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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블로2의 기억
게시물ID : diablo2_1462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가로등
추천 : 9
조회수 : 1425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02/27 00:4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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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디아블로2. 아주 오랜 게임을 하고 있다. 세 번째 후속작 까지 나온 정도이니 그 역사에 대해선 더 말할 것도 없다.

 한 때 PC방을 가면 전 좌석의 절반은 스타크래프트를 하고 나머지는 디아블로2를 할 때가 있었다. 스타크래프트를 하는 사람들은 디아블로2를 보며, 그거 재밌냐, 그래도 역시 스타가 짱이지. 디아블로2를 하는 사람들은 스타크래프트를 하는 사람들에게, 요새는 이게 짱이야, 대세도 모르는 놈이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몇몇 그 둘을 안하는 사람들은 포트리스를 하거나 리니지를 했다. 더 드물게는 뮤도 했지만, 시골이라 그런지 거의 볼 수 없었다.

 이 글은 좀 더 그런, 세월의 이야기다. 디아블로2는 10년이 넘었기 때문에 추억을 빼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게임이다. 2.5d의 액션알피지, 파격적인 시스템, 직관적인 인터페이스의 충격적인 조합은 십년의 기간동안 바래고 바래 진부해져 버렸다. 식스센스의 반전이 더 이상 반전일 수 없듯이.

 나는 그런 게임을 하고 있다.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고 게임사에서 서버를 가동시켜주는 것 자체도 놀라울 따름인 게임이다. 게임 설정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도 끝났고 봇을 돌리는 행위가 판을 치고, 심지어는 봇의 광고활동에 대한 제제도 없다. 더는 새로운 컨텐츠를 개발하지 않으며 새로운 사람들의 유입도 없다. 잠시 떠나갔다가 돌아오는 유저만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런 게임을 하고 있다. 웬일인지는 모르겠다. 과거에 갇혀 산다는 어떤 사람의 평처럼 내가 그냥 그런 사람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둠의 전설을 하고, 환세취호전을 찾아보고, 여러 에뮬레이터를 구동시켜 오락실 게임을 찾아내 기어코 실행시켜보는 것은, 그런 사람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특별할 것도, 특별해질 일도 없는 게임에 유난을 떠는 모습은 한편 이해가 가질 않는 행동들이니까.

 그러나 변명하자면, 특히 디아블로에는 더 깊은 감정이 있다고 하겠다. 그 시절에 나는 안성의 주공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아양 2차 주공아파트. 203동 304호...? 였던 걸로 기억한다. 디아블로2를 하던 시절에는 부모님이 늦은 밤에야 집에 들어오던 시절이었으며 내가 피아노 학원을 다닐 때였다. 블루넷이라는 pc방이 그 앞의 사거리에 있었으며 가끔 밤에는 아버지와 형과 함께 그 피시방을 가기도 했었다. 그런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 어느 여름 방학에 아직 총각이셨던 큰외삼촌네에 일주일 간 머물렀던 적이 있었다. 컴퓨터는 두대였고 형과 스타크래프트 및 포트리스를 계속 하고 또 주문음식을 원없이 시켜먹었었다. 어렸던 우리에겐 대단한 낙원이었다. 큰외삼촌께서는 디아블로를 싱글로 하고 계셨는데 흥미가 생긴 우리는 그 캐릭터들을 플레이해보며 게임을 접했다. 대단한 신세계였다. 그 때의 내게 온라인 알피지 게임이라고는 바람의 나라와 일랜시아 정도가 전부였으니까.

 안성에 돌아온 후에는 씨디가 없었기 때문에, 피시방에 가서 조금씩 하는 게 전부였다. 그러나 배틀넷이라는 개념은 스타크래프트에서 접해본 게 다였기 때문에 익숙하질 않았다. 우리는 정식 배틀넷 대신 오픈배틀넷을 했었는데, 데이터를 각각의 컴퓨터의 저장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우리는 매번 피시방을 가서 다른 자리를 앉았으므로, 매번 아이디를 새로 키운 셈이다. 신나게 키워놓고 다음에 갔을 때 계정이 없다고 뜨는 그 기현상에 속상했던 기억은, 웃음버섯처럼 번져있다.

 우리가 디아블로2를 너무 하고 싶어하는 것을 알게 된 큰 외삼촌과 막내외삼촌이 디아블로 시디키를 주셨다. 우리는 컴퓨터를 하루에 두 시간을 할 수 있었으므로 부모님이 계실 때에는 컴퓨터를 할 수 없었는데(부모님이 오시기 전에 그 시간을 다 써버렸으므로), 디아블로가 뭔지, 처음으로 12시까지 잠에 들지를 않다가 12시부터 게임을 한 기억이 있다. 그 때에 TV에서는 드래곤 하트라는 영화가 하고 있었고 부모님께서는 그걸 시청하셨다. 거실 컴퓨터에서는 우리가 디아블로를 하고 있었다.

