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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 만약 베스트에 간다면'
게시물ID : readers_1470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081023
추천 : 8
조회수 : 291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14/08/12 14: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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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밝은 감옥






 


                                                                                                                            송버러지(081023)



 프롤로그

 “에이씨. 바지에도 튀었네.” 그는 식판을 테이블에 내려 놓고 손가락에 침을 묻혀 회색 정장 바지에 묻은 얼룩을 털어내며 자리에 앉는다. 얼룩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가 자리에 앉자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그는 늘 청색 넥타이를 매고 있다. 나는 아무런 말없이 수저를 입에 쑤셔넣는다. 반복되는 짓. 반복되는 지껄임.
 “오늘도 야근이야?”
 “응.”
 구내식당에 들어서 자리를 고를 때면 나는 항상 티브이를 등진 자리를 택한다. 내가 원하는 자리를 앉을 수 있는 이유는 나의 부서가 점심 식사를 시작하는 시간에 대해 다른 곳에 비해 관대했기에 대부분 늘 앉는 곳에 앉는다.
 그는 입에 음식을 가득 문채로 말한다.
 “애들이 무슨 죄야. 선장새끼를 잡아족쳐야지. 저런 애들은 사형시켜야 돼.”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밥알이 테이블 위로 떨어진다. 작은 고춧가루가 붙어있는 밥알이 신경 쓰인다. 바라보지 않으려 숟가락을 열심히 놀려보지만 나의 시선은 그 곳에서 자꾸 멈춘다.
 메스껍다. 숟가락을 입에 넣는 손조차 메스껍게 느껴진다.
 식사가 끝난 뒤, 흡연실로 향한다. 대부분이 상사라 가벼운 목례로 문을 들어선다. 존중의 의미로써는 아니다. 음식물찌꺼기들만이 남은 식판이 생각난다. 그리고 그 위에 놓여 있는 숟가락.
 담배를 물고 불을 붙힌다.
 혼자 살게 되면서 담배를 다시 피우게 되었다. 흡연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저 멀리엔 먹구름이 보인다. 어디서부터 시작인지 알 수 없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소리와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섞인다. 내뿜은 담배연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흩어진다. 환풍기 팬이 돌아가고 있지만 눈에 보이진 않는다. 그 소리로만 그것이 살아있는지 가늠할 뿐이다. 회색 먼지들이 환풍기 틈에 두텁게 끼어있다. 담배연기를 최대한 오래 머금어본다.
 “오늘도 나가 먹을 꺼지?” 그가 묻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잠시 그의 눈과 마주쳤다가 다시 창밖으로 돌아간다.
 “나도 오늘 야근이라 같이 먹자. 거기 갈꺼지?”
 “응. 그래야지.”
 그의 입이 계속해서 벙긋거린다. 소리가 점차 희미해진다. 먹구름이 도시를 점령하는 듯 하다. 나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흔들린다. 담배는 이제 거의 다 타들어간다. 꽁초가 짓물러 검은 고름이 자꾸 배어나오는 상처와 같은 재떨이에 쳐박힌다. 그 중에서 제일 작아질 때까지 있는 힘껏 구긴다. 비명이 들려오는 듯하다.
