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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사랑이란, 귀차니즘을 극복하는 것인게야
게시물ID : freeboard_146935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권종상
추천 : 3
조회수 : 14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1/14 13:58:40

롱 위크엔드의 쉬는 날. 
다음주 월요일은 마틴 루터 킹 데이여서 만일 내가 내일도 그냥 쉬기를 원했다면 나흘 내리 쉴 수 있는데, 수퍼바이저가 제게 토요일 일할 수 있냐고 물어 왔길래 그냥 일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럼 저는 홀리데이 페이라고 해서, 원래 쉬는 날 일하기 때문에 받는 수당에 본봉을 챙길 수 있기 때문에 단 하루만 일하고도 평소 본봉의 두 배를 받을 수 있으니까 그걸로 마누라 생일 선물 살 돈이라도 더 챙길 수 있다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긴 합니다.

아침에 아이들을 학교에 차례차례 떨어뜨려 주었습니다. 지원이는 아침에 학교 밴드부 연습이 있어서 일찍 나가기 때문에 먼저 떨어뜨려 주었고, 집에 와서 한 시간쯤 있다가 지호를 다시 떨어뜨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아내가 누워있는 옆으로 들어가 쏙 누워서 꿀잠을 즐기다가, 아내의 출근을 보고 나서 집안일을 시작했습니다. 쓰레기 내다 버리고, 이것저것 정리할 것들 하고. 

사실 나이가 이 정도 들기까지 몰랐습니다. 이런 잔일들이 얼마나 손이 가는지를. 빨래 하고, 그거 꺼내서 개고, 설겆이 하고... 이런 일들을 아내는 해야 하는 거니까, 또 익숙해졌기 때문에 하는 거지만 그 일들 자체가 참 귀찮겠구나 하는 생각을 깊이 해 본 건 솔직히 얼마 되지 않습니다. 해 보면 귀찮고 그냥 넘어가기 쉬운 일들이었으니까요. 

생활 속에서 그런 일들이 많습니다. 단지 귀찮다는 이유로 뒤로 미루다가 일들이 더 커지는 경우도 많고, 내 몸 조금 더 편하자고 뒤로 미뤘다가 큰 일이 되어 버리는 경우도 왕왕 겪었습니다. 조그만 잔손질이 더 큰 일들을 막아주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야 그런 일들이 꼭 필요한 것이며, 무엇보다 내가 귀찮아하는 것들이라면 아내도 귀찮지만 어쩔 수 없어서 해야 하는 것들도 많다는 것을 참 오랫동안 그녀와 함께 지내고 나서야 깨닫게 된 경우가 많은 겁니다.

뒤돌아보면 결혼 초에 그녀를 위해 뭔가를 해 주는 것은 너무나 기쁜 일이었습니다. 연애 때는 더 했지요. 그러나 같이 한 공간에서 스무 해를 살면서 저는 그녀가 해주는 것에만 익숙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 우리 어머니가 내게 해 준 것들, 그것이 사랑이 바탕이 되지 않았다면 정말 귀찮고 힘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그리고 보면 그것은 내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것입니다. 운동하는 것이 무척 귀찮을 때가 있었습니다. 어떤 날은 운동하기 귀찮고 힘듭니다. 그러나 그 귀찮음을 이기고 헬스클럽에 가서 일단 시작하면 마음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그 귀차니즘을 이겨냄으로서,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지기 힘들었던 몸매를 가지게 됐습니다. 

사랑은 내가 하기 귀찮지만 그 일을 떠안는 것이라는 생각을 문득 해 봤습니다. 물론 내 목숨 걸고 숭고하게 큰 뜻을 품고 그 뜻을 이루려는 것, 정말 위대한 사랑입니다. 그러나 일상에서, 이 작은 소시민이 할 수 있는 사랑, 내가 속한 가장 작은 사회 단위인 가정에서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마 이런 것이 될 겁니다. 당연히 개인마다 성격차는 있을 것이고, 무엇을 귀찮게 여기는가에 대해 다르겠지만, 우선은 내가 귀찮아서 떠맡으려고 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그 귀차니즘을 이겨내고 상대가 기뻐할 모습을 생각하고 몸을 움직일 수 있다면, 그것도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의 하나일 겁니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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