸이랑 결혼시킬라고 했는데 개새끼 자식이랑 호랑이새끼 자식은 사돈맺을 수 없다고 오만을 떨어서
손권이 빡쳐서 쳐들어 간거죠
댓글 0개 ▲
2014-03-12 17:08:31추천 8
아.. 객관적이라곤 말하지 않겠으나.. 이 글은 바로 저 같은 사람의 제갈량에 대한 관점과 평가 그 자체네요.. 감동..
댓글 0개 ▲
2014-03-12 17:09:38추천 12
정확히는 모르지만 정사에서 제갈량은 뛰어난 군사라기보다 뛰어난 경영자가 더 맞지 않나요??

오히려 가후가 정말 뛰어난 전략가인데 정통 중국인이 아니어서 배척했다는 이야기로 알고 있구요.

솔직히 제갈량이 천기를 읽었다던지 뭐 그런건 연의에서는 받아들이겠지만 정사에서 그런능력이 있을리가.. 싶기도 합니다.
댓글 0개 ▲
2014-03-12 17:18:54추천 0
어린이용 삼국지, 60권짜리 삼국지, 김홍신의 삼국지, 이문열의 삼국지, 정사, 그리고 이런 인터넷의 글들까지 정말 삼국지는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가 않는군요. 제 인생에서 본 최고의 명작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ㅠㅠ
댓글 0개 ▲
2014-03-12 17:21:26추천 23
이문열 삼국지가 욕먹는건..
연의에선 A지만 사실은 B이고, 그러므로 나는 B\'라고 생각한다라고 써놓은 사설의 B가 사실이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제갈량이 관우가 죽도록 내버려 둔 거 같다란 것도 이문열 삼국지 속 사설인데,
이제 막 촉에 입성해서 기틀 다지느라 바쁜 제갈량한테 관우 신경 안써줬다고 하는 것도 그렇고,
관우 자체가 어마어마한 무장입니다. 괜시리 무신이 아니죠.
관우를 잡기 위해 일어난 위와 오나라의 군대가 10 + 5만 정도 됩니다. 거기다 관우 형주군이 대략 4만정도..

적벽대전이 실제로 25만 대 5만으로 30만 정도로 예측되고,
이릉대전은 아마 10만 이하일 것이고,
관도 대전도 10만 대 1만이었죠.
조조가 수도 옮기려고 고려했던 것도 실제 기록에 남아있구요.

정사 기준으로,
제갈량은 조조를 죽기 직전까지 몬 적이 없어요. 화용도는 연의 속 얘기일 뿐. 적벽 대전이 실제로 있었냐 없었냐 말이 많은 판국이기도 하고..
실제 화공도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지만, 더 큰 문제는 풍토병으로 기억하네요.
그리고 위군이 수전이 약하기 때문에 형주군의 수병을 활용했습니다.(형주군이 10만 정도)
나름 준비는 철저히 했죠. 

이릉대전 후 1년여 만에 제갈량은 군대를 일으킵니다. 이른바 남만 정벌이죠.
이로 보아선 이릉대전의 패전으로 인한 군사력 손실은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만, 차세대 인재들의 씨가 말라 버렸죠. 
다음 세대의 주축들이 없어졌기 때문에 유비 사후 촉은 이미 가망성이 사라진거겠죠.
그래서 더 마속이 욕을 먹는 거 같아요
거의 유일한 기회를 발로 뻥 차버렸으니..
댓글 0개 ▲
2014-03-12 17:23:35추천 3
연의상 이릉대전 때 촉이 70만 대군을 일으켰다에서..
촉의 인구가 100만이 안되는데...대충 90만 정도로 예측되는데,
중국식 부풀리기는 참 대단한거 같아요..
댓글 0개 ▲
2014-03-12 17:31:05추천 6
제갈량 죽는 부분에서 책 부여잡고 오열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ㅎㅎㅎㅎㅎ
댓글 0개 ▲
2014-03-12 17:33:21추천 9
재밌는 사실은 계속 된 북벌에도 불구하고 촉한의 국고는 아주 튼실했다고 하죠. 보통 전쟁이라는게 한 번만 패하더라도 국운이 크게 기울 수 있는 도전인데 말이죠. 그런 면에서 보면 제갈량의 북벌은 그 자체로 커다란 목표라기보다는 삼분지계, 나아가서는 한왕조 부흥을 위한 하나의 정치적인 과정의 일부분이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댓글 0개 ▲
2014-03-12 17:34:01추천 1/14
동피님글은 늘 알차고 재밋어서 차별화 되는군요
보다가 혹시? 하고보면 역시네요 ㅋㅋ
아..닉언죄송
댓글 0개 ▲
2014-03-12 17:34:18추천 13
정사에서 제갈량이 뛰어난건 전략전인 면모보다

