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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 백일장] 병신같은남자, 병신같지않은여자
게시물ID : readers_1474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쉬어가기
추천 : 3
조회수 : 529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4/08/12 20:4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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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게 보고 기분나쁜적 있어요? 없잖아요. - 오유대학교 병신공학과 교수」










날씨가 흐리다. 사내는 일기예보에서 며칠뒤면 태풍이 온다는 글을 본적이 있어 아마 태풍탓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 날씨가 좋네요 " 

여자는 말을 마치고 가슴이 부풀어 오르도록 크게 숨을 들이킨다.
사내는 그 말을 듣자 구름만 아니라면 썩 기분나쁠 날씨는 아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도 선선하게 불고 나뭇잎 소리도 잔잔하게 울린다. 
" 그러게요. 하늘도 맑고 "
" 거짓말, 오늘은 흐릴거라고 그랬는데 "
여자는 파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여자는 집을 나설때마다 매번 라디오로 날씨를 확인한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다. 
사내는 얼굴을 붉게 물들인다. 머쓱해진 기분에 입을 닫고 죄없는 휠체어만 거칠게 밀어댄다. 드르륵 드르륵 소리가 한층 거칠어진다. 
여자는 휠체어가 거칠게 떨리는걸 느낀다.
" 어어, 삐졌어요? 미안해요 그냥 농담 한거였어요 "
" 안삐졌어요. "
여자는 먼곳을 바라보고있는 사내는 알아채지 못한 미소를 짓는다.
" 그럼 이번엔 거짓말하지 말구, 풍경좀 말해줘요. 날씨는 어떤지, 사람들 모습은 어떤지, 나무는 어떻고 새들은 어떻고, 아이들은 어떻게 뛰어놀고 있고. " 사내는 먼산 바라보던 시선을 옮겨 여자에게로 향하고는 아까 여자가 지었던 그것과 비슷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날씨는 아까 말했듯 흐리다. 구석진 공원이라 아이들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걸어가는 길 밟는 돌바닥은 딱딱하다.
휠체어 굴러가는 돌바닥은 울퉁불퉁하다. 드르륵드르륵 소리를 가만히 듣다보면 왠지 씁쓸해지는것 같기도 하지만. 사내는 말하느라, 여자는 사내의 목소리를 듣느라 씁쓸해질 여유는 없었다. 바람이 불어 나뭇잎을 더듬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가 촉각에 영향을 미치진 않겠지만. 그 소리에 좀더 시원해진다. 가끔 지나가던 사람들이 여자와 사내에게 흘끔흘끔 눈길을 주곤했지만, 사내는 그런것까지 이야기하진 않았다. 

사내가 여자를 처음 만났던 날은 그렇게 특별하다고는 생각 하지 않지만. 사내는 그날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날 사내의 직장일은 그렇게 썩 잘풀리진 않았다. 오히려 엉망이었으면 엉망이었지. 사내는 술한잔 생각나는 날이었다고 회상한다.
여자는 고사리같은 손으로 휠체어를 돌리려 애쓰고 있었고, 사내는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사내는 한사람의 인생으로 본다면, 어떻게 꽤 성공한 인생이라고 보여진다. 꽤 좋은 학벌에 꽤 좋은 직장, 부모님과 가족들 모두 건강하고 스스로도
나쁘지 않은 자기관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사내는 사람관계를 이어나가는데 있어서는 병신이다. 처음보는 사람에게 말거는건 꿈도 못꿔봤다. 동성사이에서도 어색해 미칠지경인데,
연애는 이미 어디 저 먼 은하 쪽 어느 구석에서 일어나고있는, 저와는 하나 관계없을 먼나라 이야기다. 
그날도 사내는 자신을 그렇게 평가하고 있었다. 속으로는 도와줘야하는데 하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병신같이 " 도와 줄까요? " 라는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렇다고 말없이 휠체어를 잡아 끌어주자니. 그건또 왠지 이상한 사람 취급 받을것 같았다.
그렇게 속머리를 곯던중 문제를 해결해준건, 아니나 다를까 여자였다.

" 저기요, 보고만 있지 말고 도와줄래요? "
여자의 시선은 사내를 향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사내는 처음에는 다른사람에게 부탁하는 줄알고 여자의 시선이 향하는 쪽을 바라보며
' 나도 도와줄 수 있는데 ' 라면서 누군지도 모르는 그사람을 부러워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여자의 시선끝에는 아무도 없었다.
" 내말 안들려요? 좀 도와달라구요. "
여자의 목소리가 앙칼지게 변했다. 짜증섞인 목소리였다. 
" 저, 저요? "
처음 '저' 에서 가래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내는 헛기침을 큼큼, 하고 뱉으면서 왠지 부끄러워졌다.
" 네 당신이요. 장애인을 그냥 그렇게 멀뚱히 쳐다만 보고 있으면 어떡해요 이 매정한 사람아. "
사내의 첫사랑과의 첫만남은, 그렇게 로맨틱하지도, 사내에게 만족스럽지도 못하게 이렇게 시작했다.
사실 사내가 나중에 어떻게 자기가 거기있는지 알았냐고 물어봤더니. 그냥 설마 공원에 아무도 없겠어 싶어서 대충 아무나 도와줬으면 하는 바램으로 말했던거라고 말했다.

