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남해군 남면 홍현리 가천 다랭이 마을. 1024번 지방도에서 만날 수 있는 그림 같은 곳이다. 마을은 남해섬 설흘산(481㎙)과 응봉산(412㎙) 사이, 바다로 내달리는 급경사지에 제비집처럼 위태롭게 걸려 있다. 주민들은 앞에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포기하고 뒤쪽 산비탈에 기대어 산다. 바다에 면해 있으면서 배 한 척 가진 사람이 없는 동네가 바로 가천. 앞바다는 물살이 무척 세고 연중 강한 바람이 분다. 배를 댈 수 있는 선착장을 만들기가 어려웠다. 적게는 3평 남짓 삿갓배미부터 기껏해야 커봐야 100평을 넘지 못하는 마늘밭들이 바닷가 절벽부터 설흘산 8부 능선까지 층계를 이루고 있다. 대충 헤어보면 100층은 됨직하다. 이 밭들은 마늘을 걷고 나면 바로 논으로 변한다. 가천을 처음 찾는 여행객들은 이런 데서도 농사를 지을 수 있나 하고 놀란다. 급경사도 그렇지만 계단 한층 높이가 섣불리 뛰어내릴 수 없을 만큼 아찔하다. 논밭 갈던 소도 한 눈 팔면 절벽으로 떨어진다는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거려진다. 따라서 기계 농업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곳이다. 이방인들에겐 그저 한 폭의 풍경화 같기만 한 가천 다랑이 논. 바다를 보고 살면서도 결국 바다를 버려야 했던 가천 주민들의 조상들이 피와 땀으로 일군 예술작품이다. 부산 따스한 햇살 받으며... 여름을 느낀다 한국 나비 한국 꽃 남해 삼천포대교 야경 경주 안압지 야경 서울 야경 (남산 서울타워에서) [등록금] 저는 넉넉지 않은 집의 장녀였기 때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직을 했습니다. 6년 동안 한 직장에서 꾸준히 경력을 쌓는 동안 동생 둘은 모두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부모님은 시골 분들이라 남동생만 대학에 보내고 여동생은 취직을 시키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회생활하면서 여자도 많이 배우고 공부하고 싶을 때 배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여동생도 대학에 진학시켰습니다. 저 역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공부에 대한 미련이 남아 뒤늦게 야간대학에 들어가 막내 동생과 같이 대학에 다녔습니다. 동생들을 대학에 진학시키고 저도 대학에 가게 되었으니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동생은 제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더욱 열심히 공부를 하더군요. 그런데 저는 부모님이 많이 우셨다는 것은 몰랐습니다. 대학에 가고 싶어 하는 저를 공부시키지 못하고 취직하게 한 것이 미안해 여동생 앞에서 많이 우셨답니다. 그 말을 들으니 부모님 심정이 어땠을지 짐작이 가서 제 마음도 아픕니다. 직장생활 하면서 야간대학에 다니는 제가 힘들어 보였는지 부모님은 이제 직장 그만두고 공부만 하라고 하셨습니다. 남동생이 졸업하려면 아직 많이 남았고, 저도 1년이나 더 등록금을 내야 했기 때문에 많이 망설였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 졸업해서 직장생활을 하는 여동생이 힘들게 번 돈을 제게 주면서 공부 열심히 하라더군요. 부모님도 힘들게 농사지어 모은 돈을 등록금 하라며 제게 주시는 데 정말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 돈이 얼마나 힘들게 얻은 것인 줄 알기에 차마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는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너 대학 다니는 동안 한 번쯤은 부모노릇을 하고 싶구나. 한 번만이라도 네 등록금 마련해주고 싶었다.” 저는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저희 가족 모두 사랑합니다. 사진 출처 디시 인사이드 BGM SENS_He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