내정가로서의 모습이니까요

애초에 익주에 인재가 너무 부족해...

문관도 무관도

그런주제에 유선은 너무  무능하고

간신은 활개치고
댓글 0개 ▲
2014-03-12 17:37:10추천 3
적벽대전이 실제로 있었는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적벽대전에 대해 우리가 아는 건 대부분  연의에 나오는 내용일뿐.........
댓글 0개 ▲
2014-03-12 17:54:31추천 12
이문열 삼국지는 사설이 굉장히 많고 오역도 너무 많아요.
꼼트라야/ 적벽대전은 정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만 정확한 지역과 화공이 조조가 배를 불태운것이냐 손유연합군이 계략을 쓴거냐 라는등의 여러 이견은 있습니다.
댓글 0개 ▲
2014-03-12 17:57:32추천 0
멋있다
댓글 0개 ▲
2014-03-12 18:08:23추천 45
이건 마치 언랭 4명을 이끄는 다이아 서폿의 기분이 아닐까..
댓글 0개 ▲
2014-03-12 18:22:34추천 4
공명의 문제점은 공명을 뒷 받쳐줄 인재가 없었다는 점....
문관쪽은 인재도 없거니와 모조리 단명함...ㅡ_ㅡ"

거의 홀로 촉한이라는 나라의 국정을 이끌어 나가니...과로사 할 수 밖에....
댓글 0개 ▲
[본인삭제]제피르
2014-03-12 18:24:57추천 0
댓글 0개 ▲
2014-03-12 18:25:56추천 1
사마의가 비덕분에 살았다고 하는건 정말 소설이에요.. 그당시는 화약이 개발되지 않았을때라고 알고 있........
댓글 0개 ▲
2014-03-12 18:27:21추천 0
촉과 반대로 천하가 다 내꺼 싶었던 위나라는 결국 사마씨때문에 망하죠
댓글 0개 ▲
[본인삭제]잘한다★
2014-03-12 18:30:02추천 4
댓글 0개 ▲
[본인삭제]잘한다★
2014-03-12 18:32:17추천 6
댓글 0개 ▲
2014-03-12 18:33:20추천 9
삼고초려에 대해 허구적으로 묘사되었다고 하는건,

유독 유비만이 제갈량을 모시기 위해 삼고초려를 한 게 아니라
삼고초려 자체가 당시의 명사들을 모시기 위한 기본적인 예의였다는 점입니다.
댓글 0개 ▲
2014-03-12 18:33:39추천 3/8
삼국지는 구라가 좀 심해서 부풀러진게 많다던데 삼국지 바로 읽기인가 그런 책도 있음 
그리고 나관중이 쓴 삼국지는 유비에게만 유독 편애 하는 내용들이 대부분인데 몇몇 사람들은 조조가 더 칭송 받아야 할 군주라는 말도 있져 
유비는 정말 무능 했었고 인재들 다룰지도 몰르고 한나라 재건이라는 명목하에 남 뒷통수(?) 치고 다니고 (조조, 원소등이 당했져 ㅋㅋ)
조조는 인재를 다루는 능력이나 군사 다루는 능력이 손권이나 유비 보다 훨씬 훌륭했다고 
다만 유비가 한나라 재건 할라고 했다는 걸 더 높게 봐서 나관중이 그렇게 부풀려서 쓴거라고 하든데

그리고 인천와이번스님 말씀대로 사마의는 비 때문에 산거 뻥이라고 하더라고요ㅋㅋ 극적인 상황을 만들라고 했던거고 관우가 쓰던 청룡언월도는 그 당시에 그런 창은 없었다고 ㅋ
댓글 0개 ▲
2014-03-12 18:34:17추천 2
적벽대전이라는 말 자체가 없는데...무슨 적벽대전이 정사에 기록이 되어 있다고하는지...
그 적벽이라는 이름도 그당시에는 없고..후세에 그냥 붙여진 이름일뿐....
그냥 추측하는 장소가 몇군대 있을뿐...

