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션 |
|
“창주야! 저기 북 별관 맨 끝 병실 보이지? 555호.”
“저기, 반대편 건물 얘기하시는 거에요?”
“그래 거기, 거기가 555호야. 너 인마, 베드도 부족하고 병실 모자라다고 난리인 우리 병원이, 왜 유독 저 병실만 몇 년째 비워두고 창고로 사용하는 지 알아?”
친척의 소개로 병원에서 일하게 된 건 불과 한 달 전의 일이었다. 비록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청원경찰이지만 말수도 적고 사교성도 부족한 나에겐 제법 적성에 맞는 일자리였다. 나이든 고참 급은 가정을 핑계로 죄다 주간 근무에만 투입되고 우리 같이 젊은 사람들은 주로 야간에 출근했다. 그래서 교대 시간 외엔 환자들과 마주칠 일도, 귀찮은 잔소리를 들을 일도 없었다. 야간 근무자는 모두 비슷한 또래의 형들이었는데, 나는 그 중에서도 민수 형과의 근무를 선호했다. 처음엔 나처럼 말수도 적고 붙임성도 없어 보여 일하는 내내 조용히 있을 수 있겠다 싶었지만 큰 오산이었다. 친해진 후 알게 된 형은 상당한 수다쟁이였다. 그래도 딱히 불만은 없었다. 농담도 잘 하고 근무경력도 꽤 길어 병원의 이런저런 뒷이야기를 많이 해주어 형과 함께 있으면 유독 시간이 잘 갔다. 왜 마흔이 넘도록 장가를 못 갔는지 이해가 안 갈 만큼 괜찮은 형이었다.
그런 형이 여느 때와는 다른 무서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때 마침 창밖에선 비가 내렸고 시커먼 먹구름에 가려 달빛조차 보이지 않았다. 평소 겁이 많던 난 형이 무서운 이야기를 꺼내는게 아닌가 싶어 조바심이 났지만 형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계속 이야기 했다.
“한 6년 전이었나?”
“뭐가요?”
“그 여자가 우리 병원에 들어 온 게... 조금 덜렁대긴 했지만 진짜 끝내주는 여자였지. 내가 이 병원에서 일한지가 벌써 8년인데, 이제껏 그렇게 예쁜 간호사는 본 적이 없어. 햇빛 한 번 안 본 사람처럼 하얀 피부에 검고 윤기 나는 머리칼, 쏟아질 듯 커다란 눈에 웃을 때마다 살포시 패이는 보조개, 거기다 인사는 또 어찌나 잘 하는지, 마주치면 언제나 밝게 인사했어. 그게 누구든 언제든 말이야. 진심이 느껴지는 인사였지. 모르긴 몰라도 그 모습에 설렌 병원 직원이 한 둘이 아니었을 거야.”
‘형 역시 그 모습에 반한 병원 직원 중 하나였죠?’ 소리 내어 말 하진 않았지만 충분히 짐작이 됐다. 표정 때문이었다. 넋 나간 사람처럼 멍한 눈으로 한껏 입을 벌린 채 중얼거리는 모습이 흡사 사랑에 빠진 사람 같다. 아니나 다를까 주절주절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한 번은 말이야. 그 덜렁이가 모퉁이를 돌다가 미처 나를 못 본 거야. 와당탕, 들고 있던 물건은 바닥에 나뒹굴고 나도 그 덜렁이도 보기 좋게 고꾸라졌지. 처음엔 화가 나서 ‘앞 좀 보고 다녀라!’ 한 마디 할 생각이었는데, 그만 걔가 이렇게 말하면서 울어버리더라 ‘죄송합니다. 제가 평소에 너무 덜렁대서... 정말 죄송합니다.’ 코앞에서,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땀구멍 하나, 솜털 하나하나까지 다 보였어. 그... 그런 건 정말 처음이었지. 얼마나 긴장이 되던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괜찮다는 말 한 마디 못 하고 도망쳤어. 그래... 아직도 기억이 나, 넘어져 내 위에 포개졌을 때... 쏟아지던 햇발과 빛을 받아 반짝이던 그 애의 빛나는 머리칼, 투명하고 맑은 눈동자 그리고 복숭아처럼 발개진 두 볼... 그건 정말 천사 같았어...”
이야기에 몰입한 나머지 형은 아주 잠시 전율했다. 붉어진 얼굴로 세게 콧바람을 뿜어내다 이내 자신을 보고 있는 내 존재를 깨닫고 말했다.