 “요샌 매일 야근이네…. 망할 놈의 회사. 때려치우던가 해야지.” 그는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말한다. 마지막으로 담배가 머금고 있던 연기가 그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다. 빈 공간에 손을 저어 연기를 흩뿌리는 그의 손동작이 역겹다. 위선자.
 “저녁은 왜 나가서 사먹는거야? 돈 아깝게.” 희미해지던 소리가 갑작스레 돌아온다. 
 “저녁까지 여기서 먹으면 매여 사는 것 같아서.” 
 구두소리가 복도를 메운다. 자리로 돌아가는 복도에서도 그는 쉼 없이 지껄이다 그의 시선이 바뀌면서 잠시 멈춘다. 그리고 그 다음 말로 그는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는다. 그의 소리로 인해 회색 벽이 좁아진다. 넥타이를 붙잡아본다. 절벽 끝에 있는 나뭇가지를 잡은 것처럼. 그 벼랑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검고 거대한 구멍만이 있다.
 “아줌마! 제 자리 다 닦으셨죠? 커피는 제대로 안 닦으면 끈적여지니까 잘 닦아야되요.”
 “예…. 예….” 그녀는 속삭이듯 말한다.
 그녀는 마스크를 쓰고 나와 스쳐간다. 원래는 푸른빛으로 시작했을 그 마스크의 색이 누렇게 변해있다. 그녀는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녀는 투명한 비닐과 푸른색 봉지 그리고 노란색 플라스틱 통을 카트에 싣고 끌고 간다. 그녀의 등이 굽어보인다. 걸음마다 구정물이 찰랑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속에 박힌 채 익사중인 마대자루는 꼿꼿하게 굳어버린 그의 경직된 외발만이 보일뿐이다. 그녀의 걸음마다 구정물이 찰랑거리는 소리가 그의 비명처럼 들린다. 그녀의 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우리는 스쳐지나간다.
 “이럴 줄 알았다니까!” 내 옆자리에 앉은 그가 호들갑을 떨며 나를 부른다.
 “여기 봐봐. 여기.” 손가락이 향한 곳은 책상의 다리 근처. 
 “이런 걸 신경 써서 닦으라고 회사에서 돈을 주는 건데 일을 이따위로 하나. 내가 말까지 해놨는데. 아, 진짜. 책상도 끈적하네. 때려치던가 해야지. 진짜.”
 그는 의자에 앉은 채로 손은 허리춤에 올려놓고 말을 늘어놓는다. 하나같이 모양새가 일그러져있다. 그의 분노는 어떠한 글자도 쓰지 못 하는 자폐아를 낳는다.
 8시가 넘었을 때, 비는 거세졌고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도 강해졌다. 자신은 죄가 없음을 주장하는 소년이 쇠창살을 거세게 흔든다.
 “난 먼저 간다!” 그는 의자에 걸린 그의 회색 외투를 낚아채며 사무실 밖으로 뛰쳐나간다. 이제는 가야할 때다. 자리에서 일어나 어두운 사무실에 홀로 켜진 모니터를 바라본다. 컴퓨터 전원은 꺼졌지만 모니터는 꺼지지 않는다. 검은 화면만을 뱉는다. 계속해서 뱉어낸다. 그 검은 화면은 계속해서…….
 도시의 비는 하수구로 흘러간다. 그들의 남은 찌꺼기는 도랑이 되어 햇볕이 그들을 태워 작은 조각조차 남기지 않을 때까지 고통 받을 것이다. 그림자는 잠시의 위안은 되겠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다. 결과는 언제나 같다. 서서히 말라가느냐. 강렬히 태워지느냐.
 집으로 들어가기 전 태우던 담배를 흘러가는 빗물에 던진다. 급류에 휘말린 담배꽁초도 결국엔 하수구의 틈으로 사라진다. 지금 도시는 아무런 말도 없다. 옳고 그름도, 쾌락과 무력함도 느껴지지 않는 거리를 홀로 걷는다. 구원을 바라지 않는 그들의 외침이 들린다.
 결국 세상에 혼자만이 남는다.