진짜 소설책을 이렇게 역사로 이해하는 사람들은 도통 이해가 안가는..
댓글 0개 ▲
2014-03-12 18:36:52추천 0
잘 읽었습니다!
댓글 0개 ▲
2014-03-12 18:39:13추천 5
갑자기 떠오르는 유비 소드마스터설ㅋ
댓글 0개 ▲
2014-03-12 18:39:42추천 0
삼국지연의는 촉이 주인공인 소설이죠. 실제역사랑 다른게 많더라구요
댓글 0개 ▲
[본인삭제]필립모리스
2014-03-12 18:40:36추천 1
댓글 0개 ▲
2014-03-12 18:40:43추천 29
취업준비생 제갈량은 대기업인 위나라나 중견기업인 오나라에 들어가 수많은 직원들중 하나가 되는것보다 중소기업에 들어가 
후한 대접을 받고 기업과 같이 성장했죠. 형인 제갈근이 번듯한 오나라에 취직하니 배알은 꼴렸을겁니다.. 

중소기업CEO 유비는 잘써먹던 서서가 대기업에 스카우팅되자 대체자를 찾아야되는데, 이때 제갈량은 추천인전형의 힘을 빌어
자소서전형은 자동으로 패스했고 CEO가 직접 찾아오게 만들었는데 이때 유비가 제갈량을 찾아갔는데도 세번이나 팅긴건
\'난 원래 중소기업에 취직할 몸이 아니다\'라는것을 어필하여 몸값을 올리려 했던것.