여자는 사내와 달리 붙임성이 좋다. 처음보는 사람에게도 웃으면서 안녕이라고 할 수 있는 미소가 있었고, 그렇게 첫 안녕을 받는 사람도 같이 달갑게 웃어주게 만드는 그런 힘이 있었다. 사건은, 그녀가 이사하던날 벌어졌다. 다리는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는바람에 짐을 놓쳐 사고가 났다. 병명은 길고 복잡했다. 외우기 어려웠다기보다는. 기억하고싶지 않았을 것이다. 더 높은곳에서 떨어질수록 고통은 더 크게 다가오는 법이고, 여자는 겉으로 활기찬척 했지만, 그런 고통을 견디기에는 너무나도 여렸다. 
그 많던 친구들도, 속을 털어내지 못하고 전과 달라졌던 여자에게서 하나둘 씩 떠나가더니. 여자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날이 되었을때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부모님들은 정말 괜찮겠냐고 걱정했다. 여자는 웃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모두 떠나간 김에 혼자 처음부터 다 다시 시작하겠다고 다짐했기때문에. 그녀는 걱정섞인 말에도 웃을 수 있었다.
물론 사내를 만났던 첫날. 결국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서는 일어나기 힘들게 되었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사내가 첫만남에 용기내어서 " 혹시 또 필요하면, 전화 해주세요 " 라며 멋쩍게 건넸던 전화번호가 지금껏 두사람의 관계를 이어주었다. 사내는 물론 그날 했던 말이 멋없다 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날 내었던 용기는 살면서 가장 잘했던 일이라며 휠체어를 밀며 생각한다.
" 저기요! "
" 네.. 네? "
여자는 여러번 사내를 불렀다. 회상에 잠겨있던 사내는 대답하지 않았고, 여자가 신경질적인 소리침에 그제서야 회상에서 깨어난다. 여자는 
" 결국 저혼자 떠들고 있던거네요, 그렇죠? "
" 그럴리가요, 경청하고 있었는걸요. "
" 정말요? "
" 당연하죠. "
여자는 고개를 휙 젖혀서 뒤집힌 얼굴로 사내를 주욱 하고 바라본다
갑작스런 시선에 놀란 사내는, 잠깐 당황하다가 자신은 당당하다는듯 여자의 눈을 응시한다. 어줍잖게 시작했던 눈싸움은 결국 사내의 패배로 끝이난다. 여자는 다시 먼곳으로 시선을 옮긴 사내를 잠깐동안 바라본다. 여자는, 사내를 바라볼 수 없다. 그러나 여자는 아마도 사내가 어디 먼곳을 바라보고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여자는 싱긋 웃고서 다시 고개를 떨군다. 
" 그럼 아까까지 뭐라고 했는지 기억해요? "
" 어... 그러니까.. "
사내는 휠체어만 없었더라면 머리를 쥐어 뜯고싶다고 생각한다. 병신, 머저리 안듣고 뭐한거야 나는 도대체가.
" 아이스... 크림 얘기였나? "
여자는 입으로 웃음이 피식 터져나오려던걸 참는다. 장난기가 발동한 여자는 풀이 죽은척 하고 말한다.
" 뭐야아, 하나도 안들었구만? 어디 얘기 하나 제대로 들어주는 사람도 없고. 다리도 아프고 앞도 안보여, 사람 사는 인생 혼자가는거 라더니, 외로워라, 그냥 어디 강물에 확 빠져 죽어버릴까 "
사내는 표정이 굳어진다. 사뭇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 그런말 하지 마요, 무슨일이 있더라도 죽는날까지 곁에 있어줄 테니까. "
정적, 침묵이 흐른다. 남자가 한말을 곱씹어본 여자는 얼굴이 화악 뜨거워지는걸 느낀다. 남자는 자기가 무슨말을 했는지도 모르고 멍청하게 있다가,
덩달아 새빨간 딸기가 된다. 
남자의 머릿속에서 수십가지의 생각들이 날아다닌다. 드디어 니가 미쳤구나, 뭐라고 생각하겠어 당연히 부담스럽지 이 미련아, 니가 뭐라고 곁에 있어준다는건데 바보, 병신, 등신같으니라고
" 가, 갑자기 날씨가 덥네요 어디 아이스크림 파는데 없어요? 하나 먹고싶은데 "
" 네, 네. 네? 네? 아. 아 네! 지금 사올테니까, 기, 기다리고 있어요! "
여자는 이상한 분위기를 날리기 위해, 물론 더운것도 한몫 했지만, 아이스크림 얘기를 꺼냈고,
남자의 쓸데없는 '네' 들은 이 이상한 분위기들을 정리시켜주는데 꽤나 큰 도움이 되었기에, 여자의 시도는 적절했다.
남자는 왜그랬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굳이 여자의 휠체어를 그자리에 놓고서는 어디론가 뛰어간다.
여자는 조용히 웃고는 나지막하게 혼잣말로 속삭인다
" 바보. "