“아! 미... 미안, 하려던 얘긴 이게 아닌데... 아무튼, 그렇게 예쁜데 노리는 남자가 없었겠냐고. 레지던트 중에 한 새끼였어. 내가 봐도 잘난 놈이었지. 뭐 의대생치고 안 잘난 놈이 어디 있겠냐마는 그 놈은 그 중에서도 단연 특별한 놈이었어. 아버지는 어디 병원 원장이고 엄마는 따로 소아과를 한다나. 있는 집 자식이니 레지던트 주제에 새빨간 스포츠카를 몰았겠지. 키도 훤칠하고 얼굴도 잘생기고, 그야말로 난 놈 중에 난 놈이랄까? 그래버리니까 사람들도 그러더라. 둘이 잘 됐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을 만나면 질투가 날 텐데, 만약 저 둘이 사귄다면, 그건 인정,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어. 두 사람 정말 잘 어울렸거든, 비록 나하곤 인연이 없지만 잘 됐으면 좋겠다. 능력 있고 잘난 사람 만나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녀가 웃을 수만 있다면 나도 승복하겠다. 그랬지... 멍청 패배자 새끼... 하긴, 그 인간이 그렇게 쓰레기 같은 놈인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오오! 배신?”
“우리에겐 특별한 여자였지만 놈에겐 아니었던 거지. 돈 많고 잘 생기고 심지어 의사까지 됐는데, 다가오는 여자가 어디 한 둘이었겠어? 그 중엔 그녀보다 예쁘고 화려한 사람도 많았겠지. 그 인간에게 그 여자는 그거였어. 노리개, 그 순순한 여자를 단순히 욕정의 대상으로 본거지. 정말 지독하더라... 휴게실, 주차장, 옥상 난간, 심지어는 수술 방이랑 화장실에서도!”
“형... 설마?”
“그래, 청경 실에서 하는 일이 뭐야! CCTV나 들여다보는 거 아니냐고! 쳇 빌어먹을 놈! 그러다 일이 터졌지. 두 사람은 비밀리에 사귀고 있었어, 아마도 놈이 그렇게 하자고 했겠지. 헌데 그 개자식이 되먹지 못한 쓰레기라는 걸 알 리 없는 이 병원 원장이... 제 딸을...”
“그 놈에게 소개시켜줬군요?”
“호랑이한테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지. 살다 살다 그런 개판은 처음 봤다니까. 병원장을 등에 업으니 펠로우는 물론 심지어는 담당 과장까지도 쩔쩔매더라. 일개 레지던트한테 말이야. 난 걔가 무슨 왕이라도 된 줄 알았어. 진료는 뒷전이고 허구 헌 날 자릴 비웠지. 아마도 잘나신 병원장 딸내미 끼고 그 짓 하러 다니느라 바빴을 거야. 그 놈은 발정난 X새끼였으니까. 생각해보면 덜렁이가 아니라 걍 등신이야...”
“누구요? 병원장 딸래미요?”
“아니... 그 여자.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더라. 물을 주지 않는 화분 속의 꽃처럼 말이야. 버림받은 줄도 모르고 매일 같이 그 놈을 기다리더라. 웃긴 건, 그 와중에도 놈이 종종 그녀를 찾았다는 거야. 달콤한 말로 그녀를 꼬여내 제 욕정을 채우려고. 그런데도 그 머저리는 거절을 못 했어. 그렇게 하면 놈이 돌아 올 거라 믿었겠지. 하지만 얼마 못 가 청첩장이 돌았지.”
“설마...”
“그 새끼하고 병원장 딸, 근사한 호텔 예식장이더라. 그 여자는 근무 중에 뛰쳐나가고, 병원에 별별 소문이 다 돌았어. 그 여자... 그 즈음 갑자기 헛구역질을 해대기 시작했거든...”
“맙소사... 완전 쓰레기네요 그 놈!”
“그치? 이후 더 이상 그 여자를 병원에서 볼 수 없었지. 원무과와 병동에선 계속 연락을 취해 본 모양인데, 받지 않았데. 완전히 사라진 거지. 언제인가, 우연히 누가 그 여자를 봤다는데, 앙상한 몰골 탓에 그 여자가 맞는지 확신이 안 선다더군. 그런데 말이야... 그러니까... 그 천하의 X새끼하고 병원장 딸 하고... 결혼식이 있던 날, 그 밤에... 하아...”
민수 형이 돌연 말을 잇지 못하고 긴장된 얼굴로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곤 천천히 비가 오는 창 밖, 반대편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그래, 바로 저기야.”
“아까 말했던 북 별관 맨 끝, 그 빈 병실이요?”
“그래 거기... 그 날 밤도 오늘처럼 비가 왔는데, 야간 순찰을 돌던 근무자가 바로 여기서, 반대편 병실에 서 있던 그 여자를 발견 했대.”
“병실에요? 갑자기 거긴 왜?”
“밤이라서 또 그 여자가 너무 홀쭉해져서 분간은 안 되는데, 그 여자가 창가에서 서서 커튼 사이로 자기를 노려보고 있었대. 지독히도 무섭고 소름끼치는 눈빛으로 말이지.”
“으아아...”
