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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 부적
게시물ID : panic_10012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냥이박사
추천 : 20
조회수 : 2516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9/04/21 23:3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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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유년 시절을 시골에서 보냈다. 그때는 여름이었는데 하늘이 무척 맑았다는 기억이 난다. 잠자리가 논길에 떠다니고, 여러 동식물들이 싱그러운 소리를 뿜어대던 나날이었다. 밤이면 도시에선 볼 수 없었던 금빛 가루 같던 별을 볼 수 있었다. 아름다웠다.
  내가 부모에게 버림받아 할머니 댁에 맡겨졌다는 사실만 빼곤.
  어느 날이었다. 난 할머니가 신신당부했던 말이 있었는데 귀담아듣지 않았던 것 같다. “마을 뒤편에 사당이 있는데 거긴 절대 열면 안 되고, 얼씬거려서도 안 된다. 알겠지? 우리 강아지?”라고 했었나? 그때 난 할머니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시골 마을에서 우두머리 역할을 도맡던 나는 아이들을 모았다. 우린 곧장 호기심 가득한 고양이의 눈으로 마을 뒤편으로 향했다.
그곳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다. 그 당시 이해하지 못했지만 음양의 조화에서 음기가 가득하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하고 깨닫게 됐다. 사당이 그런 곳이었다. 나를 제외한 아이들은 분위기에 압도되어 얼어붙었다.
   “왜 이따위 것에 겁을 먹고 있어? 쫄았냐?”
  난 그런 아이들을 다그쳤지만 그들은 겁에 질린 채 하나 둘 도망치기 시작했다. 홀로 남은 나는 망설임 없이 사당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나의 눈에 괴상한 동양풍의 그림이 들어왔다. 창백한 기생이 쭉 찢어진 눈을 한 채 정면을 쳐다보는 그림이었다. 그림 앞에는 향이 피워져있었는데 갓 피운 것 같았다. 난 한동안 그림을 응시하다 슬금슬금 뒷걸음치며 달아났다.
  그날 밤. 난 사당에서 본 그림 속의 여자가 등장하는 꿈을 꿔버렸다. 이를테면 악몽이었다. 내용은 보잘것없었다. 무서운 분위기 속에서 내가 여자에게 쫓기는 이야기.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잠에서 깼을 때 그 여자가 내 머리 위에서 날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난 너무 놀라 소리를 질렀지만 이상하게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입을 크게 벌린 채 붕어처럼 끔뻑 끔뻑거릴 뿐이었다. 그때 다행히도 할머니가 나타나 공포에 질린 나를 구해줬다.
   “종수야. 혹시... 사당에 갔었냐?”
  난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 낮에 있었던 일을 이실직고했다. 할머니는 땅이 푹 꺼져라 한숨을 쉬곤 잠을 자두라고 했다. 방 너머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그 소리를 자장가 삼으며 다시 잠을 청했다.
  다음 날. 난 해가 뜨자마자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어느 무당을 만나게 됐다. 그는 남자였는데 머리카락과 눈썹이 없었다. 창백한 피부의 그는 사람을 꿰뚫어보는 커다란 동공을 가졌다.
  “쯧쯧. 어린 것이 하지 말라는 짓을 저질러서 이 지경이 됐구먼.” 하고 무당이 말했다. 할머니는 적극적으로 나를 변호하며 살길을 찾아달라고 애원했다.
  ‘살길을 찾아 달라? 내가 죽는다고?’ 난 영문을 모른 채 이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한참을 옥신각신하던 그들은 마침내 합의에 이른다.
   “좋아요, 할매. 그럼 이렇게 합시다. 부적 하나 하는 걸로. 대신 평생 해야 되는 조건. 그리고... 크흠.” 무당이 괜히 헛기침을 했다.
  할머니는 바지춤에서 구겨진 지폐를 끄집어내어 무당 앞에 내놓았다.
