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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가 말하는 한국 문학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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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마틴K
추천 : 8
조회수 : 403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8/12/27 00: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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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이건 좀 대담한 가설입니다만, 한국의 본격 문학도 이제 장르화 의 위험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어요.

 장르화된다는 것은 말 안 해도 아는 것들이 늘어난다는 거죠. 예를 들어 갱 영화에서 마피 아 하면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었죠. 주머니에서 뭐가 비쭉 나와 있으면 말 안 해도 총이라는 것을 알았죠. 트렌치코트에 중절모 쓰면 형사고. 

  그랬듯이, 요즘의 한국 순수 문학의 주인공들은 관습적으로 음울합니다. 그가 왜 음울한지, 실직을 해서 그랬는지, 실연을 당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그냥 우울증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단 말이죠. 일종의 장르적 규칙과 유사합니다. 뿐만 아니라 왜 다들 가난하게 반지하방이나 옥탑방에 사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죠. 다들 알고 있다고 전제하는 거죠. 

  가족 관계는 희미하고 취미 생활도 비슷한 경향을 보입니다. 이를테면 스쿼시나 골프, 수상 스키 같은 걸 즐기는 주인공들은 없잖아요. 만약 순수 문학의 장르적 규칙이라는 게 있다면 그런 취미는 이미 배제돼 있 는 겁니다. 반면에 프라모델 조립처럼 혼자 할 수 있는 취미 활동은 허용이 되죠. (웃음) 

  가끔 신춘문예나 소설 공모 심사 같은 것을 하다 보면 요즘의 문청(文靑)들이 이미 그런 장르적 규칙을 숙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심증이 들 때가 있습니다. 신춘문예에 응모하는 작품들을 보면 철저하 게 그런 규칙에 얽매여 있어요. 추리소설에서는 대부분 살인이 발생합 니다. 또 그 살인의 대부분은 밀실에서 발생하지요. SF에서는 로봇이 주 인을 공격할 수 없고 미래는 대체로 디스토피아라는, 규칙이라고 부르 기에는 느슨하지만 적어도 그 장(場)의 참가자들은 공유하는 느슨한 원칙들이 있지요. 우리나라 본격 문학에서도 암묵적으로 그런 합의들이 존재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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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내면 같은 거 누가 궁금해하냐는 정유정 작가의 말이 제 머리를 빡때린 적이 있었습니다.
내밀한 내면, 우울함을 다룬 소설에 진절머리가 나있었거든요.
그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서 가져와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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