나도 모르게 괴성을 지르고 말았다. 마치 누군가 나를 노려보는 듯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알지. 거기였거든, 평소 그 새끼랑 몰래 만나 그 짓을 하던... 둘 만의 장소... 하지만 그 근무자가 그런 것까지야 알리가 없지. 그냥 요상한 생각이 들어 빤히 보고 있었대. 그 여자가 맞나, 맞다면 며칠째 출근도 안 하던 그 여자가 왜 갑자기 나타났을까? 나타났다 쳐도 간호사면 당연히 자기 근무지에 있어야 할 텐데, 왜 자기 병동도 아닌 저기 저 북 별관, 그것도 텅 빈 병실에 홀로 서 있을까? 그때 불현 듯 무언가를 깨달은 근무자는 정신없이 555호를 향해 뛰기 시작했어.”
“뛰었다고요? 북 별관으로?”
“그래, 그 여자는 키가 160이 조금 넘었거든. 반대로 근무자는 키가 180이나 됐고”
“그게 왜요?”
“생각해봐 160짜리 여자가 똑같은 높이에서 눈을 마주치고 있는 거야. 아니 당시 근무자의 말에 의하면 자기보다 더 높은 곳에서 내려 보고 있었대. 그것도 천천히 흔들리면서...”
“흐... 흔들려요?”
“목을 맨 거야.”
나는 질끈 눈을 감았다. 나도 모르게 참담한 광경을 떠올린 탓이었다. 어찌나 겁을 먹었던지 민수 형이 진정시키려 어깨를 토닥였을 땐, 나도 모르게 ‘악’하고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진정해... 진짜는 이제부터니까...”
“네? 지... 진짜요?”
“그래... 진짜...”
“주... 죽었다면서요. 그 여자...”
“맞아. 죽었지. 하지만 진짜는 그때부터 시작됐어. 그때부터 쭈욱... 매년 일 년에 한 번씩, 그 여자가 죽은 날이면, 병원에서 사람이 죽기 시작했어.”
“히이익”
민수 형이 해준 이야기는 그게 전부였다. 평소 겁이 많던 난 더 이상 듣고 싶은 생각이 없었고, 형은 형대로 좋지 않은 기억을 떠올린 탓에 굳은 얼굴로 입을 꾹 닫아버렸다. 사실 그냥 지어낸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우연히 벌어진 사고를 부풀렸을지도 모른다. 원래 세상사가 그렇지 않은가. 자신의 일엔 엄격하지만 남의 일엔 미주알고주알 없는 말도 지어내고 만다. 하지만 그런 나의 의심은 보기 좋게 깨지고 말았다.
“창주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이현주, 간호사 중 유일하게 나와 친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자 나를 이 병원에 꽂아 넣어준 고모부의 딸, 즉 사촌 누나가 조심스레 내게 말했다.
“나도 처음엔 깜짝 놀라서 안 믿었는데, 거짓말은 아니야. 앞에 그 여자 어쩌고저쩌고하는 얘기는 나도 병원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잘 모르지만 이후에 사람들이 죽어 나간 건 확실해. 얼마나 무서웠다고...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목을 매고, 투신했단 말이야.”
“목을 매? 투신?”
“그래... 하필 죄다 그 북 별관이야..., 경찰에선 우울증이다 뭐다 하는데, 유서도 안 나왔고 잘은 모르지만 사람들 말론 그렇게 죽을 애가 아니라고 했어. 병원에선 환자들이 알까봐 쉬쉬하고 덮었지만 멀쩡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죽은 건 맞아. 그리고...”
“그리고 뭐?”
“그 중 한 명은 나도 잘 알아.”
“누구?”
“작년에 투신한 사람, 듣기론 죽은 그 간호사랑 제일 친했던 여자래. 그땐 진짜 말이 많았어. 한 밤중에 일어난 데다. 목격자도 없고, 심지어 유서도 없다보니 경찰도 꽤나 고심했던 모양이야. 그러던 중에 그 여자 일기장이 발견됐는데, 죽은 친구가 그립다. 생각이 난다. 보고 싶다. 뭐 그런 말이 잔뜩 적혀 있었대...”
“그립다고? 보고 싶다고? 죽은 사람이? 나 완전 소름...”
“내 말이... 재작년에 죽은 사람도 그래. 그 사람은 산부인과 수간호사였는데, 아예 북 별관 그 병실에서 목을 매고 죽었어. 그러니 말 다했지.”
“그만... 그만 누나! 나 더 들으면 안 될 거 같아.”
“어쩌냐? 너 아까 나 보러 왔을 때, ‘그런 일 없다. 구라다.’ 딱 그 말이 듣고 싶어 온 거 같았는데... 나도 해줄 말이 없다. 참! 너 오늘도 근무랬지? 조심해라. 그 여자 나올라! 키킥”
“아 진짜! 그만하라니까!”
“아니야. 누나가 진심으로 걱정돼서 하는 말이야. 오늘이거든...”
“뭐가 또 오늘이야!”