  “뭘, 이렇게나 많이...” 무당이 눈치를 보며 지폐를 세려 본다. “하나, 둘, 서이, 너이...” 무당은 나무 장롱을 열어 나무로 된 작은 목걸이를 꺼내 내게 건넨다.
   “앞으로 이것을 절대 목에서 떼어놓지 말고... 그리고 두 번 다시는... 하지 말라고 하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니 제발 하지 말 거래이.”
  난 목걸이를 찬 이후 아무 문제없이 자랐다. 괴상한 꿈도, 사당 속의 기생도 두 번 다신 만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났다. 내 버팀목이었던 할머니의 죽음과 함께 난 어른이 됐다. 어느새 30대 중반의 직장인이 된 나는 유년 시절로부터 멀리 달아나 살고 있었다. 여전히 목걸이를 찬 채로. 간혹 목걸이를 차지 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렴풋이 떠오르는 사당 속의 기생은 섬뜩한 이미지로 떠올랐다.
  며칠 전,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과도한 음주로 인해 간경화가 의심된다고 했다. 의사는 내게 금주를 권했다. 하지만 난 그날도 어김없이 회식에 참여해 끝까지 남았다. 그리고 생전 처음으로 의식을 잃었다.
눈을 떠보니 응급실이었다. 회사 동료들은 날 보며 놀리기 시작했다. 속은 매스꺼웠지만 눈을 뜬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습관적으로 목에 손을 가져다 댔다.
  허전했다. 15년간 한 몸과 같았던 목걸이가 사라졌다.
 
  불안한 마음과 달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를 15년간 속박했던 그 목걸이. 아니 어쩌면 그보다 무당의 말이 날 속박했는지도 모른다. “하지 말라는 짓은 하지 마라.” 알게 모르게 난 그 말의 대부분을 지키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젠 다르다. 난 모든 속박을 벗어던진 채 마음대로 살 것이다.
  난 설렘을 가득 안고 아침 햇살을 맞이했다. 빨간 불임에도 횡단보도를 건너려던 난 맞은편 인도를 보곤 머리털이 곤두서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 사당 속의 기생이었다. 그녀는 입꼬리를 올린 채 날 한참 동안 노려봤다.
 
  난 이제 어른이다. 이런 건 분명 심리적인 문제일 것이다. 난 정신과 상담을 받으며 이 현상을 극복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점점 걷잡을 수없이 커져만 갔다.
  그러다 어린 시절 겪었던 일이 반복됐다. 악몽을 꾸고 난 뒤 잠에서 깨자 사당 속의 기생이 나를 내려다보는 일. 그때 날 구해준 할머니는 이제 없다.
  그날 이후 난 잠을 잘 수 없었다. 온갖 카페인이 잔뜩 든 음료와 각성제를 먹으며 며칠을 버텨보았다. 하지만 쏟아지는 잠을 피할 길은 없었다.
 
 다시 잠이 든 밤. 무척 피곤했음에도 난 또다시 악몽을 꿨고 잠에서 깼다. 난 눈을 뜨기가 두려웠지만 과감히 눈을 떴다. 텅 빈 천장. 난 안도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손을 땅에 짚자 무언가 손에 잡혔다. 그것은 아주 긴 머리카락 뭉텅이었다.
  난 회사에서 조퇴를 하고, 내친김에 병가를 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부장에게 보고할 때도 손을 떨었는데, 집에 와서까지 손을 떨고 있었다.
  목걸이, 그것을 찾아야 한다. 난 회식장소를 시작으로 응급실까지 그날의 동선을 그리며 목걸이를 찾아 나섰다.
허사였다. 그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도저히 나타나주질 않았다.
  대머리에 커다란 동공... 난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무당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그래, 그라면 나에게 또 다른 구원의 길을 열어주겠지.