결국 제갈량은 입사하자마자 경력사항도 없는 신입임에도 임원의 자리에 올라 후한 대접을 받고 일하게 됩니다.
물론 다 농담입니다.
댓글 0개 ▲
2014-03-12 18:43:06추천 20
캬오/
유비가 무능하다구요? 연의가 아니라 정사만 봐도 유비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감이 옵니다. 기반하나없이 황제자리에 오른자를 대단하지 않다고 하면 누구를 대단하다 해야할까요?
댓글 0개 ▲
2014-03-12 18:45:37추천 3
관도 대전으로 원소를 박살냈다고 하셨는데 사실 관도에서 깨진 후에도 원소가 더 세력이 셌습니다. 원래 세력 규모가 원소가 넘사벽이라 한번 진 정도로는 뒤집을 수 없었죠. 다만 후계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채로 급사해 버려서 자식들 간의 내분을 유도해 버렸고 그 결과 조조에게 먹혀버린겁니다 .
댓글 0개 ▲
2014-03-12 18:45:43추천 0
진짜 여기 댓글에도  소설에 나온 내용을 역사로 알고 있는 사람들 많네.... ㅎㅎ
댓글 0개 ▲
2014-03-12 18:48:18추천 9
캬오/유비가 무능하다니 이 무슨 망언을(...) 무능한 사람이 저잣거리 건달에서 일국의 황제까지 올라갈 수 있을것 같습니까?
댓글 0개 ▲
[본인삭제]밤바야의아침
2014-03-12 18:55:38추천 1/3
댓글 0개 ▲
2014-03-12 18:56:19추천 2
질문있습니다. 하도 예전의 삼국지를 읽어서.. 제 아들이 크면
누구의 삼국지를 읽히는게 좋을지? 이문열껀 아닌거같은데..
댓글 0개 ▲
[본인삭제]한뎃집
2014-03-12 18:58:14추천 1/3
댓글 0개 ▲
2014-03-12 19:04:18추천 0
글은 잘 읽었는데요, 출사표 원문에 "노둔한 몸이나마 있는 힘을 다하여, 죽고난 뒤에나 멈출 것입니다. " 이건 어디에 있나요? 멋있는 말인데 찾을 수가 없어서요 ㅋㅋ
댓글 0개 ▲
2014-03-12 19:05:07추천 0
소설로 가장 과대평가된 사람중 하나
댓글 0개 ▲
[본인삭제]금오공
2014-03-12 19:06:32추천 0
댓글 0개 ▲
2014-03-12 19:06:34추천 0
삼국지 읽고 나면 아두 개생키야 라는 말 밖에...
댓글 0개 ▲
2014-03-12 19:11:09추천 15
오히려 연의의 구라성때문에 유비랑 제갈량이 실제보다 더 낮게 평가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유비를 저 자립까지 끌어올린데에는 제갈량의 능력이 분명한 사실이구요 유비자체도 엄청난 인물입니다
다만 조조가 당시 대립되는 유비보다 너무 뛰어날뿐이지 게다가 조조보다 더 밑에서 올라온 인물인데 정사보셨다는분들이 하도 유비까대니까 진짜로 부족한 인물인줄아네요
조조맹덕이 시대와 맞지않을정도로 뛰어난 인물이었을뿐이지 저 시대 튼튼한 밑바탕인 오나라와 엄청나게 거대한 인인물인 조조에 사이에서 저 정도까지 큰 그리고 크게 만든 인물입니다 절대 무시하면안되요
댓글 0개 ▲
2014-03-12 19:13:09추천 0
유비가 아두를 땅에 던지지만 않았더라면?이 생각나네요 ㅎㅎ
댓글 0개 ▲
2014-03-12 19:15:26추천 12
뭐 일단 춘추 전국사와 삼국지 매니아로서 글을 보자면..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관우는 오만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손가 쪽을 너무 합리적인 선택을 할 것 이라고 믿고 배짱을 부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실 삼국지 게임 등에서도 그렇고 형주 땅을 엄청난 땅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만. 사실 춘추/전국 사를 돌이켜봤을때 중국 서부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은 \'춘추 오패의 필두였던 \'진\' 즉 장안 = 함중지역(+촉). 반대로 동부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은 최다 인구 도시인 임치를 보유하고 엄청난 염전 생산량으로 인한 경제력 등의 \'제\'나라 즉 서주 지역이었거든요. 삼국지에서도 사실 원소,여포,조조,유비,손책,손권 등 거의 모든 군웅이 한번씩 노리는 지역아닙니까. 
형주, 즉 초나라의 땅 같은 경우에는 나쁜 지역은 아니지만 너무 넓고 인구가 분산되어 있고, 풍토가 그닥이라 한신 같은 경우에도 제나라 왕으로 봉하자 만족했는데 그거 빼았고 초나라 왕으로 봉하니까 불만을 가지고 종리매와 반역을 모의하지 않았습니까..
해서 관우같은 경우 설마 저기 위의 꿩놔두고 닭먹으러 오겠어. 했던 것 같아요..
정말 이 타이밍에 유비가 장안만 손에 넣었어도 구 \'진\'나라와 유방의 \'한\'나라의 영지가 그대로 복원되는데, 이거면 진도 그랬고 한도 그랬듯이 나머지 중국 전역과 싸울 수 있는 병력과 경제력이 있단말이죠. 정말 진짜 한평생을 원해왔던 것이 목전에 있는데 그것이 동맹이라는 놈들에 의해서 좌절된 유비의 분노는 이해가 감이 있고, 관중이 제나라를 통치하자 소금 전매만으로도 전차2군단을 만들었는데 이런 땅을 버리고 동맹에게 쳐들어간 오하아몽은 정말.. 노숙이나 장굉 등이 죽으면서까지 간언한건 어따 팔아먹은거냐 손제리...
댓글 0개 ▲
2014-03-12 19:16:57추천 0
유비가 무능하다니.. 뒷통수는 유비가 갑..

