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오빠들이 가지고 있는 흔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애당초 내 여동생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고집불통에 제멋대로고 툭하면 한참 나이 먹은 오빠에게 욕을 하는 동생과 단 하루도 다투지 않은 적이 없었다. 애써 대수롭지않게
무시하려고 해도 그 아이의 행동은 마치 콧잔등 위에 난 뾰루지와 같이 집요하게 신경을 거슬려서 소리를 대판 지르고 나서야 끝이 난다.
유명 남성 아이돌 그룹의 빠순이이고 가족 중에서 제가 제일인 줄 착각하는 동생을 보며, 솔직히 나는 낙담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아이와
대뜸 결혼을 하라니......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이다. 사건의 시작은 주말마다 열리는 가족회의 도중 아버지의 발언으로 부터 시작되었다.
"너희 둘 결혼하거라."
치킨을 신나게 뜯다 어안이 벙벙해진 여동생과 나는 서로를 힐끔 쳐다보다가 동시에 말했다.
"둘이 누구에요?"
"너희 둘 말이다. 민식이와 영미 오늘부터 부부의 연을 맺거라."
떨그렁. 영미가 들고 있던 닭다리가 접시위에 떨어졌다. 내일 북한군이 쳐들어 온다고 해도 먹던 치킨은 절대로 놓지 않는
불굴의 심성을 가진 아이였지만, 아버지의 말에 큰 충격을 받은 듯 했다.
"에이....아부지도 차암... 누가 쌍팔년도 세대 아니시랄까봐 그런 개그나 치시고 하하...."
"농담 따먹자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그리고 민식이 너" 아버지가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사실 너는 내 진짜 아들이 아니다."
이게 무슨 엉뚱한 소리인가? 리우데자네이루 삼바 페스티벌에서 삼바를 추는 여인에게 별안간 정수리에 브라질리안 킥을 맞은 것처럼
혼미해졌다.
"아....하하... 드라마 패러디하시는 거구나ㅎㅎ 다음은 뭐에요? 엄마가 백혈병에 걸렸어요? 제 진짜 아버지는 대기업 회장인가요?"
"아니. 너는 별에서 왔단다."
아버지는 일어서 베란다로 가 젖은 눈망울로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ㅅㅂ..... 내가 무슨 도민준인가? 아니 서씨니까 서민준이 옳은가?
"1989년 서울에 기록적인 유성우가 내렸었지" 그리고 아버지는 말을 이었다. "엄마와 북한산을 등산하는 중에 하늘에서 떨어져
울고 있는 너를 발견했단다. 아마 고향별 파벌 싸움에 밀려 지구로 도망쳐온 거겠지......."
그거 참 참신한 발상이시네요ㅋㅋ 그렇죠 엄ㅁ.....라고 말하려는 순간 주름진 눈가에 맺힌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아이씨! 장난은 이쯤에서 그만두시라고요!"
"순간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폭력게임의 주인공처럼 난폭하게 변해버렸구나. 하지만 아빠는 이해한다. 나는....."
"됐어요. 장난이 너무 심하잖아요! 사실이라 해도 아버지가 영미와 나를 결혼시킬 권리따윈 없으시다구요!"
"아니 그럴 수가 있단다." 아버지가 단호하게 말했다 "처음부터 너를 데려온 이유는 데릴사위로 데려 온거니까!"
'데릴사위제!' 나는 그 단어에 대략 정신이 멍해졌다.
"조상님들 중에 옥저사람이 계시거든" 아버지는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옥저는 민며느리제잖아요!라고 반박하고 싶었으나 말한다 한들 정상인처럼 반응할 것 같지 않았다. 이대로 말싸움을 계속 하면 위험하다.
이러다가 정말 영미와 결혼을 시킬지도 모른다. 나는 도망쳐야만 했다.
"그.... 그래도! 영미랑 결혼할 수는 없어요! 죄송합니다. 저 나갈께요. 우와아앙!"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현관문으로 달려나가는 순간, 무언가 무겁고 묵직한 것이 등 뒤에 날라와 나는 쓰러질 수 밖에 없었다.
"여보 어서 녀석을 잡아와요. 물먹은 반어피를 맞았으니 도망가지 못할거에요!"
아버지는 쓰러진 나를 쌀푸대마냥 질질 끌면서 외쳤다.
"역시 옥저의 기술력은 세계 제이이이일!!!!!"
아버지라 불렀던 중년의 사내는 나의 손을 밧줄로 결박하고 나서 다시 제자리에 앉혔다.
"너무 화내지 말고....그래도 우리 딸 정도면 꽤 만족스럽지 않겠나? 이쁘고... 참하고...."
"아빠 그만 하세요!" 가만히 있던 영미가 말했다. "제 마음 속에는 아직도 엑쏘의 뱈융옵하가 있다구여!"
"뱈융은 태연이 가져갔어. 이제 없어!"
아버지가 윽박을 질렀다.
"하지만 네 방 포스터에! 네 한정판 앨범에! 함께가 되어 살아갈꺼야! 그러니 걱정하지 말거라!"
영미는 아버지의 반응에 놀라 고개를 숙였다. 몰래 흐느끼는 것 같기도 했다. 아버지는 영미에게 다가가 등을 토닥이며 속삭였다.
"그래도 이만한 오징어 외계인이면 괜찮은거다...... 너무 상심해 하진 말아라."
아니 누구보고 오징어 외계인이라는 거야! 라고 외치고 싶었으나 꺼진 TV화면에 비친 얼굴을 보고나니.... 순간 슬퍼져 버렸다. 그래,
나야말로 영미정도의 여자면 나같은 남자에게 그나마 나은 편이겠지......
"이제 어느정도 정리가 된 거 같으니 혼약기념으로 둘이 뽀뽀나 하거라."
"예? 그건 너무 이르지 않나......" 내가 말하려던 찰나에 아버지가 말했다. "닥쳐! 판단은 내가 하마!"
부모님이라 불리웠던 사람들은 외친다. 뽀뽀해 짝! 뽀뽀해 짝! 그리고 영미는 나를 지긋히 바라보고 있다. 미안하다. 금방 끝날거야.
라고 말하자 영미가 얼굴을 붉히며 말한다.
"따.... 딱히 나도 하기 싫은 데 억지로 이러는 거니까 오해하지마!"
츤츤거리기는....... 우리 둘은 키스를 하고 주위에서 우레처럼 박수소리가 울린다. 영미의 입술에서 달콤한 짭짤한 양념치킨 맛이난다.
처X집치킨이다.
아 ㅅㅂ....개꿈..... 나는 잠에서 깨어난다. 지독한 악몽이다. 박수소리 알람을 끄면서 나는 생각한다. 나한테 여동생은 커녕 형도 없는데
이런 꿈을 꾸다니. 어제 치킨을 먹고 이를 안닦고 잔게 화근이다. 오늘 하루 운수가 좋으려나 보다.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연다. 모처럼 토요일.
하지만 메시지는 한개도 없다. 어차피 만나봤자 땀내나는 남자친구들 밖에 없으니.... 롤이나 한판 때릴까 하다가 그냥 피곤해서 다시 눈을 감아버린다.
스물 다섯살 모태 솔로. 왠지 이런 한낱 개꿈보다 자기의 진짜 삶이 더 악몽처럼 느껴지는걸까? 영문 모를 눈물 한 방울이 베게맡에 퍼진다.
햇살이 선명하게 책상에 놓인 티슈를 핥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