  난 회사에 연차를 내고 시골로 내려갔다. 하지만 아무리 무당을 찾아보려 했지만 그의 머리털 하나조차, 아 머리털은 없었지. 찾기가 어려웠다. 난 한참을 헤매다 무언가에 홀린 듯 사당 앞에 와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해는 떨어진지 오래였다. 별들이 춤을 추는 밤이었지만 난 두려움이 느껴졌다.
  눈앞에 보이는 사당에서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난 그 자리에 얼은 듯 바라만 보고 있었다. 조금씩 문이 열리던 그때...
  누군가 거칠게 문을 닫아버린다. 그와 동시에 정신을 차린 나는 눈앞의 누군가를 응시했다. 그였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무당.
   “어디서 많이 봤다 해서 쫓아와봤더니... 네놈이었구나?”
   “저, 저를 기억하세요?”
   “암, 기억하고말고. 청개구리 같은 아이가 이만큼 장성했구나. 한데... 다시 이곳에 나타난 걸 보니... 그 버릇을 못 고쳤나 보구나. 목걸이는 어쨌니?”
   “아... 그것이.”
  “말 안 해도 알겠다.” 무당은 내게 자신을 따라오라 손짓한다. 어찌 거부할 수 있겠는가? 난 군말 없이 무당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무당이 거주하는 사당은 어린 시절에 봤던 것보다 화려해졌다. 그땐 소박한 인상이 강했는데 지금은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단색화들로 장식돼 있었다. 국내에선 요즘 단색화가 잘 나가지 않는가? 이를테면 커다란 백지에 점들만 박힌 그림들 말이다. 무당에게 별난 취미가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무당은 장롱을 열어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난 한참 동안 그 모습을 지켜봤다.
   “없다...” 무당이 말했다.
  내가 영문을 묻자 무당은 깊은 한숨을 내쉰다.
   “그러게 이 녀석아. 내가 하지 말라는 짓은 하지 말고 살라고 했지?”
   “... 죄송합니다.”
   “인간이라는 게 다 그런 거지 뭐. 너만 그런 건 아냐. 다만... 너를 지켜줄 부적이 더는 없다는 게 문제지.”
   “그럼, 전 그 기생한테 죽게 되나요?”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뭐... 아주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크흠.”
  무당이 괜히 헛기침을 한다. 난 할머니가 무당에게 돈을 건넸던 것을 기억해낸다. 난 품에서 지갑을 꺼내 카드를 내민다.
   “에헴, 아 동자님이 방법을 알려주실 거 같은데, 아 동자님은 지폐를 좋아하시는구나. 옳거니.”
   “동자님이 세금을 아주 싫어하시나 보군요?” 난 카드를 도로 넣고 10만 원 권 두 장을 꺼내 내민다.
  무당이 잽싸게 돈을 품에 넣으며 손가락 두 개를 들어 보인다. “두 장 더. 물가가 올랐잖아?” 난 황당함을 느끼며 만 원짜리 두 장을 꺼내 건넨다.
   “앞으로 1년. 그 1년 동안 사람들이 하지 말자고 정해둔 것들을 안 하면 돼.”
   “왜 굳이 그런 방법인 거죠?” 하고 내가 물었다.
   “너에게 붙은 그 기생 귀신은... ”
  무당이 기생에 대해서 말하는 동안 내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그것들을 어떻게 1년 동안 지키고 살란 말인가? 하지만 내게 별 방법이 없었다. 앞으로 1년이다. 그럼 이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1년은 무척 길 것 같았다. 하지만 어느새 1년까지 일주일이 남았다. 난 그동안 청개구리 같은 근성을 어떻게 견뎠는지 놀라웠다. 정말 사소한 쓰레기 무단 투척, 침 뱉기, 건강 수칙 지키기 등 모든 것을 지키려 노력했다. 한편으로 왜 그 기생은 남들이 하지 말라는 것에 대해 이다지도 집착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여인은 조선시대에 서달이라는 자에게 희생당한 이름 모를 기생이다.”