요즘 케이블에서 이중텐 인가 하는 분이 삼국지 강의하던데.. 정사 연의 각 인물전 등 통털어서 사실과 아닌 것 구분해서 강의 잘 하시더라고요.
댓글 0개 ▲
2014-03-12 19:20:21추천 1
마성의 게이 유비를 우습게 보는 사람들 때문에 충격...
댓글 0개 ▲
2014-03-12 19:26:24추천 10

와장창!
댓글 0개 ▲
2014-03-12 19:32:27추천 0
그리고 사실 한나라는 삼공으로 분권한 것도 그저 명목뿐이고, 공정한 법제를 한적도 없죠...
애초에 한의 유방은 걸물이었지만 그 2세인 혜제가 멍청하다보니 어머니인 여후에 의해서 사망하고, 여씨 세력과 여씨 세력을 무찌른 집단들은 공정한 법가나 유교가 아닌 \'황로술\'이라는 도가의 체제로서 통치했죠. 간단히 말해서 무위로 뭐 하지말고 그냥 지금가진거 누리면서 만족하고 살자.는 도가 다운 사상이죠.
한의 무제는 그래도 초기에는 법가를 숭상하며 뭐 해보려고 했지만 결국 말년에 다시 도가 세력에 굴복하여 도가적인 마인드로 살다가 호족들은 발호하고 나라가 풍비박산, 왕망이 \'신\'을 건국하여 유교를 숭상하며 토지를 몰수하려 하였으나 호족 세력의 반발로 그 대표자 격인 광무제.(왕족이기도 하고. 엄청난 부자였다고 합니다.)가 다시 왕망을 처단하고 후한 건국.
애초에 삼국지=강성한 지방 호족 세력들이 중앙정부를 무시하고 독자세력화.. 는 후한 건국부터 이미 조짐이 시작된 일이죠..
댓글 0개 ▲
2014-03-12 19:39:42추천 12

오늘도 역시 고통받는 간손미... 나름 열심히 한거같은데 역사가 알아주지 않아...ㅎㅎ
댓글 0개 ▲
2014-03-12 19:46:12추천 0
스크랩
댓글 0개 ▲
2014-03-12 19:46:36추천 1
난 참 이해가 안가는데 \'역사에 만약은 없다\'  이거
만약이 없긴 뭘..

과거 박정희가 총탄에 죽지 않고  국민들 손에 심판 받앗으면 이나라 역사가 이모양이 되지 않았을테고 
더 나아가 만약 과거 친일파들 청산 했으면 구데타 독재자들이 나타나지 않았을수도 있죠.
댓글 0개 ▲
2014-03-12 19:48:04추천 0
나온김에 더 말해서

만약 광주민주화운동 없엇으면 전대갈새끼 아직도 떵떵거리고 대통령하고있엇을겁니다.
댓글 0개 ▲
[본인삭제]돼지사냥
2014-03-12 19:48:08추천 0
댓글 0개 ▲
2014-03-12 19:49:10추천 4
제갈량은 한실부흥 같은 명분 자체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을겁니다.

그보다는,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알아주고, 
자신을 진심으로 대우할 동반자를 구했던거죠.

지금으로 따지면, 신입을 총리에, 사장에 앉힌 겪이니까, 유비의 그릇도 나름 대단한거죠.
사실 그 이전 주나라 건국때는 강태공으로 알려진 여상이, 낚시터에서 재상으로 올라갔고,
한신도 적국의 창잡이가 대장군으로 바로 올라갔고,
손무, 상앙 등등 중국역사엔 그런 파격등용으로 큰 성공을 거둔 예들이 있지만요.


