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끝납니다....
끝부분에 텀이 길었던 것은 고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방향으로 향해야할지.
기존에 생각했던 부분은 너무 대략적인 방향만 잡아뒀었고, 결국 같은 방식만 반복되는 것 같았거든요.
지금 결정한 루트보다는 한 회차정도 더 리와인드 하는 방향으로 생각했었지만. 사족이 되는 것 같아서요.
언제나 마무리가 중요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더 고민입니다. 지금도 그렇고요.
대략적인 결말에 한걸음 한걸음 내딛고 있어.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조금 있습니다.
분량은 아마 51화나 52화에 끝나고, 에필로그가 올라갈 것 같습니다. 마무리가 깔끔하다면 없을지도 모르지만...요.
아무튼 이번화도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50.
피가 옆구리에서 다리를 타고 흘러내린다. 몸은 굳어버린 상태였고 한지석은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머리가 어지럽다. 빈혈 때문은 아닐 거다. 피를 그렇게 쏟아낸 것도 아니니까. 일단 숨을 쉬어야 한다. 억지로 숨을 쉬려 하자 고통스럽지만 숨통이 트였다.
어떻게 하지. 한지석을 제압해야 되나? 경찰을 불러서 아니 그건 먼저 한지석을... 그럼 하연이를... 아니 정신 차리자. 우선순위를 잘 생각해야 한다. 일단 이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
잘 생각하자. 어차피 도망은 못 친다. 이미 한 번 찔린 시점에서 도망은 글러 먹었다. 지금은 그나마 칼이 꽂혀있어 피가 덜 나지만 격하게 움직이거나 뛰기라도 하면 상처가 벌어지면서 출혈은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그에 비해 한지석은 손에 입은 부상이 전부다. 다리에는 문제가 없었다. 도망쳤다간 순식간에 붙잡힐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오른손의 손등이 벌써 잔뜩 부어올라 오른 걸 보니 아마 손뼈가 부러졌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칼은 아직 나에게 있었다. 한지석의 두 손은 비어있었고 나는 배트를 꽉 쥐고 있었다.
한지석도 정신을 차리고 나를 바라본다. 두 손으로 배트를 꽉 쥐고 자세를...
“윽...”
나도 모르게 신음을 뱉었다. 자세를 바로잡다가 꽂힌 칼이 안쪽에서 움직였다. 격통이 온몸에 치달아 올라 손끝까지 굳어버리는 기분이다.
어떻게 엉거주춤 자세를 잡았다. 그러나 한지석도 일어나 자세를 잡았다.
순감 마음에 불안감이 들었다.
내가 이길 수 있을까. 도망쳤어야 하는 게 아닐까. 칼에 찔린 치명상을 가지고 맞서는 건 정말 무모한 짓이 아닐까.
그리고 그 불안감은 곧 망설임으로 변질되었다.
굳이 지금 맞설 필요는 없었다. 미룰 수 있는 거였다. 리와인더도 있다. 더 철저히 준비하면 되지 않았을까. 아니 지금이라도 리와인더로 되돌아가 준비한다면 더 쉽게... 그래. 지금 나의 최대 강점은 리와인더였다. 그걸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리와인더를 쓰기 위해서는 스마트폰을 꺼내야 했다. 주머니에 있는. 잠금을 풀고 리와인더를 켠 후 리와인드까지 몇 초 걸리지 않는다. 문제는 지금 대치 상황이라는 점이다. 나는 한지석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두 손으로 잡았던 배트를 한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한 발 앞서있던 왼발을 반보 물러났다. 일보전진을 위한 반보 후퇴다. 그리고 주머니의 스마트폰을 꺼내려는데, 한지석이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어리는 것을 보았다.
한지석이 이 틈을 놓칠 거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행동이 둔한 지금이야 더하다. 방심은 금물이다. 한발도 물러서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긴장을 놓치면 안 된다. 스마트폰을 꺼내려던 손을 멈췄다. 맞서야만 한다.
그래. 물러설 곳이 있다는 마음이 날 나약하게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분명 마음먹고 있었다. 결국 내가 맞부딪혀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라고. 리와인더는 최악의 경우 사용할 수였다. 지금은 맞설 때였다.
한지석을 주시하며, 어떻게 싸워야 할 지 고민했다. 한지석에게는 무기가 없다. 나는 칼에 찔려있다. 장기전은 불가능하다. 한지석은 오른손을 제대로 쓰기 힘들다. 대신 내가 격하게 움직인다면 한 뼘가량 꽂힌 칼이 안에서 움직이며 내장이 상할 것이다. 고통도 그렇고. 상처도 벌어져 출혈도 심해질 것이다.
