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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와 병사에 대한 오해
게시물ID : history_2962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남고생의일상
추천 : 1
조회수 : 3405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8/10/09 01: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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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흔히 이렇게 얘기를 한다

초기의 핸드캐넌은 유효하지 못했다고...
실제 실험 결과로는 능숙하다면 30~50m까지는 상당히 치명적인것으로 밝혀졌고 머스킷이 풀플레이트에 막혔다는 낭설은 총알 맞고 죽은 기사나 갑옷의 발견 됐음에도 아직도 화기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화약 무기를 중요치 여기지 않았다면 애당초 발전도 없었을터, 도리어 화약이 적어 안타까운 경우는 많았다. 그리고 어처구니 없게도 조총과 활의 비거리를 잘못 아는 경우가 많은데 징비록에서는 곧잘 조총이 더 길다거나 실험 결과에서는 활의 유효사거리가 짧고 조총이 더 는 경우가 많지만 어째 다들 짧게 적어둔다...짧다면 조총을 쓸리가


몽골군은 우리의 생각과 달리 마냥 궁기병이나 경기병만 운영하지 않았고 이미 칭기즈칸 때부터 기병의 50% 이상은 중기병이었고 보병도 막강했다. 몽골 제국에서 버틴 나라는 자연 앞에서 지거나, 더 강한 기병이나, 베트남 정도다.


몽골 점령전 고려군의 모습은 송나라군의 체계나 무기를 갖추고 있었다. 동아시아권에서는 최첨단 국가였다. 만화 같은데에서는 조선 같은 모습으로 묘사된다.


송나라는 화약 무기를 응용했는데 소리외에 위력이 절륜하다고 몽골 기록이 있어도 또 초기화약이라고 저평가된다....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는 노예제를 운용했다는 근거가 없다. 도리어 해체 시킨 기록은 남아있다..

아케메너스 페르시아는 그리스와의 전쟁에서 진 이유는 내분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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