“그 여자가 죽었다는 날... 그리고 친했다는 그 간호사가 죽은 날...”
“씨팔...”
*
나는 원래 말수가 적었지만 민수 형은 달랐다. 농담도 잘 하고, 영화나 게임 이야기도 곧잘 했다. 그러나 오늘은 형과 나 모두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형은 어딘가 긴장된 표정이었고 나는 그런 형이 부담을 느낄까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하지만 시계가 새벽 2시를 알리자 침묵은 자동으로 깨지고 말았다. 두 번째 순찰을 돌 시간이 된 것이다. 나는 조용히 일어나 랜턴을 집어 든 형의 손을 잡아채며 말했다.
“저... 저기요 형...”
“왜?”
“나... 나올까요?”
“뭐가?”
“그... 그... 그러니까... 그 여자요.”
형의 눈빛이 매섭다. 답답한 표정으로 크게 한숨을 내쉰다.
“죄송해요. 제... 제가 괜한 말을...”
“아니야. 나야 말로 너한테 괜한 얘기를 한 거 같다. 애초에 너는 걱정 할 필요가 없는데”
“예? 왜요?”
“그 사람들...”
“누... 누구요. 주... 죽은 사람들이요?”
“다 죽어도 싼 인간들이었어.”
“그... 그런...”
“그 여자가 무슨 백정이냐. 아무나 막 잡아 죽이게? 너는 원한을 살 만한 짓을 한 적이 없잖아. 네가 그 여자 욕을 하길 했어. 아니면 병원장 딸내미 옆에 붙어서 그 여잘 괴롭히길 했어? 그러니까 정신 차려 인마!”
형이 크게 소리치며 내 엉덩이를 걷어찬다. 웃는다. 걱정 말라는 듯 어깨를 토닥인다. 내 긴장을 풀어주려는 것 같았다. 그 덕에 조금은 편안해진 기분이었다. 헌데 그 순간에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청경실이죠? 여... 여기 벼... 병동인데요.”
“네 그런데요. 무슨 일이신가요?”
“소... 소 리가 나서요.”
“네? 소리요? 무슨...”
“여자... 울음 같은... 아 죄송합니다. 신경 안 쓰려고 하는데 자꾸만 위에서 그런 소리가 들려서요... 환자들도 소름끼친다고 하고... 확인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꿀꺽’ 나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여자 울음’ 평소 무던하다 못해 무지하다 일컬어지던 나였지만 촉이 온다. ‘가지 마!’ ‘그 여자야’ 나는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그... 그게 어디죠?”
“북 별관이요.”
“네? 네...”
전화는 끊겼지만 나는 마치 얼어붙은 듯 꼼짝도 하지 못 했다. 손에는 수화기를 들고 시선만 겨우 옮뎠다. ‘S.O.S’ ‘형, 도와주세요.’ 간절한 눈빛으로 보고 있자니 형이 내 손에 든 수화기를 뺏어 들며 말했다.
“북 별관이지?”
“네... 네 형...”
“어차피 순찰 돌 시간이었는데 잘 됐네. 가자?”
“가... 간다구요? 혀... 형! 저... 정말로 가려구요?”
“작년에도 그랬어.”
“아니 그럼 더더욱 가지 말아야죠!”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빠르게 몸을 움직여 형의 앞을 가로 막으며 소리쳤다. 손끝은 떨리고 고개는 연신 좌우로 오가며 완강한 거절을 표한다. 그러자 형이 크게 화가 난 표정으로 소리쳤다.
“비켜 이 새끼야!”
“형... 우리 가지 말아요. 순찰 한 번 안 한다고 무슨 큰 일 나는 것도 아니잖아요.”
“뭐?”
“가지 말자구요 순찰...”
형이 한심하다는 듯 바라봤다. 당연하다. 겁에 질려 순찰을 못 도는 청원 경찰이라니, 이 얼마나 우스운 꼴인가? 그때 형이 내 멱살을 움켜쥐며 말했다.
“처음부터 맘에 안 들었어. 이 낙하산 새끼!”
‘낙하산’ 틀린 말은 아니다. 일개 아르바이트에 불과하지만 고모부가 꽂아준 자리임은 틀림 없으니까. 형은 잠시 나를 노려보다 이내 손을 풀었다. 그리곤 나를 밀쳐내며 말했다.
“너한텐 이게 아무 때고 때려치우면 그만인 알바일지 몰라도 난 이게 밥벌이야. 너처럼 한가하지도 않고, 무책임할 수도 없어. 무서우면 여기 있어. 나 혼자라도 돌아보고 올 테니까.”
“하... 하지만... 그... 그 여자가 나오면 어떻게 해요.”
그때 형이 말했다.
“난 보고 싶다 그 여자... 한 번만이라도...”