여기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면? 경찰에 신고한다던가 그런 건 결국 스마트폰을 꺼내야 한다. 어느 정도 싸움이 소강상태일 때나 가능할 것이다. 소리를 질러 누굴 부른다면? 여긴 아파트 옥상이다. 바로 아래는 사람이 사는 아파트다. 문제는 지금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있다면 내가 소리를 질렀을 때 바로 올 수 있을까? 얼마나 걸릴까? 그 소리가 한지석을 자극해서 한지석이 도망치거나 나에게 죽자 살자 달려들면? 다른 사람이 올 때까지 버텨야 한다. 그나저나 소리는 지를 수 있을까? 좀 전에도 한지석에게 소리치려다 숨까지 막혔었는데.
숨을 길게 내쉬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나마 뇌 내에서 아드레날린이라도 분비되는지 고통은 가시고 정신이 고양되는 느낌이다.
그래. 시발. 부딪히는 것밖에 답이 없었다.
왼손으로 배트를 붙잡는 대신 나는 내 옆구리에 꽂힌 칼을 잡았다. 한지석은 내 의도를 몰라 언제든지 달려들 수 있게 자세를 잡고 나를 지켜보았다. 한지석과의 거리는 불과 3미터 정도. 달려들면 순식간에 없어질 거리다.
나는 그 칼을 붙잡고 뽑았다. 그리고 한지석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칼이 뽑히면서 그나마 가라앉았던 고통이 다시 나를 덮쳤다. 피가 울컥거리며 새 나오는 게 느껴졌다. 한지석이 움직일 것을 대비했는데도 고통 때문에 움직임이 늦었다.
뒤로 물러날 생각은 없었지만 거리를 주면 안 된다는 생각에 뒤로 빠지며 오른손에 든 배트를 사선으로 크게 휘둘렀다. 상처가 벌어지며 고통과 함께 피가 또 울컥 솟는 게 느껴졌지만 칼의 이물감이 없으니 움직이긴 편했다.
한지석은 몸을 멈추고 상체를 뒤로 기울이며 배트를 피했다. 잠깐의 주춤거림. 그거면 충분했다. 어쨌거나 둘 다 선수는 아니다. 결국 개싸움이다. 유효타 몇 번만 제대로 들어가면 장기전으로 갈 리가 없다.
나는 바로 왼손으로 뽑아낸 칼을 주춤거리는 한지석을 향해 던졌다. 칼이 빙글빙글 돌며 날아간다. 오른손잡이에 칼을 던지는 연습 따위 해본 적 없지만 거리는 2미터도 안 됐다. 칼은 빠르지도 않고 정확하지도 않았지만 한지석을 향해갔다. 손잡이에 맞을지 칼날에 맞을지도 모른다. 얼추 몸통을 향해 날아갈 뿐이다.
하지만 그걸 한지석은 무시할 수는 없었다. 배트를 피하느라 주춤거려서 반응이 늦었다. 그리고 칼이 날아온다는 상황 자체에 당황했다. 한지석은 쳐낼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억지로 몸을 꺾어 칼을 피했다. 덕분에 한지석은 몸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졌다.
그리고 그 앞에는 배트를 높게 들어 올린 내가 서 있었다.
퍽!
있는 힘껏 배트를 휘둘렀다. 배트가 공기를 갈랐다. 배트는 한지석에게 적중했으나, 한지석도 순순히 당하지만은 않았다. 균형이 무너진 상태에서도 고개를 돌리고 왼팔을 들어서 막았다. 나도 상당히 무리해서 움직인 탓인지 옆구리에서 고통이 느껴졌다.
시야가 살짝 흐려진 느낌이었다. 역시 칼을 빼버린 탓에 출혈이 큰 건가. 한지석은 멀쩡하지도 않은 오른손으로 땅바닥을 짚은 채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왼팔로 제대로 막지 못해 어깨까지 맞았는지 오른팔의 움직임이 자연스럽지 못했다. 다만 내 배트도 장난감인 게 문제였는지, 안쪽에 있는 알루미늄이 쑥 패여 들어가 중간 부분이 꺾여버렸다. 써먹기 힘들어 보였다.
그래도 다행인 건 한지석도 전투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 아니 더이상 싸울 수 있어 보이지 않았다. 오른손은 부러져 퉁퉁 부었고, 왼쪽 어깨도 상태가 안 좋아 보였고 팔은 더 심각했다. 팔도 부러지지 않았을까? 아니 배트가 찌그러졌으니 그렇지만도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덤벼들 기색도 안 보이니 일단은 경찰이라도 불러볼까.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수신음이 이어진다.
치명상은 이쪽이 입었고 내가 가한 것은 고작해야 골절상 그나마 손뼈는 맞추기 힘들지도 모르지만. 흉기를 쳐내기 위함이었으니 불가항력이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전화가 연결되었다.
‘네. 긴급신고 112입니다. 무슨 일이시죠?”
나는 경찰의 설명을 듣고는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순간 한지석이 나에게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