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언니가 시집을 갔다
게시물ID : gomin_146274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익명ZGRkZ
추천 : 3
조회수 : 540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15/06/22 13:37:45
드레스를 입은 언니는 참으로 꽃처럼 아름다웠다

입을 모아 신부가 참 예쁘다며 여기저기서 칭찬하는 소리가 들렸다



언니는 취업을, 나는 고시공부를 위해 3년전 상경해 6평 남짓한 원룸에서 같이 생활했다

새벽 1시가 넘어 집에 오면 제일 먼저 싱크대에 가득한 설거지거리가 보였다

설거지를 하고 빨랫감이 넘치는 날은 빨래를 돌리고 샤워를 하고 그렇게 달그락거리면 누워있던 언니가 신경질을 낸다 나중에 하면 안 돼? 내가 나중에 할게 

그 말을 믿지 않은 건 같이 살고 1년이 지난 후였다

어느날 난 조심스레 물어봤다. 언니는 왜 안치워?

힘드니까. 쉬고 싶으니까. 

일 힘든 거 안다 쉬고 싶은 것도 안다. 그치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윗 사람에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가르친 집안 환경 덕에 아무말 못하고 새벽 2시까지 쇠파이프를 다 분해해 막힌 하수구를 뚫었다 

  생활비는 내가 낼 거니까 엄만 걱정하지 마

그 말은 같이 산 지 1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조각났다. 어쩐지 늘 어머니께 죄스러워하며 통장에 생활비를 부탁드리는 건 내 몫이 됐다. 언니가 스스로 생활비를 부담한 건 3년간 딱 한번 뿐이었다. 

 수험생에게 몇십만원 빌려가고 값을 돈은 없으면서 남자친구와 커플룩을 맞출 돈은 있는가보다

자기 아는 사람은 6개월 공부하고 붙었다는데 너는 너무 노력 안하는 거 아니니

밖에 나가 책 끌어안고 대낮부터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다

너 지금 꾸미고 나가는 거 보니까 수상하다. 어디 놀러가니? 니가 그럴때니? 정신차려

마지막 알바날, 늘 초라한 행색을 하고 다닌 게 못내 아쉬워 기분전환 겸 반바지에 반팔, 모자를 쓰고 나가는 내게 그리 말했다

그날 난 아무 약속도 없이 일을 끝내고 바로 집에 돌아왔다

내 우습게 찍힌 사진을 보고 깔깔거리던 그녀는 하지말라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 사진을 자기 친구와 공유하며 같이 웃어댔다

가족 단톡방에서조차 연신 키읔을 누르기 바쁜 모습에 속이 상하여 나갔더니 굳이 다시 초대해 또다시 시시덕거렸다

처음으로 일주일 내내 울어봤다

하루 9시간씩 울음이 나오더라

처음으로 신발을 벗고 옥상에 올라도 가봤다

원래 피부가 좋지 않았던 난 덕분에 피부염증이 올라와 더 흉측한 몰골이 되었다






언니가 시집을 갔다


그 좁은 원룸이 크게만 보였다. 이제 젓가락을 탁자 위에 놓는다고 뭐라 할 사람도 없고(반찬 자국 묻는다고..)술 취해서 지하철에서 뻗어 자는 사람 찾아 업고 집에 들어올 일도 없고 마음껏 팔다리 뻗으며 잘 수도 있다

언니는 없고


아무말 못했던 병신 하나만 남았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