형은 그 말을 던진 후 등을 돌려 청경 실을 나갔다. 혼자 남은 나는 이를 악물었다. 형 말이 옳다. 한가한 알바 자리를 원해 들어왔다. 고민도 없고 노력도 안 했다. 하지만 겁에 질린 바보 얼간이는 되고 싶지 않았다.
“혀! 혀엉! 같이 가요!”
나는 크게 소리치며 랜턴을 들고 형의 뒤를 쫓았다.
“별 일 없을 거야.”
북 별관에 도착하자 형이 내 가슴을 툭 치며 말했다. ‘세상에 귀신이 어디있어.’ ‘그런 건 마음 약한 사람한테나 보이는 거야.’ ‘하느님 부처님 알라신님 제발...’ 나는 별의 별 생각을 다 떠올리며 떨고 있는데 형은 아무렇지 않은 듯 웃어 보였다. 어떤 의미에서 대단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가자”
형이 손짓했다. 나는 형을 향해 마음속의 엄지를 높이 치켜세우며 바짝 붙어 섰다. 다리는 후들거리고 눈앞은 캄캄하다.
그때 그 소리가 들렸다.
‘히으으으아으으으 히으으으으아으으으’
바람 소리 같으면서 한 편으론 울음소리 같기도 한 묘한 울림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아마도 병동에서 들었다는 소리가 바로 이것이리라. 나는 무서워 금방이라도 철푸덕 주저앉아 버릴 것만 같은데, 형은 소리가 들려온 곳을 찾아 열심히 랜턴을 움직였다.
“뭐지?”
형이 손짓하며 말했다. 망할, 보지 말았어야 했는데, 아무 생각 없이 형의 손 끝을 따라가니 그 여자가 죽었다는 북 별관 맨 끝의 그 방이 나온다. 그리고 그게 보였다.
“그 여자야! 그 여자라고 형!”
하얗고 조그마한 무언가를 보았다. 형의 이야기처럼 창문 위 높은 곳이다. 그 곳에서 그 하얀 것이 하늘하늘 흔들린다. 마치 무언가에 목을 맨 사람처럼...
‘히으으으아으으으 히으으으으아으으으’
다시 한 번 그 소리가 바람을 타고 울려 퍼졌다.
“아아아!”
나도 모르게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자리에 주저앉아 발을 동동 굴렀다. 형이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돌아보며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다 댄다. 조용히 하라는 뜻이다. 그 와중에도 형은 계속 소리를 찾아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하지만 바람이 잦아들자 울음도 잦아든다. 착각이었을까? 문득 고개 드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보이던 그 하얀 것이 없다. ‘사라졌을까?’ ‘끝난 걸까?’ 스스로에게 물었지만 애초에 답 할 수 없는 질문이다. 자괴감이 밀려왔다. 애써 용기 내어 쫓아왔건만, 아무 것도 못하고 떨고만 있다. 아니 나란 인간 자체가 무용지물이다.
그때 형이 뜻밖의 제안을 했다.
“너 저 쪽엔 가 있을 수 있지?”
형의 손이 서관을 가리켰다. 조금 떨어진 위치지만 반대편 건물인 서관에선 북 별관 전체가 훤히 들여다보인다. 지난 번 근무 때 형이 그 여자 이야기를 해준 장소이기도 했다.
“맞은편 5층에서 보고 있다가 이상한 게 보이거나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으면 바로 무전 해.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거 아냐?”
망설이고 있자니 형이 고개를 끄덕인다. 나도 마지못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또 형을 혼자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무섭고 미안했지만 나라는 혹을 다는 것보단 그게 나은 선택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먼저 가, 난 조금 이따가 올라갈게.”
“네! 네에...”
나는 비로소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고 일어섰다. 어색한 걸음으로 재빨리 서관으로 향했다. 불 꺼진 건물 안이 부담스럽기만 했다. ‘띵동’ 버튼을 누르니 엘리베이터가 왔고 나는 말없이 5층을 눌렀다. ‘빌어먹을...’ 전에는 신경 쓰지 않았는데 갑자기 찜찜한 기분이다. 병원엔 원래 4층이 없다. 3층 다음이 5층이다. 이 무슨 눈 가리고 아웅이란 말인가. 결국 5층이 4층인 것을... ‘제기랄... 재수 없게...’ 나는 질끈 눈을 감으며 투덜거렸다. 무슨 일이 생길 것 같다는 불안감이 자꾸만 밀려 들었다.
‘띵동’
몇 초가 몇 분 같은 시간이 흐르고, 비로소 벨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새벽의 병원은 언제나 고요하다. 전에는 그 고요가 좋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휘이이잉’ 바람소리가 들리고 창문이 흔들린다. 별 것 아닌 소리마저 두렵다. 모두 그 울음소리 탓이다.