 “오늘은 좀 어떠신가요.” 그녀는 차분히 묻는다. 
 그들은 마주보고 앉아서 서로를 바라본다. 그 사이를 가르는 것은 책상뿐이다.
 그의 앞에는 몇 장의 종이가 보드에 낀 채로 볼펜하나에 눌려있다.
 “지난번에 귀뚜라미 얘기를 이어서 해보죠.” 
 의지와는 상관없이 떨리는 손으로 볼펜을 집는다. 그러다 볼펜은 그의 손에서 미끄러지듯 떨어져 그 자리로 돌아간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가 그의 왼 손에 자신의 손을 덮는다. 
 “참 다행인게 제가 왼손잡이라는 거에요. 우리의 공통점이죠.” 그녀가 말한다.
 그는 볼펜을 다시 집는다. 그녀의 손과 함께 종이에 글자를 적어나간다.
 “좋아요. 우리가 함께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거니까요. 저는 당신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요.” 그녀는 그의 눈을 응시한 채 묻는다. 
 그의 손과 그녀의 손이 포개진 채로 펜은 종이에 선을 그어간다. 그녀는 그가 펜을 쥐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안다. 말라붙은 살가죽만이 남아있는 그의 손에서 그녀는 차가움을 느낀다. 그것은 그의 반복된 심장박동에서 흘러나온 혈액의 온도가 아니라 그의 더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것만 같다. 그것은 그의 검고 거대한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 속에서부터 흘러나오는 한기(寒氣).
 '무엇을' 그녀의 도움으로 흰 종이에 글씨를 써나간다. 삐뚤지만 그것은 획을 하나씩 더할때마다 형태를 갖춰간다. 그녀의 손으로 포개진 그의 손은 언뜻 지나치면 파트너와 왈츠를 추는 듯 우아한 동작으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그 왈츠는 한 인간과 죽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난 백골이 추는 것과 같이 기괴하다.
 잠시 동안은 거부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모든 것이요."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 말을 이어간다.
 "당신에 대한 모든 것. 모든 걸 알고 싶어요. 당신이 허락하는 한. 당신은 저를 바보 같다 생각할 수 있지만 저는 당신에게 어떤 실마리가 있을 것이라 확신해요. 저에겐 시간이 얼마 없어요. 부탁할게요." 그녀는 그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떼어낸다. 그가 자신의 어깨를 흔들어 오른팔을 들어올린다. 그 팔은 빠른 속도로 추락해 테이블과 충돌한다.
 쾅. 볼펜은 잠시 공중에 떠오르다 종이 위를 벗어나 테이블로 추락한다.
 테이블 위에 올려 진 것은 덩어리나 다름이 없다. 얼기설기 뻗은 화상이 손이라고 부르는 것의 대부분을 앗아갔다. 약지의 한마디만이 남았을 뿐. 그것은 손이라고 부르기조차 어려운 그런 것이었다. 그는 왼손을 휠체어의 팔걸이에 내려놓는다.
 "진정하세요. 저는 당신에게 무언갈 말해줄 수가 없어요. 단지 장비가 독일에서 날아오는 그 며칠 동안도 아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일 뿐이에요. 당신은 특별하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의 진심은 눈에 담겨있다고 생각해요. 우스운 소리죠? 저도 알아요."
 그의 입이 서서히 열린다. 아랫니는 듬성듬성 남아있는데 서로가 서로를 지탱해 줄 수 없어서 제멋대로 쓰러지고 있다. 위태롭게 썩어있다. 윗니도 다를 바 없이 송곳니가 하나는 남아 있고 앞니는 빠져있다. 그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듯 입을 더 열어간다. 그의 입안 저 끝 잘린 혀의 단면을 봉합한 흔적이 감옥의 창살처럼 보인다. 살아있는 인간의 가죽으로 만든 창살. 그는 그것도 아니라는 듯 더욱 더 입을 벌린다. 그의 목부터 오른뺨까지의 화마가 입힌 상처도 저항하다 결국엔 그의 의지에 꺾인다. 양쪽 입꼬리가 서서히 찢어진다. 짙고 끈적거리는 붉은 피가 그의 턱을 타고 흘러내린다. 그의 시선은 그녀에게 박힌다.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팔걸이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만! 그만! 도와주세요!" 그녀는 절규한다. 그러나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몸의 떨림은 격해진다. 상처는 조금씩 더 벌어진다. 그것은 조소와 같다. 그녀는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소리친다. "살려주세요!" 그러나 그의 눈빛은 작은 흔들림조차 없다. 그의 목젖을 지나 저 너머 깊고 검은 목구멍 그 안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그것에서 오는 한기(寒氣)가 공간을 메워간다. 그것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비웃음의 소리다.

 왜 한 사람의 죽음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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