  무당의 말이 떠올랐다. 서달. 난 호기심이 일어 포털사이트에 그 이름을 검색해보았다. 하지만 역사적 위인이 아닌지라 쉬이 정보를 얻기 힘들었다. 끈기 있게 찾아본 결과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됐다. 그자는 양반, 즉 요즘 시대의 금수저였다. 살인을 저지르고도 마땅한 처벌을 받지 아니한 자. 요즘 연예인들이 커다란 사고를 치고도 정재계 몸통과 연관되어 쉽게 처벌되지 못하는 상황과 비슷했다. 여인이 한을 품을 만했다.
  마지막 날이었다. 오늘만 넘기면 이 저주에서 벗어나 수 있게 된다.
   “오늘 회식 참석할 거지? 요새 자주 빠졌잖아?” 대리가 물었다.
  난 망설이다 조심히 보내면 된다고 여기며 참석 의지를 내비쳤다. 그동안 잘 조절해왔는데 하루쯤이야.
  회식은 어느 고깃집에서 벌어졌다. 난 그날따라 술이 달다고 느껴졌다. 한 잔, 두 잔, 연거푸 들이키는 소주 맛이 상쾌했다. 심장박동이 빨라짐에 따라 사람들에게 나의 즐거운 마음을 내보이고 싶었다. 게다가 이제 하루 남지 않았는가? 그렇지만 정신을 부여잡았다. 그 기생과의 악연을 끝내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거나하게 취한 난 동료들과 집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난 핸드폰을 꺼내들어 시계를 봤다. 11시 50분이었다. 동료들은 택시나 대리를 불러 가겠다고 했지만 난 그 과정이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수 씨, 괜히 운 나쁘게 걸려들지 말고 대리 불러.”
  난 대충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의 귀갓길을 배웅했다. 시간도 얼마 안 남았는데 뭐 어때? 아무 일도 없었잖아?
  차에 시동을 걸었다. 전방을 주시하자 약간의 흔들거림은 있었지만 운전하는데 지장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그대로 액셀을 지그시 밟았다.
  도심을 벗어나 한적한 산길에 접어들었다. 난 창문을 열고 불어오는 바람을 만끽했다. 차량 계기판에 보이는 시간은 11시 59분이었다. 난 곧 해방될 것이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차 범퍼에 묵직한 충격이 가해졌다. 앞 유리가 깨지고 무언가 차 뒤로 넘어갔다. 난 차를 세우곤 머리를 운전대에 처박았다.
  ‘망했다.’ 내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말이었다. 난 한동안 굳은 채로 앉아 있다가 운전석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흰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있었다. 난 주변을 급히 살폈다. 사람은 없었다. 거기다 CCTV도 없었다. 여러 생각들이 오고 갔다. 구급차를 부르고 처벌을 받을 것인가? 아니면...
  난 인근 산속 높은 곳으로 올라가 여자를 낭떠러지로 밀어버렸다. 아직 숨이 붙어있었지만 내 인생을 망치고 싶진 않았다. 정신없는 일을 마친 뒤 다시 차로 돌아왔다. 그때 난 내 눈을 의심했다. 시간이 여전히 11시 59분이었던 것이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일까?
  어디선가... 저 멀리 희미하게 타닥타닥- 무언가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난 술이 확 깨는 기분이 들었다. 손을 벌벌 떨며 시동 스타트키를 연신 눌러댔다. 공포 영화의 공식이라면 시동이 안 걸릴 테지만 내 차는 멀쩡했다. 시동은 금방 걸렸고 난 곧장 액셀을 밟았다.
  차가운 밤공기, 몇 개의 가로등이 놓인 도로. 그리고 사이드 미러로 비치는 원피스를 입은 괴생명체. ‘사물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라는 친절한 문구를 보지 않더라도 괴생명체는 차와 10미터 간격을 두고 쫓아오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오니 사이드미러에 괴생명체의 얼굴이 비쳤다. 쭉 째진 눈에 창백한 피부... 기생이었다.