‘히으으으아으으으 히으으으으아으으으’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더니 내가 딱 그 짝이다. 사람이 죽었다는 북 별관이면 모를까 도망치듯 서관으로 넘어온 주제에 아직도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 했다. ‘딱딱딱’ 이가 위 아래로 떨리며 시끄러운 소리를 낸다. ‘누... 누구야!’ 작은 소리에도 랜턴을 비추며 멈춰 서기를 반복한다. 누군가 내 꼴을 보았다면 웃었을지도 모른다.
“정신 차려. 세... 세상에 귀... 귀신이 어딨어! 야! 너 없잖아! 그치? 이... 있으면 지금 나오고... 응? 나오라고!”
용기를 낸다는 미명하에 허튼 소리를 중얼대고 있자니 또 그 소리가 들렸다.
‘히으으으아으으으 히으으으으아으으으’
“하느님 아버지! 부처님! 예수님! 으어어 귀신은 물러가라!”
홀로 괴성을 울부짖으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안간힘을 다 해 걸음을 내딛고 보이지 않는 적과 맞서 싸웠다. 그리하여 비로소 도착한 창가, 헌데 형이 보이지 않았다. 창을 열고 다시 한 번 찾아보았지만 어디에도 형의 모습은 없었다. 나는 재빨리 북 별관 곳곳을 살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을까? 아니면 계단? 망할, 그 와중에도 왜 자꾸만 뒷목이 서늘한지, 중간 중간 등 뒤를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딜 간 거야... 으...”
이를 악문 채 중얼거렸다. 무전기는 어느새 땀으로 흥건하고 밖은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처럼 어둡고 스산했다. 이런 상황에 귀신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할 지경이었다. 무섭고 자꾸만 움츠러들었다. 창틀에 몸을 기댄 채, 점차로 앞보다 등 뒤를 살피는 시간이 더 많아졌을 즈음 그 괴성은 여지없이 나를 찾았다.
‘히으으으아으으으 히으으으으아으으으’
“으아아악!”
나도 모르게 자지러지듯 소리를 질렀다. 어쩌면 그 울음소리보다 더 컸을지도 모른다. 도망치고 싶었다. 빨리 이 자리를 떠나야 한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형! 어디에요! 우리 가요! 예? 저... 더는 못 있을 것 같아요! 네? 형! 빨리 와서 저 좀 데려가요 흐어엉...”
무전기를 붙잡고 울부짖었다. 미친사람처럼 계속 소리쳤다. 그러자 비로소 응답신호가 들리며 형이 말했다.
“너 어디야!”
“5층이요.”
“나 지금 옥상에 있는데... 보여?”
급히 몸을 일으켰다. 고개만 살짝 내민 채 반대편을 바라봤다. 옥상이다. 형이 보인다. 손에 무언가를 쥐고 흔든다. 그리곤 무전기를 들고 말한다.
“여기 뭐가 있네. 바람 때문이야. 공사자재 같은데, 깔때기 같이 생겨서 이리로 바람이 지나면서 그런 소리가 났나봐.”
다리가 풀렸다. 긴장이 풀린 모양이었다.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평생을 놀림당할 바보짓을 했다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왔다. ‘휴우우’ 길게 한숨을 토해냈다.
그때 그게 보였다. 하얗고 희뿌연 무언가, 바람을 따라 너울지며 팔랑이는데 그 밑으로 발이 보인다. 사람의 발이다. 그게 나풀대며 형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형! 도망쳐!”
나는 재빨리 무전기를 들고 소리쳤다. 헌데 형은 마치 내 무전을 듣지 못 한 양 태연히 앉아 신발끈을 고쳐 맨다. 나는 애가 타 다시 소리쳤다.
“도망쳐! 도망쳐! 도망치라고오!”
그게 다가오고 있었다. 가까이 점점 더 가까이, 무전기가 작동하지 않는다 생각한 나는 그제야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목이 터져라 외쳤다.
“형! 뒤에! 뒤에! 뒤를 보라고!”
그 덕일까? 비로소 신발 끈을 묶던 형이 나를 바라본다. 그리곤 괜찮다는 듯 손을 흔들어 보인다. 무언가 착각을 한 모양이었다. 나는 재차 소리쳤다. 팔을 뻗어 뒤를 보라고 손짓했다. 내 표정이 심각함을 눈치챈 형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너풀대며 다가오는 희뿌연 물체와 마주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두리번’ ‘두리번’ 주변을 돌아보기만 한다. 갑자기 조금 전까지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던 무전기에서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뭔데? 뭐가 있어?”
“뒤에! 뒤에 있다고 그게!”
나는 무전기를 들고 큰 소리로 말했지만 역시나 내 무전은 형에게 들리지 않는 듯 했다. 잡음과 함께 형이 다시 말했다.
“야 이 새끼야. 장난치지 마!”
형이 재차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리고 어느새인가 그것이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다.
“어디, 어디로 갔지?”