그리고 제가보기엔, 사마의도 제갈량 못지않은, 어쩌면 그 이상되는 천재였다고 봅니다.
오히려 사마의가 당시 위나라 꼴을 보고, 적당히 제갈량과 라이벌구도 만드는 선에서 마무리해준 것일지도 몰라요..
댓글 0개 ▲
2014-03-12 19:50:37추천 0
위에 댓글 수정. 아 실수했다. \'제\'가 춘추 오패의 필두고 \'진\'은 전국 칠웅의 최대 세력이었지..
댓글 0개 ▲
2014-03-12 19:51:46추천 1
\'만약\'   이 상상을 너무 하찮게들 생각하시는듯.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계속 가정해보고 상상하는게 맞는거 같아요.
그래야 진보하죠.
댓글 0개 ▲
[본인삭제]김추락
2014-03-12 19:52:44추천 0
댓글 0개 ▲
2014-03-12 19:56:55추천 6
유비가 무능했다란 글이 보이는데 그건 연의에서 상대적으로 유비를 낮춰 서술한 결과로 보임...사실 연의에서도 따지고 보면 유비가 스스로 지휘한 전투중에 패배한 전투가 거의 없음. 이릉을빼면.... 유일하게 조조본인이 지휘할때만 매번 패했는데 대부분 조조 군세가 훨씬 큰 불리한 전투상황이었음. 조조도 일생의 라이벌로 유비한명만을 지목하고 평생을 견제했음..이런내용으로 비추어 볼때 그당시 조조를 위협할만한 실력을 가진 거의 유일한 장수가 유비였다고 생각돔...,무능했단말은  어불성설임...
댓글 0개 ▲
[본인삭제]루트리우스
2014-03-12 20:01:05추천 1
댓글 0개 ▲
[본인삭제]뭐꼬?
2014-03-12 20:09:55추천 4
댓글 0개 ▲
[본인삭제]뭐꼬?
2014-03-12 20:12:13추천 0
댓글 0개 ▲
[본인삭제]오늘의말씀
2014-03-12 20:12:14추천 0
댓글 0개 ▲
2014-03-12 20:13:42추천 0/7
걍 유비가 쪼다 찌질이임.
댓글 0개 ▲
SlN
2014-03-12 20:28:21추천 1
연의를 처음 보면 제갈량을 대단하게 생각하고
정사를 처음 보면 제갈량을 거품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정사를 볼수록 제갈량 대단하다는 생각이 더 들게되지요
ㄴ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세간에선 제갈량을 뛰어난 전략가로 보기 때문이죠 
소설에선 석병팔진을 만들고 화약을 만들고 천문도 보고 별 걸 다 하는데 정작 정사에선 그런 게 없음 ㅋㅋㅋ
하지만 실제 역사를 탐구해 보면 볼수록 나라 살림하는 데에 훨씬 치적이 크다 볼 수 있죠 
그렇기 때문에 정사를 보면 볼수록 또 다른 면모에 빠지게 된다는 것...
댓글 0개 ▲
2014-03-12 20:28:39추천 0
어쨌든 절대열세의 상황 속에서도 삼국의 한 축을 구축했고, 선제에게 전권을 위임 받고서도 딴마음을 품지 않고  끝까지 충성을 다하다가 과로사한 유능한 충신이라서 중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인물 중의 하나가 되지 않았을까요.
댓글 0개 ▲
2014-03-12 20:32:14추천 0
유바의 소하,장량,한신 역할을 혼자 다한거라고 볼 수 있음. 물론 군사적인 면에서는 한신이 우월하지만.
댓글 0개 ▲
2014-03-12 21:17:59추천 4
제갈량의 가장 큰 실수는 위연을 배신자 대접한거
인간적으로 위연만큼 유비 밑에서 출전 많이 하고
작전실패도 거의 없는 명장을 훗날 배신할 놈이라고
무자비하게 부려먹고 결국 공명 사후에 배신하긴함
아니 황충같은 늙은이를 대장군을 왜시킴
위연이라는 장수가있는데 솔직히 황충이 관우랑 
맞짱뜬거말고 활약한게 거의 없는데
위연 배신 잘했음 대접도 못받고 진짜 ㅠ
