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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첫 책, <넌 생생한 거짓말이야 : 나의 공황장애 분투기> 서문을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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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심한 감기몸살을 앓았다. 늘어진 오징어마냥 이불을 뒤집어쓰고 종일 비실거렸다. 이러다 말겠지, 라는 나태한 예상은 늘 빗나간다. 이틀이 지나고 사흘을 넘겨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불안해졌다. 고통스러웠다. 당장 약국으로 달려가 약을 짓고, 편의점에 들러 종류별로 죽을 몇 개 샀다. 괜히 휴대폰으로 내 증상에 관한 검색을 해 보고, 이 상황에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해냈다. 아침마다 사우나에 가서 오한이 드는 몸을 녹이고, 푹 쉬는 걸로는 모자라 푸우우우우욱 쉬었더니 어느새 나았다.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자 발병 원인을 추적해본다. 그 누구보다도 건강한 생활 습관을 유지해오던 나였다. 지난 1년간 대체로 고기보다는 풀을 뜯었고. 라면보다는 과일을 삼켰으며, 정해진 시간에 취침하고 기상했다. 매일 유산소와 근력 운동을 했고 주말에는 수영을 다녔다. 납득되지 않았다. 그러나 원인 없는 결과가 어디 있으랴? 감기를 앓았던 시점을 기준으로 타임라인을 재구성해본다. 지난주에 이틀 연속으로 술을 먹었던 것이 원인이었을까? 아니면 환절기에 괜히 멋 부리려고 얇은 자켓을 입었던 탓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중학생 때부터 몸 어디가 좋지 않다고 토로하면 늘 되돌아오는 엄마의 진단, “네가 컴퓨터를 많이 해서 그래!” 그래, 그것도 가능성의 테두리 안에 넣어볼... 아니야 그건 확실히 원인이 아니야.
아무튼 우리는 감기만 걸려도 이런 일들을 한다. 원인을 추적하는 동시에 현재의 고통을 벗어나기 위한 필사의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감기가 좀 길어진다고 해서 오! 신이시여! 왜 나에게 감기라는 시련을 주셨습니까? 라며 대성통곡하지는 않는다. 잠시 머물다가 지나갈 고통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문제는 더 큰 고통이 찾아왔을 때다. 약국에서 약을 짓고, 죽을 몇 번 먹는 것으로는 도무지 끝나지 않을 크기의 원인 모를 고통이 찾아온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이 책은 그것에 관한 내용이다.
몇 년 전, 나는 공황장애에 걸렸다. 연예인들이 주로 걸린다는 그 병이 내게도 찾아온 것이다. 정신병자로서의 삶이 이렇게 시작됐다. 호흡이 곤란해지고, 자주 정신이 몽롱해졌으며, 가만히 있어도 마치 롤러코스터에 앉아 영혼이 송두리째 털리는 것 같은 상황에 자주 놓이게 되었다. 멘붕에 빠졌다.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는 세간의 게으른 진단에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다. 몸부림을 쳤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다. 정신과를 방문하고 한의원을 찾아갔다. 무속인도 만나고 북한산 꼭대기에 올라 산신령에게 절을 하기도 했다. 공황장애 걸린 친구와 부산까지 자전거 국토종주를 했다. 한편 예술가로서의 내 직업을 치유의 방편으로 적극 활용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공황장애에 관한 단편 영화도 만들었다. 무엇이 원인인지 정확히 몰랐던 것과 마찬가지로, 무엇이 이 병을 낫게 해줬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순전히 운이 좋았을 수도 있다. 스스로를 집어삼키는 강도의 고통이란 개인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공황장애를 어떻게 극복했냐는 물음에 나는 아직도 대답을 할 수 없다. 나는 모른다.
알게 된 것도 있다. 바깥으로 표현하지 않는 고통은 결국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사실이다.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나는 글을 썼다. 썼던 글을 다듬고 고쳐서 더 좋은 문장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형체 없이 내면에서 떠도는 고통을 바깥으로 꺼내어 정확한 문장으로 번역하는 행위에서 일련의 쾌감을 느꼈다. 적어도 심리적인 부분에서 많은 위안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이 기록들이 비슷한 증상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심적인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목차>
- 그놈이 왔다
- 원인없는 세계에서
- 나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 내가 주인공인 페이크 다큐멘터리
- 거리두기 전략
- 선생님 저는 질병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 공감의 조건
- 문 밖의 손님
- 무속인의 제안
- 산신령께 보내는 편지
- 고통의 초상화
- 공황퇴치 자전거 여행
- 영화 덩어리를 만들며
-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고통
- 제1회 공황장애 페스티벌
- 변기에서 온 그녀
- 영화 곡성
- 나아간 상상
- 출구에 서서
<구매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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