 사람이 저렇게 빨라? 아니 저건 사람이 아니다. 대체 저건 무엇이란 말인가? 난 급박한 상황 속에서 무당을 떠올렸다.
난 속도를 유지한 채 얼마 전 저장한 무당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아이씨... 청개구리, 넌 잠도 없냐?”
   “선생님, 지금 다른 걸 설명할 시간이 없어요. 제발 절 좀 살려주세요.”
  무당은 말하지 않아도 짐작한 듯 “쫓기고 있다?”라고 내뱉었다.
   “네, 지금 차를 몰고 있는데... 제 뒤를 바싹 뒤쫓고 있어요.”
   “이젠 방법이 없다... 넌 또 무슨 짓을 저질렀니?”
  내가 쉬이 답을 하지 못하고 어물거리자 무당은 나를 다그쳤다.
   “하지 말라고 하는 짓은 절대 하지 말았어야지. 이제 그건 네 운명이다. 살고 싶거든... 미친 듯이 밟아. 해가 뜰 때까지 잡히지 마라.”
  이 말과 함께 무당은 전화를 끊었다. 난 울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핸들을 양손으로 꽉 부여잡았다.
사이드 미러를 얼핏 보니 여전한 속도로 쫓아오는 기생이 보였다. 영화 엑소시스트에서 몸을 뒤집은 채 계단을 내려오던 빙의된 소녀 같았다. 그로테스크한 광경이었지만 난 그것을 감상할 시간이 없었다.
  쿵-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기생이 어느새 차에 가까이 붙어 몸을 부딪히고 있었다. 계기판과 핸드폰의 시계를 보자 11시 59분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시간이었다. 난 시간에, 아니 어쩌면 죄에 갇혀버린 건지도 모른다.
 직진 코스가 없어서 전력으로 달리기 힘든 상황이었다. 기생은 조금씩 내 옆까지 쫓아왔다. 기생은 운전석 창가를 노려보며 달리고 있었다. 난 그녀의 눈을 보지 않으려 애썼지만 나도 모르게 보고 말았다.
무언가 비현실적인 얼굴이었다. 난 어쩌다 이런 저주를 받게 됐을까? 과거로 되돌아가 하지 말라고 당부한 말을 지킬 걸 그랬나? 자업자득이란 게 이런 것 같았다.
  “네놈도 서달과 다를 바 없는 놈이다. 미치광이? 그건 네놈들 같이 하지 말라고 한 것을 어겨 사달을 내는 놈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이야.”
  기생이 내게 입을 열었다. 난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브레이크를 밟으려고 했다. 하지만 브레이크는 작동되지 않았다.
  한참 시간이 지났을까? 차는 사당 앞까지 밀고 들어와 멈춰 섰다. 기생은 의식을 잃은 종수를 질질 끌고 사당으로 향한다. 그러다 걸음을 멈추는 기생.
  눈앞에 무당이 서있었다. 그는 재차 사당으로 향하는 기생의 앞길을 터준다. 기생은 씩 웃으며 사당문을 열고 종수를 밀어 넣는다.
  “하지 말라고 한 걸 하지 않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이야?” 하고 기생이 물었다.
  무당은 말없이 양손을 모아 합장한 뒤 허리를 숙인다. 기생은 사당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다. 이윽고... 종수의 비명소리와 뒤섞인 여러 남녀의 괴성.
  무당은 사당문에 자물쇠를 걸어 잠근다. 그리고 출입 금지라는 팻말을 박아놓는다. 일을 마친 무당이 돌아가려다 다시 돌아온다. 그는 팻말을 다시 뽑아버린다.
   “어차피 멍청한 녀석들에겐 이런 게 소용없겠지.”
  무당은 일출을 바라보며 마을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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