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계 최대 현안은 역시 선거제도 개혁이다. 현재 연동형비례대표제 관철을 강력하게 바라는 쪽은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야3당이다. 반대편에는 법적 시한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예산안 통과를 주도했던 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있다. 예산안 통과를 공조했던 두 당이 선거제도 개편에 미온적이라는 인식은 언론에 의해서 더 강화된 측면이 있다. 현행 제도에서 압승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여당인 민주당이고, 최근 지지율이 소폭 상승하는 기류를 보였던 제1야당도 과거의 지위를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할 수 있다는 해석이 주류를 이뤘다. 현행 선거제도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강한 당 간판을 달고 출마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에 지지율 1등, 2등하는 당이 유리할 것이라는 추론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다만 일각에서 나오고 있는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180석 이상 차지할 것이라는 여당 안팎의 전망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김무성 대표 등 새누리당 지도부가 20대 총선에서 180석 이상, 최대 200석 이상도 가능할 것이라고 설레발을 쳤던 것이 불과 2년 여 전이다. 다음 21대 총선까지는 1년 반 가량 남았다.
현재 분위기대로라면 여당이 유리한 구도임은 분명하다. 올해 6.13 지방선거가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대 민주개혁정부 지도자들이 내세웠던 가치를 계승하자면 선거제도 개혁은 불가피하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역구도 타파에 몸을 던졌다. 두 지도자의 숙원을 풀어준 것은 역설적으로 이명박, 박근혜 정부 9년이다. 박정희, 박근혜 지지세력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구미시장이 민주당 소속이라는 사실만 보더라도 정치 지형이 많이 바뀌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례성을 높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야3당이 주로 주장하는 것처럼 ‘사표 최소화’라는 것만으로는 의미를 다 설명할 수 없다. ‘소수 정당들이 자신들의 살길을 찾으려는 몸부림’이라는 일부 정치권의 지적도 전부는 아니다.
정당의 지지율이 실제 의석으로 반영되는 국회의 모습은 어떨까. 최소한 현재 소선거구제 하에서보다는 ‘뺄셈정치’가 대폭 줄어들 것이다. 지금까지는 1등 아니면 2등 당 꼬리표를 달고 나온 후보가 선출됐다. 이런 구도 하에서는 나의 강점을 내세우는 것보다 상대편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것이 승리에 더 유리했다. 국회의원에게 가장 중요한 때가 선거철인 만큼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전략이 4년 동안의 정치활동을 관통한다. 사회구성원들이 흔하게 접하는 말도 안되는 주장, 행위는 ‘나름의 합리’에 따른 것이다. 상대방이 잘 못한다는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면 어떤 행위도 할 수 있다는 인식이다. 심지어 같이 오물을 뒤집어쓰는 전술도 등장한다. 관성적으로 투표하는 지지층이 두터울수록 정치혐오가 오히려 득이되는 역설도 가능하다. 하지만 지지율이 의석을 결정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1등 혹은 2등 당이 서로를 끌어내리는 것만으로는 승리를 담보할 수 없게 된다. 그러한 정치행위의 과실을 제3당, 제4당 등이 얻어갈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노골적인 견제가 더 이상 자당의 세력확대를 의미하지 않게 된다. 결국 정당들은 ‘불가피하게’ 자신들의 강점을 내세워야 할 것이다. ‘불가피하게’ 보통 사람인 우리 사회구성원들의 눈치를 봐야만 할 것이다. 만약 그러한 선거제도라면 과연 자한당 곽상도, 김현아 그리고 전희경 교육위원이 유치원3법을 가로막을 수 있었을까.
한편 비례성 강화가 극단적인 정치세력을 가두는 역할도 할 수 있다. 만약 당장 다음 총선부터 비례성 강화 선거제도가 시행된다면 현재 자한당은 둘 이상으로 쪼개질 가능성이 크다. 박근혜 지지층 15% 안팎을 믿고 당에 남을 사람들과 확장성이 제한된 당에 미래가 없다고 판단한 인사들이 새로운 보수의 필요성을 강변하며 새로운 집단을 형성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만약 현재 자한당을 비박계가 장악한다면 친박신당이 탄생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 것도 이러한 맥락이 깔려 있다. 15% 지지율을 의석으로 환산하면 45석이다. 오히려 친박계 의원들로서는 언행을 더 자유롭게 할 수 있고, 다음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되는 셈이다. 만약 친박계 지역구 의원들에 대한 인적청산이 이뤄졌을 경우 신당 창당 후 비례성 강화 선거제도 개혁 흐름에 동참했을 가능성이 크다. 박근혜 탄핵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세력이 명확히 다른 당과 구분된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의회민주주의의 성숙도를 증명하게 될 것이다. 다른 정당들이 명확하게 해당 정당과 선을 그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목적에 따라 ‘박근혜 불구속 재판’과 같은 타당하지도 않고, 실현가능성도 없는 주장을 내놓을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권력지형도 크게 바뀔 것이다. 많은 사회구성원들이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 가령 ‘저 사람들은 국민의 공복, 민의를 대변한다면서 왜 대기업 편을 드는 거지?’, ‘국민들의 여론이 이러한데 왜 저런 소수 집단들에게 휘둘리지?’ 와 같은 의문을 훨씬 덜 갖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정당과 국회의원들이 가장 우선순위에 두는 것은 정당의 존립과 자신의 재선이다. 대기업의 자본이 나의 재선에 도움이 된다는, 소수집단이지만 여론을 주도할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진 집단을 돕는 것이 유리하다면 기꺼이 정치공학적 결정을 내리는 정치인들이 적지 않다. 만약 정당의 존립과 국회의원의 재선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유권자, 국민이라면 그들의 다수의 의사에 반하는 결정, 명분이 없는 결정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현재 선거제도 개혁을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이 그네들의 밥그릇 싸움이라는 냉소적인 주장도 나온다. 물론 맞는 말이다. 허나 집단의 세력이 강화되어야 바라는 바를 관철시킬 수 있으니 밥그릇 싸움이라고 해서 마냥 천박하게 볼 것도 아니다. 다만 지루하더라도 어느 집단의 주장이 설득력 있는지 따져보는 것이 의미가 있을 따름이다. 고 노회찬 의원이 ‘선거제도가 바뀔 때 정치권의 민낯이 드러날 것이다’라고 했던 지적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각 정치권에서 나오는 가시 돋친 언사들 속에 과연 사회구성원들에 대한 고려는 들어있었나. 오히려 이러한 모습들 속에서 비례성 강화의 이유를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개혁이 이뤄진다면 자신의 부고 말고도 정당, 정치인이 두려워할 보도가 생기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