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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백일장] 친구
게시물ID : readers_1463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DirectorJB
추천 : 5
조회수 : 398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4/08/11 23: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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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이 되고 싶은 사람들의 '병신같이 웃긴 글'이 올라오는 곳
바로 그 곳.
병신이 병신인걸 알면은 병신아냐 병신은 병신이 병신처럼 병신인 걸 몰라야 병신인데
병신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
바로 그곳.

책얘기도 조금은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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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이건 내 삶을 바꾸고 내 가치관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어떤 사건, 혹은 계기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 친구가 개봉했을 때 내 나이는 중 3이었고. 우리는 청소년 관람 불가였던 그 영화를 어렵사리 구해서 몰래 봤었다.
영화속에 나오는 친구의 정의. 가깝게 두고 오래 사귄 벗. 그 말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되새겼다. 나는 우리가 그런 친구인 것 같았다.
아버지의 일 때문에 고등학교 진학을 경기도의 외진 곳으로 하게 되었고 가깝게 두지 못한 벗은 오래 사귈 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친구들을 모두 잃은 것이다. 물론 만나려고 하면 만날 수는 있었지만 그럴 여건도 시간도 녹록치 않았다. 물론 내 의지도.
그렇게 입학한 고등학교엔 낯선 것 투성이였다. 등굣길도 교복도 냄새도. 심지어 하늘조차 익숙치 않은 느낌이었다.
원래 외향적이던 성격은 아니었던 터라 아는 사람 없는 타지의 고등학교 생활은 점점 내 안의 세계를 넓혀가는 시간이 되었고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이제는 친구를 만들어 보려 해도 이미 지난 1년간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까지 와 있었다.
그때 그 아이를 만났다. 큰 키에 활발하고. 장난기 가득하며 매일 운동장에서 공을 차던 아이. 내 인생을 바꿔준 놀라운 존재. 동수.
나는 언제나 처럼 조용히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고 동수는 친구들과 싸움박질 비슷한 장난을 치고 있었다. 레슬링과 복싱이 혼합된 듯한 몸을 쓰며 부대끼는 놀이였는데 서로 맞닿은 채로 힘겨루기를 하는 듯 하더니 교착상태도 잠시, 동수가 이내 상대방을 날려버렸다. 내팽개쳐진 상대는 그대로 밀려나 내게 부딪쳤고 나는 그대로 꼴사납게 나자빠지고 말았다. 덩치도 왜소하고 겉돌던 내가 그 상황에 부정적인 반응을 했다간 어떤 결과가 나올지 뻔했기에 조용히 일어나 교복을 털고 있었는데 묵직한 무언가가 내 목을 부드럽게 감쌌다.
"미안하다 야"
동수였다. 괜찮다며 아무렇지 않은 척 내 책상과 의자를 다시 정돈하려는데 동수가 강하게 나를 잡아 당겼고 목이 잡힌 나는 헤드락에 걸린 마냥 끌려갈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엉거주춤한 상태로 복도까지 날 끌고가며 동수는 뭐 먹고싶냐고 물었고 나는 그때까지도 상황파악이 안되고 있었다.
"햄버거 쏠게 새꺄 인상좀 펴봐"

 그 날 이후로 동수는 나에게 많은 관심을 표현했고 쉬는시간에도 이따금 찾아와 내가 뭘 하는지 어떤 책을 읽는지 시덥잖은 농답을 주고받았다. 1년만에 또래 친구와 갖는 정서적인 교감은 이내 얼어 붙었던 나의 마음을 풀어헤쳤고 나는 동수와 점점 더 가까워 졌다. 자연스레 동수의 패거리와 함께 놀게 되는 경우가 잦아졌고 학교에 가는 것이 즐거워 지고 있었다. 다시 내게 친구가 생긴 것이었다. 평생을 함께 한다는 고등학교 친구. 가깝게 두고 오래 사귈 벗. 그게 나만의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지만 말이다.

 방학이었다. 더운 여름 방학. 뙤약볕을 피해 수퍼앞 천막에 앉아 동수와 아이스 크림을 먹고 있었다. 계곡으로 놀러가자는 뭐 그런 시덥잖은 얘길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중요한 얘긴 아니었으니까. 아니 중요했을 지도 모르지만 그 다음의 사건이 더 큰 일이었기 때문일 지도. 아직도 뇌리에 선명하다. 개미들이 일렬로 지나가고 있었고 나는 그 앞에 내가 먹던 아이스크림 국물을 떨어트렸다. 개미들은 당황하고 있었고 동수는 누워서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있었다. 
"아 달다"
아이스크림을 다 먹은 동수가 상체를 일으키며 말했다. 조금 떨어진 쓰레기통에 아이스크림 막대를 던져 넣었다. 그리고 일어나 엉덩이 부근을 두어번 털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 때의 햇살과 구름의 모양. 바닥의 개미 숫자. 매미의 울음소리. 그 순간의 모든 것이 내 뇌리에 박혀있다. 동수가 말했다.
"너도 친구면 좋을텐데"
번개가 치는 것 같았다. 귀 언저리에서 뭔가 삐이- 삐이- 하고 울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내뱉었다.
"우리 친구잖아?"
아마 난 그때 억지미소를 짓고 있었던 것 같다. 동수가 말하기 까지의 모든 것이 뇌리에 박혀있지만 그 이후의 장면들은 흐릿하다. 특히 나의 모습은 더 그랬다. 동수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날 바라 봤고 그 표정엔 조금의 장난기도 없었다. 마치 태어나서 처음 경험한 어떤 것인마냥 신기하고 생소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우리가?"
적막. 매미가 네번정도 울었다. 바람도 한번? 아니 안 불었나. 어쨌든 잠시? 아니 바로 말했을지도 모른다. 모르겠다. 동수가 말을 이었다.
"에이, 우린 아직 친구는 아니지"
내가 대답을 했나? 계속 동수를 쳐다봤나? 뭔가 대화가 이어졌나? 그건 불확실 하다. 손에 들고있던 아이스크림이 녹아 덩어리째로 바닥에 떨어졌다. 철퍽 하는 소리와 함께 정신이 들었다. 동수는 없었다. 우린 친구가 아니었다. 나는 그저 이방인에 불과했다. 동수는 없었다.

 그 이후에도 동수는 날 자주 불러줬다. 나는 여전히 동수의 패거리와 함께 하고 놀러도 다녔지만 알수없는 거리감이 내 안에서부터 차곡 차곡 차오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수가 보신탕을 먹자고 했다. 중복이었던 것 같다. 개를 키우지도 않았고 개와 어떤 교감이 있었던 것도 아니기에 개고기에 대한 거부반응은 딱히 없었지만 그냥 동수의 제안에 반대를 하고싶었다. 반대를 위한 반대. 우린 친구가 아니었으니까.
"개를 어떻게 먹냐. 야만스럽게. 개는 우리의 친구잖아"
동수가 내 목에 팔을 둘렀다. 키차이 때문에 어깨동무인지 헤드락인지 아리송한 첫만남 때의 그 자세로 웃으며 말했다.
"야 맛있으니까 친구지, 소도 돼지도 다 친구야. 왜? 맛있으니까!"
동수를 올려다 봤다. 눈이 마주쳤다. 피하지 않았다. 감정이 북받쳐 올랐고 세상이 흔들렸다. 심장이 뛰었다. 동수가 나를 보고 나도 동수를 보았다.
"나도.. 맛있어"
동수가 웃었다.
"먹어봐야 알지"
하늘이 지워지고 바닥이 사라졌다. 심장소리만 울려퍼졌다. 

그리고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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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월호를 아직 잊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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