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가 자녀의 서울대 합격을 취소할 수 있게 공문을 써달라며 고교에서 피켓시위를 하는 등 항의하고 있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요구를 하며 학교와 싸우는 걸까.
대구 A고교 3학년인 B 군은 8월에 서울대 수시모집의 특기자 전형에 원서를 냈다. 비슷한 시기에 고려대 중앙대 울산대의 의대 수시모집에도 지원했다.
B 군의 어머니 C 씨는 “담임이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에 원서를 내면 의대 수시원서는 어디든 써주겠다, 1단계 서류전형에 합격해도 원하지 않으면 2단계 면접에 안 가면 되지 않느냐, 1단계만 합격해도 명예가 높아지니 학교를 위해 서울대를 쓰라고 강요했다”며 “내가 자기소개서를 보냈고 담임의 신용카드로 결제해 원서를 냈다”고 말했다.
문제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지난달 10일 밤에 생겼다. 가채점을 하는데 담임에게서 연락이 와서 학교로 찾아갔더니 원서를 냈던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에 우선선발로 합격됐다는 소식이었다. 담임은 “지금까지 대구에서 서울대에 우선선발로 합격이 된 적이 없어 이럴 줄 몰랐다. 수능을 잘 못 봤다면 기쁜 소식이 됐을 텐데 미안하다”고 했다고 C 씨는 말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의 방침상 수시 합격자는 등록 의사와 상관없이 정시에 지원할 수 없다. B 군은 함께 수시 지원한 의대 3곳은 떨어졌다.
B 군의 부모와 담임은 다음 날 서울대 입학관리본부를 찾았다. 담임은 ‘학생의 의지 및 진로와는 상관없이 3학년 진학부장인 저의 위치, 학교 정책과 실적을 위해 임의대로 학생 동의 없이 원서를 제출하고 본인의 신용카드로 결제했다. 귀 대학의 입학 규정에도 위배되니 합격을 취소해주길 간곡히 부탁드린다’는 내용의 요청서를 냈다.
서울대는 “공식 문서가 아니라 받아줄 수 없다”고 했다. 실무자들은 전례가 없는 일에 약간 당황하면서 일단은 공문 형태로 내라고 했지만 합격 취소가 정말 가능한지에 대해선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C 씨는 “아들이 언수외, 과탐 세 과목에서 표준점수가 606점이 나왔는데도 의대 정시 원서를 못 내고 재수를 하게 생겼다. 학교에서 공문을 발송해 서울대의 공식결정이라도 들어보고 싶다. 하지만 학교는 내년에 지원할 학생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며 묵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담임은 “수학과 과학을 잘하는 학생에게 서울대에 지원하라고 권유하지 않는 건 교사로서 직무유기다. 권유를 두 번 했을 뿐 결국 원서를 낸 건 학생과 학부모”라고 말했다. 또 이 교사는 “학생이 자살하겠다, 대구시내에 플래카드를 걸겠다고 협박해 요구대로 ‘내가 마음대로 원서를 냈다’고 합격 취소 요청서를 써줬다. 하지만 내가 하지 않은 일을 공문으론 절대 해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공방과 관계없이 서울대는 합격 취소 처리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11일 밝혔다. 서울대 관계자는 “고교 내부 문제일 뿐 우리가 합격 취소 조치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