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글은 아니고..그냥 제 이야기입니다. 몇 달전, 추석 연휴 때의 일입니다. 그래도 연휴이고 해서 거의 반년만에 고향인 부산에 내려갔었습니다. 반년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인데 그동안 어찌나 보고 싶은 얼굴이 많았는지 모릅니다. 그 중에는 고등학교 동창 녀석들의 얼굴도 있었습니다. 학창시절... 의도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죄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놈들끼리만 어울리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스스로를 '5뽕아'라고 불렀죠(제가 지은건 아닙니다 -_-) 그래도 참 가진 것 없고 배고팠지만 나눠먹을 줄 알았고 (학교 매점에서 돈모아서 츄파춥스 하나사면 저희들 5명이서 돌아가며 물고 빨았죠..-_-) 어려운 환경이지만 항상 웃으며 즐거운 일을 만들었습니다 (진짜 웃긴 사연이 많은데 언젠가 기회가 되면 하나씩 꺼내보죠 라디오에 친구들과의 에피소드 사연 적어 보냈다가 상품 탄적도 있습니다 ㅎㅎ) 그 5뽕아 중에 한 녀석. 어릴 적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마저 고등학교때 돌아가셔서 할머니와 남동생이랑 같이 사는, 어린 나이에 집안의 가장이 된 녀석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 부산 왔다고 다들 모인 자리에 녀석은 아버지 제사 준비를 손수해야 되어서 못나온다고 하더군요. 아쉬워하며 술잔 기울이고 있는데 결국 얼굴 보고 싶다고 늦게나마 급히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학창 시절 에피소드들 얘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참 그 때 일들은 왜 얘기하고 또 얘기해도 항상 재밌는지... 그런데 각자 헤어지려 할 무렵에 녀석이 저만 불러내 조용히 말을 꺼냈습니다. "니를 오래 못봐서 할 얘기도 많고 했는데..내일모레 우리집에서 고기나 구워묵자." 할머니도 최근 몸이 편찮아지셔서 매일 병간호를 해야 되는 상황이었는데 오랜 친구랑 고기 구워먹고 얘기할 몇시간은 있다며 자기 집으로 초대를 했습니다. 그리고 약속한 날, 저는 그 친구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리 넓지 않은 방에 가재도구와 짐들은 무질서하게 쌓여있었지만 고기 올릴 불판과 제가 앉을 자리만큼은 잘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고기도 실컷 구워먹고 술도 어느정도 올랐을 무렵, 녀석이 갑자기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우리 아부지 상 당하셨을 때 말이다.." "어...어..." 갑자기 무슨 말인가 싶어 입만 뻥긋거리고 있는데.. "그 때...내가 눈물이 날뻔했다." "......왜?" "니이름으로 '5천원' 적혀있는거 보고..." 친구의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그 때 일이 떠올랐습니다. . . . 친구 아버님께서 입원해 계신다는 말은 들었었지만 갑자기 듣게된 비보.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달려가 문상비를 챙기려 했는데 어머니가 아직 일터에서 돌아오시지않아 아무도 없는 집안엔 아무리 뒤져도 천원짜리 5장 밖에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별로 안 친한 놈들도 만원은 챙겨올텐데...' 그래도 고등학교 놈들 중에 서로가 제일 친하다고 생각하는 친구인데 반친구들이 만원,2만원 씩 낼 때 천원짜리 다섯장 낼 생각하니 한숨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서둘러 챙겨 병원으로 뛰어갔었습니다. . . . "아......미안하다..내가 그 때 5천원 밖에 없었는갑다." 라며 제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웃어보려하자 "이새끼야...그게 5천원이 아니었으면 감동도 안 받았을거라고.." 라고 합니다.. "......" 놈은 제 바지주머니에서 나왔을 꼬깃꼬깃한 지폐라도 상상했던 걸까요.. 전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술에 취해서인지 무엇때문인지 모르지만.. 저도 모르게 괜히 눈물이 나려는 걸 겨우 막았습니다. 감동받았다는 말은 녀석의 입에서 나왔지만 오히려 제 사정 뻔히 이해하고 있는 친구에게 제가 감동받았는지 모릅니다. 고등학교 때나 지금이나 참 가진 것 없이 살고 있는 우리들이지만 그렇기때문에 우리들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런 친구 녀석들이 있어서 그래도 세상 사는게 참 즐거운 것 같습니다. - 오늘의 유머 옥동자Ω 오유도 그 녀석이 언젠가 "야 니 혹시 오유하나? '탁박사'라고 있던데 니 아니가?" 라고 해서 알게 된 건데 이 글 보고 있을지 모르겠네요 "사랑한다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