유비군 모든 장수 중에 조운이랑 위연이
출전수 탑랭커들인데 아마 위연이 더 높을지도
댓글 0개 ▲
2014-03-12 21:32:54추천 1
솔직히 병법만을 놓고보면 한신 따라갈 사람은 없다고 봅니다 
손자 , 장량 뺴고,,, 
가장 어렵다는 수전을 다 이겼으니까요
갖고 있었던게,,,큰칼 *(큰 칼은 왕족만 들고 다닐수 있었음)
칼을 벗어놓고 다른사람 가랑이를 기어갈 만큼,,,, 비굴한 면도 있었지만, 
그만큼 절박했었다는,,,, 증거가 되겠죠,,,
그리고 기생 등쳐먹고 살았다는,,,,
지금으로 보면 최고의 능력자임,,,ㅋㅋㅋㅋ
유방에게 희생됐지만,,,, 그가 ,,,,최고의 전략가임은 그 누구도 부정 못함..
댓글 0개 ▲
Mac
2014-03-12 21:57:52추천 1
삼국지연의 읽으면서 진짜 읽기 힘든 부분이 관우가 죽을때와 이릉대전에서 유비가 대패할때...
마치 왕좌의 게임에서 피의 결혼식 에피를 보는기분..ㅠㅠ
댓글 0개 ▲
2014-03-12 22:23:57추천 1
간손미~간손미 서글픈노래~
댓글 0개 ▲
2014-03-12 22:27:35추천 0
재스퍼님 말씀에 동감입니다. 제갈량과 적벽대전을 통해 배우는 리더십 이라는 책을 읽다보니 저 내용이 있었죠. 리더는 말을 조심해야한다고, 또한 중국에 6개월있으면서 중국 역사학자가 삼국지 강의하는걸 본적이 있는데. 저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오만함이 빚어낸 역사적 사건이라고 말이죠.
댓글 0개 ▲
2014-03-12 23:17:37추천 1
제갈공명은 책략가보다는 정치가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연의에서 슈퍼맨으로 묘사해놔서 그렇지..
심심하실때 창천항로나 EBS 라디오 삼국지 같은거 보거나 들어보세요 소설이랑 실제역사 차이도 알려주고 재밌어요~~!!
댓글 0개 ▲
2014-03-12 23:59:00추천 5
제갈량은 많은 분들이 말씀하신 내정가 입니다.. 내정가가 소설이나 역사책에서 나오는 멋진 장군에 비하면 그에 대한 표현이 적지만 실은 그 당시에 전쟁에 이기고 지는 큰 역할을 하는 사람들죠... 초한지에서 항상 유방이 아끼고 칭찬하던 소하와 조참... 후에 한나라 건국의 가장 높은 공신에 올른것을 보면 알 수 있죠....소설에서 전투등에 등장하진 않지만 내정을 맡고 군수품을 만들고 식량을 조달하고 군인을 뽑고 이런 바탕이 있어야 전략이 나오고 전술이 나오는 거죠..
실제로 제갈량은 군사적인 측면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제갈량의 북벌시 위나라 황제(조예)는 깜짝놀란것이 유비와 관우가 없는 촉에서 누가 있어 위나라를 공격하는가라고 했다는군요...
 정사에 따르면 실제 제갈량이 이끈 승리의 대부분은 유비가 이끈 전투가 많습니다. 제갈량이 유비진영에서 처음으로 전쟁을 벌여 승리했던 번성전투도 실은 제갈량이 유비진영에 오기 전에 유비가 이끌던 전투였고 촉나라 원정도 실은 제갈량은 정벌이 거의 끝난뒤 들어가서 전후 뒷수습을 담당했었다고 합니다.... 제갈량이 위대한 정치가요 내정가지만 그것을 소설로 풀어내기 어려워 많은 전투의 전공을 유비에서 제갈량으로 돌리고 유비에게는 그냥 덕과 의리란 그당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주다 보니 현재의 우리는 제갈량은 인재...하지만 유비는 답없는 멍청이가 되고 만 꼴이죠...
댓글 0개 ▲
2014-03-13 00:02:51추천 0
어렸을 때 삼국지 읽으면서 제갈량의 지혜에 감탄했었는데
추억이 새록새록.
감사합니다
댓글 0개 ▲
2014-03-13 00:47:39추천 3
분명히 삼국지 읽었는데

