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조총 등으로 무장한 15만+a일본군을 이겼단건, 그들과 비등한 전력을 갖췄거나, 더 우세하단 얘기니까, 아마 후금군이 발흥해 명을 멸망시킬 힘을 가졌더라도, 조선을 쉽게 침공하진 못했을 것......아마 발해나 고구려 등의 역사적/지리적 동질성?을 내세워 형제의식을 내세우든지하면서 친화하려고 하지 않았을까...후금이 결국엔 명을 치는게 결과라고 하면, 후금이든 명이든 일본을 이긴 조선을 포섭하는게 후금:명 전쟁에서 중요했을 거고(후금은 명을 공격하는 틈을 타 조선이 침공하는걸 우려해서 정묘/병자호란을 일으키고, 명은 임진왜란에서 조선이 말리는 걸 보면서 조선이 일본의 명침공을 돕는게 아니냔 의심을 했으니까) 조선은 후금과 명 사이에서 줄 타는게 수월했을 것임...물론 이 모든건 조선이 임란 이전에 당쟁을 수월히 마물렀다는 전제를 깔아야 함.....명나라가 쇠약해져가던건 사실이니까, 아마도 조선이 줄만 잘 탔다면, 후금의 신뢰받는 제후국이 되었을거고, 조선이 후금의 봉금지대(백두산 언저리)를 관리하는 특혜도 누릴 수 있었을거임...그럼 대중국무역이 편해졌을거고....그렇게 인적교류가 많아지면 얻어걸려 태왕릉비나 고구려/발해유적/유물을 발견했을 수도 있고, 더 나아가서 우리가 서구와 직접 교역할 수 있는 길이 마련되었을 것임....근데, 당시의 유럽/서아시아와 동아시아가 주로 해상으로 무역을 했다는 걸 생각하면 육상진출이라는 것도 좀 비효율적이니까....
역사에 가정이 없지만 동아시아는 명과 조선이 이끄는 동북아시아 지형대로 쭉 가겠죠. 명나라가 망한 큰 요인이 만력제의 답없는 통치이겠지만 실상 조선파병이 가장 큰 원인에 속합니다. 후금이라는 나라 자체가 탄생하기가 힘들었을겁니다. 누르하치가 만주를 다 먹기 전에 명과 조선은 누르하치를 공격하고 제거했을겁니다. 심지어 조선은 왜란이 끝난이후 노토부락을 섬멸합니다. 조선의 마지막 여진족 정벌 전이죠. 조선은 충분히 여진족을 공략가능했을 겁니다. 누르하치가 더 강대하기 전에 명과 조선은 최소한 후금의 탄생은 막았을 겁니다. 명나라와 조선이 임진왜란으로 쇠할동안에 세력확대를 한거니까요. 만약 조선이 누르하치의 파병을 받아들였다면 후금역시 탄생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이 역시 가정일 뿐이죠. 명나라는 자멸한거지 청나라가 정복한게 아닙니다. 산해관을 한번도 못넘었으니까요. 뿐만 아니라 숭정제가 자살하지 않고 무사히 남쪽으로 도피만 성공했더라도 청나라는 장강이남으로 절대로 넘어오질 못했을 겁니다. 청나라가 무적 팔기를 내세웠지만 화약무기를 앞세운 명나라 원숭환을 한번도 못 이겼고 산해관을 지키던 오삼계를 못넘었으니까요. 천해의 요새인 장강이 뚫린건 자기들 내분때문입니다. 명나라는 농민반란으로 자멸했고 청나라는 그 기회를 잘 주어먹은 것 뿐이죠. 역사에 가정이 없지만 대순의 이자성이 오삼계를 잘 대우했더라면 오삼계의 애첩 진원원 혹은 오삼계의 아버지 오양을 잘 대우 해줬다라면 청나라는 절대로 산해관을 못 넘었을 겁니다. 청나라가 중국을 통치하게 된 순전히 운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