여자는 혼자 차분해지자 남자가 했던말을 제대로 곱씹어 볼만한 여유가 생겼다. 정말로 죽을때까지 곁에 있어 준다면, 좋을텐데
잠깐동안 남자에 대한 생각을 하며 웃는다. 기다리면서 여러가지 생각들이 지나간다. 아이스크림은 뭘 사오려나, 딸기맛이라고 말해둘껄 그랬나.
그러고보니 남자가 어떤 읍식을 좋아하느냐고 물어본기억이 없다. 만약 돌아온다면 여러가지 물어봐야지 하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여자는 문득, 조용하다. 왠지 오싹하다.
새가 지저귀지 않는다. 바람도 더이상 불지 않는다. 바람도 없는데 괜히 쌀쌀해진것처럼 몸이 으슬으슬 떨리기 시작한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무섭다
아무도 없다, 아무것도 안보인다, 아무도 없는데, 왠지 누군가 있을것만 같아 소름이 끼친다, 아니 누구라도 좋으니까 옆에 있어줘.
속이 매스껍다, 어지럽고, 무섭다. 애꿎은 땅이 흔들리는것같이 흔들린다. 이대로 혼자 있는건 싫은데, 진짜로 나밖에 없는거야?
혼자있던 병실이 생각난다. 결국 또 혼자가 됐다. 혼자라는건 익숙해질 수 있다고 생각 했는데. 그래도 버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역시 혼자는 싫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으면 한다. 그런 어리버리한 목소리가 들릴때면 왠지 웃을 수 있다.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는것 같다.

"...! ...! "
사실, 남자는 멀리서 여자가 떨고있는걸 보자마자 아차 싶어서 달려왔다. 또 속으로 왜 여자를 같이 데리고 가지 않았냐며 질책하는걸 잊지 않고, 다가가서 여자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여자는 깨어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는걸 확인한다.
" 괜찮아요? 추운거면 집으로 돌아갈까요? 아니면 또 어디 다른데 아파요? 아픈거였으면 진작 말을 했어야죠. 응? "
여자는 흐리멍텅한 시야에 듬직한 그림자 하나가 생겨났음을 인식한다. 뭐라고 말하려고 입을 열려던 여자는 생각을 바꿔 고개를 푹 숙이고서 뭐라고 혼자 속삭인다.
" 잘안들려요 크게좀 말해봐요. " 고개를 푹숙이고 있는 여자는 여전히 소근거린다. 남자는 뭐라고 하는지 들어보려고 얼굴을 여자 가까이 가져간다.
갑작스럽게 여자는 다가온 남자의 얼굴을 꽈악 껴안는다.
남자는 당황한 표정으로, 하지만 여자의 팔에 여전히 안긴채 안절부절 못한다. 
" 다시는, 혼자두고 가지 마요. "
남자는 멈칫 하고서, 잠깐 동안 가만히 있다가, 무릎을 꿇고서. 여자를 한아름, 안는다.
" 앞으로, 절대로, 혼자안둘게요. "
" 진짜죠? "
" 네 정말로. "
" 약속한다고 말해요. "
" 약속할게요 "
여자는 꽉 껴안은 팔에 힘이 들어갔다는걸 알고 힘을 뺀다. 하지만, 서로 안은 팔은, 잠깐동안 풀지 않는다.





남자는 늦은밤 여자를 데려다주고 집앞에서 머뭇거린다. 오늘은 왠지 다른날보다 더 오래있었고, 왠지 지금이 아니라면 놓칠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하지만 남자는 연애라곤 한번도 해본적이 없는 병신이다. 결국, 역시나, 오늘도 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한숨을 푸욱 쉰다
" 정말 어디 아픈건 아니구요? "
" 괜찮다니까요, 진짜로 어디 아픈거 아니었어요. "
" 혹시나 집에서 어디.... "
" 아프면 꼭 전화 할테니까 어서 가요. 늦으면 또 회사에 지각했다고 찡찡댈꺼면서. "
남자는 하고싶은 말이 이게 아니라는걸 알면서 잘자라고 인사치레를 한다. 고개를 푹숙이면서 또 스스로를 자책한다.
문을 닫으려던 여자는 문틈으로 얼굴을 내민다.
" 저기요. "
" 네? "
남자는 목에 또 가레가 끼었다는걸 알고 또 헛기침을 큼큼, 한다. 여자는 그런 남자를 보고 활짝 웃으면서 큰소리로 말한다.
" 고백은 언제할거에요!-- "
여자는 그말을 끝으로 문을 쾅하고 닫는다.
남자는 또다시 멍청하게 서있는다. 그 말의 의미를 깨닫기 까지 남자는 대략 10초쯤은 곱씹고서야 괴상하고 이상야릇한 표정이 되어서는 뒤를 돌아선다

이 이야기는, 연애라곤 해본적이 없는 병신이. 정상인에게 언젠가 고백하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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