나는 급히 사라진 그것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건물 위도, 아래도, 안에도 어디에도 그것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간 걸까? 분명 형의 뒤에서 나풀댔는데, 대체 그건 뭐였지? 정말 그 여자의 혼령이었을까? 못 다한 한을 풀기 위해? 자신이 죽었던 오늘... 그때 그 곳으로 다시 돌아와... 아냐 아니야. 그건 말도 안 돼.’
수많은 의문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모두가 실체 없는 유령 같은 질문이었다. 지금 내게 중요한 건, 더 이상 그게 보이지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홀가분해진 기분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순찰은 끝났다. 이제는 돌아갈 시간이다. 그리고 억만금을 준다 해도 다시는 이곳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 그런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바라보니 때마침 형도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나도 웃으며 아래쪽을 가리켰다. 내려가겠다는 뜻이었다.
그때 형이 무전기를 들고 말했다.
“뒤, 뒤! 너 뒤에!”
갑자기 뒤통수가 시리다. 으스스한 한기가 뒷목을 간지럽힌다. ‘툭’ 무전기가 바닥에 떨어지고, 나는 의식을 잃고 말았다.
*
“이봐요. 괜찮으세요? 정신 차리세요. 환자 의식 돌아왔습니다.”
정신이 들었을 때는 이미 응급실이었다. 형은 무거운 표정으로 내 앞에 서 있었고 의사와 간호사가 나를 붙들고 무어라 무어라 알 수 없는 말들을 연신 쏟아 부었다. 겁에 질린 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들숨과 날숨이 빠르게 교차하자 심장이 두근거렸다. 어지러움이 느껴지며 눈앞이 흐려졌다. 의사가 내 뺨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자! 자! 진정하시구요! 과 호흡이에요. 겁먹지 마시고, 천천히 심호흡하세요. 호흡이 지금 너무 짧아요. 차분하게 길게 내쉬었다가 다시 천천히... 긴장하지 마시고. 네 좋습니다. 응급실이에요. 아무 일도 없으니까 걱정마시고 호흡에 집중하세요!”
“후아아아 후아아아”
의사의 말대로 오직 호흡에만 집중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방망이질 치던 심장이 제 속도를 찾고 어지러움도 사라졌다.
“괜찮으세요?”
“네... 이젠 좀... 괜찮은 거 같아요.”
“좋습니다. 그럼 좀 누워서 쉬세요.”
의사와 간호사가 다른 응급환자를 쫓아나가자 형이 다가왔다.
“고생했어. 많이 무서웠지?”
“네...흐허헝헝... 흑흑흑”
눈물이 쏟아졌다. 한 번도 그렇게 울어 본 적이 없었는데, 정말이지 눈물이 멈추지 않고 계속 쏟아졌다. 그리고 그게 내 청경생활의 마지막이었다. 이후 나는 한 동안 집 안에 처박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병원은 물론이고 화장실을 갈 때를 제외하곤 방 밖으로도 나오지 않았다. 한 두 달 정도 됐을까? 엄마도 포기한 내 방문을 누군가 두드렸다. 엄마와는 다른 세고 굵직한 울림이었다. 대답도 미동도 않으니 상대방이 먼저 말했다.
“경찰입니다.”
“......”
“김성희씨 사망 사건 관련해서 조사 중입니다. 두 달 전 쯤, 병원에서 근무하셨죠?”
나는 조용히 문을 열고 나가 말했다.
“저... 저는 그런 사람 모르는데요.”
경찰이 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보였다. 삼십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퍼머머리 여자였다. 예쁘기는 한데 얼굴은 생소했다.
“다시 한 번 봐보세요. 모르겠어요?”
“네... 전혀.”
“하긴 뭐... 병원 관계자라고하기도 그렇고... 모를 수도 있겠네요. 암튼 확실히 모르시는 거죠?”
“네. 정말 몰라요. 대체 그 여자가 누군데 그러세요?”
경찰이 말했다.
“병원장 딸이요.”
“네?”
“왜, 기억이 좀 납니까?”
“아니요. 마주친 적이 없으니까. 저는 야간 근무만 했어요. 밤에는 환자하고 당직 간호사들 밖에 없어요. 그래서 본 적이 없어요. 근데 그 여자가 왜요?”
“죽었거든요.”
“죽어요?“
“네, 모르셨구나... 이틀 전에 건물 옥상에 있는 물탱크 안에서 발견 됐어요. 국과수에서는 최소 한 달에서 두세 달 정도 거기 방치 된 거 같다는데, 물에 팅팅 불어서 확실하진 않구요.”
나는 급히 기억을 되짚었다. 물탱크, 두 개 뿐이다. 서관 그리고 북별관...
“줄로 목을 졸라 질식시켰어요. 기둥을 이용해 매단 모양이에요. 그 여자가 평소 프로포폴이란 마약성 약물을 상습 투약하고 있었는데, 휴대폰 내역 확인하니까 협박당한 정황이 있더라구요. 몇 날 몇 시 어디로 나와라. 그래서 온 거에요. 그 날... 근무자로 돼있으시길래. 뭔가 본 건 없나 해서...”