이분들 보니

안읽은거 같네요

삼국지 전문가님들이 이리 많다니!
댓글 0개 ▲
2014-03-13 01:51:38추천 0
마량이 이릉전투에서 전사했다는건 처음 알았네요.. 
갠적으로 삼국지 전체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라.. 마량전 같은건 없나요?? 있으면 보고싶은데.

그리고 조조 셋째인가 넷째아들.. 글 잘쓰고 일곱걸음 걸어가면서 시 지었다는 인물 이름이 뭐였죠..?
댓글 0개 ▲
2014-03-13 03:39:26추천 1
세째 아들 조식임 
조식의 재주가 뛰어나 명망이 높자 조조 첫째 아들 조비를 따르는 자들이 조식을 죽여야만 후환이 없다고 하여
조비가 황제 등극하고 조조의 장례식날 불참을 핑계삼아 조식을 불러서 죽이려는 마지막으로 조식에게 일곱걸음 옳길동안 시를 지으면 살려 준다고 하고
어려운 콩(두)으로 음을 띄우는데 조식이 시를 읊음 솥안에서 콩이 삶아지네 콩을 삶는것은 콩깢지니 태어나기는 같은 줄기에서 태어났는데 이리 심하게도 삶는구나 머 이런시임...그래서 조식은 조비의 마음을 움직여 살아남...이름하여 칠보시
이것도 머 소설 내용에 있는 내용이지 역사적으로 그랬을리 없음 ㅋㅋㅋ
댓글 0개 ▲
2014-03-13 03:47:39추천 0/6
제갈량과 유비의 암투는 소설 내용상 곳곳에서 묻어남
실례로 화용도로 조조가 오지 않으면 목을 내놓겠다는 제갈량이나 관우나 이미 극에 달한 상항이고
곳곳에서 관우가 제갈량을 탐탁치 않게 말하는 내용이 많이 나옴
그리고 제갈량은 출사표를 던지고 출전해서 사마의에게 3번다 패했음...결국 오나라 사마의의 아들이 오나라를 집어먹고 결국 조비의 위나라까지 깨부수고 통일함
그리고 유선이 황제인데 감히 재상 따위가 황제의 명령없이 먼저 출사표를 쓰고 군대를 일으킴 이건 아무리 좋게봐도 대역죄인임 ㅋ
또한 자기 사람 낙하산 인사로 인하여 마속을 귀하게 쓰는 바람에 패전하고 그 패전의 원인을 마속에게만 돌려놓음
관우가 육손에게 당하여 작은성 맥성까지 쫒겨 가는데 그 주위는 촉나라 성이 많아서 얼마든지 지원군을 보낼수 있었으나 공명의 사람인 두 성주가 원병을 안보내 결국 관우가 참수됨 등등 공명의 실정 아주많음
댓글 0개 ▲
2014-03-13 07:47:39추천 0
창천항로는 만화입니다 조조를 지나친 인물로 만든 정사에 또다른 해석이에요 조조판 삼국지연의라고보면 되겠네요
댓글 0개 ▲
2014-03-13 09:50:11추천 0
삼국지는 소설이라 그냥 재미로 보세요
댓글 0개 ▲
2014-03-13 11:39:14추천 0
큰거한나가 적벽대전인데
그것도 바람이 불지 않았으면 
소용없던거 그외 과대 포장
댓글 0개 ▲
2014-03-13 15:31:43추천 0
제갈량의 평가 중 가장 많이 인정 받는 것이

"중국 역대 재상, 그 시대에 뛰어난 전략가"

인거 같습니다.
댓글 0개 ▲
[본인삭제]머리속의바람
2014-03-13 16:43:33추천 0
댓글 0개 ▲
2014-03-13 16:44:51추천 5
여러분들이 하나 아셔야 할 것은
 조조같은 리더보다 유비같은 리더가 되기 더 어렵습니다.

조조형 리더의 경우는 본인이 엄청 잘난 케이스라 열심히 노력하면 비슷한 경지에 오를수도 있지만, 
유비형 리더같은 경우에는 본인은 좀 부족하더라도 잘난 부하들이 목숨걸고 따르게 하는 경지에 올라있습니다.

 (조조를 폄하하는건 아니지만) 조조는 자신이 우선 잘났고, 가진 것도 많고, 빽도 좋고해서 따르는 사람들이 많지만
 유비는 가진 것도 없고, 자기도 별다른 잘난게 없고, 빽도 없는데...(황실의 후손이라고 주장한거빼고)
근데도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따른다...??

가장 잘나가던 조조가 직접 스카웃할려고 했던 관우
 당대 알아주는 갑부로서 모든 군주들이 모시고자 했던 유비의 후견인 미축
 전국에 이름을 떨쳤던 명사 허정
 훗날 최고의 명재상이 되는 제갈량

이렇게 유비군 아니라도 갈곳 많거나, 이미 천하에 이름을 떨쳤던 이사람들은 전부 사람보는 눈이 호구라서 유비를 따랐던 걸까요?
어쩌면 조조같은 사람보다 유비같은 사람이 더 무서운 사람일수도 있습니다.
댓글 0개 ▲
[본인삭제]쵸쵸아빠
2014-05-22 08:18:31추천 1
댓글 0개 ▲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