 형은 어떨지 모르지만 내 스타크래프트의 기억은 거의 브루드 워(확장팩)에 기반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디아블로2의 확장팩이 나오리라는 상상조차 하질 못했었다. 그런 와중에 디아블로2의 확장팩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나는 또래보다 컴퓨터에 익숙했지만 그래 봤자 시골 촌놈이 주목 받는 정도의 수준이었으므로, 그 엄청난 소식을 형을 통해 들었다. 형의 친구들은 가끔 형을 공짜로 피시방에 데려가주고는 했는데, 나를 데리고 가주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대단한 사람들이다.) 오리지널 버전의 케릭터들은 확장팩에서는 할 수 없었으므로 확장팩 전환을 해야 했는데, 나는 그 달콤한 유혹에 못 이겨 내 본케를 전환해버리고야 말았다. 그리고 확장팩은 그야말로, 엄청났다 ! 차암이 생기고 새로운 뚜껑이 생기고, 룬이 생겨났다! 액트5 (지금은 5막이라고 하지만 나에게는 액트5가 더 익숙하다.)에 진입할 때 바알의 그 위압감은 온 몸에 전율을 돋게 했다! 스토리 전반을 파악하고 있지도 못했지만, 그 단편의 영상만으로도 나는 신세계에 진입한 느낌이었다. 피시방의 사장님은 형과 형 친구들에게 각종 유니크템을 주셨다. 그러다 담배를 사온다고 하셨는데 그걸 기다리며 게임을 하다 시간이 다해 제일 중요한 아이템을 받지 못한 기억이 난다. 그 피시방의 구조는 아직도 기억을 하지만 그곳이 어디었는지는 도무지 모르겠다.

 아무튼 꿈 같은 2시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자 허무한 내 계정만이 남았다. 새 케릭을 키웠지만 확장팩의 신기루가 겹쳐 도무지 게임 할 맛이 나질 않았다. 가끔 피시방을 가면 구경을 하곤 했다. 그러던 중에 조던링과 버그링의 출현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몰랐지만, 그런 링을 하나만이라도 갖고 싶어했던 간절함이 기억난다. 

 지금에야 고백하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 내가 검도 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그 시절에 우리 동네의 체육관에서는 아이들을 꾀기 위해 학원 신청을 하면 여러 물품들 중에 두개를 골라 가져갈 수 있도록 했는데, 그 물품 중에 디아블로2 확장팩이 있던 것이었다. 나는 다이어트를 하고 싶은 맘과 확장팩을 하고 싶은 맘에 학원에 등록을 했지만, 안타깝게도 한정된 물품인 확장팩은 이미 전부 없어지고 난 후였다.

 그 정도의 열정이었다. 피시방에서 디아블로를 하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집에서 앵벌을 뛰며 부케를 키우던 시절이었다. 시간이 지나 카우방의 존재를 알게 되어 처음으로 쩔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인 때였다. 친척들과 만나 피시방에서 디아블로를 켜 카우방을 돌던 시절이었다. 천진한 시대의 놀거리였다.

 방학에 학원차를 기다리기 전에는 디아블로를 틀고 옆의 티비로는 닥터 슬럼프를 보았다. Not enough mana. 라는 대사를 외우고 다녔으며 마나가 너무 마나(많아)라는 드립을 치기도 했다. 그래, 디아블로에는 디아블로도 있지만 닥터 슬럼프도 있고, 피아노 학원도 있으며, 아양주공 2차 아파트가 있으며 검도 학원이 있다. 

 이 게임 하나에는, 몇 년에 걸친 내 어린 날의 기억이 응축되어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끔 들여다보는 기억들이 있다. 그리고 게임을 플레이 하는 행위에는 단편적인 기억이 아닌, 응축된 기억을 플레이하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나는 철 지난 게임들을 하는 것을 좋아하며, 디아블로2에 애정을 가진다.

 확장팩을 몇 년 하고 얼마쯤 지나 이사를 하게 되고 워크래프트3로 갈아타게 되지만, 유즈맵이라는 새로운 에드온, 혹은 모드에 대해 빠지게 되지만 그것은 별개의 이야기다. 

 그냥. 게임을 하다가 문득, 주절거리며 쓴 잡 생각.
출처 내 블로그
http://blog.naver.com/saybluesea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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