“제... 제가요?”
“젊은 친구가 범인이란 얘긴 아니고... 죽이면 그만인 걸 얼굴까지 짓이긴 걸로 봐서 원한 범죄 같은데, 젊은 친구는 그 여자랑 면식도 없다며, 우리는 일단 남편 쪽을 의심하고 있어요. 아내는 돈이 많고, 남편이랑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사이가 안 좋았고, 암튼 덕분에 병원은 지금 난리 났어요. 물탱크에 그 여자 시체가 있는 줄도 모르고 몇 달이나 그 물을 먹고 씻고 했으니. 어디 안 놀라고 배기나... 비닐이 풀리면서 물탱크가 막히지만 않았어도 아마 계속 몰랐을거에요.”
“비... 비닐이요?”
“네. 목을 조르고 쓰러진 여자 얼굴을 짓이기면서 피가 튈까봐 그랬는지 커다란 비닐로 싸맸더라구요. 허여무리한 걸로...”
갑자기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다급히 뛰쳐 들어가 방 구석 어딘가에 쳐박혀 있떤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왜 그러세요?”
경찰이 물었다. 나는 대답 없이 몇 달 전에 온 문자를 확인했다.
‘괜찮냐? 너한텐 진짜 많이 미안하다. 나중에 한 번 보자, 형이 밥이라도 살게’
‘잘 지내지? 나도 이번에 일 그만뒀어. 더는 못 해 먹겠더라고. 어차피 지겹기도 했고, 정이 많이 들었는데 이젠 홀가분하네... 모처럼 멀리 여행이나 떠날까 해.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는데... 여행, 이제야 가네? 꼴 보기 싫은 놈이랑 함께지만... 뭐 어때. 그런 게 인생이지.’
나는 다가와 내 휴대폰을 훔쳐보는 경찰의 멱살을 쥐고 물었다.
“누구 없어진 사람있죠? 그쵸?”
“읍, 왜 이러세요. 아... 안 그래도 그... 그 여자 남편이... 사건 발생일 즈음, 갑자기 사라져서, 평소에 두 사람 사이가 안 좋았다고 해서... 찾고는 있는데... 통 행방이...”
“망할 새끼...”
그 순간 많은 것들이 떠올랐다.
*
“이제껏 그렇게 예쁜 간호사는 본 적이 없어. 햇빛 한 번 안 본 사람처럼 하얀 피부에 검고 윤기 나는 머리칼, 쏟아질 듯 커다란 눈에 웃을 때마다 살포시 패이는 보조개, 거기다 인사는 또 어찌나 잘 하는지, 마주치면 언제나 밝게 인사했어. 그게 누구든 언제나 말이야. 진심이 느껴지는 인사였지.”
*
“아직도 기억이 나, 넘어져 내 위에 포개졌을 때... 쏟아지던 햇발과 빛을 받아 반짝이던 그 애의 빛나는 머리칼, 투명하고 맑은 눈동자 그리고 복숭아처럼 발개진 두 볼... 그건 정말 천사 같았어...”
*
“그 인간에게 그 여자는 그거였어. 노리개, 그 순순한 여자를 단순히 욕정의 대상으로 본거지. 정말 지독하더라... 휴게실, 주차장, 옥상 난간, 심지어는 수술 방이랑 화장실에서도!”
“형... 설마?”
“그래, 청경 실에서 하는 일이 뭐야! CCTV나 들여다보는 거 아니냐고! 쳇 빌어먹을 놈!”
*
“다 죽어도 싼 인간들이었어.”
“그... 그런...”
“그 여자가 무슨 백정이냐. 아무나 막 잡아 죽이게? 너는 원한을 살 만한 짓을 한 적이 없잖아. 네가 그 여자 욕을 하길 했어. 아니면 병원장 딸내미 옆에 붙어서 그 여잘 괴롭히길 했어? 그러니까 정신 차려 인마!”
*
“난 보고 싶다 그 여자... 한 번만이라도...”
*
경찰이 풀어진 옷깃을 여미며 말했다.
“아... 지금 막 문자가 왔는데, 그 여자 남편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 됐다네. 익사체라는데, 망할 놈... 이 새끼 지 마누라 죽이고 도망쳐서 자살한 거 아냐? 하여튼 돈이 문제라니까. 그럼 저는 일단 가보겠습니다. 필요 한 거 있으면 연락 드릴테니까, 전화 좀 받으시고. 참 그때 같이 근무하시던 분... 혹시 그 분이랑은 연락이 되세요? 그 분도 통 연락이 안 되서... 이름이 뭐더라? 아! 맞다 김민수씨...”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민수형인가? 의사와 그의 아내를 죽이고... 이제껏 죽은 모두를
그래 어쩌면... 그 여자조차도...
경찰이 집을 나서기가 무섭게 갑자기 벨이 울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