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아버지를 사랑하고싶어요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버지의 3번의 실패였어요 집안의 풍파가 거칠었던 편이라
제가 3살경 가족나들이를 가는길에 아버지 차에 노인분이 보험을 타기위해 뛰어드셨고..
자살처리가 아닌 타살로 되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다니던 외국계기업에서 작은 중소기업으로 이직하시게되셨습니다.
그리고 찾아온 IMF로 실직하시게 되면서 2년간 구직하시다. 사업을 하시게되고
그렇게 사업은 점차확대가 되면서 10년넘게 힘들었던 가정에 여유가 찾아왔습니다.
중학교 3년부터 고등학교 2년까지 약 3년 간 정말 금전적으로 행복했고,
어머니는 10년간 운영하시던 어린이집을 접으시며 유치원을 여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제가 공부를 잘해야 돈을 많이벌고 부모님이 행복하실꺼란 생각으로 공부만을 하던 학생이었는데
집이 여유로워지며 하고싶었던 미술을 하게되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9월 아마 2008년, 아버지거래처가 하나씩 부도가나게되며 아버지 사업까지 연쇄부도가 나버리고
아버지는 이사실을 어머니와 상의하지 않으셨기에 어머니는 깡패들이 집앞에 오는 순간까지도 모르고 계셨습니다.
평소에도 불화가 많으셨고 대화하지않는 가정이었기에 어머니가 큰 충격을 받으셨고, 더군다가 어린이집을 접으시고 대학원을 다니고계셨던 입장이라
약2여년간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나마 있는 재산이 넘어가지않게 이혼을 하게되었고, 그 이혼을 끝으로 아버지를 다시보긴 정말 힘들었습니다.
(아버지 건강이 급격히 안좋아져 검사를해보니 폐결핵으로 나와 아버지가 다른곳에서 사시게됩니다.)
저 또한 아버지를 원망했던 것같아요
왜, 내인생의 가장 중요한 이 순간에라는 생각으로 아버지를 원망했던 어린 고등학생이었고
저는 갈피를 못잡다 공부에만 매진했답니다.
(어찌저찌 대학을 갔고 미대는 포기했습니다.)
그 이후의 상황은
이혼 후 재정으로 스트레스받으시며 어머니가 결국 스트레스성 유방암으로 수술을 할 때 혼자서 감당했던 어려움과
학자금대출로 학교를 다니며 눈에 불을키며 국가에서나오는 장학금을 받으려고 학교에서 나오는 장학금을 타려고
3년동안 2000만원을 받았던기억, 그리고 공장에서 6개월간 야간으로 일해서 모은돈으로 결국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왔습니다. 이제 한국에 가기 몇일이 남은시점입니다! 아버지는 약2년간 실의에 빠져계시다가.. 이번에 경비로 취직했다고 하시네요!
저는 가면을 쓰고 행복한 가정인 척, 어려움이 없는 척하며 살고있어요!
취직도 걱정되고 디자인에 미련도 남고
부모님의 건강도 남동생의 군대도 남은 학자금도 그냥 다 어깨가 무겁네요
하지만 저는 행복합니다. 저는 잘 될꺼에요, 우리가족도 다 잘될꺼고
돈 때문에 너무힘들지만 저는 행복합니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을꺼에요
이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어린 아이가아니니까요
아빠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엄마 아프지마세요 미안해요
사랑하는 동생 엇나가지 않고 잘 커줘서 고마워
제가 적은 저 제목대로 앞으로도 열심히 아버지를 그리고 우리가족을 또 저 자신을 사랑하고싶습니다.
털어놓고싶어서 처음으로 글을 적게됬네요 가끔씩 뛰쳐나오는 염세적인 저 자신과 부정적인 마음을 컨트롤하기 힘들지만
잘 할 수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